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부터 묻겠다. 요새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것으로 안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촬영 중이다. 인터뷰 이후에도 촬영장에 가야 한다. 그래도 서울독립영화제 인터뷰라면 당연히 해야지. 이번에도 <타이레놀>이라는 출연작이 초청되었다!
공식적으론 첫 작품이 단편영화 <토요근무>로 기록되어 있지만 학교에서도 연극으로 연기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첫 작품’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자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공연을 해 봤지만. 학교에 들어가서 정식으로 출연했던 건 <택시드리벌>이란 작품이었다. <들개>에 같이 출연한 박정민이 연출했다. 그 작품 준비할 때 <토요근무>를 같이 찍었다. <택시드리벌>은 동기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한 연극이다. 여름에 더울 때 연습실에 다 같이 앉아서 게임하고 장난치던 것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한편 <토요근무>는 영상을 처음으로 접한 순간이었기에 아무것도 몰라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두 작품에 대한 기억이 한 시기에 공존하기 때문에 두 작품 다 의미가 크다.
‘독립영화 배우’로 불리곤 했다. 어떻게 보면 배우를 특정 영역으로 한정 짓는 호칭으로 느낄 수도 있지 않나. 이에 대한 개인적 생각은 어떠한지.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감사하다. 내 이름 앞에 붙는 호칭은 내 족보다. 이를테면 내 이름이 ‘변요한’이라서 나는 ‘변요한’으로 산다. 이름을 바꾸기보다는 이 이름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일 방법을 고민한다. ‘독립영화 배우 변요한’이란 타이틀도 마찬가지다. 이 이름을 바꿀 수도 없거니와 바꾸고 싶지도 않다. 내가 ‘독립영화 배우’라는 내 이름을 빛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에 <타이레놀> 상영 소식을 들었을 때 특히 더 기뻤던 건 ‘나에게 또 소통할 기회가 생겼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러 단편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촬영 과정마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다. <재난영화>의 게릴라 촬영이나 <목격자의 밤>의 야간 아르바이트 장면 같은 건 특히 힘들었겠다.
모든 촬영장에 에피소드가 있다. 작품을 만들려면 조금이라도 예산이 들어가지 않나. 그러다 보니 공간이며 품이 드는 부분에서 완벽하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 오는 에피소드가 많다. <목격자의 밤> 때는 전기를 몰래 쓰다가 걸려서 싸우기도 하고, <재난영화>에서는 콘서트장을 촬영하려는데 안에 공연팀이 있어서 계속 기다리다가 겨우 들어가서 한 장면 찍고 얼른 나오고 그랬다. 워낙 도둑촬영이 많다 보니까 콩닥콩닥한 마음으로 임했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소셜포비아> 때는?
감독님들에겐 각자의 성향이란 게 있는데, 내 생각엔 절대 성향이 잘 맞는다고 해서 영화가 잘 찍히는 게 아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작품의 메시지를 오롯하게 응집하고 싶어서 서로가 치열하게 부딪히는 과정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홍석재 감독님과 나는 성향이 정말 안 맞는다. 추구하는 것도 너무 다르고. <소셜포비아>를 통해 만나면서 정말 많이 싸웠다. 재밌는 건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나서 서로 편안하게 작품을 놓고 얘기를 나눌 때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단 거다. 인간 대 인간으로 친해지려고 하면 장애가 많지 않나. 가식적인 부분이 있다거나. 그런데 작품으로 만나서 싸워 보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부가적인 성향들을 알게 된다. 그러다 보니까 작품이 끝나고 나서는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웃고 심한 장난을 쳐도 되는 사이가 된다. 그래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좋은 사람들을 얻는 것 같다.
연기하는 측면에서 고충도 있었을 듯한데. <리타르단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기 같은.
우선 말하면 석연주 감독님이 처음 찾던 배우는 온화하고 순둥순둥한 이미지였다. 스텝들이랑 얘길 하다가 변요한이란 배우를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미팅을 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내가 순둥순둥하지 않고 이미지가 되게 달랐던 거다. 출연을 결정하고 같이 밥을 먹다가 감독님의 고민하는 눈빛을 봐 버렸다. 그 갈등을 봐 버렸어!(웃음) 말없이 밥을 다 먹고 나서 감독님이 원하는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을 했다. 피아노곡 하나를 계속 연습했고, 감독님이 소개해준 피아노과 친구들이랑 만나 봤다. 감독님이 원하는 게 뭐지? 어떤 이미지를 바라는 걸까? 계속 생각하면서 피아노를 치는 친구들의 성향을 보려고 노력했다. 결국엔 잘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촬영에 들어갔는데,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는 거다. 이게 참, 할 때는 모르는데 하고 나서 알게 되는 게 많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내가 거기 앉아서 음악 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던 것만으로도 어떻게 보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었구나, 싶더라. 그게 좋았다. 피아노도 실제로 쳤는데 아쉽게 완성본에는 쓰이지 않았다.
