맠다 첫날 구매해서 읽었는데 여운이 독특하다.
분명 책을 읽었는데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여행을 다녀온 것 같기도 해.
글이 감각적이라서 그런가 싶어. 글자로 되어 있는데 강렬한 이미지가, 이국적인 음악이, 매캐한 후각적 자극이 느껴짐.
사실 어떻게 보면 설정도 과하고 묘사도 과하거든. 공수 안 잘생긴 벨 드문데 이 작품은 진짜 쉴 새 없이 다채로운 묘사로 얘네가 얼마나 쩔게 미친듯이 압도적으로 끝내주게 잘생겼는지를 묘사함. 배경도 어떤 근미래의 도시인데 어쩌다 이 꼬라지가 됐는지에 대한 설정이나 언급은 없고 현란한 네온과 조명, 향락에 쩌든 방탕하고 퇴폐적인 그 이미지만이 가득해. 그런데 그 모든 게 이 글과는 어울려.
주인수인 검정이 자란 곳과 지금 사는 곳이 차로 두 시간 거리인데 서로 다른 색의 눈이 내림. 왜? 몰라. 그런데 아름다워. 그게 다야. 영화로 치면 매드맥스에 가깝다고 할까. 일단 이유 궁금해하지 말고,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보면 되는ㅋㅋㅋㅋ 사이버펑크 오락물로서 너무 훌륭해.
또 곱씹어보면 문장이 썩 친절하진 않아. 난 조사 없는 문장을 잘 못 보는데 그게 덜컥덜컥 걸릴 정도로 꽤 자주 보여. 어떻게 보면 너무 멋부렸네 싶어. 원래라면 이게 다 불호포인트인데... 근데 또 그게 이 글과는 이상하게 어울려. 공수 말고 다른 캐릭터들도 설정이 강해. 머리색 눈색 다 알록달록하고 내 기준에서 행동도 과하고 근데 그게 또 이 글과는222333445656677788999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인가 싶어. 나는 여행지에 가면 평소라면 안 먹던 것도 먹어보고 안 입던 옷도 입어보거든. 미남수단이라서 이 여행지를 선정한 건 맞는데 그 외의 것들은 아 여긴 원래 이런 곳인가봐 하면서 작가님이 이끄는 대로 신나게 보고 나온 기분?
포장지가 화려하지만 그렇다고 속 빈 강정이란 말은 아냐. 이 책 자체가 주인공수인 라사와 검정 같아. 그들을 처음 보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두 사람의 화려한 외모에 홀릴 테지만, 그들을 알아 갈수록 라사와 검정이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하게 되리란 걸 그냥 책을 읽는 동안 알 수 있거든. 일단 독자인 내가 그 과정을 겪었지ㅋㅋㅋ 미인공미남수, 연하연상 키워드에 홀려 왔다가 라사는 그저 라사로, 검정은 그저 검정으로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이 책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비슷했어. 현란한 겉포장 안에 든 이야기는 생각보다 슴슴하고 다정해. 바르고 튼튼해. 이 이야기의 그런 지점을 좋아하게 돼ㅋㅋㅋ
그리고 내가 진짜 공수가 떨어져 있는 걸 잘 못 참고 둘이 쉴 새 없이 사랑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라 조연들 얘기 많은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럽포셀은 시종일관 라사랑 검정이만 본 거 같아서 만족스러운데 이상하게 정신 차려보니 조연들까지 다 내새끼 돼서 품에 바리바리 안고 있음ㅋㅋㅋ 정말 잠깐 만난 조연들까지 매력적이야.
완독하고 나니 정말 열흘쯤 되는 여행을 기분 좋게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느낌이었어. 여행이 끝난 게 아쉽고 벌써 그곳이 그립지만 한편으론 여기서 헤어진 게 딱 좋았다는 감상. 그러다가도 일상 가운데서 불쑥 '여행 가서 먹은 망고 맛있었지~' 떠오르는 것처럼 곱씹게 돼. 나는 이만 떠나온 그곳에서 라사와 검정을 비롯한 이야기 속의 모두가 각자의 형태로 내일과 모레의 삶을 이어나갈 것 같아서, '잘 지내려나?' 이런 느낌으로 생각이 나.
너무 잘생긴 얼굴이 가진 것 없는 삶을 파괴할까 평생 마스크 아래서 산 늑대상의 능글맞은 미남 이검정과 스스로에겐 무심하고 남에게는 세심해서 지쳤을지언정 메마르지 못한 왕크왕예 고양이 미인 라사가 살고 있는 미드나잇시티.
남자 자석 미남수 사랑단 여러분께 한 번쯤 들러보실 여행지로 추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