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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막드작가 임성한의 데뷔초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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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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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인가 mbc베스트극장(지금은 없어짐 그 요란한 오프닝 그 방송맞음 )당선작임



[웬수] 임성한 
 
  
#1. 바다 
  
바다위에 두둥실 떠있는 태곽과 망아리. 물질에 여념없는 해녀들 여럿. 바람결에 실려오는 흥겨운 노래 “동백 아가씨” 
솟구쳐 오르는 늙은 해녀 최씨. 긴 파람을 뽑더니 따올린 미역을 망아리에 담는다. 
다시 잠수하려다 멈칫하며 돌아보는 최씨. 저 멀리 대형 유람선이 나타난다. “동백 아가씨”를 바람결에 날리며.. 
  
최씨 : 어매! 
  
허둥지둥 철수 개시. 유람선을 따라.. “동백 아가씨”를 따라. 
  
  
#2. 마을로 가는 길 
  
돌담길 해품에 눕는 억새풀. 잰걸음으로 빠삐 가는 최씨. 
  
  
#3. 최씨네 부엌 
  
반질거리는 은 무쇠솥 뚜껑이 미끄러지듯 열린다. 흰 사기 그릇에 퍼놓은 밥 한 그릇. 
보아둔 상에 올려 얼른 들고 나가는 최씨. 
  
  
#4. 안방 
  
옅은 기침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열린다. 상을 들고 문지방을 넘는 최씨. 순간 날아온 성냥통이 마빡을 후려친다. 
  
시모E : 나가 이년아! 
최씨 : 늦었지유? 죄송해유. 
시모 : (담배 꼬나든채 있는대로 흘기는) 어디서 뭘 했기에 시도 때도 모르냐. 너 시에미 굶겨 죽이기로 작심했지. 맞지? 
최씨 : (고요히 눈 내려뜬채).. 
시모 : 왜 멀둥히 서 있는겨. 어여 다시 안 채려올겨! 
  
고요히 물러가는 최씨. 
  
시모 :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에구, 복장터져. 
  
담배만 빡빡 빠는데.. 
  
  
#5. 마당-부엌 
  
조심스레 들어오는 성산댁. 부엌쪽으로.. 반찬에 섞인 성냥개비를 골라내던. 
  
최씨 : 어여 와유. 
성산댁 : 점심이 늦었네. (계란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출출할 때 쪄먹어. 몇 개 안돼. 
최씨 : 왜 자꾸 이러세유. 영걸엄니 싫어하라구. 
성산댁 : 어매, 밥상이 왜 이려? 
최씨 : (별 내색않고 성냥개비만 골라내는).. 
성산댁 : (뿔난 시늉) 노인네 또 이러셨구먼. 또 왜? 
최씨 : 물질 갔다가 이제 왔어유. 꼭 때맞춰 잡숫는데 시장하셨을거구만유. 
성산댁 : 아니, 그 양반은 손도 없나. 시장하시면 챙겨자실 일이지. 
            (같이 집어내며) 이게 뭐여. 먹는 음식에 같이 늙어가는 며느리 시집살일 시켜도 유분수지. 
최씨: (쉬잇해 보이며 들으시겠다는 시늉).. 
성산댁 : 으이그, 답답한 양반.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하는구먼. 
최씨 : 쉬잇. 
  
마주보며 웃음을 깨무는 저들. 
  
  
#6. 마당(밤) 
  
마루를 사이한 두 방의 방문이 밝다. 
  
  
#7. 안방(밤) 
  
고물 흑백 TV에서 나오는 요즘의 연속극. 담배만 뻑뻑 빨며 시간을 죽이는 시모. 
  
  
#8. 건너방(밤) 
  
미역, 다시마 , 말린 전복을 매만지고 있는 최씨. 
  
  
#9. 안방(밤) 
  
고물 흑백 TV에서 나오는 애국가. 팔베개를 베고 자고 있는 시모. 
  
  
#10. 건너방(밤) 
  
애국가도 끝나고 조용해진다. 겉옷 벗어 한켠에 개켜 놓고 자리를 보는 최씨. 쓰러지듯 잠자릴.. 
  
  
#11. 안방(밤) 
  
주사선만 명멸하는 고물 흑백 TV. 
한숨 잘 잔 듯 일어나더니 TV를 끄고 담배를 피워무는 시모. 건너방의 기척을 살핀다. 
  
시모 : (심술이).. 
  
  
#12. 건너방(밤) 
  
시모E : 자냐? 
최씨 : (잠든).. 
시모E : 건너 오너라. 화토나 몇판 치자. 
최씨 : ... 
시모E : (바락) 안 들리냐!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 최씨. 방향감각을 상실한 듯 두리번 거리는데.. 
  
  
#13. 안방(밤) 
  
이부자리 위에서 화토를 치는 두 고부. 내의 위에 속치마 차림들이다. 
알맹이며 껍떼기 할거없이 딱딱 맞춰 훑어오는 시모. 
반은 졸며 마지못해 화토장을 들고 있는 최씨. 광을 내놓고 한 장 뒤집어선 제대로 짝 찾아보지도 않고 그냥 깔자. 
  
시모E : (역정) 치는겨 마는겨. 좀 제대로 봐라. 
최씨 : (그제야 살펴보고 흑짜리 짝 맞춰온다).. 
시모 : (짜증스레 혀차며 광 집어오는).. 
  
  
#14. 바다(밤) 
  
늠실대는 달빛. 파도소리. 
  
