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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결과 [레 미제라블 챌린지] 16회차 (자료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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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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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레 미즈 총대덬이야

오늘 분량은 1장 18절 '신수권이 다시 위세를 떨치다'까지야. 오늘 것만 읽으면 워털루 전투도 끝이다아ㅏㅏㅏㅏㅠㅠㅠㅠ (신남)

이 부분이야말로 역사 설명이 필요해서(17~18절은 위고 영감이 '너네 그거 다 알지?'라고 전제하고 줄줄 이야기하는 수준이라ㅠ)
나도 자료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14,15회차 자료는 오늘을 위한 빌드업이었는데ㅠ)
어제 밤에 깜박 잠이 들었...다가 겨우 써 왔다!!!

이 부분은 정말ㅠ 읽기도 힘들고 쓰기도 힘들어ㅠㅠ 위고 영감이 "너네 이거 다 알지? 안다고 생각하고 내 썰 푼다~" 하고 줄줄 말해버리니까 진짜 모르면 너무 답답해ㅠㅠ


그래도 딱 하루만 더 눈 부릅뜨고 읽으면 내일부터는 소설 서사로 돌아가니까 다들 힘내서 읽어보자!!!


오늘은 내 피땀눈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서 올리는 워털루 전투 자료 마지막 편이야

18절과 직접 연관되는만큼 조금 지루하더라도(ㅠㅠ) 그리고 쫓기듯이 써서 두서없어도(ㅠㅠ) 읽어주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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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 4월 나폴레옹이 퇴위하고 그해 9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합국들의 회의가 열렸어

나폴레옹 전쟁의 승전국 -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 a - 이 모여서 전후 처리를 위해 모인 이 회의가

바로 유럽사, 국제정치학, 외교사 책에서 빠지지 않고 중요하게 언급되는 '빈 회의'야


빈 회의의 골자는 전쟁 이전의 현상 유지로 돌아가자, 즉

1) 혁명 프랑스와 나폴레옹이 한껏 휘저은 유럽 내 국경선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누가 어느 땅을 얼마나 더 많이 가져갈래?)

2) 어떻게 프랑스가 다시 강대국이 되지 못하게 할까(=20년씩이나 전쟁했는데 이 사달을 낸 프랑스를 어떻게 X질까?)

3) 전쟁 이후 유럽은 어떤 질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할까

이 셋이 이 회의의 주요 안건이었어

이 질문들을 조금 거칠게 분류하고 어려운 이름표를 붙이자면 1,2번은 세력균형의 원칙, 3번은 정통주의와 복고(復古; 레트로 그거...)라고 할 수 있을 거야


패자는 할 말이 없다고, 패전국인 프랑스의 영토는 일단 1790년 때 국경선 안으로 쪼그라들었어

이건 1815년 워털루 전투까지 다~ 끝나고 영-프로-오-러 4개국이 자기들끼리 맺은 2차 파리 조약에서 결정된 사안이야

원래 1차 파리 조약에서는 프랑스 국경을 1792년 때로 돌리는 데 그쳤지만 한창 빈 회의하고 있는데 나폴레옹이 돌아와서 또 난리치니까

더는 못 봐 준다 하고 더 많은 영토를 뱉어내게 한 거지

그래서 이 조약으로 프랑스는 네덜란드-스위스와의 국경 일부 지역, 사보이의 거의 전역 등등을 내놓고 대혁명 즈음의 국경선으로 돌아가게 돼

그나마 원래 가진 영토까지 내놓으라고 안 한 게 다행이지 뭐


나폴레옹 전쟁 승리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저 4개국은 이렇게 프랑스의 기를 꺾어놓은 데서 나아가서

자기들끼리도 영토를 나눠가지면서 덩치와 파워를 대체로 비등하게 가져가게 돼

지금도 그렇지만 영토는 국력에 직결된 문제잖아? '영토 = 군인, 세금, 자원'이니까, 더 많은 사람이 사는 더 넓은 땅, 그것도 자원이 풍부한 땅일수록 좋으니까

저 나라들 모두 더 넓은 땅, 더 알짜인 땅을 가져가고 싶어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거야


4개국이 영토 분할 이슈로 씨름을 하느라 회의 진행은 더뎌져서 원래 4주 정도로 생각했던 빈 회의는 8개월로 늘어났어

야 한 달 생각한 해외 출장이 여덟 달로 늘어났다고 생각해 봐... 외교 실무진 화나 안 나! 화나 안 나!

