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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노인의 초연함과 소년의 카리스마, What A Wonderful World
4,216 25
2022.04.2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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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글 주의 

🧊 기억이 흐릿해서 틀린 부분이 많을지도

🧊 밝고 명랑하고 재미있는 글 절대로 아님 

 

 

피겨 스케이팅의 안 좋은 점을 하나 고르라면, 정말 공들여 짠 프로그램도 클린을 못하면 빛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점프 전후에 세세한 트랜지션을 넣었을 게 분명한데 점프를 실패하면 그 짧은 순간의 안무가 한꺼번에 날아간다. 그럼 그 프로그램이 원래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선수와 안무가 말고는 알 수가 없다. 짐작 정도만 가능할 뿐이다. 잘했던 부분만 조각조각 모아 편집영상을 만든다 쳐도 유기성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갈라로 다시 해준다고 해도 그건 경기용으로 만들어졌던 그 프로그램이 아니다. 선수가 편안하게 탈 수 있도록, 즐기면서 스케이팅할 수 있게 다듬어진 갈라는 이미 원래 모습이 아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이유로 입에 많이 오르내리지 않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성적이 안 나와서 묻힌 프로그램이 되어버린 건지, 아님 프로그램이 수준 이하라 성적이 안 나온 건지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따지기도 어렵다. 

객관적으로 봐도 잘 못 만들어서,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구성이 별로여서, 선수와 어울리지 않아서 등등... 좋은 프로그램은 곡도 수행도 연기도 성적도 좋았다고 간단히 정리 가능하고 그 짧은 이야기를 수만 번 되풀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은 수십 가지 이유로 정을 붙이지 못하고 사라진다. 

 

둘 중 어느 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중간도 아닌, 전혀 다른 어딘가에 있는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고 싶다. 

 

 

 

https://twitter.com/albina_fs/status/872754899754164224

2017년 7월 말, 2018 평창 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를 뽑는 1차 선발전이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 선수들은 다른 시즌보다 조금 더 이른 6월에 선곡을 발표한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or_cjh&no=5930

그 무렵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서 차준환의 몸 상태가 얼마나 안 좋았는지에 관해 많은 기사가 남아있다. 건조하게 쓰여졌지만 비관적인 전망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가까이 있던 코치가 간단히 설명한 인터뷰를 참고하면 이미 지난 일을 설명하는데도 읽는 사람이 우울해질 정도다. 성장 때문에 오는 체형 변화를 정면으로 맞이하고 있었고, 그런 불균형 속에서 어린 선수는 부상을 당했고,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7월에 열린 1차 선발전은 한 마디로 끔찍했다(It was terrible.).

 

 

https://m.youtu.be/vNNBCnnRjnw

시즌을 시작하지도 않은 한여름에 몸 상태가 정상인 선수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선발전은 차질 없이 예정대로 치러졌고, '경기'로 남아있는 What A Wonderful World는 이것 뿐이다. 점수를 매길 용도로 만들어진 시합용 왓원월은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유일무이하다. 

 

 

https://twitter.com/bluestar_1021/status/1516045459877363712

스텝이 아름다웠다. 

 

 

https://gfycat.com/ElectricAchingFinwhale
특히 트위즐. 그리고 이어지는 런지가.
 

 

그러나 왓원월의 호불호는 갈렸다. 그것도 격렬하게.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했지만 아닌 사람들 생각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준환이는 올림픽 시즌에 시니어로 올라갔다. 시니어 1년차는 성적에 대한 부담이 다소 덜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선수인지 신선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좋은 시기다. 

 

왓원월은 귀에 익은 명곡이지만 리메이크 버전을 썼어도 느긋하고 온화한 올드팝에 가깝다. 피겨에서 좋다고 말하는 '음악발로 먹고 들어가는 뻐렁치고 웅장한 대중적 사골곡'은 확실히 아니었으며, '기세를 타고 올라간다'는 신인 느낌도 아니다. 

 

다시 없을 첫 번째 올림픽 시즌에 쓰이기에 왓원월은, 불호 의견을 직설적으로 옮기자면, 임팩트 없이 축 처지는 노래였다.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진 '목성'을 중점적으로 배치하지 않고 편집된 프리 음악 '행성'도 스케일은 크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불확실하고 불분명하며 기승전결이 확고하지 않아 마이너하고 난해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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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환이는 행성을 무척 사랑했었다. 

