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휴양도시에 위치한 수의 집에 저명한 건축가 아버지의 까마득한 후배 ‘에릭 라투르’가 방문하면서 시작되는 일들을 품은 소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 때문에 수와 수의 가족들은 그리스 신전풍의 아름다운 석조 건물에 반쯤 갇혀서 살아가고 있음. 36살의 라투르는 가족들의 비위를 신사답게 맞추면서 아름답고 병약한 20살 미소년 클로드에게 천천히 다가감. 클로드는 병약하고 낯을 가리지만 라투르와의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감을 오히려 즐기고 적극적으로 느끼고 아용하는 게 눈에 보여서 귀여웠음.
자경님의 글을 읽을 때 늘 느끼는 부분인데 문장들이 유려한데도 안에 품고 있는 서사는 단단해서 읽는 내내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서 완성도가 정말 좋다는 느낌을 받았음. 동시에 나이차이물, 아기수와 아저씨공이라는 BL적 요소도 잘 활용해서 읽는 재미가 있었음.
마지막 결말에 이르렀을 때 뒷통수를 얻어 맞고 얼얼한 상태로 한참 있었는데 앙뜨레 누라는 제목의 의미를 찾아 보고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잘 매듭 지은 작품라는 생각을 했음.
다만 리뷰들에서 언급되듯 마지막을 위한 서사를 밟아나가는 과정에서 확실히 공수 둘만의 팽팽한 사랑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어서 외전으로 보충하면 좋을 것 같음. 그리고 1인칭 시점이다 보니 다 읽고 나니 다정한 연인 ‘라투르 씨’가 다소 키워드 중심의 평면적인 느낌이 없지 않다고 생각함. 이건 작가님이 독자들 또한 클로드라는 인물의 1인칭 시점에서 한정된 라투르를 보도록 유도한 것이라고 느껴지기는 하지만 조금 아쉬움. 이 1인칭 시점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클로드가 라투르를 ‘에릭’으로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깨달은 게 재밌었음.
개인적으로 에릭 라투르라는 캐릭터가 정말 그저 친절하고 헌신적인데 운명의 사랑을 만나기까지 한 로맨티스트인지 아니면 테레즈가 계속 비난하는 것처럼 음흉한 중늙은이인지 확신이 안 들어서 작가님이 빠른 시일 내에 빵빵한 외전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김. 그의 1인칭 시점으로 이 저택에서 일어난 일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알고 싶음. 아마 클로드나 에릭이 아닌 나는 영원히 알 수 없을텐데 그래서 완성되는 사랑의 고유성 같아서 좋기도 함.
좋았던 문장들. 원래도 라일락 향기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 덕분에 내년 봄에 맞이할 라일락 꽃이 너무 기대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