  
#15. 마당(밤) 
  
적막한 정경에 화토로 딱지치는 소리. 
  
시모 : (짜증) 아 푸 안가져가! 좀 재미나게 제대로 못 치냐? 으이그, 소대성이 잠귀신이 씌였냐. 으이그, 으이그. 
  
먼 파도소리. 
  
  
#16. 시걸 장터 
  
남자 : 뻥이요! 
  
외침에 이어 폭발음. 생기가 넘치는 시골 장터 풍경. 
광주리에 미역, 다시마며 말린 해물을 펼쳐놓고 호객하는 최씨. 젊은 새댁을 잡고 설왕설래. 
  
  
#17. 산사 요사체 
  
발 드리워진 창가에 고만고만한 난분들. 붓통, 벼루 등 일반 스님 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부좌를 틀고 참선중인 중년 스님의 뒷모습. 
정적을 깨는 풍경소리. 싱그런 새소리. 
  
  
#18. 시골장터 일각 
  
시끌벅적한 장터풍경. 
빈 광주리를 든 최씨. 지나다 양말 좌판에서 멈춘다. 회색 양말을 집어들고 살피다 몇켤레 고르는데.. 
  
  
 #19. 산사 요사체 
  
여전히 참선중인 중년스님의 뒷모습. 
  
  
#20. 신발가게 
  
남자 흰고무신을 고르는 최씨. 
  
  
#21. 영걸네 양계장 
  
사료를 주는 성산댁. 입구에서 불쑥 들여다보는. 
  
영걸 : 할무니? 쌍과부집 작은 할머니가 찾어요. 
성산댁 : (질겁) 못써. 버릇없이. 
  
찔끔해서 꽁무니를 빼는 영걸. 
  
  
#22. 영걸네 마루 
  
무심히 부채질을 하고 있는 최씨. 
  
성산댁E : 장에 갔었나? 
  
성산댁이 나타난다. 
  
최씨 : 예. 
성산댁 : 빨리 왔네. 
최씨 : 미역 몇꼭지 가져간걸유 뭐. 
  
꾸러미에서 떡 싼 것을 꺼내어 놓는다. 
  
최씨 : 잡숴봐유, 굳기 전에. 
성산댁 : 뭐여? 
최씨 : 인절미유. 따듯한걸 쌌는데 벌써 식었나보네. 
성산댁 : 그 양반이나 갖다 드려. 미역 몇꼭지 팔아 몇푼 남는다고. 
최씨 : 있어유 엄니것두. 어여 맛이나 보세유. 
성산댁 : 그 양반 알면 눈꼬리가 있는대로 홱 돌아갈텐데. 
최씨 : 엄니가 내 헌테나 그러지 딴 사람들한테야 어디 그러세유. 세상에 경우 바른 양반인데. 
성산댁 : 허긴. 
  
최씨 일어난다. 
  
성산댁 : 왜 벌써 일어나. 
최씨 : 어여 가봐야지유. 담배 떨어져서 눈 빠지실 거구먼유. 
  
  
#23. 집 근처 돌담길 
  
잔뜩 심술이 나 서성이는 시모. 뭘 봤는지 눈꼬리가 홱 올라간다. 
저편 돌담길을 돌아 바삐 나타나는. 
  
최씨 : 엄니! 오래 기다리셨지유? 
  
홱 돌아거 집쪽으로 가는 찬바람 같은 시모. 최씨의 발길이 더 빨라지는데... 
  
  
#24. 마루 
  
보퉁이를 푸는 시모. 담배보루, 사탕봉지, 국수다발, 인절미 싼 것이 나온다. 
담배, 사탕은 한쪽으로 챙겨놓고 인절미를 먹으며 큼직한 꾸러미를 푼다. 
남자 고무신과 양말이자 반쯤 꺼내다 거칠게 밀어벌이는 시모. 
부엌에서 나오다 보고 얼른 고무신을 챙겨 건너방으로 들어가는 최씨. 
  
시모 : 여태까지 어디서 노닥거렸냐? 
최씨 : (서는)... 
시모 : 담배 진 다 빠져서 환장하는 꼬라지 생각하니 고소하대? 
최씨 : 죄송해유. 
  
방문이 닫긴다. 흘겨주며 담배를 꺼내어 무는 시모. 
  
  
#25. 부엌 (밤) 
  
큰 통에 더운물을 채우는 최씨. 벌거숭이 전구불을 끄고 옷 벗는다. 
  
  
#26. 마루(밤) 
  
치마 저고리를 다림질 하고 있는 최씨. 불쑥 방문을 열고 내다보는 
  
시모 : 어느 절이냐? 
최씨 : ... 
시모 : 어느 절이녜두!... 귓구멍이 막혔냐? 
  
다림질을 마친 최씨. 다리미를 들고 말없이 부엌쪽으로 ... 
  
시모 : 독한 년! 
  
방문이 닫긴다. 그제야 말없이 나타나더니 다림질한 옷을 챙기는 최씨. 불을 끄고 안으로 들어간다(건너방). 이윽고 방의 불도 꺼진다. 
마루 한 옆에 깨끗이 닦아 세워둔 하얀 여자 고무신 한 켤레. 먼 파도소리, 무적소리. 
  
  
#27. 돌담길(새벽) 
  
자욱한 안개. 물구덕을 이고 가는 여인이 있는 풍경. 
  
