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너를 다시 봤어.
그리고 네 번호를 묻는 척 했지만 실은 내 번호를 너한테 알려줬지.
니가 나한테 다시 올수 있도록.
사람들은 우리 둘 관계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아니야.
니 오랜 짝사랑 때문에 너마저도 그런 착각을 하고 있는 거 같지만, 사실 우리 둘의 관계는 니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거든.
떠올려봐. 우린 시작부터 그랬어.
니가 먼저 다가왔고 결국 날 너한테 적응 시켰지.
넌 여전히 10년 전 머물러 있는 내 핸드폰을 보고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더라. 내 시간이 아직도 그쯤에 멈춰 있다는 걸
나는 너의 일방적인 애정이 너무 익숙해. 익숙한 건 변화를 만들 수 없단 뜻이기도 하지.
그래서 난 또 너에게 결정권을 넘기는거야. 니가 먼저 전화를 걸도록.
그리고 그저 기다리지.
난 알고 있거든. 결국 또 니가 먼저 날 찾을 거라는 걸.
나는 이 익숙함과 편안함을 깰 생각이 없어.
그러니 우리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도권도, 결정권도 결국은 니 몫인 셈이지.
10년을 그냥 두고봤던 건, 일종의 오기였는지도 몰라. 그래 자신감을 가장한 오기였지.
10년이나 버틸 수 있었던 건 너의 마침표가 여전히 나라는 걸 알았으니까.
어떻게 모를 수 있었겠어. 너와 나 사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았을 걸? 네가 쓰는 글의 모든 문장이 나라는 걸.
나는 너무 자신이 있었나봐. 내가 먼저 붙잡지 않아도, 결국 니가 먼저 내게 손을 내밀 거라는 자신이.
내가 아무리 니 마음을 모른척 하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해도, 결국 너는 내가 원하는대로 해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자신이.
근데 그날 터널에서 니가 그걸 깨버린거야.
마치 시소놀이처럼 수평을 맞추고 있던 우리 관계에서 한칸 앞으로 나온 거 같았던 너는 사실 뒤로 물러났던 거지?
시소는 무거운 쪽이 아래로 내려가잖아. 넌 그렇게 가라앉아 버렸어. 영원히.
덕분에 내 감정은 갈 곳도 없이 붕 떠버리게 된거지.
아무리 성숙한 어른도 처음 겪는 일엔 어린애 같을 수 밖에 없는 법이잖아? 나한테는 니 빈자리가 그랬어. 인생에 처음 겪어보는 상실이었지.
그래서였을까? 어린애처럼 화가 나더라. 근데 그 원망을 받아낼 대상 마저 없는거야.
치밀어 오르는 화를 겨우 억누르며 결심했지.
우리 둘 관계의 주도권을 너한테 줬더니 결국 니가 선택한 게 나한테서 도망가는 거라면, 그 주도권을 이제 내가 가져와야겠구나.
인국아. 난 이제 앞으로 니 어떤 선택도 기다리지 않을거야. 모든 선택은 내가 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