 

 

https://twitter.com/albina_fs/status/890535456303005696

https://twitter.com/_xxxkkkk/status/952327274820288513

왓원월도 행성도 좋아했던 입장에서 편을 들자면, 준환이는 소년도 아니고 아이였던 시절에 이미 라흐마니노프를 소화했던 경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관현악 행성 음악의 무게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 제일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행성과 너무 이르게 만났을 뿐이다.

 

 

 

그러나 7월 29~30일에 이어진 1차 선발전 바로 다음날인 7월 31일, 심각한 소식이 당도했다. 

'물혹에 찬 물을 빼고 경기를 뛰었다'고 유퀴즈에서 말했던 부상도 1차 선발 이틀 전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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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말, 스케이트 캐나다에 출전한 준환이가 손목 부상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고 쇼트 프로그램 교체 뉴스도 같이 전해졌다. 

일전에 우리 카테에서 왜 집시 댄스로 프로그램이 변경됐냐고 물어본 백성이 있었는데 기사 행간에서 이유를 짚어낼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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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 아메리카를 기권하고 한국에서 치료받던 2017년 12월 초, 2차 선발전이 열렸다. 경기를 마쳤을 때, 점수차를 본 이들은 아무래도 길이 열리지 않을 것 같다는 어두운 예감에 사로잡혔다. 준환이가 선수 생활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겠지만. 살아있는 동안 선수로서 자국 무대에 서고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을 올림픽은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2018년 동계올림픽은 한국 선수들의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데. 준환이는 어릴 때부터 '평창까지 조금만, 조금만 더'라는 마음 하나로 버텨왔는데. 

 

 

정말로 끝났나? 

이제 진짜로 끝이야? 

 

 

2차 선발전 직후 갖가지 비관적인 생각에 지칠 대로 지쳐 나가떨어진 팬들 앞에 준환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왓원월 의상을 입고. 

https://m.youtu.be/hJTbRe_NwEg



그때 준환이는 안무를 기억하려고 1차 선발전 영상을 본 다음 경기장에 나왔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바꾼 지도 몇 달쯤 흘러 왓원월이 몸에 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날,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왜 2018년 평창 올림픽이 있는 시즌에 이 노래가 차준환의 쇼트 프로그램으로 선택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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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곡 발표 당시에 모두 밝혔는데도 악재가 겹치면서 이미 알고 있던 것조차 모두가 잊게 된다. 힘든 시즌이 그렇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도 아무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왓원월과 행성은 정말 컴퍼티션에 쓰일 노래가 아니었을까? 온갖 문제들과 겹쳐 점수를 못 받았다고 해서 정말 가치가 덜할까? 두 프로그램을 보여주고자 했던 평창올림픽은 어떤 무대였나? 

 

 

다들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해도 올림픽은 평화와 화합의 장이다. 설령 그게 껍데기에 불과할지언정. 근래 자주 쓰여서 존재감이 옅어진 존 레논의 Imagine이 올림픽 개폐막식 단골 음악인 것도 그래서다. 그리고 엄청난 성공으로 모두가 지워버린 사실이 있는데, 평화 무드는 올림픽을 계기로 무르익었고 그 전까지는 여러 모로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시국이었다. 선곡에 준환이 의향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첫 경기로 왓원월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혼돈의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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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사랑으로 가득찬 작은 소년을. 

'이 멋진 세상에서 만나게 된 모두들에게, 안녕! 그리고 사랑해요'라고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열여덟 차준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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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 Wonderfu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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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세상에서 

 

 


https://gfycat.com/DelayedNiftyDalmatian
만약에 왓원월이 사람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조용하고 말수가 적고 수줍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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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마 아주 다정한 사람이기도 하겠지. 빨간 장미, 푸르른 나무, 하늘, 무지개, 세상, 가족과 친구와 이웃.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쳐나는 감사와 애정으로 받아들이는. 
 

 

https://gfycat.com/UnsungAntiqueBoubou

갈라는 무슨 갈라. 앞이 안 보여서 우리는 주저앉았어. 오랫동안 네 꿈이었던 올림픽에 못 나갈 확률이 더 높아졌단 말이야. 그런데도 너는 지금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네가 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고 싶어? 그 세상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데... 

 

 

https://twitter.com/madfordrama/status/1267803901761208321

그러나 절망에 휩싸여 맥을 놓고 있던 팬들 눈앞에서 준환이는 춤추듯이 움직였다. 아무 힘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물줄기가 흘러가는 것처럼, 나비나 새처럼. 