  
#28. 최씨에 마당. 이른 아침 
  
노고지리 우짖는 소리. 안방문이 열린다. 
  
시모 : 얘! 요강 좀 비워와라. 
  
무응답이자 건넛방문을 열어보곤 소리나게 닫는다. 부엌으로 가더니 들여다보다 혀를 차는. 
  
시모 : 물 길러 이제 갔구먼. 오늘도 조반 제때에 얻어먹긴 글렀구먼. 소대성이 잠귀신이 씌였나 게을러 터지긴. 
  
굴시렁거리며 뒤간으로 ... 돌연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 
  
시모E : 얘! 얘! 
  
  
#29. 뒤간 
  
변소 앞에 쓰러져 있는 최씨. 
  
시모 : 정신 차려 이것아! 얘! 얘! 
  
흔들고 뺨을 때려도 무반응인 최씨. 
  
시모 : 어매! 이를 어쩐댜. 얘! 얘! 
  
  
#30. 집 앞 
  
웅성이는 마을 사람들. 
뒤간 쪾에서 최씨를 들쳐업고 뛰어나오는 영걸 아버지. 허둥지둥 뒤따르는 성산댁, 영걸모, 시모. 
정신없이 따르다 문득 제 정신이 드는. 
  
시모 : 이보게? 어디 가는겨? 
영걸부 : 병원에유. 어여 큰 병원에 가봐야지유! 
시모 : 뭔 소리여! 풍 맞은덴 침이 제일이구먼. 어여 침쟁이 불러, 침쟁이! 
  
오도가도 못하고 쩔쩔 매는 영걸부. 
  
시모 : 뭘 한댜! 어여 방에 눕혀! 어여 침쟁이나 불러! 
  
그제야 뒤돌아 우르르 마당쪽으로... 
  
  
#31. 안방 
  
침을 놓고 있는 침쟁이. 초조히 지켜보고 있는 영걸부, 영걸모. 끔직한 듯 외면하고 있던 시모, 저들의 어깨 너머로 가만히 살핀다. 
마비된 조막손이 보인다. 홱 돌아간 입이 보인다. 
끔직한 듯 외면하며 담배를 피워무는. 
  
시모 : 드런년의 팔자. (DIS) 
  
  
#32. 같은 곳 (밤) 
  
기저귀를 개고 있는 시모. 한심한 듯 흘겨본다. 
아랫목에 멍하니 허공을 보고 누워있는 최씨. 초점 흐린 눈, 홱 돌아간 입, 마비된 조막손이 끔직하다. 
  
시모 : 으이그, 열불 나. 이 나이에 기저귀나 빨아댈줄 어찌 알았어. 으이그, 드런년의 팔자. 
최씨 : ... 
시모 : 어뗘, 늙은 시에메 골탕 멕이니 시원하냐? 십년 묵은 쳇증이 확 뚫리는거 같냐? 
최씨 : ... 
시모 : 으이그, 열불나. 으이그! 
  
개던 기저귀를 홱 던지며 담배를 찾아들다 질겁. 
  
시모 : 어매! 
  
흥건히 젖은 담배갑과 성냥통. 그 근처는 물바다다. 
  
시모 : 으이그, 또 쌌네 또 싸. 시도 때도 없이 오줌은 그리 싸대냐. 으이그, 이건 강물이여 강물. 
  
허둥지둥 걸레질을 하다 패대기 치는데,... 
  
최씨 : ... 
  
  
#33. 밭 
  
채소밭에 김을 매고있는 영걸모와 성산댁. 
  
영걸모 : 다들 손가락질 하는구먼유. 못잡아 먹어서 그렇듯 달달 볶아대더니 기어이 며느리 잡았다구유. 
            오죽이나 못살게 굴었어유. 세상에 그런 무던한 며느리가 어디 있다구. 
성산댁 : 그 양반이야 며느리가 저지른 일이 하두 어이없다 싶구 한이 되서 그렀겠지. 
영걸모 : 한으로 치문 시엄니보다 당사자가 더 하쥬. 내색을 안해 그렇지. 
성산댁 : ... 
영걸모 : 집구석에 쌍과부만 있으니 오죽 했겠어유. 저라도 그런 소리 들으면 그렇게 했을 거라구유. 
성산댁 : 예삿일이 아녀. 남의 일 같지 않구먼. 팔순 노인이 육순 며느리 수발을 어찌 들겨. 하루 이틀도 아니구. 
영걸모 : 팔순이래두 엄니보다 더 정정한데 뭐가 걱정이래유. 마흔도 안돼 며느리 봐, 이날 이때 손가락 하나 까딱 안했잖어유. 
            다들 뭐라는줄 알아유? 말똥 사래유, 말똥... 
  
성산댁이 언짢은 얼굴로 돌아보자 말꼬리를 흐리는데... 
  
  
#34. 안방 
  
눕힌채로 머리를 감기는 시모. 힘이 딸려 쩔쩔 맨다. 
  
시모 : 으이그 썩을년. 뭘 쳐먹었기에 살집은 일 좋댜. 시에미 몰래 맛있는건 혼자 쳐먹었지, 그렇지! 
최씨 : (힘들어 죽게는).. 
시모 : 이눔의 머리 끄댕이 당장 잘라 버리든지 해야지. 
최씨 : (놀라 도리질) 으으으, 으으으, 
시모 : 시그러 이년아! 머리 감기는게 아니라 전쟁인데... 
  
