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편 소년들 6. 조숙 ~ 7. 일류샤
이렇게 해서 콜랴와 일류샤의 이야기가 대강 마무리되었어. 과연 일류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다음 분량에서는 그루셴카가 다시 나오겠네. 이쪽 얘기도 재밌겠지!
+) 민음사 편 110쪽에 주석이 잘못 달린 것 같은데, 인용된 성경 구절은 시편 136편이 아니라 137편이야. 해석은 알료샤가 해주었으니 패스.
“그래 어디서, 대체 어디서 그따위 소리를 주워들은 겁니까? 대체 어떤 바보와 어울린 거죠?” 알료샤가 소리쳤다.
“무슨 말씀을요, 원래 진실은 숨길 수 없는 법이죠. 물론, 나는 우연한 기회에 라키친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종종 있긴 하지만, 하지만…….” (94)
알료샤는 콜랴가 ‘자기 것이 아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간파해. 콜랴는 그럴듯한 이론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라키친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읊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 그러니까 콜랴는 알료샤와 라키친 사이에 위치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알료샤는 감성적이고, 라키친은 이성적이야. 알료샤는 겸손하지만, 라키친은 오만해. 이처럼 두 인물은 서로 반대되는 면을 보이는데, 콜랴는 아직 그 사이에서 헤매고 있어. 이성적으로는 라키친에게 끌리지만 감성적으로는 알료샤에게 끌리는 상태지.
“당신을 경멸한다고요?” 알료샤가 놀라워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무엇 때문에요? 나는 그저, 당신처럼 매혹적인 천성을 타고난 사람이 삶을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그런 조잡한 헛소리 때문에 비뚤어지게 된 것이 슬플 따름입니다.” (97)
아무튼, 알료샤는 콜랴와 라키친의 만남을 달갑게 여기지 않아. 정확히는 라키친이 콜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데, 이는 콜랴가 라키친의 사상을 지나치게 잘 받아들여 마치 자신의 것처럼 믿게 되었기 때문이야. 아직 백지 상태여야 할 어린아이가 너무 일찍 물들여진 거지.
“당신은 지금 자신의 고약한 점을,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점을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누가 이런 걸 인정합니까? 아무도 그렇지 않죠, 심지어 자신을 비판할 필요성마저도 느끼지 않게 됐죠.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지는 말아요. 비록 당신 혼자만이 그렇지 않은 자로 남게 될지라도, 어쨌거나 그렇게 되지는 말아야죠.” (102)
그럼에도 알료샤는 콜랴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어. 콜랴는 자신이 똑똑한 척 뽐내고 싶었다고 인정하고, 세상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을 때마다 질서를 무너뜨리고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싶어진다고 털어놓거든. 자신의 단점을 고백하는 것은 언제나 용기 있는 말이지. 알료샤는 콜라가 이 용기를 내내 간직하기를 바라고 있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비판할 필요성마저도 느끼지 않게 되더라도, 콜랴만큼은 지금의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거야.
“들어 보세요, 콜랴, 그나저나, 당신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주 불행한 사람이 될 겁니다.” (103)
냅다 콜랴에게 악담을 하는 알료샤……는 당연히 아니고, 이건 콜랴가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지. 그야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단점을 외면한 채 살지 않고 이를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삶, 다시 말해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삶은 쉬운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불행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 한 명 더 있지. “그렇게 믿으신다면,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이미 몹시 불행한 사람입니다!” (1, 146) 조시마 장로가 이반에게 했던 말이야. 32회차 때 콜랴가 이반의 분신이라고 설명했었는데, 이를 통해서는 알료샤가 콜랴에게 이반을 겹쳐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어. 콜랴는 어쩌면, 어린 시절 알료샤 같은 어른을 만났다면 이반이 어떤 아이가 되었을지를 나타내는 인물일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