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 생활이 주가 되는 1부까지는 괜찮았어. 그런데 2부에서 속세 얘기가 나오니까 확 보기가 싫어지더라고. 갑자기 여자가 등장하는 야한 꿈을 꾸는 것도 그렇고, 길거리에서 유혹하는 여자에게 동했다가 정신 차리고 음욕으로 가득찬 모습이 별로다 그러는 것도 그렇고, 그래놓고 카말라에겐 첫눈에 반해서 수염도 깎고 목욕도 하고 머리에 기름칠도 하고 돈도 번다는 것도 그렇고 이런 속세, 특히 여성 관련 묘사는 대체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그리고 제목 때문에 불교 소설인 것 같으면서도, 사실 기독교적 가르침도 자주 등장하더라고. 그런데 왜 싯다르타에게 첫 번뇌로 다가오는 것이 여성에 대한 성욕인 건지 이해가 안 가. 왜 깨달음에 대한 방해자로 이성이 등장하게 되는 건지? 난 이게 성경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애초에 성경도 남성 위주로 쓰였기 때문에 가르침의 방해자로서 자꾸만 여성의 유혹이 등장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 근데 한 명의 여성 독자로썬 솔직히 여자가 깨달음에 왜 방해되는지 별로 공감 안 됨. 걍 별로임.
데미안은 미숙했던 아이가 점점 성장해가며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맛이라도 있었지, 싯다르타는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이 미숙하고 오만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걸 지켜보는 게 힘들더라. 특히 속세에 찌들어살던 것이 결국은 모든 것을 0으로 돌리기 위함이었다고 서술했을 땐, 비록 문학적 과장이 있기야 하겠지만 집을 나가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나고 다시 시작되니 참 쉽구나 생각이 들더라. 실제론 그렇게 안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지.
그래서 본인의 행적과는 달리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면, 스스로의 마음만 편해지지 않겠냐는 생각까지 들더라. 소설 속 인물들은 싯다르타를 이해해 주었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다를텐데. 그렇게 스스로만 평온을 되찾는다고 끝날 문제도 아닐텐데.
시대적인 배경도 생각해야겠지만, 데미안이나 싯다르타나 둘 다 좀 사회에 있어서는 무책임한? 그런 감상을 받은 것 같아. 나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나는 나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데미안은 행동의 평가를 사회에 전가해버리고, 싯다르타는 본인의 서사로밖에 다루지 않아. 위에서도 말했지만, 데미안은 어린 싱클레어의 성장물이기에 그게 용서가 되는 거고, 싯다르타는 그 과정을 통해 결말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반발심이 더 커지는 것 같아.
그래도 이 책을 통해서 얻은 것도 있긴 한데, 나는 여태껏 실존주의를 말하는 책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나 알아서 스스로 살자!", "내가 선택하고 행동하고 현실을 살아간다!" 이런 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게 되었어.
교회 영향권 밖이더라도... 쫌 더 양심에 고통스러워 하고... 도덕을 지키며 살아갈 수도 있는 거잖아... 이건 유럽 역사를 생각하면 너무 욕심인가ㅠ
쨌든 헤세는 유리알 유희까지는 읽고 졸업하고 싶은데, 이건 좀 나중에 읽어보는 걸로...
+ 혹시 내 해석이 잘못되거나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줬으면 좋겠어!! 유명한 책이다보니, 기왕이면 좋게 해석하고 같이 감명받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