그만큼 각국의 대립이 팽팽했다는 뜻이지만 거기서도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물밑 싸움도 회의 지연에 한 몫 했어

회의 주재자인 오스트리아 수상 메테르니히는 회의가 오스트리아에 불리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회의를 멈추고 파티를 여는 지연 작전을 폈는데

이것 때문에 빈 회의를 두고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은 없다(Le congrès ne marche pas, il danse)"라고 풍자하는 말과 그림까지 등장했으니

빨리 할 일 끝내고 쉬고 싶은 인티제 속 터져 못 견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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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회의' 빈 회의 풍자화. 왼쪽부터 탈레랑(프랑스), 캐슬레이 남작(영국), 프란츠 1세(오스트리아),
알렉산드르 1세(러시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프로이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바르샤바 공국&작센 왕국), 의인화된 제노아 공화국




수개월이나 질질 끈 회의는 이렇게 결론 났어. 영토 관련 중요한 결론만 간추려 보자면

① 러시아의 폴란드 거의 전역 병합, ② 오스트리아의 이탈리아 재탈환

③ 프로이센의 독일 서부와 포메른(발트 해 남쪽 연안 지방; 지금의 폴란드-독일 일부) 등 병합

④ 영국의 해외 식민지 병합 및 독일 하노버 왕국과의 동군연합(한 사람이 두 나라의 왕이라서 양국 간에 맺어지는 연합) 인정

사실 그나마 나폴레옹이 돌아와서 그거 손 봐 주러 가느라 8개월 만에 끝난 거지 안 그랬으면 더 길어졌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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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이런 지도가 만들어졌어

보면 여전히 지금 우리가 아는 유럽과는 조금 다르지만 자기들끼리 비등한 규모 국가들이 여럿 생겼다는 건 알겠지?

그래서 여기 '세력균형'이라는 원칙이 붙은 거야. 어느 한 국가도 압도적인 힘을 못 쓰는, 고만고만한 국가들이 공존하는 체제가 다시 형성된 거지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하는 지역은 역시나 이번에도 독일이야

나폴레옹이 만든 라인 동맹 기억나? 나폴레옹 시기에 신성로마제국은 자진 해체했고, 거기서 나온 독일 제후국 일부는

라인 동맹에 들어가 나폴레옹 라인을 타면서 (영토를 뺏기기도 했지만)대체로 영토를 유지하거나 넓히기도 하면서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켰어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그 지역을 승전국이자 독일어권 양대 강국인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홀랑 나눠 먹으려고 하니까

그 사이에 머리가 커진 중간급 국가들 - 바바리아, 뷔르템베르크, 바덴 등 - 이 "너 뭐 돼...?" 하면서 둘의 주도권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어

더구나 이 지역은 여전히 많은 공국이 존재하고 있었고, 베스트팔렌 이후 주권을 사수하려는 의식도 갈수록 확고해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오스트리아랑 프로이센이라도 이 지역을 마음대로 잘라 먹기는 힘들었는데

그렇다고 다 놓아주고 얘네가 요구하는 국경선 획정안을 일일이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리게 돼

게다가 독일 북쪽 하노버 왕국은 당시 영국 왕가였던 하노버 왕조의 본거지이기도 해서 여길 다른 나라가 꿀꺽 하려고 한다면 영국도 가만 있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이 지역에 독일어권 연방을 만드는 방안이 해결책으로 논의되었고, 빈 회의에서 여러 번의 협상을 거쳐서

드디어 1815년 6월 34개(35개라고도 하더라) 군주국과 4개의 자유도시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주도 하에

'독일 연방(the German Confederation)'이라는 느슨한 동맹을 맺기로 결론이 났어

30년 전쟁 직후 독일 제후국은 300여개였는데 그래도 그때에 비하면 많이 정리됐지...?

이 독일 연방은 후에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1871년 프로이센 주도로 '독일 제국'으로 통일되는데,

딴 소리지만 나치 독일이 '제 3제국'을 자칭할 때 왜 하필 '3' 제국인지 알고 있어?