외워서 추는 게 아니었다. 팔에서 손끝에서 스케이트날에서 음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일부러 의식해서 집중하고 봐야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 갈라로 돌아온 왓원월이 딱 그랬다. 직전까지 자기 손으로 상처를 헤집으며 아파하던 팬들은 박수칠 기운도 없이 눈물로 흐려진 왓원월을 보면서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던 그 날을 견뎌냈다. 

 

 

준환이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던 그 어두운 날, 우리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어했었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팬들도 정말 말해주고 싶었다. 올림픽 출전 여부와 관계없이 너를 아끼고 응원한다고. 

 

 

 

https://gfycat.com/AbleFittingAvocet

집시 댄스가 평창 쇼트였던 것에 단 0.1g의 불만도 없지만 아직도 종종 그날 팬들만 보았던 그 온유한 평화로움을 온 세상 사람들이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위로라든가 위안이라든가 그건 사실 팬이 선수에게 해야 할 일인데 정작 그 날 괜찮다는 말을 전한 사람은 선수였고 2차 선발전은 그렇게 끝났다. 우리 카테 백성이 말한 그대로, 마데카솔처럼 생채기를 덮어 낫게 해준 왓원월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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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아무도 몰랐지만, 2차 선발전 종료와 동시에 우리는 왓원월과 재회하고 행성과는 이별했다. 

 

 

https://gfycat.com/SizzlingNippyGalapagossealion

행성은 영원히 미완의 작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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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fycat.com/LoneIcyIrishwolfhound
팔, 어깨, 등을 따라 흐르던 은하수 

 

 

To try when your arms are too weary

두 팔이 지칠지라도 손을 뻗어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

닿을 수 없는 별에 닿네

 

 

https://gfycat.com/HeartfeltMediocreBass

준환이 안에 별을 향해 걸어가던 나날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준환이가 서 있는 곳이 얼음 위가 아니라 광대한 우주처럼 보인다. 차준환은 암흑 속에서도 스스로 빛나는 별의 아이니까. 

 

 

......하지만 별 아래에서 태어나다니, 생각해 봐요. 오, 아마도 그녀는 틀림없이 별의 아이였을 거예요.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답고, 용감하고, 성실하며, 눈에는 반짝이는 빛을 떠올린! 

루시 모드 몽고메리, <잉글사이드의 앤> 중에서 

 

 

 

 

 

 

 

 

2018-19 시즌, 준환이는 갈라를 두 개 선보였다. 홀미백,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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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youtu.be/KBDRZPESoPA

왓원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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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그랑프리에서 먼저 보여줬던 왓원월은 2018년 12월 말,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선물처럼 한국 팬들에게 왔다. 1년 만이었다.

 

 

 

https://twitter.com/_es_mq/status/1081776987666960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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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이 프로그램을 안무한 윌슨에게 감사드립니다. 준환 군의 What a Wonderful World, 매우 따뜻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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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 프로그램이었던 왓원월을 갈라로 수정하면서 준환이는 윌슨에게 아이디어를 하나 낸다. I love you 안무는 준환이에게서 나왔다. 
 

 

 

img.gif

I see friends shaking hands saying how do you do

But they're really saying, 'I love you.'

친구들이 악수를 하며 '잘 지내느냐'고 말해 

하지만 정말은 '난 너를 사랑해'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https://twitter.com/cinnamon_bu/status/148250948771807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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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fycat.com/SandyCleverEmeraldtreeskink
 

https://gfycat.com/DistantOnlyAiredale
원래 I love you 안무. 이것도 정말로 아름다웠다. 
 

 

 

https://twitter.com/MELODY_1021/status/1076869842337054720

왓원월은 꽤 많은 영상이 남아있지만, 진심어린 고백이 제대로 화면에 잡힌 방송 영상도 직캠도 많지 않다. 준환이는 멀리서부터 천천히 관중석으로 다가왔다가 잠시 멈춰 돌아서더니, 두 손을 모으고 사랑을 담아보낸 다음 다시 저 멀리 날아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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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뜬 새파란 바다를 건너가는 작은 나비처럼. 잡을 수는 없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파랑새처럼. 

 

 

 

너의 노래가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기쁨에서, 침묵에서, 노래에게서

 

혁명이, 철학이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집에서, 깃털 구름에게서, 심장 속 검은 돌에게서

진은영, <그 머나먼>

 

 

https://m.youtu.be/Mioxrh0Z70U

그 머나먼. 