  
#35. 마당 
  
숫돌에 가위를 갈고 있는 시모. 날을 살핀다. 
  
시모 : (됐다 싶은)... 
  
  
#36. 안방 
  
기진맥진 잠들어 있는 최씨. 소리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시모. 살핀다. 다가앉는다. 
  
최씨 : ... 
시모 : (머리 다발을 살며시 빼는)... 
최씨 : (약간 뒤척이는)... 
  
멈칫 했다가 가위를 들이대는 시모. 이 깨물고 가위질을 하려는데 번쩍 눈을 뜨는. 
  
최씨 : (놀라 성한 팔로 밀쳐내며) 으응, 으으으. 
시모 : 가만있어 이것아! 
최씨 : (필사의 저항) 으으으, 으으으. 
시모 : 이년이 산삼을 캐 삶아 먹었나. 뭔 힘이 이리 쎄댜 . 
최씨 : 으으으, 으으으. 
시모 : 풍 두 번만 맞았다간 소도 때려 잡겄네. 가만 있어. 가만. 다쳐 이것아. 다친단 말여! 
최씨 : 으으으, 으으으. 
  
옥신각산 상과 하에서 필사적인 저들. 기어히 잘려진 긴 머리가 시모의 손에 쥐어진다. 
  
최씨 : (충격).. 
시모 : (섬뜩한)... 
  
  
#37. 인서트 
  
핏빛 노을. 음산한 까마귀 울음소리. 
  
  
#38. 안방 
  
벽에 비스듬히 기대 앉은채 왼손에 움켜 쥔 잘려진 머리채를 지켜볼뿐인 최씨. 그 볼을 적시는 하염없는 눈물. 
먼 까마귀 울음소리. 
멀찍이 떨어져 앉아 외면한채 담배만 빠는 시모. 
  
최씨 : (본다)... 
  
퍼뜩 돌아보다 언짢은 듯 외며하는. 
  
시모 : 노려보면 어쩔겨. 잡아 먹을겨? 
최씨 : (볼 뿐)... 
시모 : 팔 빠지는 줄 알았네, 제년 주제에 무슨 쪽머리여 쪽머리. 주둥이도 삐뚫어진 주제에. 소가 웃겠다. 소가. 
  
흘겨주더니 도망치듯 요강을 들고 나간다. 
  
시모E : 으이그, 속 뒤집혀. 요강만 안 비워도 좀 살겠구먼. 갈수록 태산이라드니 뭔놈의 좋은 꼴을 볼거라고. 
          으이그, 지겨워. 으이그, 지겨워. 
  
잘려진 머리채를 더 더욱 움켜지는 최씨. 
  
  
#39. 부엌(밤)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의 불꽃. 연신 “으이그 지겨워”를 뱉으며 상을 보는 시모. 
  
  
#40. 안방(밤) 
  
일으켜 앉혀놓고 밥을 떠먹여 주는 시모. 어설프게 받아먹는 최씨. 쌍뚱한 단발머리가 보기 언짢은. 
  
시모 :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너도 이렇듯 호강할줄 꿈에도 몰랐지? 내꼴이 이지경이 될줄이야 누가 알았냐. 어이가 없어서 참말. 
최씨 : ... 
시모 : (찌개 떠주며 살갑게) 아.. 옳지.. 아아. 
  
찌개를 받아 먹으려 애쓰다 문득 표정이 이상해지는 최씨. 
  
시모L : 왜 그러냐. 어디가 불편하냐? 어? 싸냐. 또 싸? 
최씨 : (확실하다).. 
시모 : 으이그. 못살어. 못살어. 웬수가 따로 없어 웬수가! 아이쿠! 
  
황급히 코를 막는다. 
  
최씨 : ... 
시모 : 이것아. 저기 안보여. 요강! 요강 한마디만 하면 될걸 왜 이랴 왜! 
        머리끄뎅이 잘랐다고 이러는겨? 맛좀보라 이거여? 당해봐라 이거여? 
최씨 : (똑바로 보며 상체 비스듬히 기울이는).. 
시모 : 아이쿠. 아이쿠! 으으윽. 욕지기가 커져 나오는구나. 
  
허둥지둥 뛰쳐 나간다. 계속 터져나오는 그 소리. 
  
최씨 : (보일 듯 말 듯 미소).. 
  
  
#41. 몽타쥬 
  
한라사의 설경. 봄이 왔다. 여름이 왔다. 
  
  
#42. 영걸네 마루(밤) 
  
피어오르는 모깃불. 식사중인 영걸네 식구. 
  
영걸부 : 많이 좋아지셨다면서유? 입두 얼추 돌아왔다면서유? 
성산댁 : 입이야 돌아왔지. 
  
부지중 한숨이 새어 나오는데.. 
  
  
#43. 최씨네 건너방(30년전) 
  
시집올때 해온 세간으로 조촐하게 꾸면진 방. 바느질 하고 있는 최씨(20대 후반) 바느질감을 살핀다. 아이 옷이다. 
문득 들려오는 목탁소리와 염불소리. 
  
  
#44. 집 앞 
  
계속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는 탁발승. 문득 나타나는 최씨. 공손히 겉보리가 담긴 바가지를 올린다. 
  
탁발승 : (발랑에 받고) 나무관세음 보살. 
최씨 : (함께 숙여보이는).. 
  
돌아서는 스님. 
  
지건E : 엄니. 
  
씽씽 달려오는 지건이 최씨의 치마 폭에 매달린다. 
  