히틀러 왈 신성로마제국 = 1 제국 / 독일 제국 = 2 제국 / 나치 독일 = 3 제국 이렇게 되는 거야

대체 얼마나 '게르만 족'이라는 관념에 미쳐있던 건지... 히틀러까지 연을 대고 있는 '제국' 타이틀인 줄은 몰랐네


그리고 이 틈에 프랑스도 다시 치고 올라와. 어떻게? 외교로.

빈 회의에는 프랑스 사절단도 와 있었어. 패전국이긴 하지만 어쨌든 더 많은 손해는 안 보게 협상은 해야 하잖아?

그리고 4개국도 프랑스를 완전히 밟아버리려고 갈가리 찢어놓거나 자기들끼리 나눠 갖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만약 그랬다면 프랑스 지역은 유럽의 또다른 화약고가 되었을테니까 일단 혁명 전쟁 전의 영토로 돌아가는 것까지만 손을 본 거지

그래도 이왕 그런 자리 갔으니까 프랑스도 최대한 지킬 건 지켜야 하잖아

당시 프랑스 대표는 외무대신 탈레랑이었는데 이 사람 이름 혹시 기억하는 덬이 있으려나?

1부 3장에서 팡틴이 친구들이랑 노닥거리는 부분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에 1절에서 "시종장 탈레랑 공과(...)"라는 구절 나오잖아?

그때 스치듯 지나간 그 탈레랑 공이 이 탈레랑이야

무려 총재 정부 때부터 프랑스 외교를 이끌었던 탈레랑은 그 변절과 배신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잌ㅋㅋ 특정 개인에 대한 충성보다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게 최고 목표였고 그걸 빈 회의에서도 관철하려고 기회를 엿보다가 진짜 좋은 찬스를 잡았어


빈 회의 중에 폴란드와 작센 지역 영토를 놓고 영국-오스트리아 대 프로이센-러시아 구도로 갈등이 빚어졌거든

프로-러가 폴란드랑 작센을 가져가려고 드릉드릉하고 있었는데 둘이 그것까지 먹으면 힘의 중심이 그 쪽으로 쏠리게 되니

영국과 오스트리아는 당연히 둘의 욕심을 반대했고... 2대 2다 보니 협상은 지지부진해졌어

근데 그 틈을 탈레랑이 비집고 들어가서ㅋㅋㅋㅋ 영-오 편에 서서는 "프로-러의 무리한 요구가 계속되면 3국(영-오-프)이

병력을 동원해 대항한다"고 합의했고, 그 바람에 프로-러는 한 발 물러나면서 영토 문제가 마무리됐어

이걸 계기로 프랑스는 패전국임에도 다른 4개국과 함께 상호 견제가 가능한 동등한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유럽 내에서 5대 강국 간의 상호 견제라는 세력 균형 체제가 작동하게 되었어

4개국 간 대립이 팽팽했기 때문에 이걸 이용 못하는 게 이상한 거다라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그 기회조차 못 살리고

흘려보내는 외교관들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난 탈레랑의 개인 능력도 꽤 뛰어났다고 봐


그리고 마지막 특별하게 언급할 이슈는 '신성 동맹(Sainte-Alliance)'야. 이거... 오늘 분량 마지막에도 언급되는(p. 90) 그 신성 동맹 맞슴다

신성 동맹 이야기를 하면서 3번 정통주의와 복고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


영토 문제는 저렇게 대강 정리됐고, 유럽에는 서로 비등한 힘을 가진 여러 강국이 공존하는 세력 균형 체제가 재차 자리를 잡았어

그리고 이 강국들(나중에 프랑스까지)은 전후 유럽 질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논의했는데,

이때 러시아가 "유럽을 기독교 원칙에 따라 재건하고 기독교의 모든 종파를 통합해 그 위에 국제평화를 이룩하자"는 주장을 들고 나와

러시아 등장이 좀 뜬금없어 보이지만 사실 러시아는 빈 회의에서도 무시 못할 발언권을 갖고 있었어

사실 18세기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유럽 변방이었고 빈 회의 때도 '문명화'된 유럽에 비해 다소 격 떨어지는(?) 투박하고 둔한 국가로 통했는데

나폴레옹 전쟁 승리에서 러시아가 꽤 큰 지분을 갖고 있고(러시아 원정 같은 거...) 전쟁 후 러시아 군대 상당 규모가 서유럽에 주둔까지 하고 있다 보니

러시아가 나서서 전후 질서 원칙을 왈가불가하는 걸 다른 나라들은 예전처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어

러시아 스스로도 이걸 잘 알아서 '나폴레옹에 맞서 유럽을 구한 유럽의 구세주'를 자칭하기도 했고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기독교 원리에 따른 유럽 질서 회복'을 주창하면서 평화 유지 방법으로 동맹을 맺어 공동 대응하자고 제안했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싫든 좋든)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러-오-프로의 신성 동맹이 창설됐어

영국도 제안을 받긴 했지만 워낙 오랜 마이웨이 전통을 가진 터라 일단은 거절했고.


