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19 시즌을 앞둔 비시즌 어느날... 준환이가 다음 시즌에 어떤 프로그램을 할지 기사가 떴다
프리 스케이팅 음악이 처음 발표됐을 때 사람들은 모두 로맨틱하고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하여간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로미오를 떠올렸으며 그 상상도는 대충 이러했다
https://m.youtu.be/WpowLW0Ihwc
언젠가는 준환이가 사골 푹 우려내서 로줄 같은 프로그램도 해주겠지? 주니어인 2016년에도 이런 영상이 나올 만큼 모두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폈는데, 재미있게도 준환이 역시 대략 그 시기부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선수나 팬들이나 이맘때부터 사골 맛집을 차릴 생각 만만이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팬들이 처음 연상한 로줄 이미지는 클래식하고 청초한 비극적 귀공자... 왕자 셔츠 펄럭펄럭...
신데렐라는 여성 선수가 선곡할 것 같은 이미지인데, 왕자님을 어떤 모습으로 연기할까? 설렘밖에 없어! 프리에선 어떤 로미엣과 줄리엣을 선곡할까? 정통파 니노 로타(1968년 영화 OST 담당) 버전이 어울릴 것 같아!
https://twitter.com/ice_emina_1211/status/1041508460049776641
돌이켜보면 모두들 김칫국을 한 사발씩 벌컥벌컥 퍼마셨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흡사... 2022년 SOI에서 더프린스를 해줄 거라는 꿈에 부풀었던 나처럼... 아니 떡 줄 사람(선수+안무가+코치)은 생각도 안했는데... 킹치만 상식적으로(?) 차준환이 로미오를 한다는데 정석 도련님을 기대한 게 잘못이야? 팬들은 죄가 없다
니노 로타 같은 소리... 음악이 공개되자 불호가 넘쳤고 차준환이 들고 온 로줄은 후일 수식어로 기억되느냐 하면......
https://twitter.com/ursatab100mg/status/1071511665974202368
"준환이 스스로도 너무 기분 좋아보여서 좋다. 사이버펑크 일렉트로닉 로줄로 자기 족적을 분명하게 남기는 차준환 짱이구
차준환 한국 남자 싱글 최초 그랑프리 시리즈 메달ㅠㅠㅠㅠㅠㅠㅠㅠ 준환아! 난 너의 사이버펑크 로줄 메들리가 해낼 줄 알았다"
안무가 셰린 본은 결심했다(궁예임) 이 참에 시니어 시즌에 데뷔하는 거나 다름없는 신인과 센세이션을 일으키겠다고... (2017-18 시즌이 준환이의 시니어 첫 시기지만, 시니어 선수로서 뛴 경기가 2번 뿐이었던 만큼 사실상 2018-19 시즌이 제대로 된 시니어 시작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다음 비하인드는 시즌이 끝난 뒤 열었던 팬미팅에서 준환이가 고백했던 걸로 기억하지만 확실치 않을 가능성 있다... 만약 틀렸으면 잽싸게 수정하겠다...) 셰린 본이 편집된 음악을 들고 와서 줄리엣!!! 부분은 빼도 된다고 말했으나... 선수는 질풍가도의 소년답게 호쾌한 결정을 내린다 문제의 줄리엣 부분을 넣기로...
그렇다 이제 차준환은 주니어가 아닌 시니어
자기 의견과 고집과 뚝심을 밀고 나갈 시기가 도래했다
절규하는 대사가 피겨 갈라도 아니고 경기에 쓸 음악에 들어가게 된 것은 안무가의 파격과 선수의 대담성 있는 결단이 합쳐진 결과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https://m.youtu.be/ZJqOOr2UsFI
더프린스 이야기를 깜박 까먹었는데 이건 코치가 추천해준 곡이었다! 사교계에 입성하는 왕자님과 제대로 된 시니어 커리어를 시작하는 어린 선수의 캐릭터는 그렇게 맞아떨어지게 되었고 이후 Prince CHArming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로줄은 시니어와 주니어(어차피 주인공들이 10대 청소년이라 오히려 나이들어서 하면 더 어색할 가능성이 있다 시니어 선수들은 주니어틱하다는 평을 매우 싫어하기 마련이며 모 피겨팬 마음의 소리 "로줄 같은 사랑은 제발 주니어 때 끝내고 왔으면"), 댄서와 몸치(몸 못 써도 음악빨을 최대치로 받는 게 가능), 혼성과 싱글을 가리지 않는 곡이니만큼 준환이도 상당히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여차저차해서 기회가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좀 더 어렸을 때 해도 색달랐겠지만...
