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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결과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챌린지] 39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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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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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 이반 표도로비치 형제 9. 악마. 이반 표도로비치의 악몽 ~ 10. ‘이건 그놈이 말했어.’

오늘 회차는 분량도 길고 해설도 길었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해.
이걸로 제11편도 끝! 제12편 오심, 그리고 에필로그만 남았어.







거기에는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어떤 자가 느닷없이 앉아 있었으니, 이반 표도로비치가 스메르쟈코프에게 갔다가 돌아와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만 해도 방 안에 없던 자였다. (265)

이 자가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건 등장에서부터 알 수 있지. 챕터명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으니 앞으로 이 존재에 대한 호칭은 ‘악마’로 통일하도록 할게.



“믿음을 억지로 강요할 수야 있나? 더욱이 어떤 증거도 믿음에는 도움이 되지 않거든. 특히 물적 증거는 말이야. 토마스가 믿은 건 부활한 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믿기를 바랐기 때문이야.” (268)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한 20 : 25)

본문의 토마스와 인용문의 도마는 같은 사람이야. 토마스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후, 예수의 손과 옆구리에 난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고는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어. 실제로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본 건 아니고, 예수를 보고 나서 믿었지. 이에 대해 예수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한 20 : 29)라고 말했어. 그런데 악마는 좀 다른 관점을 견지해. 토마스의 믿음은 물적 증거, 즉 자신의 눈으로 행한 경험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존재한 믿음에 대한 소망에서 왔다는 거지. 



“왜냐면 이건 나, 나 자신이 말하는 거니까, 네가 아니라!” (269)
“너는 거짓이야, 너는 나의 병이야, 너는 그냥 환영에 지나지 않아. … 너는 나의 환각에 불과해. 너는 나 자신의 구현일 뿐, 그래 봐야 고작 나의 한 측면…… 그나마 나의 사상과 감정 중에서 가장 역겹고 어리석은 부분의 구현일 뿐이라고.” (270)
“너는 나야, 다만 얼굴이 다를 뿐, 나 자신이라고. 너는 내가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말로 표현해 줄 따름이야…… 그래서 나한테 어떤 새로운 말도 해 주지 못하는 거라고!” (271)

자신이 스메르쟈코프에게 교사하여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깨달은 이반은, 섬망증과 함께 인격의 분열 증세를 보여. 이반의 내면에 도사린 악이 별개의 ‘자아’가 되어 악마라는 이름으로 이반에게 나타나지. 그리고 이반은 악마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부정해.

여기에서는 대체로, 악마를 이반의 분열된 자아로 두고 해석할 거야. 따라서 악마가 하는 말은 이반의 무의식에서 끄집어 낸 생각들이거나, 이미 이반이 했던 말들, 혹은 끝내 부정하고 싶었던 사상이야.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나는, 그래도 너를 믿고 싶은지도 몰라!”(287) 등의 이반의 말을 떠올리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



“여기 자네들 세계에는 모든 것의 윤곽이 뚜렷하고 공식이 있고 또 기하학이 있지만, 우리 세계에서는 죄다 무슨 부정방정식뿐이라네!” (272)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부정방정식의 엑스라네.” (281)

이반은 ‘신은 그 땅을 유클리드 기하학에 따라 창조했을 것’(1, 493)이라고 말하면서,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절대 만나지 않는 두 개의 평행선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따라 어디선가 만날지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어. 이를 통해 이반이 유클리드적 지성을 지녔음을 알 수 있지. 유클리드의 세상에서는 하나의 공식에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지만,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했듯이 실제 세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아. 하나의 공식에 여러 개의 정답이 존재할 수도 있지. 악마가 자신을 ‘부정방정식의 엑스’라고 하는 것에는 아마 그런 의미가 담겨 있을 거야.



“뭐 물론 고통스럽기도 하겠지만…… 그 대신 여전히 살고들 있어. 그것도 환상적인 삶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왜냐면 고통이란 것이 곧 삶이기도 하니까. 고통이 없다면 인생에 무슨 낙이 있겠나 ― 모든 것이 끝없는 기도의 연속으로 바뀔 텐데. 그건 거룩하긴 하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지.” (280-281)

이반은 어린아이들의 고통 때문에 신이 만든 세계를 거부했지. 그런데 악마는 고통이 곧 삶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어. 신이 존재한다면 그에 대치되는 악마도 존재해야 하고, 선의 명예를 가져가는 천사가 있다면 추잡한 일을 처리하는 악마도 있어야 해.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고, 고통이 없으면 정화도 없어.




