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슥 넘기면서 보던 인스타에서
'동물에 대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라고 평 남긴 거 보고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야
그 서평대로 이 책은 동물학대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
부제의 '여성' 감독관은 주인공인 마리를 가리키는데,
수의사인 마리는 북극해로 향하는 물범잡이 배에 감독관으로 승선했어
마리의 역할은 물범 사냥이 법을 지키며 이루어지는지 -총알을 지나치게 많이 쓰지는 않는지, 지나치게 많은 물범을 잡지는 않는지, 지나치게 잔인하지 않는지- 감독하는 거야
이 일을 위해 마리는 배에 탄 남자들과 함께 6주 동안을 바다에서 보내야 해
"아렌츠와 함께 배를 탄다는 사람이 이 여자야?"
남자는 마리의 손을 잡은 채 호바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마리는 남자의 손이 주는 메시지가 있음을 느꼈다.
"그럼 새로운 직업명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여성 감독관은 어때?"
^^.......... 벌써부터 암담하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배에서 마리는 여러 가지 공포스러운 일들을 겪어
샤워하고 나왔는데 갈아입으려고 밖에 놔뒀던 옷이 없어진다거나, 객실에서 자고 있는데 문 앞에서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 같다거나..
장면장면이 짧게 끊어지고 어떤 장면은 한 페이지에 두세 문장 정도로만 서술되기도 하는데
그 때문에 마리가 느끼는 불안감과 긴장감, 공포가 더 잘 와닿는 것 같았어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 감독관! 해당 물범잡이 어선에서 감독관으로 일했던 사람은 여자였습니다! 유머 감각이라곤 전혀 없는 젊은 여자였지요. 보아하니 그녀는 선원들의 유머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농담에 상처를 받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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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언급했던 총 이름은 두고두고 마리를 궁지로 몰았다. 그 때문에 신뢰를 잃었고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어떤 일이 사실 관게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네티즌은 절대 그걸 놓치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중간중간 마리가 배에서 돌아온 후의 일도 서술되는데 이 부분도 상당히 숨막히는 느낌을 줘
"먼저 나가시죠, 아가씨. 이 배의 선장은 납니다. 누가 선교를 벗어날지 결정하는 것은 내 권한이기도 합니다."
"나는 아가씨가 아니에요." 그녀는 겨우 말을 이었다.
"아, 그런가요? 결혼하셨나요? 육지에서? 그런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마리가 나직히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그냥 아니라고요."
"그렇군요." 아렌츠가 조용하고 침착하게 말했다. "바깥세상에서 당신이 결혼을 했든, 안 했든, 그건 여기서 아무 상관 없습니다. 먼저 나가시죠."
마리는 배의 선원들이 물범을 잔인하게 사냥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을 내려
그래서 처음에는 선장에게 이 점을 지적하고, 그 다음에는 선장을 통해 회의를 소집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마찬가지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아
마리의 주장은 물론 법적으로 옳고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만 여기는 그런 게 통하는 곳이 아니거든
사냥은 계속되고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는데...
새끼 물범까지도 무자비하게 사냥해 가죽과 고기를 취하는 인간과
여성을 배제한 채 공고하게 굳어진 남성 위주 사회의 잔혹함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서는 어디 대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던 기분이 들더라ㅋㅋㅋㅋ
184페이지짜리 짧은 책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
다만 물범을 사냥하는 장면이 꽤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마리가 겪는 공포스러운 일들도 너무나 사실적이라 그 점은 좀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
그치만 주위에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후기 써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