레 미즈에서는 이 대목이 "낡은 유럽은 그 틈을 타서 개혁되었다. 신성 동맹이 맺어졌다.

(...) 이 새로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유럽을 마주하여 하나의 새로운 프랑스의 윤곽이 그려졌다"(p. 90)고 언급되어있어

여기서 신성 동맹과 '새로 만들었지만 오래된' 유럽에 관한 설명을 좀더 이어가 볼게


혁명-나폴레옹 전쟁 후 혁명으로 사라지거나 나폴레옹이 '바지 사장' 왕을 앉힌 나라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빈 회의는 '옛 왕정의 회복' 즉 왕정 복고로 대답했어

애초에 프랑스 대혁명이 루이 16세의 목을 치고 만든 공화정과, 절대왕정-전제군주제를 유지하던 다른 나라들의 싸움이

지난 20여년간 이어진 전쟁의 발단이었잖아

전제군주정 국가들이 전쟁에서 이겼으니 당연히 공화정이 들어섰던 프랑스도 왕정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받았고,

이에 따라 혁명으로 쫓겨났던 부르봉 왕조 구성원들이 프랑스로 돌아가 루이 16세의 동생 프로방스 백작이 새로운 프랑스 국왕 루이 18세가 된 거야

그 후 자세한 프랑스 사정은 6회차 인증글에서 이야기했으니 넘어갈게


빈 회의와 승전국, 나아가 신성 동맹이 전통적인 군주정 질서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인 또다른 이슈는 바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였어


나폴레옹은 혁명기 혼란을 정리하면서 권력자로 부상했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공화정을 없애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혁명 정신을 계승해야 할 역사적 필연성이 있었고, 나폴레옹도 이걸 모르지 않았어

그래서 '왕정을 전복한 혁명의 정신을 유지'하는 것을 자기 통치의 당위성이자 기반으로 보고 혁명 정신에 입각한 여러 정책을 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게 덬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나폴레옹 법전' 편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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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법전 원본 첫 페이지. 이거 찾아보다가 우리나라 법제처인가에서 프랑스 민법 올려준 것까지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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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일 1804년 무엇ㅋㅋㅋㅋㅋㅋㅋ 본새 장난 아니지

나폴레옹 법전은 처음 제정됐을 때의 전체 2,300여개 조문 중 절반 이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대

그만큼 잘 만들었고 그만큼 당대에는 엄청 진보적인 법으로 받아들여졌을 거라는 거...



나폴레옹 법전은 혁명 이념과 원리를 계승해서, "모든 프랑스인은 시민권을 향유한다"(현 프랑스 민법 8조) 같은 평등 조항부터

사유재산권 인정, 소유권의 절대성 인정, 국가의 세속 원칙(국가 정치와 종교 분리), 신분에 의한 세습 금지,

법에 의한 사법과 행정의 집행 규정 등 이전 전제군주정과는 확연히 다른 이념을 명료한 법 조항으로 만들어 집약했어


그렇다고 나폴레옹을 자유의 수호자로 보기도 뭣 한 게... 일단 공화정 없애고 자기 손으로 황제관을 쓴 황제잖아?

실제 통치에서도 혁명이 추구했던 공화정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어. 그 일례가 피라미드식 행정관 제도야

1790년 혁명 정부는 프랑스 최초의 헌법을 만들면서 미국의 지방분권 자치제를 본딴 시읍면 자치제를 실시했는데

아무래도 당시 프랑스가 '자치'라는 개념을 깊이 이해했던 것 같지가 않아서... 잘 굴러가진 않았어

나폴레옹은 이 자치제를 폐지하는 대신 도는 지사, 군은 부지사, 시읍면은 시읍면장에게 행정을 일임하는 제도를 시행했는데

이 행정관들을 전부 황제인 자신이 임명했어ㅋㅋㅋ 그러니까 행정관들로 층층이 구성되는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황제인 나폴레옹 딱 한 사람만이 군림하는 구조로 프랑스라는 나라가 운영됐던 거야

