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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청춘의 독서 잠깐 짧게 봤지만 계속 기억에 남았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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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3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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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가 소개한 리영희라는 언론인 출신 선생님 글 일부분인데

그냥 그때나 지금이나 존똑이라 소름 돋더라

밑에 이 시국 추천 도서 글 보다가 생각나서 가져와봤어






기자는 수습 또는 견습이라는 '미완성'의 자격으로서도 출입처에 나가면

위로는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은행 총재로부터

아래로는 국장, 부장, 과장들과 동격으로 행사하게 된다.


그들이 취재 대상의 하부층과 접촉하는 기회는 오히려 드물다.

장관이나 정치인이나 사장, 총재들과 팔짱을 끼고

청운각(淸雲閣)이니 옥류장(玉流莊)이니 조선호텔 무슨 라운지나 하면서

기생을 옆에 끼고 흥청댈 때, 그 기자는 일금 1만 8000원 또는 고작해서

일금 3만 2000원이 적힌 사내 사령장을 그날 아침 사장에게 받을 때의 울상을 잊고 만다.


점심은 대통령 초대의 주식(晝食), 그것이 끝나면 은행 총재의 벤츠 차에

같이 타고 무슨 각(閣)의 기생 파티에서 최신 유행의 트로트 춤을 자랑하고

이튿날 아침은 총리니 국회의장의 "자네만 오게"라는 전화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참석하는 꿈이 남아 있다.


이런 기회는, 많고 적고의 차이는 있지만 출입처에 나간다는 기자에게는 반드시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거나 돼먹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기자도

얼마쯤 혼탁한 물에서 헤엄치다 보면 의식이 달라진다.

면역이 된다.


(......) 여러 해가 걸리는 것이 아니다.

어제 수습기자로서 선배 기자들의 무력과 타락과 민중에 대한 배반을

소리 높이 규탄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골프는 결코 사치가 아니야. 건전한 국민 오락이야." 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 여기서부터 그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은 지배계급의 그것으로 동화 과정을 걷는다.

고등학교를 남의 집의 눈총밥으로 마쳤다는 사실이나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 고학으로 대학을 나온 어제의 불우를 잊어버리는 것은

그 개인의 문제이기에 크게 탓하지 않아도 좋다.

문제는 부장이 되고 국장이 된 그의 머리에서 기획되는 특집 기자가

'매니큐어의 예술'이니 '바캉스를 즐기는 법' 따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다가 논설위원이 되거나 평론의 한 편이라도 쓸 때면

'학생의 본분은 공부만 하는 것, 현실은 정부에게 맡기기를' 따위가

아무 저항감 없이 나오게 된다.


서울의 종합병원의 환자가 레지던트 파업으로 하루 이틀 치료를 못 받는 것에

격분하는 기자는 이 나라의 1342개 면이 의사 없는 무의촌이라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그 많은 농촌에서 일생 동안 의술이라는 현대 문화의 혜택을 거부당한 채

죽어가는 백성이 왜 있어야 하느냐의 문제를 사회 체제와 결부해서 생각해 볼 리 없다.


(......) 모든 것이 '가진 자'의 취미와 입장에서 취재되고 기사화된다.

'지배하는 자'의 이해와 취미에서 신문은 꾸며진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진 자와 지배하는 자는

대연각(大然閣)의 음밀한 방에서 나오면서 이(李) 기자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린다.

"역시 이완용 기자가 최고야, 홍경래 기자는 통 말을 알아듣지 못한단 말이야."

그러고는 득의만면해서 돌아서는 이완용 기자의 등 뒤에서 눈을 가늘게 하여 회심의 웃음을 짓는다.


국민의 소시민화, 백성의 우민화, 대중의 오도(誤導)라고 말하는 학생들의 비난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적으로 부인할 용기를 가진 기자가 몇 사람이나 될지 의심스럽다.


『전환시대의 논리』 379~381쪽




이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함


이 글을 가슴에 새겨야 할 사람이 어디 기자뿐일까.

"부자 되세요"가 최고의 덕담으로 통하는,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온 사회가

물신숭배(物神崇拜)의 광풍에 휩쓸려 들어간 지금,

제대로 사람답게 살려는 의지를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새겨야 할 말이다.

언론 자유가 신문사 사주의 독점적 특권이 되고, 언론사가 사회의 목탁이 아니라

세습적 권력이 되고, 기자가 언론인이 아니라 기업의 직원처럼 행동하는 시대가 되고 보니

이 글이 더 귀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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