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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소셜포비아 김혜리 기자님 리뷰 존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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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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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재 감독의 <소셜포비아>에는 서늘한 두 그림이 있다. 하나는 타인을 간단히 규정짓고 단죄하는 집단 권력에 중독된, 살아 있는 군상이다. 신상정보를 털어 ‘현피’를 뜨러갔던 일군의 SNS 이용자들은, 승리 대신 상대 민하영(하윤경)의 시신을 발견한다. 다른 하나는 민하영이라는 죽은 개인의 초상이다. 그녀는 과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많은 사람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매장해 명사가 됐지만, 오프라인 현실을 살아내지 못하고 우울과 무의미에 질식사했다. 마지막 현피 소동은 직접 사인이 아니었다. <소셜포비아>는 민하영을 랜선을 떠도는 유령처럼 그린다. 관객이 보는 하영의 모습은, 죽음 직후 채 감지 못한 눈, 흐릿한 웹캠 영상 속의 뜻 모를 표정, 그리고 제3자의 회상 변두리에서 반쯤 잘려나간 얼굴이 전부다. 하영의 동급생은 똑똑한 그녀가 남의 글은 매섭게 비판하면서도 막상 본인의 글을 제출하지 않아 교수와 충돌한 다음 학교에서 사라졌다고 말한다. 도대체 어떤 공포증이 창작 과목까지 수강하면서도 자기 글을 쓰지 못하도록 하영의 손을 마비시켰을까. 극중 교수의 대사에 평범한 답이 있다. “욕을 왜 안 먹으려고 해?” 무심코 지적한 교수는 얼마 후 하영이 쓴 대자보가 일으킨 표절 스캔들로 타격을 받는다. 말하자면 ‘댓글’의 고수였던 하영은 ‘본문’을 쓸 수 없었다. 본문과 댓글의 차이는 비단 길이만은 아니다. 본문은 현상과 직접 마주하는 나를 드러내는 글인 반면, 댓글은 그렇게 노출된 남한테 주석을 붙이는 글이다. 웹 환경에서 댓글은 본문보다 쓰기 쉬울 뿐 아니라 더 큰 권력을 휘두른다. 잣대가 덜 섬세할수록, 짧을수록, 심지어 한마디, 아니 ‘빠’, ‘까’, ‘충’, ‘혐’ 같은 한 음절짜리 낙인을 포함할 경우 순간적으로 더 위세를 부린다. (그리고 인터넷 이용자의 주의력 지속 시간은 찰나로 수렴하고 있다.) 일축하는 언어들은 입증이 불필요하며 대화의 지속을 요구하지 않는다. ‘찬성’, ‘반대’, ‘♡’, ‘좋아요’ 정도면 족하다. 커뮤니케이션의 마침표를 내가 찍는다는 쾌감이 더 중요한 관건이다. 그러니 왜 굳이 고생해서 도마에 올라야 하는가? 키보드 워리어로서 본문과 댓글의 불평등한 권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하영은 자리를 바꾸는 일이 두려웠을 것이다. 다음 순간, 그녀는 이 두려움의 부피가 스트레스 수준을 넘어 수업을 포기할 만큼 거대하다는 진실 앞에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소셜포비아>의 주인공 지웅(변요한)과 용민(이주승)은 장삼이사 네티즌이다. 적당히 휩쓸려 다니는 이용자 A, B다. 특별한 매력이나 미덕으로 포장되지 않은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특전은, 문제를 조망하는 시야다. 둘은 하나같이 밖을 손가락질하는 군중 틈에서 드물게 역지사지의 자리에 선다. 용민은 숨겼던 과거사가 알려지면서 본의 아니게 하영과 똑같은 코너에 몰린다. 한편 지웅은 공감하고 질문하는 법을 아직 잊지 않은 사람이다. 사건을 조사하러 다니다 지웅은 용민에게 문득 묻는다. “그런데 민하영은 왜 그랬을까? 왜 사람들을 털고 매장하고 그랬을까?” 이 대사를 들으며 나는 미스터리가 끌고 가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소셜포비아>를 통틀어 지웅이 처음으로 현상의 이유를 묻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움찔했다. 용민이 거짓말을 변명하며 나도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장면에서도 지웅은 조용히 제동을 건다. “그래 알겠어. 그런데 너 나한테 미안하다고 먼저 해야 돼.” 모두가 자기는 첫 번째 가해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받은 피해를 전이시켰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세계에서 지웅은 순서가 틀렸다는 소박한 지적을 한다. 용민의 억울한 감정은 타당하다. 악순환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고 문제의 머리와 꼬리를 찾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지웅이 말하듯 우리는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행위를 할지언정 순서는 달리 할 수 있다. 인정하고 사과하고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는 일을 먼저 할 수는 있다. 그러고 나서 넘치는 몫은 전가하고 폐를 끼치게 될 것이다. 순서를 바로잡는 몸짓이 누적되면 악순환의 가속도는 줄어들지도 모른다.

암흑 속 망망대해와 같은 온라인의 모욕과 폭력을 시각적으로 연출하는 데에는 고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두 장면에 눈이 머물렀다. 하영의 죽음이 인터넷 방송으로 중계된 이튿날, 용민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지웅과 용민이 다니는 학원 사물함은 욕설이 적힌 서명 없는 메모지로 뒤덮인다. 처음 당했을 때 바라보기만 했던 지웅은 같은 일이 두 번째 일어나자 친구의 사물함에 붙은 혐오의 딱지들을 한장씩 손으로 떼어낸다. 학교도 아닌 고시학원이 배경임을 고려할 때 이 에피소드는 표현적 연출로 보인다. 다시 말해 만질 수 없어 더욱 막막한 증오의 댓글들을 현실로 불러내 친구가 일일이 없애고 그것이 남긴 자국을 어루만지는 소원 성취의 의례다. 두 번째는 용민이 카페 회원들에게 몰이를 당하는 채팅실 시퀀스다. 이미지 없이 스크린에 대화 내용 텍스트만 띄워 표현한 이 장면은, 언뜻 컴퓨터 모니터를 옮겨놓았다는 착각을 주지만 특정한 무드를 위해 형상화돼 있다. 실제 채팅 환경과 달리 검은 바탕으로 대화방 멤버들의 고립 혹은 엄폐를 강조하며 한번에 한 이용자의 발언만 프레임에 입력해 말과 말 사이의 간격이 만들어내는 감정을 전한다. 실사로 옮긴다 치면 대화 당사자 이외의 인물을 지운다거나 고속촬영을 더하는 기교와 비슷하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우리가 감각하는 생활 세계의 엄연한 일부로 변하면서, 그곳을 흐르는 감정과 공간감을 영화적으로 묘사하는 방안은 SF 장르만의 숙제가 아니게 될 것이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9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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