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책 처음 읽어보는데 뭐랄까... 이 작가가 단어들을 모아서 문장으로 압착시키는 게 굉장히 신기했어.. 문체를 뭐라고 설명을 못 하겠네... 삶에 대한 엄청난 고민들을 관통하는 문장 같은 것들이 몇 개 있었어... 식상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쓰는 게 신기했고.
여대나와서 그런지 내 대학생활을 돌이켜보게 되더라. 그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 인연들, 시간들에 갑자기 슬퍼지기도 했고. 직장인이 된 나를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되고. 내 삶에는 어떤 장면들이 있었는지 쭉 적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어. 이미 희미해진 기억들이 너무 많더라. 내가 떠나보낸 사람, 나를 떠나간 사람들, 붙잡을 수 있었는데 그냥 보내버린 인연들도 생각나네..
책 구성도 흥미로웠고. 각 캐릭터 살아있었는데 기숙사에 등장하는 인물이 좀 많아서 사실 책 끝날 때까지도 몇명 빼고는 누가 누군지 무슨 캐릭터인지 자꾸 기억하고 되돌아가면서 읽어야 했어 ㅋㅋ
이 다음으로는 새의 선물 읽어보려고! 여기서 추천받고 읽었는데 추천 고마워~~ 좋았던 문장 몇 개 남겨놓고 갈게!
245 나는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난 것일까. 오로지 내게 주어진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과 성적을 올리는 것, 두 가지에만 의미를 두던 고등학교 시절 훈육의 틀과 그리고 내가 동의할 수 없었던 세상의 모범생이라는 모순된 자리. 거기에서 시스템의 눈치를 보며 적응한 척했던 것이 단지 임시방편이었을까. 혹시 그대로 내 삶의 태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181 그러나 소설 속의 '나'가 세번째 공주에 대해 통찰한 그대로, 나의 결혼은 길거리 헌팅과 비슷하게 절차를 무시한 타인의 행동력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그때의 나로서는 상대의 결정을 뒤집을 만한 자신감과 대안이 없다는 게 내 결정인 셈이었다. 그 결과 평생 곤궁한 것들에 둘러싸여 그 안에서 비교적 좋은 것을 찾아내야 했고 그 결정을 합리화하는 데에서만 평화를 얻었다. 결혼 역시 나의 기나긴 숙제 기간 중의 한 과정이었다.
약점을 숨기려는 것이 회피의 방편이 되었고 결국 그것이 태도가 되어 내 삶을 끌고 갔다. 내 삶의 냉소의 무력함과 자기 위안의 메커니즘 속에서 굴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