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0권 정도 읽긴 하는데 이렇게까지 단기간에 100권을 돌파한건 처음이라 자랑하려고 글 써봤어 ㅋㅋㅋ
돌파 기념 올해 읽은 것 중에 추천하고 싶은거 몇 개 놓고 갈게.
[소설]
국내
1. 이혁진 / 광인
- 600pg가 넘는 두꺼운 장편이지만 술술 넘어가는 미친 흡입력.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랑 나는 달라'를 외치며 힙스터가 되고 싶은 남자(그러나..), 가난한 예술가 힙스터 그 자체이지만 현실에 좌절하는 남자(그러나..), 그리고 자신만의 최고의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고, 그 철학과 꿈을 향해 달려가는 여자(그러나..)의 불꽃 같은 사랑 이야기... 여기 남자주인공 진짜 대박으로 킹받음. 홍상수 영화 볼때의 킹받음 같달까... 그것이 매력...
2. 김기태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 이 단편집에 실린 보편교양과 전조등, 이것만으로도 이 단편집은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해. 밈을 잘 쓰는 요즘 작가들 사실 굉장히 많은데, 난 늘 '웃기긴 한데 얄팍하다'는 인상은 받곤 했는데 저거 두개를 읽고 이 작가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음!
3. 김사과 / 하이라이프
- 김사과 작가 자체가 취향이 굉장히 갈리기 때문에 추천하긴 어렵지만... 김사과를 좋아한다면 꼭 읽어야 할 것 같아. 한동안 계속 하던 실험이 이 단편집에서 폭발하는 기분이었음. 김사과를 그간 나름 꾸준히 따라왔던 독자라면 다들 좋아하지 않을까!?
국외
1. 엘레나 페란테 / 나폴리 4부작
- 이야기는 하두 들었는데, 왠지 나랑 취향 아닐 것 같아서 계속 안 읽다가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선 리스트에서 1위를 한 걸 보고 그정도라고? 해서 읽기 시작한 나폴리 4부작... 다 합치면 2000 페이지가 넘을 것 같은데 진짜... 지독한 병렬독서주의자인데 이 시리즈 읽는 동안은 거의 이 시리즈만 미친듯이 읽었던 것 같아. (물론 너무 길기 때문에 병렬독서를 멈추진 않았습니다) 나폴리 하면 떠오르는 해안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사실 이곳의 상황(마피아가 사실상 모든 전권을 휘두르는)이 굉장히 어둡다는 것은 여러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고는 있었는데, 책으로 읽으니 또 느낌이 다르더라고. 이러한 복잡한 정치시대적 배경 속에서 '레누'라는 주인공이 작가로써 성공하는 이야기이자, 그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친구 '릴라'의 파란만장한 삶을 10대부터 노년기까지의 일대기를 서술한 책인데... 이야기 자체도 재밌지만 페미니즘, 가족, 젠더, 퀴어 등 여러 중요한 사회 이슈를 그 사이에 쏙쏙 넣어서 흡입력 있게 풀어내는 솜씨가 미친거같음. 이게 소설이라고? 싶을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야... 읽기 잘했다고 생각했음! 인생책 반열에 들어갈 수 있을수도 있겠다 생각했어.
2. 어니스트 헤밍웨이 / 노인과 바다
- 고전을 잘 안 읽어서 올해 목표가 고전 20권 읽기인데, 진짜 이거 읽고 충격받음... 한 문장도 빼놓을 게 없는 소설이 존재할 수 있구나... 어떤 경이로움을 느낌... 모든 문장이 필요하고, 모든 문장이 정확하게 쓰인 느낌. 고전 입문작을 추천한다면 노인과 바다를 추천해! 분량도 짧고 이야기도 재밌어!
[에세이]
1. 이연숙 / 여기서는 여기서만 가능한
-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인가' 하면서 읽었어.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그 사람은 독자를 상정하고 쓰기 때문에 100% 솔직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일기도 마찬가지고. 조금 더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려고 노력하고, 억지로 감정을 짜내려고 쓰고, 조금이라도 멋진 문장을 쓰려고 하고.. 근데 이 작가는 정말 날것이 가진 매력이 무엇인가를 보여줘. 특히 많은 독자가 주변에선 쉽게 접하지 못할 이야기들(퀴어, 조건만남, 아버지와의 관계 등) 정말 '솔직하게' 함으로써 불편할 순 있겠지만, 이게 세상의 다양성을 얼마나 넓히는가를 생각하게 했어. 오래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앤 샬롯 로버트슨이라는 여성 감독이 몇십년동안 자신의 일상을 정말 솔직하게 기록한 필름을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 '와! 미국엔 저런 작가가 있구나! 너무 부럽다!' 했었는데 이 책이 그때 느낀걸 그대로 다시 느끼게 해줬음! 물론... 호불호는 많이 갈릴테지만...