최씨 : 어디서 놀았니? 할머니가 얼마나 찾으셨다구. 
지건 : 왜? 
최씨 : 건외가댁에 가겼다. 
지건 : 건외가? 
최씨 : 응. 할머니 친정댁. 
지건 : 거긴 왜? 
최씨 : 잔치가 있어. 어여 들어가자. 시장하겠다. 
  
지건 데리고 들어가던 최씨. 무심코 뒤돌아보다 멈칫 선다. 
저만큼에서 지켜보고 있던 탁발승. 도망치듯 돌아선다. (슬로비디오로 반복) 
  
최씨 : (철렁).. 
  
  
#45. 건너방(밤) 
  
혼곤히 잠들어 있는 지건을 넋나가듯 지켜보고 있는 최씨. 
  
탁발승 : 머리 깎아서 산으로 들여보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혹시 명줄을 이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업연이오니.. 
최씨 : (하염없는 눈물).. 
  
  
#46. 해변길 
  
보퉁이를 맨 시모가 빠삐 온다. 얼핏 뒤돌아보는 시모. 어리둥절. 저편 바닷가 언덕위에 해풍 속에 서있는 여인은 최씨같다. 
  
시모 : ? 
  
  
#47. 바닷가 언덕위 
  
해풍. 거친 파도소리. 넋나간 듯 바다를 지켜보고 있는 최씨. 
  
시모E : 여기서 뭘 하냐? 왜 넋놓고 섰냐? 
최씨 : (퍼뜩 제정신이 드는) 어매! 잘 댕겨 오셨어유? 
  
보퉁이를 받는다. 
  
최씨 : 잔치 잘 치루셨어유? 
시모 : (안스러히 보는) 보기 안좋으니라. 젊디 젊은게 넋 뺀듯한거. 
  
앞선다. 허둥지둥 뒤따르는 최씨. 
  
  
#48. 최씨네 마루 
  
시모 : (버선 뽑는) 아이구 시원타. 아이구 시원해. 
최씨 : (넋놓고 서있는) 
시모 : 끌려봐라. 꿀한병 있다. 지건이 탈 났을때나 타주고 애껴. 
최씨 : .. 
시모 : (심상찮음 느끼는) 왜 그러냐. 그새 뭔일 있었냐? 
최씨 : 용서를 빌게 있구먼유. 
시모 :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여? 
최씨 : 우리 지건이 .. 죽었거니 치세유. 
시모 : (충격).. 
최씨 : (눈물이) 절루 들여 보냈구먼유. 
  
충격에 옴짝도 못하던 시모. 최씨의 멱살을 틀어쥔다. 
  
시모 : 어느 절이여! 앞장 서 당장! 
최씨 : 엄니. 
시모 : (질질 끈다) 내 새낄 누구 맘대루? 누구 맘대루? 어느 절이여. 어느 절이여! 어여 대. 어여 대 이년아. 
  
주저 앉은채 옴짝도 안하는 최씨를 끌어 내려 옥신각신. 
  
시모 : 너 이년! 나하고 무슨 원수를 졌기에 내 아들 잡아먹고 부족해서 내 새끼. 어린 내 새끼를. 
        너 이년. 너 죽고 나 죽자. 너 죽고 나 죽자. 
  
여전히 넋나간 듯 눈물만 흘리는 최씨에게 온갖 포악을 다 퍼붓고 치고 밟고 짓이기는데.. 
어느 순간부터 슬로 비디오로 보여지던 광경이 스톱모션되면.. 
  
  
#49. 안방(현재) 
  
풋콩을 까고 있는 시모.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애증무한 지켜보던. 
  
최씨 : (입은 정상. 어눌한) 웬수. 
시모 : 뭐여? 나 보고 한 소리냐. 
최씨 : 웬수. 
시모 : (어이없는 미소) 내가 할 말 사돈이 한다더니만.. 그래. 나한테도 원수면 너한테도 원수겄지. 
최씨 : (지켜볼뿐).. 
시모 : (실소) 웬수라도 좋고 뭐라도 좋구먼. 부디 늙은 시에미 앞에 앞서지나 말라고. 
        어뗘. 풋콩 둬서 밥 지으면 맛있겠지? 얼른 밥 지어오마. 
  
천근 같은 몸을 일으켜 나간다. 
  
최씨 : 웬수. 
  
  
#50. 마당 
  
빨래를 널고 잇는 시모, 힘들어 보인다. 돌연 안에서 들려오는 최씨의 어눌한 노래소리. 
  
최씨E : 헤이수 업슨 수 많은 밤들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시모 : 또 시작이구만 시작. 
  
  
#51. 안방 
  
벽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동백 아가씨 부르고 있는 최씨. 
  
  
#52. 마당 
  
들려오는 동백 아가씨 
  
시모 : (연신 한숨 뿜으며 빨래만 너는 )... 
  
  
#53. 안방 
  
계속 노래 부르는 최씨. 
  
  
#54. 마당 
  
최씨E : 꽃잎을 빨갛게 멍이 들었소 
시모 : 너만 멍든줄 아냐, 내 가슴은 피멍이 들었다. 
  