“그를 향해 천국의 문이 열리자마자, … 이 초도 지나지 않아 소리쳤다네. 이 이 초를 위해서라면 1000조 킬로미터는 고사하고 1000조 킬로미터에 또다시 1000조 킬로미터를 곱하고 또 거기다 1000조 킬로미터를 곱한 거리라도 걸을 수 있겠노라!” (285-286)
“사실 나도 알고 있다네, 내가 결국엔 화해를 하고서 나의 1000조 킬로미터를 끝까지 걸어간 뒤 비밀을 알아낼 것임을.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성내고 버티면서 마음을 다잡은 채 내게 주어진 소명을 이해할 것이네.” (294)

악마가 지어낸 일화 같지만, 사실은 이반이 열일곱 살의 나이로 김나지움에 다닐 때에 지어낸 일화야. 내세를 믿지 않던 무신론자가 죽어 보니 사실 내세가 존재했고, 1000조 킬로미터를 다 걷고 나서야 천국의 문이 열려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지. 그는 천 년을 드러누워 있다가 걸어가기 시작했어. 10억 년이 지난 후 그는 마침내 1000조 킬로미터를 모두 걸었고, 천국의 문이 열렸어. 그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 초도 지나지 않아 위와 같이 말해. 고작 진리를 체험하는 것이 고작 이 초에 불과한 시간이더라도, 이 이 초를 위하여 엄청난 고행을 감수하겠다는 거지. 이 무신론자에 이반을 대입하여 생각할 수 있을 거야.



“자넨 나를 보고서 골이 잔뜩 나 있겠지. 내가 … 이렇게 초라한 몰골로 임했다고 말이지.” (291-292)

악마의 외양에 대해서는 265-266페이지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악마는 지극히 평범한, 마치 이웃과도 같은 모습으로 이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 주석(민음사 판에는 있는데 다른 출판사에는 어떤지 모르겠네)의 ‘제카브리스트’는 1825년 입헌 군주제의 실현을 목표로 ‘제카브리스트의 난’을 일으킨 청년 장교들을 의미해. 그들은 모두 사살되거나,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배형에 처해졌어. 예전에 도스토예프스키도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났다고 한 적 있었지.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배를 떠난 건 1848년으로, 시간적 차이는 (생각보다?) 별로 나지 않아. 마찬가지로 주석에 언급된 게르첸과 오가료프는 농민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 문학가이자 사상가야.



“저 소리 안 들리나. 차라리 문을 좀 열어 주게나.” 손님이 소리쳤다. “저건 자네 동생 알료샤가 아주 뜻밖의 흥미진진한 소식을 갖고 온 걸세. 내 장담하지!” (298)
“한 시간 전에 스메르쟈코프가 목을 맸어.” 알료샤가 마당에서 대답했다. (299)

스메르쟈코프가 ‘한 시간 전’에 목을 매었다는 것에 주목하자. 지금이 몇 시냐는 이반의 질문에, 알료샤는 “곧 12시야.”라고 대답했어. 상황을 단순화하기 위해 오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스메르쟈코프가 목을 맨 것은 밤 11시지. 그런데 이 ‘한 시간 전’은 이반과도 관련이 있어. 이반은 알료샤에게 “나는 조금 전, 한 시간 전에 바로 이 수건을 저기서 가져와 물로 적셨어.”(302)라고 말했거든. 그럼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시점일까? ‘이반 표도로비치는 한쪽 구석으로 가서 수건을 집어 자기 말대로 한 뒤(수건을 찬물에 적신 뒤) 물수건을 머리에 얹은 채 방을 앞뒤로 거닐기 시작했다.’(269) 악마와의 대화가 시작할 즈음이야. 즉, 악마가 이반을 찾아온 시각과 스메르쟈코프가 자살한 시각은 일치해.

이는 현실에서 죽은 스메르쟈코프가 이반의 꿈속에서 악마로 다시 태어난 것을 암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어. 스메르쟈코프 자신도 다른 존재의 환생과 관련이 있었지. 그리고리의 갓난아들이 죽어 땅에 묻히던 그날, 리자베타 스메르자쉬야의 몸에서 태어났고, 그리고리와 마르파는 스메르쟈코프가 죽은 아들의 환생인 것처럼 여겼으니까. 이렇게 보면 악마가 프랑스어를 중간중간 섞어 말한 것도 의미심장하지.

