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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15년 the celebrity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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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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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호의 여운

JTBC 금토 드라마 <순정에 반하다>로 돌아온 정경호를 빈집에서 만났다.
고적한 공간에 서자, 충만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의 여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여백에 기억이 차올랐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평화로운 오후였다.

대림미술관 빈집은 한동한 전시를 쉬는 중이었다. 그사이 공사를 모두 마쳤고, 과거 그대로 남아 있던 모습을 버리고 과거인 듯 현지인 듯 표상이 혼재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통의동은 고요했다. 평일 오후, 골목길 건너 대림미술관에는 린다 매카트니의 전시를 보려는 젊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당대의 셀러브리티가 남긴 따뜻한 정경을 보려는 이들의 웅성거림은 빈집에까지 닿지 않았다.

일상도 아닌, 그렇다고 비일상도 아닌 고적한 공간감이 빈집을 채웠다.


일상적 배우의 얼굴

정경호는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두고 평일 오후의 통의동 골목을 걸어 빈집까지 왔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와 긴 다리를 들썩이며. 일상의 공간에서 만난 정경호는 되레 낯설었다. TV나 극장 스크린에서 보는 배우는 어디까지나 비일상의 존재다. 빈집은 촬영 준비로 부산스러운 일상,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가는 과도기인 것 같은 비일상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배우라는 이름의 비일상이 성큼성큼 걸어와 계단을 올라 빈집의 작은 방에 자리를 잡았다. 공기는 따뜻했다. 철쭉의 꽃망울은 터지기 직전이었다. 첫 마디는 이랬다.

"잘 지내셨어요? 요즘 촬영하느라 시간이 너무 잘 가요. 오늘은 인터뷰 전에 촬영이 없어서 늦잠도 잤네요."

마치 어제 만난 지인 같은 인사. 그는 순식간에 '아는 사람'으로 존재감을 바꿨다. 드라마 촬영을 시작한 후로는 좋아하는 술자리를 전폐하고("집에서 맥주 한 캔 마시고 자는 정도죠.") 키우는 강아지 두 마리에게 주인을 독점할 시간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일상과 비일상이 기묘하게 혼재된 빈집이 순식간에 공기를 바꿨다. 정경호는 낯선 사람에게도 친근하고, 아는 사람에게는 다정한 사람이다. 그와 3박4일간 동행하며 부산국제영화제를 취재하던 몇 년 전에도 그는 똑같았다.

"빈집 전시를 보러 온 적이 있는데, 이렇게 텅 비어 있으니까 옛날 생각이 나네요. 안양의 이층짜리 단독주택에, 그리 크지도 않은 집이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둘째 작은 아빠, 막내 작은아빠, 고모까지 함께 살았어요. 서너 살 때까지 그랬죠. 그 집과 닮았어요."

누구에게나 있을지 모르는 오래된 집의 기억. 그 기억이 현재에 와 닿자 정경호는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은 친구처럼 느껴진다.




배우 정경호의 성장드라마

정경호의 비일상성은 2013년 군 제대 후 어떤 극단을 달리는 듯했다. JTBC 드라마 <무정도시>의 거친 남자, 영화 <롤러코스터>의 욕쟁이 한류 스타, <끝없는 사랑>의 불같은 남자, <맨홀>의 광기 어린 살인마. 그 어느 캐릭터 하나도 일상적이지 못했다. 배우는 그 캐릭터들을 '세다'고 표현했다. 극단의 비일상적 캐릭터, 정경호의 예비군 인생 3년이 흘렀다. <순정에 반하다>를 선택한 것이 일상으로의 복귀를 도모한 것이라 생각한 것은 오해였다. 1,2화의 대단한 냉혈한 '강민호'의 심장 이식 후 이어질 달콤한 남자에 대한 기대는 드라마 포스터를 보고 제멋대로 한 오해였다. 3,4화에서 강민호는 새로운 심장이 불러오는 비현실의 기시감을 겪고 있었다. 심장 공여자인 '마동욱'의 기억이 문둑문득 일어나는, 여전히 같은 대단한 냉혈한이 정경호가 연기 중인 캐릭터의 정체다.

