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편 오심 4. 행운이 미챠에게 미소를 보내다 ~ 5. 갑작스러운 파국
오늘의 증인은 알료샤, 카체리나, 그루셴카, 이반이야. 어제 나왔던 증인들보다 우리한테 훨씬 익숙하지.
이걸로 증인 심문은 모두 끝났어! 내일부터는 검사와 변호사의 논고를 차례로 읽게 될 거야.
“어쨌거나 저는 언제나 어떤 드높은 감정이 숙명적인 순간에 형님을 구원하리라고 언제나 확신했으며 실제로도 구원해 주었습니다. 왜냐면 아버지를 죽인 건 형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알료샤는 온 법정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단호하게 끝맺었다. (352)
라키친이 “오늘 아버지와 형 미첸카를 보면서 범죄 생각을 해 봤지?”(1, 165)라고 했을 때, 알료샤는 “아니야, 미샤, 아니라고, 겨우 그런 것 때문이라면 너는 차라리 나에게 용기를 준 셈이야. 거기까지 가진 않을 거야.”(1, 165-166)라고 답했었어. 라키친이 말한 대로 실제로 살인이 일어나고, 모든 정황이 드미트리에게 불리하지만, 알료샤는 드미트리가 무죄라고 믿어. 그건 알료샤가 드미트리의 고결함을 믿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알료샤는 ‘어떤 드높은 감정’(아마도 드미트리 안의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이 드미트리를 구원해 주어 드미트리는 살인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해.
“저는 형님이 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353)
“저는 저분이 사리사욕이 없고 정직한…… 그러니까 돈 문제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정직한 분임을 언제나 굳게 믿었습니다…….” (359)
“하지만 저분이 자신이 무죄라고 말하자, 저는 그 즉시 저분의 말을 믿게 됐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고 또 언제나 그렇게 믿을 겁니다. 절대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거든요.”
좀 다른 얘기지만, 알료샤와 카체리나, 그루셴카는 모두 드미트리가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있어. 카체리나의 증언은 후술될 이유로 조금 걸러 들어야 하겠지만.
“실은 바로 그때 형님은 자기 가슴팍의 뭔가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 어쩌면 바로 그때 그 1500이 들어 있던 부적 주머니를 가리킨 것일 수도 있었겠군요……!” (354-355)
이러한 인식은 페츄코비치가 신문을 시작했을 때, 알료샤로 하여금 결정적인 증언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지. 드미트리가 카체리나로부터 받은 3000루블에서 절반을 떼어 주머니에 넣고, 그 주머니를 목에 걸고 다녔다고 말한 것을 기억할 거야. 알료샤는 드미트리가 ‘치욕의 절반’을 언급했던 일을 떠올려. 그때는 가슴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왜 가슴보다 저렇게 위에 있는 곳을 치는 건지 의아해했던 건 실제로 드미트리가 가슴이 아닌 목의 주머니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야. ‘치욕의 절반’은 물론 드미트리가 훔친 것이나 다름없는, 카체리나의 돈 3000루블의 절반을 말하는 거겠지.
이로써 알료샤는 ‘내가 가지고 있던 큰돈은 아버지의 것이 아니라 카체리나의 것이다’라는 드미트리의 증언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줘. 드미트리는 결코 살인자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고했기 때문에 드미트리에게 유리한 증언을 기억해낼 수 있었던 거지.
“스메르쟈코프, 그 살인자한테서 어제 받은 겁니다. … 아버지를 죽인 건 그놈입니다, 형님이 아니라요. 그놈이 죽였고, 저는 그놈에게 죽이라고 교사했던 거죠…….” (371)
스메르쟈코프는 “도련님은 법정에서 그런 수치를 감수하면서까지 인생을 영원히 망쳐 버리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260)라고 말했지만, 이반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어. 그리고 표도르를 죽인 사람은 드미트리가 아니라 스메르쟈코프이며, 자신이 스메르쟈코프에게 살인을 교사했다는 사실을 밝혀.
관점을 조금 달리해 보자. 이반이 모스크바로 떠난 것은, 살인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방관한 것과 다름없어. 그러나 그게 꼭 스메르쟈코프에게 살인을 교사한 것, 즉 ‘나는 이 집을 떠나 있을 테니 네 마음대로 해라. 모든 것은 허용된다. 심지어 아버지를 죽이는 것마저도.’라고 말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그럼에도 이반이 자신이 살인을 교사했다고 밝힌 것은, 아버지의 죽음을 바랐던 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야.