또, 악마는 이반에게 알료샤가 ‘아주 뜻밖의 흥미진진한 소식’을 갖고 왔을 거라고 말해. 악마가 이반의 분열된 자아라면, 그 소식이 스메르쟈코프의 자살이라는 점은 이반 스스로 스메르쟈코프의 자살을 예감(기대)했음을 의미할 거야.



“아무에게도 죄를 돌리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의 의지와 의향에 따라 내 생명을 끊는 바이다.” (300)

어머니 스메르쟈쉬야의 죽음과 함께 태어나고, 아버지 표도르를 죽인 스메르쟈코프는 결국 자기 자신까지 죽이고 말았어. 자신의 죄와 고통의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일말의 양심―이반과는 달리, 스메르쟈코프는 표도르의 살인에 대한 부분적인 책임조차 인정하지 않고 죄책감은 당연히 느끼지 않았지―도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파멸로 치닫게 된 거야.

스메르쟈코프의 유서는 자유 의지의 극단적 행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줘. 카라마조프의 피가 흐르는 다른 인물들, 그러니까 표도르나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는 비록 때로는 비열하고 때로는 탐욕스러울지라도 어쨌든 생명력에 대한 갈망을 갖추고 있어. 그러나 스메르쟈코프는 그러한 정신적 복합성이 결여된,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인물로 나타나. 이를 통해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의 자유 의지의 무제한적인 행사에 동의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어.

종교에서 자살 행위를 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간주한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인간의 모든 죄는 신에 의해 용서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행하는 것은 신의 자비로운 판단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야. 이 관점에서는, 스메르쟈코프의 죽음이 신의 존재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명하기 위한 육체적 소멸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 ‘아무에게도 죄를 돌리지 않기 위해’라고 말하지만, 실은 희생정신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거지. 스메르쟈코프의 죽음으로 인해 이반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증거가 사라지고, 이로써 드미트리가 혐의를 벗을 길은 한층 좁아졌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너라면 그놈을 쫓아냈을 거야. 하긴, 네가 쫓아낸 거나 다름없지. 네가 나타나자마자 그놈이 사라졌으니까.” (304)

앞서 말했다시피 악마는 스메르쟈코프와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고, 알료샤는 작중에서 여러 번 ‘천사’로 언급되었지. 알료샤와 스메르쟈코프는 이반의 죄에 대해서도 상반되는 태도를 보여. 알료샤가 “형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반면, 스메르쟈코프는 “도련님이 죽였어요.”라고 말해. 따라서 알료샤의 등장과 함께 악마가 사라진 것은, 알료샤-천사와 스메르쟈코프-악마의 대결에서 알료샤-천사, 더 나아가 하느님이 이긴 것으로 볼 수도 있어.



“네가 정 그렇게 나오니 말인데, 그놈은 오직 그 말만 했어. … ‘그래 봤자 자네는 표도르 파블로비치처럼 돼지 새끼야, 게다가 자네에게 선행이란 게 뭔가?’” (307)

악마는 이반과 표도르를 모두 ‘돼지’라고 칭했는데, 여기에서도 성경을 떠올릴 수 있어.

마침 그 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누가 8 : 32-33)

이 구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또다른 장편 소설인 <악령>에서도 인용되었지. <악령>에서는 무신론적 혁명사상을 ‘악령’으로 보고, 그것에 이끌린 사람들의 파멸을 묘사했어. 이를 고려해 보면, 악마는 이반과 표도르 모두 신을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그래, 스메르쟈코프가 죽어 버린 이상, 더 이상 아무도 이반의 증언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형은 그래도 가서 증언할 것이다!’ (309)

위에서 알료샤-천사와 스메르쟈코프-악마의 대결에서 알료샤-천사, 더 나아가 하느님이 이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지. 법정에 출두해서 죄를 고백하겠다는 이반의 말에 스메르쟈코프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요. 도련님은 안 가실 테니까요.”(258), “도련님은 법정에서 그런 수치를 감수하면서까지 인생을 영원히 망쳐 버리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260)라고 반응했어. 반면, 알료샤는 이반이 스메르쟈코프의 죽음과 함께 증거가 사라진 상황에서도 법정에 나가 증언할 거라고 믿어. 과연 이반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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