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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마침표(fine)로 향하는 괜찮지 않은(not fine) 청춘들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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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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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화 부제를 보고, fine (피네)를 연쇄적으로 떠올리며 내가 좋아하는 곡을 하나 떠올려봤어.

태연의 Fine이라는 곡인데, 이별 뒤에 겉으로 덤덤한 척, 그다지 힘들지 않은 척하지만
힘든 감정이 후렴구에 휘몰아치는 진행 방식의 곡이야.
특히나 It's not fine이라고 반복적으로 하는 가사와 애드립이 굉장히 울고 있다고 느껴져.

여기서 fine은 피네가 아니라 파인-좋다-란 뜻이긴 한데 들으면서 난 항상 두 가지를 떠올렸거든.
이 사람은 괜찮지 않구나.
이 사람은 끝났지만 끝이 나지 않았구나.
그리고 이 노래를 다시 꺼내 들으면서 이 드라마랑 닮았구나, 그런 생각까지 덧붙여졌어.

그래서 나도 fine라는 동일 알파벳을 가진 두 가지의 뜻을 우리 드라마를 통해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어졌어.



2.
준영이가 그런 말을 했었지.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게 싫어요. 
그냥 저는 언제나 잘 지내고 있다고 그냥 그렇게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준영이의 반짝이는 청춘은 언제나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는 '잘' 지내는 모습,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 문제 해결을 '잘' 해주는 착한 아들, 그런 것들로 내세워져왔어.
그것들이 반짝이는 준영이의 진짜 마음을 매일 마모 시키고 있었던 걸 누구도 몰랐고, 
준영이 스스로도 알면서 모르고 있었어.

마음의 깊이를 건들게 되면 괜찮은 척하지 못한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게 아닐까.
정경이가 선을 넘고 나서야 좋아하는 마음이었다고 정의 내렸을 정도로 모든 마음을 차단하고 외면하던 사람이니까-
조금 벅차다는 이유로 안식년을 가지려 했지 진짜 이유를 알고 싶진 않았을 거야.


첫 화에서 지휘자가 험담하는 장면을 보며 참는 준영일 보며 어라? 했던 감상이 
화가 거듭될수록 참는 걸 넘어서 전부 감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준영이의 좋아요, 괜찮아요 라고 하는 말들이 역설적으로 괜찮지 않아요 (It's not fine)로 보이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런가?
나는 송아가 다른 사람 말고 준영씨 마음에는 드셨어요? 라는 말이 나한테 굉장한 울림을 주더라고.
그로 인해 생겨 버린 감정의 파동이 좀처럼 멈추지 않았어.
드라마 너머에 있는 나에게도 이게 느껴졌는데 준영이는 엄청나지 않았을까...?
그래서 준영이는 다시 찾아와 옆에 앉아준 송아에게 답지 않게 본인 이야기도 먼저 하고 작은 힘듦 하나를 꺼내놓게 된 게 아닌가 싶어.

준영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남들은 내 힘듦을 몰라도 된다고 했지만,
어쩌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들어주는 사람이 늘 필요한 사람이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견고해 보이는 벽은 스스로가 두껍게 만든 게 아니라 
준영이가 괜찮길 바라는 무심한 주위 사람들의 왜곡된 눈으로 만들어 준영이도 포기하고 받아들인게 아닐까, 싶어졌어.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다고.



3.
이런 준영이의 근본적인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말이
송아가 이별할 때 했던 말이라고 생각해.

<나보다 더 흔들리는 준영씨한테 어떻게 기대요.>

비단 주위의 상황뿐만은 아니라고 느껴졌던 건, 우리가 보아온 준영이의 삶에는 중심이라는 게 없어.
삶을 이루고 영위하고 있는 요소들은 존재하지만 준영이가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어.
삶의 중심이 박준영 본인에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꾸 삶을 이루는 요소들에게 휘둘리고 흔들리고 끌려간다고 여겨졌어.
준영이는 이 사실을 아마 모를 거야.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근데 삶의 중심이 단단한 나무처럼 뿌리박고 있는 송아는 그게 더 노골적으로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해.
그동안은 송아도 너무 큰 폭풍우를 만나 자기 몸 하나 보호 아닌 보호를 했어야 했기에, 같이 흔들리고 있었기에,
준영이의 흔들림이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았겠지만 폭풍이 지나고 마음의 중심을 잡고 나서야 또렷해 보였겠지.
그리고 그 사이에 받았던 상처들도 잘 보였을 거야.
그래서 더 상처받기 전에, 더 이 빛나는 감정이 닳기 전에 끊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겠지.
준영이의 흔들림은 끝이 없어 보이니까.

이런 준영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가 '내 것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통장도, 대출도, 연주비도, 집도, 손수건도, 우산도, 심지어 본인의 연주까지.
누군가와 얽혀있고, 누군가가 주어진 상황에 가지고는 있지만 소유하지는 못하고 있지.
욕심조차 없어. 어떤 상황에서도.
누가 좋다 하면 나도 좋고 싫다 하면 나도 싫어야만 할 것 같고.

지금 준영이의 중심은 여전히 본인이 아니야.
다른 부채감도 여전히 존재하고, 가장 커진 중심은 송아가 되어버렸어.
여태껏 준영이의 중심에 있던 것들은 여전히 준영이를 괴롭혀도 그 자리에 있는 중이야.
변화가 되고는 있지만 벗어나지 않고 중심에 머물고 있지. (부모님, 경후 재단, 정경이 등등)
근데 가장 중심에서 크게 자리 잡은 송아는 머물러 주지 않았어.
이때까지 살던 대로 하던 대로 몰래 수습하고 괜찮은 척하면 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지.