 

 

왓원월은 이상한 프로그램이다.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되더라도 처음 보는 순간 벌써 아득하게 그리워진다는 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왓원월인 사람은 드물겠지만 왓원월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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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때가 있다. 몹시 지치고 피곤해서 몸이 지하로 끌려내려가는 것 같은 날. 내가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시기. 어떤 이유에서든 타인과 세상이 싫고 두려운 기간. 화를 내고 분노하자니 그럴 기력도 없는 하루. 울 힘이 모자라 죽은 사람처럼 누워서 숨쉬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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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witter.com/KyangKyang/status/1332277273404194822

누구나 이런 시기에 대비해 미리 준비해놓은 책, 영화, 드라마, 노래, 소울푸드가 있다. 왓원월은 마치 그럴 때 보라고 만들어진 것처럼 진통제 역할을 해낸다. 무기력한 날 시계공이나 죽무를 클릭하는 건 어렵지만 왓원월을 열어보는 건 힘이 덜 든다. 체력도 집중력도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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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춤추는 소년을 지켜보고만 있으면 된다. 바람 부는 날 꽃비 떨어지는 걸 감상하듯이. 흩날리는 매화며 벚꽃 꽃잎들의 윤무를 보고 있는 기분으로. 민들레 홀씨가 날아다니는 봄날 아침처럼. 

 

 

 

https://gfycat.com/AnimatedOptimalArachnid

나 자신도 나를 돌보기 어려운 날, 그 소년이 가까이 다가와서 기꺼이 말해줄 것이다. 사랑한다고. 

 

 

 

https://m.youtu.be/hsi13272t0E

왓원월이 컴퍼티션 곡으로 사용된 적은 매우 드물거나 없지만 갈라로는 몇 번 쓰였다. 준환이가 2019년 일본 SOI에서 왓원월을 보여줬을 때, 오랜 피겨팬들은 몹시 그리운 옛 추억을 회상하는 기분으로 I love you 파트를 바라봤다는 이야기를 일본 블로그 댓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같은 가사에 준환이와 비슷한 결의 안무가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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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지인들이 우울한 날이면 기프트콘과 유튜브 왓원월 링크를 같이 보냈다. 몇 분 몇 초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적어서... 왓원월 I love you 파트는 어느 나라에서 하든 기쁨의 박수를 받았지만 의외로 머글 지인들은 특정 부분이 아니라 그냥 왓원월 영상을 통째로 좋아했다. 스트레스 받는 날에는 아예 사람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케이팝도 팝도 안 듣고 첼로곡만 틀어놓는다고 한 친구도 왓원월을 좋아했다. 보컬이 있는데도 준환이 움직임은 instrumental music 같다고. 

 

파괴적인 미움과 증오로 들끓을 때 보게 되면 그 마음을 녹이는 프로그램.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해주는 갈라. 그게 내가 생각하는 왓원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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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찍힌 왓원월 갈라들은 대부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카메라에 펜스 배경들이 거의 잡히지 않아서 어떤 영상을 선택해도 새하얀 설원에서 두둥실 떠다니는 듯한 준환이를 볼 수 있다. 점프, 스핀, 스텝 그런 기술에 구애받지 않고 스케이팅 그 자체에 몰입하고 싶다면 왓원월만한 프로그램이 또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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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다. 강철꽃 같은 차준환. 노인의 초연함과 소년의 카리스마를 갖춘. 

 

 

......아주머니는 속눈썹이 길고 흐려보이는 월터의 잿빛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더니 "어린 몸에 깃든 노인의 얼"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노인의 영혼은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월터의 어린 머리로는 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리라. 

루시 모드 몽고메리, <잉글사이드의 앤> 중에서 

 

 

 

나이가 들어 만사에 초연해진 노인이 새삼 세상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노래 왓원월을 준환이는 소년의 청아함으로 표현해냈다. 왓원월 속 차준환은 투명하고 연약해보이지만 꺾이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모두 낙담했던 평창 2차 선발전, 준환이는 오히려 팬들을 위로했고 바로 다음 3차전 준비에 돌입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스케이트화 끈을 묶고 앞으로 나아갔다. 프리 프로그램을 일 포스티노로 변경한 것도 준환이가 내린 결단이었다. 누가 감히 그때의 평창 올림피언, 시니어 스케이터 차준환을 어린애라고 폄하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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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원월은 두 시즌 동안 준환이와 팬들 곁에 있었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소년기 한복판에서. 아무도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를 끌어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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