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김억이 복수를 하고 싶었는데, 자기는 소설을 못 쓰니까 소설가 김동인에게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한 거야. 김동인이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소설을 썼어. 이 소설은 염상섭이 모델인데, 염상섭이 성병에 걸려서 생식능력이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아내가 임신했고, 그 애가 자기랑 발가락이 닮았다고 자랑하는 내용이었어.
이 소설이 발표되자마자 염상섭이 분노해서 반박문을 썼고, 둘이 조선일보에 서로 글을 올리며 논쟁을 벌였지. 결국 김동인은 사과했고, 염상섭이 모델이라는 걸 부인했어.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야. 김동인이 나중에 여성 소설가 김명순을 모델로 한 <김연실전>이라는 소설을 또 쓴 거야. 여기서 중요한 건, 김동인이 김명순을 왜 모델로 선택했는지야. 김명순은 그 당시 근대 문학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 자신의 작품과 자유로운 사랑을 통해 여성의 독립을 주장했던 인물이었어. 하지만 김동인은 여성의 자유로운 사랑과 성적 독립을 비판하고, 이를 억압하려는 봉건적이고 적대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었지. 염상섭과의 논쟁에서 한차례 사과를 한 만큼 이번에는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는 좀 더 만만한 대상을 고른거야.
김동인은 김명순의 사생활과 자유연애를 소설에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김명순을 문란한 여성으로 그렸어. <김연실전>에서 김명순을 기생 출신 어머니를 둔 주인공으로, 많은 남자와 성관계를 맺으며 파멸에 이르는 인물로 묘사했어. 이 소설은 당시에 너무 충격적이어서 ‘포르노 소설’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어.
김명순은 이 소설로 인해 엄청난 명예 훼손을 당하고, 결국 조선을 떠나 비참하게 죽었어. (정확한 죽음은 알 수 없지만 1950년대 일본의 정신병원에서 죽은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고 해) 김동인은 공개적으로 김명순을 모델로 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지만, 부정도 하지 않았어. 그래서 김명순은 계속해서 ‘탕녀’로 낙인찍혔고, 여성 소설가로서의 문학적 업적은 가려지고 말았지.
이런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남의 사생활을 허락 없이 소설로 쓰면 그 사람의 명예와 삶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거야. 김동인이 자신의 편견과 적대감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이용한 건 정말 잘못된 일이었지. 진짜 조심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