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처음 <악의 꽃>을 봤는데, 글쎄 당신이 아파트에 매달려 있더라고요.
저 사람이 또 저러고 있네 싶었죠? 촬영 들어가면 제 몸은 제 몸이 아니에요. 그 장면은 실제 아파트에 매달려서 찍고 실내에서 찍고, 실외 세트도 만들어서 총 세 파트로 나누어서 찍었어요.
그 후부터는 쭉 본방을 봤죠. 시청자로서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는데, 배우에겐 어땠어요?
간만에 진짜 재미있는 드라마를 했어요. 매 작품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작품이에요.
소기의 목적? 뭐였어요?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하고, 시청자들에게 계속 궁금증을 유발하는 작품. 시청자를 설득시킬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하고 싶은 게 항상 제 목표예요. 여러 가지 요소가 응축돼서 하나의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건데 늘 완벽할 수 없잖아요. 어떨 땐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든가 해서 아쉽게 끝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작품은 감독님, 배우, 제작들 간의 합이 너무 좋아서 끝까지 갔어요. 덕분에 저는 편하게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처음 <악의 꽃>을 제안받았을 때는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설득되었어요?
워낙 연출을 잘하시기로 유명한 감독님이에요. 저는 제가 인물의 깊이를 표현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가정에 대한 경험도 없고요. 감독님도 처음에는 저에 대해 의문이 있었지만 제 전작을 다 보시고 새로운 이준기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분명히 이 작품은 독특하고 어렵지만, 서로에게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죠.
그대로 이루어졌네요.
감독님이 작가님과 이 작품을 오랫동안 준비하면서 자신감이 생기셨던 것 같아요. 서로의 다른 모습을 끌어낼 수 있고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드라마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충분히 있으셨어요. 결과적으로는 잘 만들어주셨고 믿어주셨어요. 전체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시는 걸 보고 괜히 김철규 감독님이 아니구나 했죠.
사실 이 인터뷰 화보는 8월호부터 얘기되고 있었죠. 계속 촬영이 늦어졌다면서요?
저희 드라마가 원래 늦어도 8월 중순에 끝나는 게 목표였어요. 코로나, 장마, 태풍까지 와서 9월까지 7개월간 찍었어요. 여러 고난 속에서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이에요.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합이 좋았어요. 아내인 문채원 배우도 그랬지만 ‘무진’ 역의 서현우 배우와도 호흡이 좋던데요?
현우가 초반에 도현수 캐릭터를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봐요. 배우가 자기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연기가 빛이 나려면 상대 배우의 리액션이 받쳐줘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너무 잘해줬죠. 초반에는 제가 정말 사이코패스인 것처럼 보였어야 했거든요. 현우가 좋은 리액션을 줘서 초반에 캐릭터를 잡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초반에 저는 무표정에 무감각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제한이 많았거든요.
그래서인지 항상 열정적인 역할, 힘을 준 연기를 잘한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이번 <악의 꽃>은 완급이 있었죠. 어쩌면 이준기라는 배우에게 가장 필요한 역할 아닌가요?
그런 선택을 주변에서 다 원했어요. 저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악의 꽃>은 저한테 부담스러운 작품이었지만 욕심을 버려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모니터를 아예 안 했어요. 온전히 현장에서 리허설을 충분히 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조금 더 발현시킬 수 있는 쪽으로 집중했어요.
리허설? 연극이나 뮤지컬처럼요?
촬영하기 전에 대본을 가지고 여러 가지를 만들어보는 거예요. 배우들이 직접 서로 준비해온 걸 해보는 거죠. 보통은 대충 동선만 짜놓고 본촬영을 하는데 저희는 진짜 제대로 해보자 해서 리허설을 통해 채워가는 것들이 있었죠. 그게 사실 정답이죠.
도현수는 감정이 없다고 믿는 사람인데 실은 감정이 있어요. 그 미묘함을 살려야 했죠. 어떤 식으로 접근 했어요?
도현수라는 인물이 언제쯤부터 그런 감정을 느낄지를 전혀 모르고 연기를 했어요. 언제쯤 그게 열릴까? 저도 매회 기다렸어요. 기다리면서 전사들을 계속 상상했어요. 조금이라도 제 욕심이 들어가면 캐릭터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고 드라마 촬영 특성상 시간 순서대로 촬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에 조금 더 신경을 썼어요.
가장 짜릿한 장면은 뭐였어요?
감정이 열리고 폭발하는 중심에는 지원이가 있어요. 대본을 받고 한 달을 고민했어요. 처절하게 울어야 하는지 아니면 긴 호흡으로 처절하게 매달려야 하는지. 저는 현수가 평생 느껴보지 못하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을 때 막 태어난 아이처럼 울 것 같았어요.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이 함께 동요되고 슬퍼할 때, 시청자들과 공감대가 형성되고 시청자들을 설득시킬 때 정말 짜릿했어요.
요즘 시청자들은 실시간으로 채팅을 하면서 드라마를 본다면서요? ‘이준기는 원래 잘해’ 같은 댓글에 익명으로 댓글을 단다고 친다면, 뭐라고 달 거예요?
‘이준기 is 뭔들’ 해야죠. 저는 칭찬 좋아해요. 칭찬받으면 좋죠. 방송을 볼 때는 저도 톡을 잘 못 보지만 처음 시작할 때와 끝날 때는 봐요. 그때 톡방이 막 올라가면 아, 오늘도 재미있었구나 해요. 이번 드라마는 저도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악의 꽃>팀과 다음 작품도 같이 해야겠어요.
저는 이미 말씀드렸어요, 새 작품 가자고. 하하.
그럼에도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라고들 하죠. 지금은 어떤 역할을 기다려요?
‘서스펜스 멜로’를 즐겁게 하면서 멜로에 욕심이 생겼어요. 조금 더 편안하면서 따뜻한 걸 보여드리고 싶고 예쁜 사랑을 하는 작품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보고 싶고요. 아니면 정말 일상적인 연기, 풀어진 것에 대한 욕심이 이제는 생기는 것 같아요. 전에는 내가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져도 시청자들이 볼 때 놀라움을 주고 싶었어요. 이제는 점점 힘을 빼는 게 좋아요.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조금 더 자연스러움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같아요.
https://gfycat.com/CreativeMajesticIcelandichorse
https://gfycat.com/ForthrightIncompatibleAlligatorsnappingturtle
https://gfycat.com/OptimalJampackedGlobefish
엄청 알찬 인터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