조시마 장로는 진정한 징벌이란 ‘유일하게 효과적이며 유일하게 공포를 주기도 하고 마음의 평화를 주기도 하는, 자기 자신의 양심을 의식함으로써 행해지는’(1, 134) 것이라고 했어. ‘만약 현재에도 이 사회를 보호하고 범죄자마저도 교화해서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다시금 오직, 자신의 양심을 의식함으로써 듣게 되는 그리스도의 율법뿐’(1, 134-135)이라고도 했고.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국가도, 교회도 아닌 그 자신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야. 그리고 조시마 장로의 말대로, 이반이 살인 교사를 자수한 것은 이반 자신의 양심 때문이었지. 이반의 정신을 분열시키고 이반을 파멸시킨 것 또한, 살인이라는 죄 자체도, 국가도, 신도 아닌 이 양심이었어. ‘꼬리가 달려 있는 놈’(373)―악마―을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말하는 이반은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것처럼 보이지.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앞에 두고 모르는 척하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거짓말쟁이들! 다들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고 있어. 한 마리의 독사가 또 다른 독사를 잡아먹는 거야……” (371-372)
드미트리와 이반은 말할 것도 없고, 이반이 처음으로 ‘독사’ 비유를 꺼내들었을 때 부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알료샤 또한 카라마조프-부친 살해의 부담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어. 때때로 이 대사의 ‘아버지’가 가리키는 대상을 표도르에서 더 확장하여 신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
“이것은 저 불한당 같은 인간이 쓴 편지예요, 바로 저 인간, 저 인간이!” 그러면서 그녀는 미챠를 가리켰다. “아버지를 죽인 건 저 인간이에요, 여러분은 지금 보시게 될 겁니다. 저 인간은 저한테 자기 아버지를 죽일 거라고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동생 분은 환자, 환자예요, 저분은 섬망증을 앓고 있단 말이에요! 저는 벌써 사흘째 저분이 섬망증을 앓고 있는 걸 보고 있어요!” (375)
이반이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며 끌려나간 뒤, 카체리나는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키며 과거에 드미트리가 술에 취한 채 자신에게 썼던 편지를 드미트리의 유죄에 대한 증거로 내밀어. ‘내 돈을 훔쳐간 도둑놈을 죽이고야 말겠어!’(229)라고 썼던 편지야. 이반이 자신이 살인자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을 때, 이반에게 내밀었던 편지이기도 하지.
카체리나는 완전히 흥분해서 자신이 드미트리에게 주었던 3000루블의 내력까지 밝혀. 그루셴카를 쌍년(...)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증오를 드러내지. 이건 이반이 자신의 살인 교사를 자백했기 때문이야. 카체리나로서는 이반이 살인 교사범으로 체포되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으니까.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어.
“오, 저 사람은 저를 끔찍할 정도로 경멸했습니다. 언제나 경멸했습니다.” (380)
그녀는 자기가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절을 한 일 때문에 미챠가 자기를 경멸해 왔다고 소리쳤지만, 이건 일부러 미챠를 모함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 자신이 이렇노라고 믿고 있었고 그녀는 어쩌면 그렇게 절을 했을 때부터, 그전까지만 해도 자기를 숭배해 온 순진한 미챠가 자기를 비웃고 경멸하고 있노라고 마음속 깊이 확신했던 것이다. (383-384)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절을 한 일’은 카체리나가 드미트리에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한 돈을 빌리러 왔을 때, 드미트리가 순순히 돈을 내어 주자 카체리나가 그에게 절을 했던 일을 가리켜. (돈이 필요하다면 카체리나를 자신에게 보내라고 한 의도는 제쳐 두고서라도) 드미트리의 행동은 분명 고결했지만, 카체리나는 이로 인해 수치심과 열등감을 느끼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어. 그리고 드미트리가 자신을 경멸한다고 믿게 되었지. 그러나 사실, 드미트리가 알료샤에게 해 준 말에 따르면 드미트리 역시 카체리나의 절로 인해 크나큰 수치심을 느꼈어.
“저는 저의 사랑으로, 무한한 사랑으로 저 사람을 정복하고자 했고 심지어 저 사람의 배반마저도 참으려고 했지만 저 사람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380)
고로 이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복수와도 같은 것이었다. … 미챠는 배신을 함으로써 그녀를 영혼 깊숙이 모욕해 버렸고 그녀의 영혼은 그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 그녀는 미챠를 배반했지만, 자기 자신도 배반했던 것이다! (384)
이반이 살인 교사범으로 체포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 순간, 카체리나의 머릿속에 갑자기 그 모멸적인 기억이 떠올라. 그리고 드미트리에게 복수하고자 하지.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렬한 악의에 찬 카체리나는 드미트리가 진범일 수밖에 없는 ‘수학적’ 증거를 내밀고, 드미트리에게 우호적일 수도 있었던 분위기를 삽시간에 뒤집어.
이건 근본적으로는 카체리나가 오만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카체리나의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집착에 가까운 사랑으로 표출되지. 또한 카체리나가 드미트리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게 된 것 또한 오만함에 기인해. 카체리나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몸을 팔 각오까지 하고 드미트리를 찾아왔는데, 드미트리가 오히려 자신을 존중하고 도덕적인 모습을 보이자 아버지를 구하고자 한 자신의 미덕이 모욕당했다고 느낀 거야. 드미트리가 보여 준 관대함보다 자신이 느낀 수치심에 더 집중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