  
#55. 안방 
  
걸레질을 하는 시모, 최씨 옆을 닦고 비켜가는데 
  
최씨 : (어눌하게 쥐잡듯) 다시 닦어. 
시모 : (들은체만체).. 
최씨 : 내 말 안들려? 이것아, 그것도 걸레질이라고 하냐? 어여 다시 닦어! 
시모 : (본다)... 
최씨 : 뭘봐 눈깔 똑바로 뜨고 꼬놔보면 어쩔겨. 
시모 : 이게 아래 위도 몰라보고! 이것아, 시에민 나여, 니가 아니라 나라고. 
최씨 : 주둥인 살아설랑 
시모 : 뭐가 어쪄? 내년이 정신 나간척하고 시에미 휘어잡자는거지, 맞지? 
최씨 : 썩을년, 
시모 : 뭐, 썩을년? 으이그, 으이그. 
  
가슴을 두드리는데.. 
  
  
#56. 신사 대웅전(30년전) 
  
굽어보는 대자대비의 미소. 
지루한 염원을 담고 절하는 최씨. 
  
  
#57. 그 앞 
  
돌층계에 앉아 있는 얘기중 지건, 인기척에 돌아보다 일어난다. 대웅전을 나온 최씨, 다가온다. 
  
최씨 : 잘 있거라. 
지건 : (끄덕인다)... 
최씨 : 스님들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햐. 그래야 큰스님이 되는구먼. 알겠지? 
지건 : (울먹이며 끄덕이는)... 
최씨 : 엄니 보고싶다구 울면 안되는구먼. 그래선 귀염못받는구먼. 알겠지? 
지건 : (울먹이며 끄덕이는)... 
  
어린 지건을 어루만지고 쓸어주다 얼핏 정신을 차리는 
  
최씨 : 어매, 큰스님이 찾으시겠다, 들어가 어여. 
지건 : 엄니! 
최씨 : (북받치는 감정 누르며) 밥 잘먹고, 잠 잘고 .. 알겠지 들어가, 어여. 
지건 : 엄니. 
최씨 : (부라려 주는) 들어가 어여! 
  
쫓기듯 가는 지건이의 뒷모습을 눈물을 깨물며 지켜보는 최씨. 저만큼 가며 소매로 눈물을 씻는 지건. 
  
최씨 : (참을수없는) 지건아, 
지건 : (돌아본다)... 
최씨 : (어미닭처럼 두날개를 편다)... 
지건 : 엄니! 
  
쪼루루 달려와 품속으로 타고 드는 지건을 안으며 진저리를 치는 최씨. 
  
  
#58. 안방 
  
밥을 떠먹여 주려는 시모를 성한팔로 와락 껴안으며 볼을 부벼대는 
  
최씨 : (진저리를 치는) 내새끼, 내새끼. 
시모 : (질겁) 어매, 놔 이것아. 저리 비켜. 
최씨 : 내새끼, 내새끼. 
  
질겁해서 몸부림 치다 간신히 떼어놓는 시모. 
  
최씨 : (정겨운 눈길)... 
  
시모 흘겨주며 먹여줄 밥을 뜨는데 아직 시원찮은 손으로 반찬을 얹어주는 
  
최씨 : (아이에게 하듯) 먹어, 어이 먹어. 
  
살갑게 바라보며 턱짓까지. 
  
시모 : (기막힘)... 
최씨 : (먹는걸 보다가) 지건아, 너 할머니 이뻐, 미워? 
시모 : 그래, 갖고 놀아라, 갖고 놀아. 
최씨 : 느 할머니 얼마나 시집살이 시킨줄 아냐? 생각만해도 끔찍하구먼. 사람도 아녀, 사람도. 
시모 : (듣기 싫은, 밥만 뜬다).. 
최씨 : 느 할머니 같이 못된 시에미는 못된 며느리를 만나야 하는건데, 동으로 가라해도 서쪽으로 가면 어쩔겨, 죽일겨? 안그래? 
시모 : ... 
최씨 : 나같으면 느할머니같이 시집살이 안시킬래. 피차 박복해서 서방 잡아 먹은 주제에 같이 늙어가는터에 
        불쌍한 며느리 왜 시집살일 시키냐, 나 같으면 며느리를 딸처럼 아껴줄겨. 암. 내속으로 낳은 딸자식처럼. 
시모 : (듣기 언짢다)... 
최씨 : 지건아, 느할머니 명은 길거구먼, 못된 종자들이 원래 명은 긴 법이구먼. 
시모 : (입맛 뚝. 소리나게 수저 놓는)... 
  
  
#59. 영걸네 양계장 앞 
  
거름을 치고 있는 영걸부와 성산댁 
  
영걸부 : 쉬세유. 
성산댁 : (울적해서 일만하는).. 
영걸부 : 좀 쉬었다 하자구유. 
  
일손을 놓으며 담배를 피워문다. 그제야 일손을 놓으며 땀을 닦는 성산댁. 
  
영걸부 : 요즘은 거기 통 안올라가 보시는거 같애유. 
성산댁 : 민망해서 그려. 노인네 보기. 
영걸부 : 이젠 노망기 까지 있다면서유? 
성산댁 : 그렇댜. 노망에 중풍에, 그 음전하던 사람이 어쩌다 그리됐는지. 
  
  
#60. 안방 
  
머리를 빗어주던 시모, 묶어주기까지 한다. 고와 보인다. 
  
