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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읽어보고 좋았던 시인의 말들 모음 (문학과지성사,문학동네,민음사,창비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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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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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죽음이 가져오는 파장 또는 물결.
한 사람의 죽음이 일으키는 세상의
새 리듬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한 사람의 죽음은 세상을 리셋시키고 재가동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을 산으로 모시기 전에
입관식을 지켜본 적이 있다.
나무 관 속에 망자가 들어가자,
마치 새로운 건전지를 끼워 넣은 듯 내가 알던 세상이
전혀 다른 리듬으로 작동되기 시작했다.
슬프도록 경이로웠다.
그것은 좋거나 나쁘거나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에 아직 죽은 이들 그리고 어린 이들과 함께 살아갈.
 
/ 김중일 -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



집으로 돌아가
불을 밝혔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낭비하리

2023년 5월
심지아
 
/ 심지아 - 신발의 눈을 꼭 털어주세요



정말로 잊을 수 있다면,
네 상처를 포기할 수 있니?

2023년 9월
이린아
 
/ 이린아 - 내 사랑을 시작한다



좋은 집에 살고 싶고 그 집의 가격이 오르길 바라는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저녁을 먹으며 평소 친애하는 시인에게 가르치듯 말했다. 그날 밤부터 지금까지 후회한다. 요즘 하는 말이 대체로 그런 식이다. 함부로 말하고 깊이 후회한다. 시를 후회하는 용도로 쓰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현실에 이토록이나 완벽하게 투항했는데, 무릎 꿇고 빌고 있는 주제에, 도가니와 손모가지의 멋진 각도를 계산하는 것이다. 좋은 집에 살고 싶고 그 집의 가격이 오르면 좋겠다는 사람의 마음은 사실 내 것이다. 이제는 하다하다 시를 고백하는 용도로 쓰려고 하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지껄이고 후회하고 고백하고 지껄이고 후회하고 고백하는 삶에 시가 끼어들어 자꾸 묻는다. 너 지금 뭐하느냐고. 너 지금 그렇게 사는 게 맞느냐고. 대답할 수 없어 썼다. 실패하는 마음의 한가운데에서 스스로 만든 지옥에 중독된 채로.

2022년 6월
서효인
 
/ 서효인 -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이번 生의 역할놀이를 나름 계속 해나가고 있다.
네번째 시집이다.
게으른 것은 알고 있다.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평생 써야 하는데.
다행히 아직 지겹지는 않다.
시 쓰는 법을 매번 까먹기 때문이다.

2022년 이른 여름
정재학
 
/ 정재학 - 아빠가 시인인 건 아는데 시가 뭐야?



목욕 끝낸 아이의 복사뼈와 뒤꿈치에 로션을 발라준다. 아이도 이제 익숙한지 까치발 하고 기다린다. 나 죽고 나서 언젠가, 다 늙어서도 매끌매끌한 저 발을 누군가 알아봐주면 좋겠다.

2023년 5월
 
/ 김상혁 -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너에게 향기로운 헛것을 보여주고 싶다.
 
/ 고선경 - 샤워젤과 소다수



내가 살아 있어서 사라지는 게 많다.
내가 살아 있어서 생겨나는 게 많다.
죽음과 사랑은 반대말이 아니지만, 그 사이에 뭐가 많다.

2022년 3월
권민경
 
/ 권민경 -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



나는 항상 인생을 망치는 꿈을 꿨어요.

아름답지 않아서,
더 이상 아름다운 것에게 사랑을 구할 수 없을 때는
구걸하는 기분으로

누구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 더러운 기분으로

내가 가진 환멸을 검열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나를 보았다.

2022년 9월
조혜은
 
/ 조혜은 - 눈 내리는 체육관



마음과 기억은 대개 같은 말이고
자주 내 편이 아니었다

다만 나를 뚫고서 지나간 것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여전히 세상사에 어둡고
언제나 사람이 어렵다

사랑하지만 용서는 하지 않은
그 모두에게 이 책을 건넨다

2022년 여름
전욱진
 
/ 전욱진 - 여름의 사실



어떤 그릇은 그릇의 용도로 쓰이지 않는다
어떤 용도는 제 용도를 가둬주기도 한다

사람이 꼭 사랑할 필요가 없듯이
사랑이 꼭 사람의 이유일 필요도 없다

슬픔을 가두는 건 사람의 일이었고
사람을 겹겹이 쌓는 건 사랑의 일이었다

2023년 겨울
유수연
 
/ 유수연 -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가뿐하게
영원이라는 말을 지울 수 있었다

무탈하고 평온하여서
힘껏
절망할 수 있기를

현명하고 어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치지 않고 솟아나는
슬픔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2023년 3월
여세실
 
/ 여세실 - 휴일에 하는 용서



물속에 일렁이는 빛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빛은 만질 수 없고 두 손에 가둘 수 없고 그래서 신비롭구나.
만질 수 없는 장면과 마음을 붙드는 게 시라면 다정하게 열린 창문, 흐르는 노래였으면 좋겠다. 창밖으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컵 속 얼음이 찰그랑거린다. 여름이다.
이 시들을 쓰며 나의 시간은 조금 더 갔다. 이것을 읽으며 당신의 시간도 조금 더 가기를. 그래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빛을 함께 볼 수 있기를.

2023년 여름
주민현
 
/ 주민현 -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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