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 말야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어제 이야기 보는 내내 저 시를 떠올리고 송아의 바이올린을 생각했어
송아가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마음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크구나
바이올린이라는 존재를 이성으로 치환하면
송아가 지금까지 짝사랑해온 대상은 동윤이가 아니라 바이올린인 것 같아
그것도,
짝사랑이 너무 오래 되버려서 그 시작이 뭐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오래된 마음이 커지고 커져서 가득차버린
이리저리 휘둘리면서도 힘겹게 종종걸음으로 어떻게든 걸음을 맞춰보려 노력하는
.... 어쩌면 을의 연애.
그런 속 답답한 연애 있잖아
남들이 보기엔 왜 손절 안하나 그렇게만 보이는 관계
야 걔 너 사랑 안 해, 너 이용하는 거야 당장 헤어져
언제까지 그렇게 붙들고 살래?
걔가 어디가 그렇게 좋니? 밖에 나가면 인구의 남자가 절반인데
그런 소리 백번, 백만번 들어도
남들이 무심히, 일부러, 속상해서 하는 말에 상처 받아도
나도 머리로는 아는데
도저히 마음으로는 포기가 안되서
그래도 행복했던 때가 분명히 있었고
그 마음이 아직도 살아있고
이것만 넘기면 그 행복 다시 느낄 수 있을 거 같고..
그냥 못 잘라내겠고
너무 오래 익숙해져서
그 마음이 없으면 내가 없어지는 거 같고
이번 한번만
이것만 한번더
내가 조금만 참으면
내가 조금만 잘하면
그러면 이 시간이, 이 마음이 조금 더 연장될 것 같은
그런.. 연애.
동윤이가 그랬잖아 송아는 바이올린을 "좋아하니까 더 잘하고 싶어"라고 했어..
좋아하니까.
그게 너무 행복했으니까.
레슨비도 등록금도 스스로 벌어서 다녀야하는 상황 까지도
그냥 다 견딜 수 있을만큼.
그렇게까지 모든 걸 걸었으니까 송아는,
지금 행복하지 않아도
그렇게 단칼에, 잘라내버릴 순 없을 것 같아
더럽고 치사해도 작고 소중한 월급 때문에 버티는 직장 처럼
짧은 순간 느꼈던 행복들 때문에
그 시간 때문에
박차고 나갈 수 없는 그 을의 연애.
남들은 쉽게 그만두라고 하지만
내 입으로 차마 먼저 끝을 말할 수 없었던..
미련한 건 알지만 애틋한..
그런 연애의 끝에 겨우 왔어 이제야
징글징글한 짝사랑, 적어도 7년 아니면 10년.
보통의 이야기라면 상대에게 저주를 퍼붓고 떠나야겠지만
나는 지금의 이런 미련하고 애틋한, 오래 둔 마음을 오래 간직하는 송아를 사랑하니까,
소중하게 보내줄 수 있길 바래
바이올린과 친구로라도 지낼 수 있길.
1회 세사람의 "우정" 이자, 어제 민성-동윤 대화가 그 복선이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