<타이레놀>은 어땠나?
<타이레놀> 때 단편을 정말 오랜만에 찍었는데, 촬영 이틀짼가 삼일 째 ‘아, 단편 진짜 어렵다’ 싶었다. 장편은 어느 정도 흐르는 대로 갈 수 있다면 단편에선 매 순간 선택하는 표정이나 액션이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선택하는 지점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고통스러웠다. 근데 같이 나온 나철이라는 친구가 액션을 잘 줘서 나는 그냥 따라가기만 해도 시너지가 생기겠다 싶더라. 생각을 바꾸니까 잘 됐다.
독립영화를 같이 만들었던 분들과 꾸준히 연락한다고 했는데.
맞다. 독립스타상 받을 때 공동 수상한 이상희 배우의 출연작 <남매>도, 처음에 다른 제목으로 시나리오가 집필됐을 때 근범이 형(<목격자의 밤>의 박근범 감독)이 보여줘서 읽었다. 근범이 형 작품이 나오면 거의 같이 모니터링을 한다. 최근작 <여고생>은 못했는데,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되는 것으로 안다. 그때 보려고 한다.
2012년에 <목격자의 밤>, 2014년에 <소셜포비아>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서울독립영화제에 대한 기억이 궁금하다.
<목격자의 밤> 때는 같은 섹션 작품을 봤다. <김치>가 인상적이었다. 여유롭게 보면 좋았을 텐데 너무 긴장했다. 그래도 그때의 그 기쁜 마음, 설렘이 떠오른다. <소셜포비아> 때는 <미생>을 찍고 있어서 GV에만 참석할 수 있었다. 서독제에 내 출연작이 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출연작 상영 때 말고도 서독제 상영작을 많이 봤다.
혹시 방문 당시 객석 분위기 같은 것도 떠오르는지.
분위기는 편하고 좋았다. 다만 <목격자의 밤> 때 어그부츠를 신고 갔는데 갑자기 GV에 참여하게 돼서 창피했다. (웃음) 서독제 GV는 워낙 편안하게 하곤 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도 앞에 나가니 창피하더라. 그래도 GV를 통해 관객과 소통한 것이 좋았다.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나.
‘지훈이가 그 뒤에 어떻게 됐나.’ <인셉션>처럼 생각하시길 바랐다. 팽이가 돌아가고~ 열린 결말로. (웃음)
2014년 독립스타상을 수상한 뒤 벌써 1년이 지났다. 당시와 현재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미생>을 촬영하던 중간에 상을 받은 건데, 되게 자신감이 생겼다. 연기를 하면서 작품상은 좀 받았는데 연기상은 처음 받은 거라서 너무 좋았다. 진짜 받아도 되는 건가 싶고, 근데 또 받고는 싶고. 최근까지도 내 이름을 검색해서 서독제가 내 경력사항 페이지에서 없어지진 않았나 찾아보고 그랬다(웃음). 독립영화를 찍으면서 힘들었던 순간도 겪었고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고생했다고 상을 주는 거 같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계기라고 할까? 다른 분들 경우는 잘 모르지만, 연기하는 사람은, 항상 버틸 수 있는 계기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바로 그 버틸 수 있는 계기를 여기서 얻었다. 한편으로 누군가에게 상을 준다는 건 어떻게 보면 앞으로 본보기가 되라는 책임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잘 살아라’, 그게 마음속에 새겨졌다.
그렇다면 서울독립영화제는 배우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까 말한 것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 그냥 내 삶의 기준으로 말하면, 서울독립영화제는 내게 골인지점이 아니라 스타트지점이 아닐까 한다. 상을 받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용기를 얻고 다시 한 번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니까. 인생에서 한 번 더 힘을 얻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수상작에 대해 얘기해 보자. <소셜포비아>는 인물의 전사나 감정이 많이 표현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웅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한 상태에서 연기했는지 궁금하다.