시모 : 우리 동백아가씨 요새 인물나네. 
최씨 : (시무룩).. 
시모 : 오늘은 동백아가씨 안 불러? 
최씨 : ... 
시모 : (밑을 만져보며) 오줌도 안쌌는데 왜그려? 
최씨 : (어눌한) 시끄러, 주둥이 닥쳐. 
시모 : (기가 막혀 웃는) 보자 보자 하니께 못하는 소리가 없어. 
        이것아, 아무리 정신이 오락가락해도 그렇지 시에미한테 주둥이 닥처가 뭐여. 
최씨 : (흘겨보는)... 
시모 : 으이그, 반 송장된거 요만큼이나 사람만들어 놓으니까 말하는 싸가지 좀 봐. 
최씨 : 나가. 
시모 : 나갈라면 너나 나가라. 
  
그러자 지팡이를 찾아 짚고 벌벌 떨며 일어나는 최씨. 한발 두발 겨우 발길을 옮긴다. 
  
시모 : 왜이려, 왜! 
최씨 : 나가라매, 썻을년 
시모 : 그래, 나가 이것아! 
  
화가나 툭 떠밀자 검불처럼 스러지는 최씨. 
  
시모 : 어매! 얘. 얘! 
  
황급히 부둥켜 안는다. 
  
최씨 : (부시시 눈을 뜨는)... 
시모 : 어뗘, 괜찮냐? 
최씨 : (순하게 볼뿐)... 
시모 : 내가 잘못했다 그래, 내가 썩을년이다. 
  
주물러 주기 시작한다. 
화면 디졸브되면 혼곤히 잠들어있는 최씨 마비된 수족을 열심히 주물러 주고 있는. 
  
시모 : (눈물이)... 
  
  
#61. 양계장 앞 
  
비가 온다. 
  
  
#62. 양계장 안 
  
봉지에 계란을 담는 영걸네. 
  
  
#63. 영걸네 마당 
  
마루끝에 걸터 앉아 넋나간 듯 비 구경을 하고 있는 시모 처량해 보이는 그 모습. 
문득 인기척에 보니 영걸네가 우산을 쓰고 나타나더니 계란봉지를 올린다. 
  
시모 : 한줄 맞어? 
영걸네 : 예. 열개여유. 
  
주머니를 뒤지자 펄쩍 뛰며 막고. 
  
영걸네 : 아녀유, 그냥 드리는거구만유. 
시모 : 아녀. 
영걸네 : 한줄값이 몇푼된다고 이러네유. 이웃간에. 
시모 : 아녀 장사는 그런거 아녀. 
  
기어히, 돈을 꺼내 쥐어 준다. 
  
영걸네 : 엄미 아시면 혼나는데. 
  
계란봉지와 우산을 챙겨들고 일어나는 시모. 
  
영걸네 : 가시게유? 비나 그치거든 가세유. (도리질) 
시모 : 입맛이 없다며, 통 먹질 않어. 걔가 계란 찜을 제일 좋아하거든. 그거나 해주면 좀 먹을랑가. 
영걸네 : 너무 걱정마세유. 좋아지실거구먼유. 
시모 : (도리질) 얼마 못살거 같어. 검불이여, 가랑잎이여. 
영걸네 : (말문이 막히는)...? 
  
물끄러미 비구경하며 넌줄이 눈물을 찍는 시모의 거동이 안스러운데... 
먼 천둥소리. 
  
시모 : 어매, 비가 굵어질 모양이네, 어여 가봐야지. 
영걸네 : 살펴 가세유. 
  
빗속으로 사라지는 시모. 
  
영걸네 : (언짢은)... 
최씨E : 엄니, 엄니. 
  
  
#64. 안 방(밤) 
  
자는 시모를 불러 깨우는 최씨. 
  
시모 : (죽겠는) 아이구, 아이구 죽겠네...잠좀자자 제발. 
최씨 : 엄니, 어여 불켜 어여. 
  
겨우 일어나 불을 켜고 자려는데, 
  
최씨 : 엄니. 
시모 : 왜 그러냐 또. 
최씨 : 엄니, 우리 신랑 어떻게 생겼어? 
시모 :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여? 
최씨 : 생각이 안나, 아무리 생각해두. 
시모 : (멀건히 보는)... 
최씨 : 이뻐? 
시모 : (건성으로 끄덕인다)... 
최씨 : 착해? 
시모 : 그래. 
최씨 : 그런데 어디갔어? 
시모 : 저이. 
최씨 : 언제유? 
시모 : 이것아 지발 잠좀 자자. 왜 안하던 짓을하냐. 으이그, 미치겠네. 
  
화면 디졸브되면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시모. 
  
최씨E : 엄니, 엄니. 
  
반닫이 열어 젖히고 뒤지는. 
  
최씨 : 엄니, 나 시집 올때 입고 온 옷 어디갔지? 
  
옷을 마구 꺼내어 던지며 찾느라 어수선. 
  
최씨 : 엄니? 시집 올때 입고 온 옷 없어졌단 말이여! 꽃가마 탈 때 그옷 입어야 한단말여! 
  
병든 닭처럼 일어나 앉아 며느리하는 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모. 
  
  
#65. 신사 전경 
  
무심한 새소리. 
  
  
#66. 요사체 
  
고요히 좌선해 있는 중년 스님의 뒷모습. 염주를 굴리고 있다. 
  
  
#67. 최씨네 마당 
  
미음 쟁반을 들고 부엌을 나오는 시모. 쓰러질 것 같다. 
  
  
#68. 안 방 
  
잠들어 있는 최씨, 병 깊은 모습. 시모가 들어온다. 
  
시모 : 얘,얘 
최씨 : (부시시 눈을 뜨는)... 
시모 : 미음 먹자. 
  
