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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알래스카 좋아해들?
1,032 10
2021.08.20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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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된 관심사는 식민사야제국주의 열강의 오디션장이었던 아프리카에서열강은 커녕 지역강국 축에도  끼는 벨기에나 포르투갈조차도 한몫 땡기는 마당에 덩칫값 못 하고 아무 존재감 없던 러시아의 역사에는그래서  오랫동안 흥미를 갖지 못했어물론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식민지를 보유하지 못했던  결코 아니야시베리아가중앙아시아가알래스카가 식민지였지만, 알래스카는 일찌감치 미국에 팔아치웠고 중앙아시아는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떨어져 나가서 현재 남은 거라곤 시베리아뿐인데 이 시베리아가  커야 말이지.

 

중앙아시아(feat. 영국) 동북아시아(feat. 일본) 제외하곤 대개 인구밀도 희박한 곳에서 이렇다 할 경쟁자 없이 식민지를 획득해 나갔으니 마치 블루오션을 개척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절대 .. 시베리아나 알래스카가 원래부터 무주공산도 아니었는데 선주민들의 붉은 피가 설원에 흩뿌려지지 않았을 리가.. 거기다 서구 국가들에 비해 인권 개념은 아예 없다시피했고 1860년대 와서 비로소 농노 해방령이 떨어지기까지 자국민의 절대 다수를  취급했던 나라에서 피지배 민족을 신사적으로 대했을 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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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다 받은 건시베리아 식민사를 개관하는 책이야.

 책의 저자에 대해 말할  같으면러시아 전문가가 맞긴 한데 역사 쪽은 아니고 경제통이야물론 식민사란  따지고 보면 경제사이기도 하지.

해서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새로운 시각이나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이런  전혀 없어대신에 국내외의 수많은 논문신문/잡지 기사를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데, 빌려  부분에는 하나하나 주석이 달려 출처를 명기하고 있기 때문에 다행히 표절은 아니야.

그러니까 나쁘게 말하면 짜깁기고좋게 말하자면 저 수많은 레퍼런스의 엑기스만 모으고 모은 한 권인 셈이야. 

그저 배경지식을 갖추겠다는 생각이라면 요 한 권만 읽으면 물론  자세히 알고 싶거든 주석에 적힌 원문으로 확장해 나가면 될 일이고.

그치만 서로 다른 문헌에서 빌려  탓인지 용어나 내용의 불일치가 언뜻언뜻 눈에 띄는 점은 분명 흠이야같은 인물을 두고서 64쪽에서는 피오트르 골로빈, 84쪽에서는 피터 골로빈이라  거라든지(Pyotr=Peter), 138쪽에서는 '17세기 말 아나디르스크 요새에서 캄차카로 가는 수로가 발견되자 이 요새의 중요성이 되살아났다'고 했으면서 바로 다음 쪽인 139쪽에서는 '17세기 말에 아나디르스크 요새에서 캄차카로 가는 해로가 발견되자 이 요새의 중요성은 사라졌다'고 되어 있는 걸 보면 홀랑 깨긴 하더라구. 

 

 원래 따로 집중적으로 파고 있는 분야가 있었고  책은 그저 몰랐던 땅을 살짝 즈려밟고 간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집어든 건데..

맨틀까지 파고픈 지점을 또 발견했지 뭐겠어. 이번엔 그게 바로 알래스카 땅이었고 말이지 

 

물론  책은 시베리아가 주고 알래스카에 대해서는 곁다리로   챕터에서밖에 다루고 있지 않지만, 바로 이럴 때 써먹으라고 주석이 있는 거 아니겠어?

보물 모으는 기분으로다 레퍼런스 찾아서 여기저기 도서관 순례 함 가뿐히 뛰어 주었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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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과정에서 인용문과 원문 간에 적잖이 뉘앙스 차이가 나는 부분도 알게 된 건 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잠깐 설명해 두어야만 할 게 있어.


1. 러시아 모피 상인들이 알래스카를 '발견'하여 상업 식민지로 삼음

2. 러시아판 동인도회사인 '러시아-아메리카 주식회사'(약칭 RAC)를 세웠는데 이게 대박남(가장 잘 나갈 때 무려 수익률 1000%를 찍었다 함)

3. 난데없이 러시아 해군이 이 회사에 눈독을 들이더니만 온갖 공권력을 동원한 끝에 회사의 운영권을 빼앗아 옴

4. 운영권 빼앗자마자 우선 정관부터 손봐서 회사 중역은 민간인이 아니라 무조건 군인 중에서만 나오게끔 만듦

5. 즈그덜 봉급은 통 크게 셀프 인상, 버뜨 노동자이자 선주민한테서 사들이는 모피값은 반으로 후려침. 이로 인해 발생한 노동 쟁의에 대해서는 군함의 함포를 쏴 대서 유혈 진압(러샤 군바리 짬바 어디 안 가죠?)  