"너무 세죠. 제대 후 너무 센 캐릭터만 해서 힘들었던 게 사실이에요. 생활 연기를 하고 싶었죠. 밝고 라이브한 연기를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선택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게 <순정에 반하다>였어요."

강민호 역 역시 어떤 극단성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 마음을 푹 놓을 수는 없는 대신, 캐릭터상 흥미로운 지점에 반했다. 순정을 사랑하는 다정한 마동욱의 심장이 일으키는 통제 불능의 습관들이다.

"셀룰러메모리증후군이라고 해요. 심장 공여자의 성격이나 기억이 수여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죠. 배우에겐 기가 막힌 소재예요. 극중 강민호는 새로운 삶을 살며 해보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는 캐릭터죠.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진 않는다는 점을 계산하고, 작은 습관들을 점차 극대화하며 강민호의 변화를 표현하고 있는 참 재미있어요. 제게 <순정에 밚하다는>는 강민호의 성장 드라마예요.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 사업가가 진정한 뭔가를 깨닫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죠."




'좋은 사람' 이라는 말만 듣던 상대역 김소연의 진가("상대의 말을 경청해주고 배려하는 착한 사람이에요. '사람이 다 착하지'라고 생각하는 이상으로 정말 착한 사람이에요. 소문대로죠.")를 알게 되고, 감독과 주체적으로 상의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에게 현장은 고통스럽다기보다 편안한 공간이다. 2004년 데뷔 후 수많은 현장을 경험하는 동안 익숙해진 스태프와 환경이 그에게 긴장보다는 안락함을 준다. 배우로서의 경험치랄까.

"익숙함에서 오는 매너리즘요? 차라리 낫죠. 카메오, 우정 출연 등 하루만 촬영하는 현장에 가면 더 힘들어요. 빨리 집에 가고 싶고 제가 있을 곳이 아닌 것만 같죠. 저는 작품을 할 때마다 현장에 빨리 익숙해지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하루빨리 회식하고 하루빨리 친해져서 더 편하게 심중의 얘기를 할 수 있어야 연기도 잘 나오죠. 카메라 앞에서 떨릴 연차는 아니니까, 현장이 얼마나 재미있고 편안한지가 더 중요해요. 특히 이번 작품은 로맨틱 코미디라 더 그렇죠."




여운을 채우는 배우

예비군이 되고 3년간 정경호의 커리어는 '다작 배우'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어떤 성장욕에 휩싸여 달리고만 있는 것일까?

"소진되지 않을 수 있다면, 다작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의 다작은 매우 위험하죠. 그게 가능한 건, 제가 순진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어떤 배우라도 항상 "이번 작품에 모든 걸 걸었어요"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어김없이 다음 작품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한 작품에서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는 없어요. 어느 정도씩은 숨기고 있죠. 그리고 계속 채워나가는 거죠. 끊임없이 공부하고 채워놓는 것이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배우에게 성장은 '지난 작품에서 못했는데 이번 작품은 잘한다'가 아니어야 해요. 전작에서 이런 역할을 했다면 다음엔 저런 역할로 색다른 느낌을 보여주는 게 성장이죠. 같은 연화를 봐도 시간이 흐른 뒤 보면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처럼요."

빈집에 선 그는 성장 중인 한 30대의 초상이었다. 배우로서, 남자로서, 생활인으로서 충만한 삶을 사는 그는 편안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 앞에 선 실존의 어깨 위로 포근하게 봄 햇살이 내려왔다. 일상에서 만난 그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면 다시 TV와 스크린에서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비일상의 존재인 '배우 정경호'가 될테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디에선가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충실하고 성실하게.
낯선 여운이 채워지는 충만한 하루. 이윽고 해가 졌다.
빈집에 잠시 평화가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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