그 밖에 예술과 언론을 사전 검열해서 주로 자기 PR에 써 먹는다든가, 민법에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한 지위를 규정한다든가,

의회 내 토론과 협의를 통한 통치가 아니라 나폴레옹 개인의 카리스마와 군사적 능력에 크게 의존한 통치를 한다든가 해서

나폴레옹의 통치는 '권위가 자유의 자리에 들어와 있는' 권위주의라고 평하기도 해


요약하면, 나폴레옹의 통치는 진짜배기 혁명 정신이 추구하는 것보다는 반동적이었고,

부르봉 절대왕정 때의 구체제에 비하면 진보적인, 진보와 반동 사이 어딘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유럽 군주들이 보기에 나폴레옹과 그가 만든 나폴레옹 법전은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하기에

충분히 혁명적이어서, 용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어


그런데 나폴레옹 전쟁으로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이 가는 길이 곧 나폴레옹 법전의 전파 경로가 되었고

이 법전을 통해 해당 피점령국 국민들은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고 습득하면서 자유주의에 점점 눈을 뜨게 돼

절대왕정을 벗어나 법치의 원리를 바라는 피점령국 국민들의 심리는 '해방군'으로서의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을 부각시켜서

정복 사업에도 꽤 유용했기 때문에 나폴레옹 스스로도 자신을 혁명과 계몽주의의 화신으로 홍보하기도 했어


그러니까 전후에는, 나폴레옹은 사라졌지만 나폴레옹이 뿌린(?) 자유주의 사상이 전 유럽에 그대로 남아있었고

이 불씨를 승전국, 특히 기존 질서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아주 강했던 신성 동맹은 그냥 두고 보지 않았어


동시에 이 나라들이 경계했던 또다른 이념은 '민족주의'였는데 이건 군주정을 위협하는 자유주의만큼이나 매우 현실적인 위험 요소였어

왜냐하면 당장 승전국 중 두 곳 - 오스트리아, 러시아 - 이 다민족 국가였거든

오스트리아 제국은 본거지인 오스트리아 대공국에 더해 보헤미아 왕국, 모라비아 변경백국, 상하 슐레지엔 공국(이상 현대 체코),

헝가리 왕국(현대 헝가리,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세르비아-루마니아-슬로베니아 일부), 크로아티아 왕국, 이탈리아 일부로 구성된 다민족 다국가 제국이었고

러시아 제국도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독일인 등 민족 구성이 무척 다양했어

민족 구성이 비교적 균질(?)한 프로이센도 폴란드를 병합하면서 폴란드를 철저하게 지배하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에

영국은 몰라도 신성 동맹 3국은 민족주의가 유럽에서 점점 고조되는 일만은 막아야 했어

제국 내 여러 민족이 민족주의에 취해서 1민족 1국가를 외치며 독립을 요구하게 되면 그야말로 제국은 산산조각 날테니까

민족주의 역시 나폴레옹이 유럽에 남긴 불씨라고 하는데, 프랑스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민족'이라는 구심점을 사람들이 점점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거든

그때는 민족주의를 민족주의라고 정리해서 의식하진 못했겠지만(본격적인 민족주의 개념은 1848년 이후에나 등장해)...


자유와 민족 이렇게 놓고 보니 위고 영감 말대로 "젊은 세대들의 타오르는 눈은 그 쪽으로 돌아갔다" "이 망령은 낡은 구세계에 전율을 주었다"(pp. 90~91)라고 할 만 하지...?


그래서 메테르니히 주도로 신성 동맹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를 억누르는 여러 정책을 고안, 시행하는데

대표적인 게 경찰의 대학 감시, 경찰 중앙위원회 설치, 비밀 경찰 도입, 언론 검열 같은 시민의 자유 제한 정책이야

이런 탄압 기조는 나라 사이에서 구두로만 합의된 게 아니라 1819년 오스트리아 주도로 독일 연방이 연방 의회에서 연방 법률로 채택하기까지 한 사안이야

러시아는 한 술 더 떠서 개별 국가의 단독 간섭이 아니라 여럿이 공동 간섭하는 방안을 주장했는데

그 공동 간섭을 의논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것까지 아울러서 '유럽협조체제(The Concert of Europe)'이라고 통칭해