6. 시대가 바뀌어 모피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든 가운데, 새로운 사업 아이템(차, 얼음)이랍시고 들고 나온 건 족족 말아먹음

7. 과거의 알짜배기 우량기업이 이제는 애물단지 부실기업이 되어, 러시아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 없이는 자체적으로 존립이 불가능한 상태로 되기까지 몇 년도 채 안 걸렸다고 한다.


이 가운데 5번의 봉급 셀프 인상 부분을 잘 봐 줘. 책에는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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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되어 있는 반면, 원문인 인터넷 기사에는


회사의 새 주인들은 천문학적 액수의 봉급을 자신들에게 배정했다. 일반 장교들은 1,500루블(당시 차관이나 원로원 의원들의 연봉과 맞먹는 액수였다), 회사 대표는 15만 루블을 연봉으로 배정받았다. 반면 현지인들에게서 모피를 매입하는 가격은 반값으로 후려쳤다.

(출처: 「러시아가 미국에 알래스카를 판 이유」( https://kr.rbth.com/arts/2014/04/08/44269 )


고 되어 있지 뭐겠어.


책만 보면 마치 1500루블은 마치 해군 장교의 연봉으로서 적절한 수준이고 단지 그 100배에 해당에는 대표자 연봉만이 문제인 것처럼 읽히는데, 원문을 보니까 1500루블부터가 양심리스한 돈잔치라는 것을 알 수 있어. 물론 그에 비례하여 15만 루블에 대한 인식이 아예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고.


그리고 내가 읽다가 현웃 터진 장면은 이거야. 러시아로부터 미국으로 알래스카가 정식으로 넘어가던 날 있었던 일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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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척거리지_좀_마_러시아.jpg



...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저 마냥 웃기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좀 해 보도록 할게.


깃발이 지 혼자 알아서 꼬장 부린 건 애교라고 쳐도, 오늘날의 러시아는 그야말로 거국적으로 질척거리는 중이고 그 점도 또한 나날이 세져만 가는 중이라고 하네.


요는, 우리가 간도나 대마도에 대해 말할 때 우리로 하여금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땅이었지만' 같은 군더더기 전혀 없이 '중국/일본 땅이야'라고 담백하게 말하지는 못하게끔 하는 그 무언가가, 바다 건너 알래스카를 바라보는 러시아인들 맘속에도 있다는 거야. 차이가 있다면 우리가 '에효 그게 어디 되겠어?'하고 거의 체념하고 있다면, 얘네들은 '우리 생각만 바뀌지 않는다면 언젠가 상황은 바뀔지도?'라며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단 거. 한때는 초강대국 시민이었다는 부심이랄까 뱃심이 만들어 낸 차이가 아닐까?


러시아인들의 맘속에 이렇게 시간이 지나도 녹아 없어지지 않는 응어리가 생기게 된 건, 매각 당시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는 건 고사하고, 러시아-아메리카 주식회사의 경영진이나 투자자, 또는 알래스카의 러시아계 거류민 같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를 포함시킨 공청회 한 번을 열지 않고서 황제와 그 측근들끼리만 쑥덕쑥덕해서 팔아치운 탓이야. 19세기 러시아는 헌법이며 의회가 없는 빼박 전제국가였고,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알래스카가 공식적으로 미국의 영토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전모를 알게 되었지. 이렇게 해서 '집안 형편 어려울 때 옆집에 양자로 팔려 간 우리 막둥이 ㅜㅜㅜㅜㅜ'하는 감정이 러시아인들의 맘속에 심겨지고 만 거야(한반도의 8배 조금 못 되는 땅덩어리를 국토의 막내둥이 취급하는 대륙의 기상).