그렇게 완성된 두 개의 프로그램
쇼트는 발레음악에 맞게 우아한 춤선을 가득 살려 넘치는 서정성을 강조하면서도 독창적인 스텝이 들어갔고, 프리는 부담스러운 감정과잉 비극을 다루었음에도 산뜻하고 세련된, 의외성 있는 아이디어가 빛나는 느낌
로줄 공개 직후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남아있는 댓글이 잘 보여주고 있다 차분한 어조로 설명하려고 애쓴 원덬의 노고가 느껴진다 글을 읽다 대부분의 영상이 비공개 처리된 것에 탄식을 금치 못했다 저작권에 걸리고 탈덕하고 계정 밀고... 어제 올라온 영상도 금방 자취를 감추는 게 피겨판이다 어차피 팬이 될 거라면 한 시즌이라도 실시간으로 덕질하는 게 낫다
https://theqoo.net/872846950
https://twitter.com/daenamu1111/status/1498424015513583618
https://twitter.com/Icesalmon_JUN/status/1049882893835792385
준환이는 어텀 클래식에서 더프린스와 로줄을 처음 선보였는데 어머! 이건 다같이 봐야 돼!!! 라고 생각했는지 대대적으로 홍보를 때린 계정도 있다 야 너네들 그 유명한(아직 아님) 테크노 로줄도 안 봤냐???
https://twitter.com/yuiS2pics/status/1044239102785142784
더프린스 시계파트&로줄 스텝을 보고 느끼는 감정도 만국공통이었다 저거... 까딱 잘못하면 X망했겠는데 준환이가 해서 살렸네...... 안무가들이 선수 믿고 너무 실험하는 거 아니냐... 믿을 만하지만... 정작 선수 본인은 자기가 이걸 잘 보여주지 못할까봐 걱정스러웠다고
https://gfycat.com/VelvetySerpentineBlacknorwegianelkhound
2019 사대륙 시계 스텝에서 터진 환호성을 듣고 웃는 준환이
그 시즌 준환 팬덤 버킷리스트는 직관 가서 준리엣 외치기
https://twitter.com/kyokyo1021/status/1510978179623649281
준환이 쇼트에서 똑딱거리는 시계 파트, 보기만 해도 너무 만족스러워
https://twitter.com/akatcuties/status/1058679695649239040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준환이가 시계 안무할 때 소리지른 분, 저의 영웅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s://twitter.com/JauntyPearl/status/1070891672119083008
https://twitter.com/yotsubatoerikan/status/1109399023562027008
준환이는 왕자구나 쇼트는 신데렐라, 요정 속성일까?
https://twitter.com/ilapsgl/status/1296458014371831809
준환이의 신데렐라는 처음엔 준환이 멋지다~ 라고 한 뒤에 해석 면에서는 이 프로그램, 뭐였을까...? 라고 하는, 반짝반짝 환상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재미있지
https://twitter.com/satuki_sigure_f/status/1093828979717398528
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도 왕자도 아니고, 시계바늘을 연기한 건 준환이가 처음이지 않을까?
