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혼/비출산 주의인 덬인데
이걸 결심한 바탕은 개인주의적인 성향, 아이 별로 안좋아함, 제도 자체에 대한 염증 등 다양하지만
가장 큰 건 내가 좋은 파트너/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서였어.
감정기복이야 이십대 중후반쯤 되면서 잦아들었는데 한 일년 전까지만 해도 원인 모를 우울에 종종 연 단위로 좀먹혔었거든.
나는 이 우울이 내 기질적인 부분도 분명 있지만 성장기 때 가정불화와 폭력에 노출됐던 게 컸다고 생각해.
내가 직접적으로 학대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심하게 다투는 부모님 아래에서 늘 큰 불안과 좌절, 무기력함을 느끼며 자랐어.
어렸을 때는 그저 조용히 삭혔던 것 같은데 사춘기~성인 무렵 되니까 가정불화, 폭력, 가난때문에 가질 수 없던 것들을 깨닫게 되면서 자기연민이 강해졌던 것 같아.
외동이라 어렸을 때부터 온갖 감정을 혼자 감당하다보니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욕구와 외로움이 디폴트로 깔려있어서 성인되고나서는 썩 괜찮지 않은 남자들이랑 꾸준히 연애를 했는데 오래 못갔어. 그리고 연애를 하면서 알게 되는 내 부분. 참 미성숙하더라고. 누군가와 함께하고 책임진다는, 관계를 지속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실천하는 게 정말 어렵더라.
그래도 초등때부터 강아지를 9년 정도 길렀는데 내 여동생이었고, 너무나도 사랑했고, 보낼 땐 태어난 이래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
만약 아이를 가지게 되도 이렇게 깊게 사랑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험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그렇게 많은 시간 비출산에 대해 고민하고 결심했으면서도 참 우스운 게 정상가족에 대한 로망이 크다는 거야.
좀 멀리 있지만 아는 사람 중에 내가 본 중 가장 반짝거리면서 긍정적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랑 자주 결혼하는 상상을 하곤 해 ㅋㅋ
그 사람은 내가 본 중 가장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님 금슬도 너무 좋고(서로 러브레터 주고받고, 자식들에게도 손편지 보내는 정성) 가족끼리 아끼는 게 많이 보여서
인간적으로 정말 부럽더라. 나도 그 집 자식처럼 구김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물론 지금은 다시 행복하고 어느정도 긍정성도 되찾았지만 나에겐 그런 상태를 만들기까지 너무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하더라고.
아무튼, 오늘 인스타를 보다가 어린아이를 둔 가족의 피드를 봤는데 아빠가 애기가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고 그걸 찍고있는 엄마의 기쁨도 느껴지고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안정감 있는 행복을 누리는 누군가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 울적해지더라.
나도 사실은 갖고 싶었는데, 싶어서.
당당하고 행복한 비혼녀성으로 살아가는 것도 조치! 난 그렇게 될거야! 다시 다잡으면서도
결혼, 아이. 내 주제에 가당키나 한가 하는 초라한 생각이 함께 따라오는 내가 참 그러네..
어딘가에 푸념하고 싶었어. 아침부터 길고 착잡한 글 미안하고, 읽어줘서 고마워 덬드라.
좋은 하루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