여기까지 읽은 덬들에게 내가 일종의 편견을 갖게 한 건 아닐까 싶어서 말해 두는데, 당사자인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역대 러시아 황제들 중에서 손꼽히는 개혁 성향의 군주였고 개인적으로도 선량하고 유순한 사람이었어(근데 여기엔 외도를 대놓고 밥 먹듯 했다는 또 다른 일면이...). 서유럽을 본떠 헌법과 의회도 도입하려고 했는데 그만 무정부주의자들이 던진 폭탄을 맞고 암살당하는 바람에 다 없던 일이 되었고. 문제의 알래스카 매각도, 의도는 하루바삐 적자 재정을 해소하여 근대화에 필요한 비용을 조금이라도 더 대기 위해서 식민지 중에서 가장 가성비 나쁜 곳을 처분한 거였지. 당연히 매각 대금은 황제의 호주머니가 아니라 제대로 국고에 귀속되어 나중에 시베리아 횡단철도 부설 비용으로 쏠쏠히 잘 써먹었대.


일전에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칼럼에서, 미국 연방정부의 보조금 없이는 지탱하기 어려운 알래스카 지역 경제의 취약성과, 혈연 지연에 근거한 정실주의가 만연한 알래스카 지역 정치의 후진성을 비판한 적이 있었어. 뭐 당연히 비판받을 만한 구석이긴 한데, '이런 공동체적(corporate, 내가 굳이 이 단어만 영문 병기한 까닭은, 저 아래에서 소개할 논문에서는 이 단어를 '기업'이라고 오역했기 때문이야) 문화를 가진 알래스카는 러시아에 있으면 더 어울릴 것 같다'며 지역드립을 친 건 선 넘어도 씨게 넘었지. '이런 알래스카의 비미국적인 아시아적 정서는, 유럽 국가이면서 동시에 아시아 국가이기도 한(이게 바로 유라시아주의야) 러시아의 그것에 비견될 수 있다'고 호의적으로 해석해 주고 싶어도, 당장 우리나라에 대입해 보면 답 나오니까. "〇〇지역은 걍 뚝 떼서 북한에 줘 버리자" 이게 말이야 방구야

근데 이 일베틱한 농담은 미국이 아니라 도리어 러시아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어.근데 그게 죄 '이제서야 비로소 바른 말 하는 미국인이 나왔구만! 격하게 환영하오!!' 같은 내용이라 그 저널리스트는 머쓱해져 버렸다는 이야기.


러시아에서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포크 락 밴드는 '미국아, 이제 그만 알래스카 좀 내 놔라'는 가사를 열창하고(류베를 말하는 건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러시아 국가 락 버전은 이들이 부른 거임), 작가들은 국토의 막내둥이를 향한 아련함에다 반미 감정을 버무린 글을 써서 인기몰이를 하고, 역사학자들은 '알래스카로의 러시아의 진출은 서구의 제국주의와는 달리 자비와 자애로 가득 찬 것이었고, 러시아령 알래스카는 러시아인과 선주민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공간이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당연히 멍게소리임), 법률가들은 '알래스카 매각'의 실상은 99년짜리 임대라고 미리 결론을 정해 놓고서(아니 이게 무슨 홍콩이여??),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만한 법적/절차상 하자를 찾고자 러시아 우익 단체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오늘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를 뒤지고 있고, 러시아 정부는 이거 다~ 개인적 일탈일 뿐입니다 허허^^ 하면서 선 긋기는 개뿔, 현재 알래스카에 거주 중인 러시아 이주민의 후손 가운데 원하는 사람에 한해 러시아 여권을 발행해 주는 정책의 시행을 실시할 수도 있다며 쿵짝을 맞추질 않나 ㅡㅡ


상대가 초강대국 미국이고 기도 안 차서 먹금하고 있으려니 그냥 귀여운 헛짓거리 정도로만 비치지만 내용만 놓고 보면 이건 빼박 영토 야욕이잖아.

2014년에 크림 반도를 꿀꺽하고도 서방으로부터 별 내용 없는 엄포만 좀 들었을 뿐 아무런 뒤탈도 없었던 게, 러시아인들에게 알래스카에 대한 희망적 관측을 마구마구 주었더란 분석도 있더라구.


구남친스런 러시아의 진면목을 확인하고 싶은 덬들은 아래 링크를 타고 가서 오른쪽의 'KCI 원문 내려받기'를 찍어 보길 바라.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226726



행여나 알래스카의 풍광을 기대하고 들어왔는데 줄글만 보게 된 덬들이 있을 성싶어서, 미안한 마음에 사진이란 게 아직 존재하지 않던 시대의 판화를 한 장 붙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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