누가 누가 더 차준환 얼굴에 진심이냐 대회가 개최되고 있는 현장입니다
https://twitter.com/necoselico/status/1070998644566814720
준환이 이번 시즌 프로그램은 프리의 준리엣 임팩트가 너무 굉장해서 상대적으로 쇼트가 얌전하게 느껴지지만, 프로그램으로서는 쇼트가 좋아 남자 선수가 신데렐라라는 음악으로 스케이팅해도 위화감이 없는 것은 준환이가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키도 크고 왕자님이잖아
https://twitter.com/clearnightsong/status/1044560405043900416
로미오는? 우리 모두 알고 있죠, 준환이. Leo(의 로미오 캐릭터, 1996년판 로줄 영화의 그 분 맞음)가 다른 사람에게 어울릴 리가 없어
더프린스 시계 안무&로줄 준리엣은 현장의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부분이 되었고 그 시즌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선수도 팬덤도 코치도 그걸 즐겼고 큰 힘을 얻었다는 게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으니 읽어보기를 추천
https://gall.dcinside.com/m/kor_cjh/4422
https://m.blog.naver.com/pamtol5/221365140379
https://theqoo.net/2417753736
프로그램에 준환이 아이디어가 반영된 부분
로미오가 줄리엣을 부르며 울부짖을 때 이나바우어에 이어진 트리플 룹을 성공시키며 두 손을 쓰는 안무
https://gfycat.com/AdmirableOffbeatFallowdeer
로미오를 연기했는데 준리엣이 되어버린 소년
https://twitter.com/Iphi0821/status/1066342761215930369
지금이 어떤 시대냐 2018년이면 21세기가 되고도 거의 20년이 지났다 여성 선수들이 로줄을 선택한다고 해서 꽃잎마냥 가녀리고 부서질 것처럼 연약하고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이미지를 연출하던 시대는 갔다 최근 4~5년 동안 여싱의 로줄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분위기 그대로의 줄리엣을 연기하는 선수가 많은 만큼, 아마조네스 전사를 연상케 하는 용감하고 씩씩한 줄리엣을 보여주는 선수도 많다
까놓고 말해서 셰익스피어가 쓴 원작을 봐도 로미오보다 줄리엣이 더 강단있다 원작을 읽을 때면 로미오 얘는... 사랑 말고 하는 게 뭐야 같은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왜 이런 영양가 없는 소리를 길게 하고 있느냐면... 저런 흐름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준환이 로줄이 희소성, 특수성을 가지게 됐단 말을 하려고...
https://twitter.com/t0m0s1ha/status/1094561548687761408
준환이의 로미오는 가련하구나
https://gfycat.com/CaringShockingBlackmamba
......그러하다
기사에 실린 마지막 문장대로 그 시즌부터 보여준 각종 기술들은 정말로 준환이의 상징이 되었다
보통 남싱들은 잘 하지 않는 스핀들
https://gfycat.com/DemandingNearHorsechestnutleafminer
https://gfycat.com/BrightPlasticInvisiblerail
https://twitter.com/Pomu2_Hu/status/1059068751826407429
쇼트에서는 신데렐라, 프리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 음악만 보면 여성 선수 같은데 모두 확실하게 차준환 선수의 프로그램이지 이런 개성은 얻기 어려워
https://twitter.com/elisskate220/status/1043341718190342149
신데렐라 음악을 쓰거나 레이백 스핀을 하거나 세컨드 룹 점프를 넣거나 해서 다른 남자 선수에게 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 개성이 있네!
왜 이나바우어를 이야기하지 않는지 의아할 것 같아서 부연설명하자면 이나바우어가 시그니처로 확정된 건 2019-20 시즌 더파윗부터다 국내팬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더프린스 로줄 시즌까지 이건 그저 준환이가 자주 쓰는 연결 요소 중 하나 정도였다
더파윗 이나바우어를 신나게 홍보하고 있는 국제빙상연맹 공식계정 되시겠다
https://twitter.com/ISU_Figure/status/1193131342067912704
내가 알기로 윌슨이나 셰린 본과 팀을 이뤄 피겨 스케이팅 음악을 편집하고 작업하는 사람은 트위터의 @KarlHugoMusic, 홈페이지는 https://karlhugomusic.com/music/skating/
준환이 관련 정보가 따로 밝혀진 적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확실하게 단언은 못하지만, 아마 준환이 시니어 프로그램 음악도 대부분 여기서 편집하지 않았나 짐작하고 있다... 누가 편집했든 로줄 작업에 혼을 갈아넣었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https://twitter.com/itsdsyi/status/1044161629561057280
한참 후에 덧붙임
준환이, 그리고 안무가와 함께 준리엣을 만들어낸 걸 영광으로 여긴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영잘알 일잘알 절대 아니라 번역은 우리의 친구 파파고 카카오의 도움을 빌렸으니 비난은 나 말고 기계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