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창원 패션
당시 저 화려한 티가 신창원의 트레이드마크였음
2. 탈옥과 탈옥 후 행적
1997년 1월 20일 부산교도소의 화장실 쇠창살을 쇠톱날로 절단하고 탈출하였다. 이후 약 2년 동안, 전국을 오가며 약 9억 8000여만원을 훔쳤고, 훔친 돈으로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유혹해 동거하며 아지트로 삼았다. 그러나, 동거할 곳이 없을 때는 토굴 등에서 생활하며 쥐고기로 연명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경찰의 추격에 쫓기는 중 신창원의 담당형사인 원종열 경장이 쏜 총에 맞아 부상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추격을 끝내 따돌려 신창원은 자신의 초인적인 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경찰은 신창원의 검거를 위해 헬리콥터를 띄우고 전경을 동원했으나 번번이 속수무책이었으며 열세 번을 눈앞에서 놓쳐 많은 경찰관들이 이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동거녀들과의 관계가 주목 받았는데 왜냐하면 동거녀 중 누구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신창원이 사랑꾼이었던 게 진술 과정에서 내 여자들만 지켜주면 다 말하겠다라고 했었음
3. 재검거 상황 - TV 수리공 센스
https://www.youtube.com/watch?v=PeIAmYZFR3Y
TV 수리하러 갔다가 결혼사진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수리공의 신고로 재검거됨
4. 어린 시절의 고백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데 나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 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때 선생님이 '이 새끼야, 돈 안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 쳤는데 그 때부터 마음 속에 악마가 생겼다.
— 《신창원 907일의 고백》 중
돈이 없어 힘든 가정에서 살다가 저 일 이후 비뚤어져서 학교를 그만두고 소년원 생활을 전전함
그리고 누나와 아버지는 신창원에게 자수를 권할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이었음
5. 모범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된 후 검정고시를 빠르게 패스하고 수년 간 모범수로 살았으나
2011년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고 자살시도를 했었음
뇌사상태까지 빠졌으나 겨우 목숨을 건져 지금도 교도소에서 생활 중
처음 감옥에 갔던 건 강도혐의였고 본인이 아니라 공범이 살인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형이 추가된 거였음
하지만 탈옥과 유명세가 얹혀서 무기징역을 받아서 당시에도 알맞은 형인가 논란이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