지웅이 마주한 사건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연기했던 것 같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인터넷 용어들, 처음 듣는 화제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영화 속에 등장했다. 그걸 평범하게 받아들이고 그 사이에 섞이려고 노력했다. 작품 안에서 지웅은 리액션을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히스토리가 구체적이지 않은 대신 리액션으로 드라마를 쌓아가려고 했다. 일단 ‘평범함’을 구축하려고 체중을 늘리는 시도를 했다.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초 밀접한 페이크다큐 느낌을 원했다. 특별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소셜포비아>는 지웅이 나오지 않는 장면이 거의 없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꼭 하나만 뽑는다면.
‘현피’ 멤버들이 다같이 한 줄로 서서 걷는 장면. 홍대에서 촬영했는데 다른 멤버들은 되게 당당하게 자기 캐릭터에 맞게 얘기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낄낄거리면서 걸어가는데, 나는 진짜로 내 자체가 창피해서 고개를 숙이고 걸어갔다. 용민이가 어깨동무를 해 줬고. 그 장면이 기억나는 게 처음 본격적으로 사건에 들어가는 순간이고, 개인적으로도 감을 잡은 때였기 때문이다. 일단 홍대에서 한 줄로 걸어간다는 게 되게 어색하더라. 그러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내가 그 순간 지웅이 아니라 자연인 변요한처럼 느껴졌고, ‘아, 이거 되게 부끄러운데?’ 싶은 감정이 고스란히 지웅한테 넘어가면서 그 이후까지 쭉 이어졌다. 지웅을 본격적으로 연기하게 된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이 내 터닝포인트다’ 싶은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일지 알고 싶다.
다른 감독님들이 섭섭할 수 있지만 딱 두 작품만 꼽자면, 하나는 내가 매너리즘에 빠져서 연기를 그만해야지 할 때 마치 구세주처럼 나타난 <목격자의 밤>. 이 작품으로 몇 년 동안 가졌던 끌레르몽페랑영화제 상영이라는 목표를 이뤘다. 진짜 말도 안 되게. 그리고 첫 장편인 <들개>. 항상 <들개>를 ‘스물일곱 살의 뿌리’라고 하는데, 그만큼 찍으면서 정말 많은 걸 느꼈다. 나의 한계점도 많이 봤고. 그래도 에너지를 계속 쏟다 보니 성장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지 않았나 싶다. 이 두 작품을 통해 다른 많은 작품에 캐스팅되기도 했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다는 생각이 든다. <토요근무>의 도연이나 <소셜포비아>의 지웅처럼 디테일이 절제되고 무뚝뚝한 느낌의 연기부터 <재난영화>의 요한이나 <미생>의 한석율처럼 화려하고 액세서리를 갖춘 연기를 모두 소화한다. 차이를 두는 과정이 궁금하다.
연기 스승님이 ‘배우는 항상 옷을 잘 입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고 걸음걸이가 달라지고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그러니까 일단 그 역할에 맞게 스타일을 정립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물을 따라가는 부분이 있다. <미생>의 한석율 같은 경우는 단발머리에 땡땡이 셔츠를 입었다. 딱 봐도 발랄할 것 같은데 그 친구가 슬프면 더 슬퍼야 한다. <목격자의 밤>의 지훈이처럼 힘들 것 같은 애가 한 번 웃을 때 더 기뻐 보이고. 그게 어떻게 보면 삶이랑 똑같은 거 같다. 캐릭터 자체도, 하나의 문화를 은유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아직 너무 어린데 이런 말을 하면 웃기지만, 연기하는 사람은 그 문화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금 맡는 <육룡이 나르샤> 속 이방지라는 인물의 말이나 움직임은 그 자체로 백성들의 한일 수 있다. <미생>의 한석율은 그 자체로 비타민처럼 밝은 기운, 직장인들에게 주는 희망일 수 있고.
배우를 하면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런 건 아직 없다. 다만 요즘 오랫동안 연기하시는 배우 선생님들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배우란 직업이 평생 할 수도 있지만 언제 또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직업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까, 음, 꼭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지만 뜻하는 대로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난 끝까지 할 거다. 내가 재미없어질 때까지. 재미가 없어지면 과감하게 안할 거다. 근데 지금은, 너무 재밌다.
진행 김송요 사진 송기영
장소협조 빈트리200.25 경복궁점(인터뷰) 시청각(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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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알게된 사실은 인터뷰 진행해주신 분이 서독제 홍보팀장님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