그렇게 중심을 잃고 휘청이며 본인의 방식이 다 옳은 방향을 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준영이는 너무 당연하게 모든 걸 놔버릴 수밖에 없다 생각해. (현재 15화 예고 포인트까지.)



4.
송아는 본인의 마음을 본인이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이야.
중심이 딱 잡혀서 여려 보여도 누구보다 단단한 사람이지.
그래서 송희도 (송아언니) 자기 삶과 방식이 다른 송아가 답답하다고 느끼긴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잖아.
송아를 아는 모든 사람은 다 이런 생각을 가질 거라고 생각해.

자기가 누굴 좋아하는지, 왜 아픈지, 무얼 좋아하고 무얼 하고 싶은지.
어려울 걸 알면서 마음의 소리를 듣고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전공을 했고, 
그 과정에서 상황이 마음대로 안 됐지만 모두 겪은 후 꿋꿋이 결단을 내려.
긴 짝사랑을 했지만 단호하게 마음을 끊어냈고, 어쩌지 못해 터지는 마음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달도 해봤어.
좋아해서 이해해보려고 노력도 했고, 노력이 안 돼서 괴로워도 했고, 결국 상처 입은 마음을 스스로 도닥여주기도 해.
즉, 빛나는 청춘을 더 빛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거지.

살아가면서 흐르는 시간에 맞춰 채워져 버린 삶이 아닌, 내 삶을 시간에 잘 채워 넣으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많은 괜찮지 않은 (Not fine)의 환경을 거쳐오면서
가시덤불 같은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면서도 상처를 받을지언정 외면하지 않아.
자신의 꿈과 자신의 시간을 너무도 잘 채워가고 있어.

아직 모든 일이 해결 난 것은 아니지만 다시 자기중심을 잡은 송아를 보고 있으면
차분하게 또각또각 fine (피네, 혹은 좋은.) 로 가고 있구나 안심이 돼.
앞으로 또 힘든 일이 오더라도 이겨내겠구나 역으로 위안이 되기도 해.
준영이가 송아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 마음이 송아를 겪을수록 너무 이해되고 있어 ㅎㅎㅎㅎ



5.
이제 준영이에게는 끔찍한 상황과 감정밖에 남지 않았어.
근데 신기하지.
오히려 빛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으니 이제 빛을 만날 순간밖에 남지 않았다고 느껴져.
희한하게 다 포기했다고 느끼는 순간 선물 같은 시간과 결과가 따라오게 되더라.

준영이는 송아라는 변수를 만나 모든 게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야.
15년을 굳건했던 중심도 바뀌고 흔들리고 깨졌어.
감당해야 한다고 했던 상황도 그러지 않아야 하고 그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겠지.
송아의 졸업 연주 반주를 해주겠다는 건 준영이의 중심이 조금씩 본인에게 옮겨가고 있다는 증거 같기도 해.
자신과 만나며 행복하지 않다는 송아를 결국 잡지 못했지만,
본인이 해주고 싶어서 나서서 하는 거니까. 본인 입장에 서서.
(그 과정에 송아 생각도 없다고 볼 순 없지만 어쨌든.)

본인이 중심이 되어 끝없던 아픈 과정 속에서 준영이만의 Fine (끝, 혹은 좋은) 으로 가기를 기대하고 있어.



6.
<막상 그 끝을 만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여기 있는 그 시간들은 그럼 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거지.
차곡차곡 쌓여서 여기 꽉 차있는데
이건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너무'라는 말 있잖아요. 어떤 정도를 훨씬 지나쳤을 때 하는 말.
어떤 사랑이 힘든 건, 그래서가 아닐까 해요.
적당히 사랑해야 하는데, 너무 많이 사랑해 버려서.
그러니까 다음에는 너무 많이, 가 아니라
알맞게 적당히 지나치지 않게 해요, 그 사랑이란 거.
안 그러면 너무 힘들어지니까.>



7.
'29'이라는 숫자를 너무 잘 표현해 주는 대사라고 생각해.
가장 지나치게 불태울 수 있는 최대치의 나이 같으면서도
경험이 없진 않아서 적당함과 타협하려는 최소치의 나이 같기도 하고.

사랑에- 알맞게, 적당히라는 말은 반대말 같아 보이지만,
부딪히고 상처받고 비로소 이해함으로 이퀄(=)이 성립된다고 생각해.
성립되는 순간 시작으로 알맞게 적당히 따뜻한 온도로 서로에게 맞춰지면 
사랑하는 것과 손을 잡고 평생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좋고 안 좋은 많은 시간을 내가 겪었기에, 지나치게 사랑했기에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게 아닐까.



8.
스물아홉 나이의 끝은 30의 시작이라는 것.
클래식에서 fine은 그 곡의 끝이지만 다음 악장의 시작이라는 것.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라는 말을 진부하지 않게
다른 번호로 새롭게 열게끔 해주는 게
It's not fine의 감정을 악보처럼 그려내 다들 각자의 방식대로 연주를 해내고 마치게(fine) 한
이 드라마가 청춘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해 봐.



9.
준영이와 송아, 브람스 내외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보는 모든 단원들이 fine! 행복하길 바라며.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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