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존재가 유한이를 계속 살게 한다는 것은 본편만 봐도 알수 있지만,
나는 이걸 삶에 대한 긍정이나 애착 같은 방향으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적어도 단막극의 시점 (본편과 페이드페이백 사이) 까지는
제이가 유한이의 '사는 이유'라기보단 문자 그대로 '죽지 못하는 이유'인 거 같더라.
이 점이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었음.
누군가를 사랑해서 죽지 못하는 것이 살고 싶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게ㅠㅠ
다리에서 끝내 뛰어내릴 수 없었던 것도 삶 자체에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다시 말해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계속 머물며 숨 쉬고 싶다는 자기 안의 욕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유일하고 특별하다고 말했던 자기를 차마 죽이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느껴졌거든.
나 없어도 잘 살 새끼라고, 내가 없어도 멀쩡히 잘 살거라고,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는 것도 그렇고...
딱 한 걸음만 내딛으면 지난했던 삶의 굴레에서 비로소 해방될 수 있는데,
제이가 자신을 두고 한 말들 - 어릴 때부터 가지지 못한 결핍된 감정을 알게 해준 유일한 사람,
숨이 닿는 공기마저 특별하게 만드는 사람 - 떠올라서 결국 엉엉 우는 유한이 너무 가슴 미어졌음 ㅠㅠㅠㅠ
제이 어머님이 유한이를 만나러 온 것도 유한이가 죽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그리고 제이가 자신의 유일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중간에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겠지?
저 멀리 별이 되신 영혼이 T612 혜성을 타고 지구로 여행 오신 걸 수도 있고,
혜성이 만들어낸 기적으로 두 세계선이 겹쳐져서 생전 모습으로 만날 걸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아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서 이쪽 이야기도 너무 좋았다. 이 사랑이야말로 제이가 물려받은 제일 큰 유산 같아.
흑흑 어떻게 이런.. 민음사 재질의 이야기가 라디오 단막극?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