이것 역시 말로만 끝난 게 아니라 여러 회의를 거치면서 체제의 성격과 내용이 점점 정교해졌고,

5개 강대국(신성 동맹+영국, 프랑스)이 자유주의-민족주의 반란이나 폭동 등에 공동 개입해서 무력 진압하기로 결정됐어

실제로 에스파냐 혁명이나 나폴리 사태 같은 자유주의 운동에 개입했고

이 시기는... 자유든 평등이든 위에서는 꿈도 못 꾸게 하려고 했는데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길이 거세지는 분위기였다고 하면 이미지가 좀 그려지려나?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신성 동맹은 그 자체로 반동적이고 반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그런 관점이 오늘 우리가 읽은 16~18절에도 녹아있다고 할 수 있어(레 미즈 1862년 출간이더라고)


여담이지만 민족주의 감정이 고양된 게 독일 통일과 이탈리아 통일로 이어지기도 했으니 이건 역사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아니면 그놈의 민족주의 때문에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까지 삼키고 전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니 퇴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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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름도, 바그람도, 예나도, 프리틀란트도 그 속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p. 71)

전부 나폴레옹이 연합군에게 크게 승리했던 전투지 지명...


- "영국은 그들의 1688년 혁명과 프랑스의 1789년 혁명, 이 두 혁명을 치르고 난 뒤에도(...)" (p. 82)

1688년 영국 명예혁명: 제임스 2세의 전제왕정을 끝내고 영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근대 시민 사회로 진입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다 알지...?


- "(...)저 처참한 필리피 평원 앞에서의 베르길리우스처럼(...)" (p. 83)

필리피 전투: 브루투스의 카이사르 암살 후 연합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도망간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격파한 전투. 이 일로 카이사르 사후 내전은 일단락되고

이제 로마 권력은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싸움으로 결판나게 됨. 베르길리우스는 당대 현존했던 고대 로마 시인


- "그것은 1815년 3월 20일을 통해 공격한 1789년 7월 14일이다." (p. 85)

1789년 7월 14일은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이 일어난 날


- "루이 18세는 생투앵에서 인권 선언에 서명했다." (p. 85)

생투앵 선언(déclaration de saint ouen): 1814년 5월 2일 루이 18세의 선언문. 구체제 복귀에 대한 여론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연설을 하지만 헌법 수용까지는 하지 않았음.

루이 18세는 대신 '헌장'을 만들어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의 공화주의, 자유주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게 됨


- "성당과 왕좌는 엄숙하게 우호 관계를 맺었다." (p. 88)

구체제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는 귀족과 성직자(교회)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 더 궁금한 덬은 '울트라몬타니즘'을 검색해 보세욥


- "나폴레옹이 황제의 관을 받아썼던 바로 그달에 앙기앵 공작이 총살당했다는 사실을 생각나게 했다." (p. 89)

쿠데타 후 제1통령이 된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려고 했지만 혁명으로 없어진 군주정을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혁명으로 쫓아낸 부르봉 왕가가 컴백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대중에게 심는 전략을 짜게 됐어

그때 영국에 망명해 있던 왕당파 세력이 나폴레옹을 납치해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사전 발각되어 실행도 못해보고 끝났지만

나폴레옹은 이걸 역으로 이용해서 루이 16세의 친척인 앙기앵 공작을 배후로 지목하고 그걸 핑계로 처형까지 함




말이 주절주절 길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오늘 분량을 되짚으면 워털루 전투와 그 이후 유럽 세계에 대한 위고 영감의 소회가 더 실감날 거라고 생각해

레 미즈를 읽을수록 감탄하는 점은, 거대한 역사적 흐름과 당대의 개별 사건들이 레 미즈의 서사와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거야

가끔 그게 지루하기는 해도 무척 치밀하게 얽혀 들어간 데다 이야기의 메시지도 좀더 뚜렷하게 해 주는 것 같아서

알고 읽을수록 더 깊은 감정이 느껴지더라고

나 역시 이 책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레 미즈를 한결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챌린지에 참여하는 덬들도 각자만의 생각을 가지고 감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간의 자료글을 준비해 봤어


모두에게 도움 되었기를 바라며, 오늘도 내일도 레 미즈 재미있게 읽자! :D

(근데 진짜 코제트... 언제 나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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