2. 캐스린 슐츠 / 상실과 발견
- 이 책을 읽자마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2024년 올해의 책은 이거야'라고 말하고 다녔을 정도. 이 에세이는 아버지가 죽은 후, 자신의 감정을 다룬 '상실' 파트와 그 힘든 기간을 함께 보내며 결혼까지 결심하게 된 애인과의 이야기를 다룬 '발견' 파트,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을 겪으며 슬픈 상황 속에서도 행복은 분명히 존재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서도 갑자기 슬픔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고 말하며, 슬픔과 기쁨처럼 서로 상반된 것을 연결해주고, 나와 타인을 연결해주는 '그리고(and)'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리고' 파트로 나뉘어져있어. 발견 파트가 조금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와닿는 구절이 너무 많아서 밑줄을 계속 쳐가면서 읽음... 민음사TV에서도 이 책 너무 좋다고 나와서 반가웠음 ㅋㅋㅋ 강 력 추 천 !!!
[시]
1. 최승자 / 빈 배처럼 텅 비어
- 시는 잘 모르지만, 시집을 읽다보면 최승자 시인 시가 레퍼런스로 자주 등장하더라고. 궁금해서 읽어보고 완전 반했음. 단단한 여성의 목소리. 어떨땐 날카롭고, 어떨땐 읊조리는, 그런 목소리가 참 선명하게 들리더라. 다른 시집도 읽어보려고 함!
2. 이기리 / 젖은 풍경은 잘 말리기
- 어떤 순간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 어떻게 기억하려고 해도 그 풍경은 '젖어버린 사진'처럼 어느 지점이 번져있고, 그걸 어떻게든 잘 말리려고 해도 완벽히 그 순간은 아닌 그런 것들. 그리고 어떤 순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남아버리기도 하지. 어떤 괴롭힘의 순간들, 나의 자존감을 뭉개는 순간들, 이별, 상실, 분노... 시를 읽으면서 보통은 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걸 그려내려고 하는 편인데, 오히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젖은 풍경들이 계속 떠올라서 시어에 집중이 되지 않는 그런 기이한 경험을 많이 했던것 같음.
[인문학]
1. 박동수 / 철학책 독서 모임
- 철학과 거리가 먼 나... 제목만 보고 너무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리고 이 시리즈의 다른 책을 읽다가 포기했던 적이 있음), 너무 재미있게 읽었음. 출판업계의 사람들과 철학책을 읽고 만나는 독서 모임을 꾸준히 운영하는 이 저자가 그간 모임에서 읽었던 책들 중 인상 깊었던 것들을 소개한 책. 여러 장점이 있는데. 일단 다루는 책 자체가 1) 의외의 선택이 많고 ('정전'으로 불리는 철학책이 아닌, 지금의 철학가들의 저서를 소개함) 2) 그 철학가를 몰라도, 그 책을 읽지 않아도 마치 읽은 것처럼 너무 재미있고 명쾌하게 잘 설명해주고 3) 이 책을 둘러싼 출판업계 사람들이 나눈 의견들이 다 재미있고 (의외의 의견들을 많이 이야기함) 4) 그 책의 아쉬움이나 한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고 (좋은게 좋다로만 넘어가지 않음!) 5)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 이 철학들이 어떤것을 제시하는가까지 논의를 끌고감.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관심을 갖고 싶지만 어려워서 시도하지 못했던 사람도(나), 관심 없었던 독자도 모두 재미있게 읽을 것 같아!
2. 유발 하라리 / 사피엔스
- 독서방 챌린지 덕분에 드디어 읽게 된 사피엔스. 벽돌책이라서 선뜻 손을 못 대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음! 이 책의 주제나 주장하는 바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엄청난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을 했음. 이 주장을 펼치는 과정이 재밌다고 해야하나? 이래서 다들 유발 하라리 하는구나~ 싶었음. 이 책에 대한 설명은 이동진 평론가가 유튜브에 설명한게 있는데, 그 영상이 진짜 좋은것 같더라고. 책 안 읽어본 덬이나 읽어본 덬에게도 추천!
추천 쓰려고 읽었던 책들 쭉 보는데 그간 인문서적이나 과학서적을 넘 기피했던게 느껴지네... 남은 하반기 동안엔 그쪽 분야를 열심히 읽어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