미음을 떠 먹여 주려하자 입을 꾹 다물어 눈을 감는 최씨. 
  
시모 : 왜 이려, 너 죽을래? 싸가지 없이 시에미 앞에 갈겨. 자. 어여 받아 먹어. 
최씨 : (마지 못해 한숟갈 받아먹는)... 
시모 : 옳지, 자. 
최씨 : (찡그리며 돌리질)... 
시모 : 벌려 주둥이 안 벌려! 
최씨 : ... 
시모 : 어여 벌려! 숟깔총으로 벌리기전에! 
최씨 : 스님 한번 봤으면. 
시모 : (귀가 번쩍) 지건이, 우리 지건이 보고 싶냐? 
최씨 : (애뜻한 미소로 끄덕이는)... 
시모 : 그려, 연락해서 댕겨 가라고 하마. 어느 절이여, 지건이 있는 절이 어디냐니까? 
최씨 : ... 
시모 : 말해 어여! 에미가 아픈데 자식이 모르면 쓰냐. 아무리 스님이라지만 자식은 자식아녀. 
최씨 : 붙잡아서 장가 들일려구? 안속아. 
시모 : 아녀 내가 무슨 힘있냐, 늙어 가지고 이빨빠진 호랑이네, 
최씨 : (못 미더운) 냅둬 죄받어. 
시모 : (한숨) 제대로 스님 노릇하고 있긴 한지? 혹시 땡중, 떠돌이 중은 아녀? 
최씨 : (백치같은 얼굴에 자랑스런 미소)... 
  
  
#69. 요사체(밤) 
  
고요히 염주를 돌리고 있는 중년 스님의 뒷 모습. 
  
  
#70. 안방 (밤) 
  
잠든 최씨의 수족을 주물러 주고 있는 시모. 
  
최씨 : (괴로운) 엄니! 
시모 : (졸다 깜짝 놀라) 왜 그래.. 
최씨 : 가슴이...가슴이... 불덩어리...불덩어리가... 
시모 : 물주랴? 
  
황급히 일으켜주며 물대접을 준다. 
  
최씨 : (몇 모금 마시고 쓰러지는)... 
시모 : 좀 어뗘? 
최씨 : (눈감는)... 
시모 : 내일 열걸아부지 한테 한약 몇첩 지어달라고 해야겠다. 
최씨 : ... 
시모 : (잘 채미하며 불끄려는데)... 
최씨E : (착 갈아앉은) 엄니. 
시모 : 왜? 
  
일어나 앉는 최씨. 
  
시모 : 왜 또 일어나. 
최씨 : (빤히 보는) 서방은 나만 잡아먹었어유? 
시모 : (멈칫)... 
최씨 : 엄닌 안 잡아 먹었어유? 석달만에 잡아먹으나 오년만에 잡아먹으나 잡아먹는건 마찬가지 아녜유? 
        왜 나만 갖구 못살게 굴어유! 
시모 : (기찬 듯 보는)... 
최씨 : 나만 죄인인가유? 엄니 아들 죽으라구 고사지냈어유, 내가? 
시모 : (경련)... 
최씨 : 엄닌 그랬어유? 아버님 돌아가시라고 엄닌 고사지냈어유? 
시모 : 이것이 시방.. 
최씨 : 억울해유, 억울해 미치겠다구유. 저녁 잘 먹고 멀쩡하던 사람이 자구 일어나 보니 송장인데 어쩌란 말예유. 
        나더러 어쩌란 말여유! 
시모 : 마... 말 다했냐! 
최씨 : (미움)... 
  
담배, 성냥 끌어 당기는 시모. 성냥불 긋는 손이 떨린다. 억장이 막히는 듯 연기도 제대로 토하지 못한다. 
  
시모 : 이제나 저제나 비수 꽂을 날만 벼르고 있었냐. 그려, 나도 서방 잡아 먹었다. 
        넌 머리 깍은 중이래두 어쨌거나 자식 새끼 앞 세우진 않았지? 
최씨 : ... 
시모 : 난, 난 자식도 잡아 먹었다. 그려, 니 서방 내가 잡아 먹었어. 시원하냐. 이제 속이 시원해? 모진년. 
  
눈물이 주루룩 흐르는데. 
  
  
#71. 요사체(밤) 
  
고요히 염주를 굴리는 중년 스님의 손. 문득 염주가 선다. 
손끝으로 힘이 쭉 빠져 나가기라도 한 듯 염주를 놓친다. 바닥으로 떨어져 구르는 염주. (슬로비디오) 
태산이 허물어지는 것 같은 소리. (에코) 
  
  
#72. 억새풀 동산 
  
해풍에 파도치는 억새풀. 그 너머로 가고 있는 만장도. 따르는 상주도 하나 없는 상여. 
그 한곳. 황랑한 그 광경을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 눈물을 훔치는 성산댁과 영걸네. 
억새풀 동산 너머로 이윽고 사라지는 상여. 바람소리. 파도치는 억새풀. 
  
  
#73. 몽타쥬 
  
마루에서 해바라기 하고 있는 시모. 더 폭삭 늙었구나. 밥상을 차리는 시모. 
(부엌) 불 밝은 방문에 비친 혼자서 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는 시모의 그림자. 
혼자서 화투를 치는 시모. 
  
  
#74. 건너방(밤) 
  
촛불, 향연. 상청에 음식을차려 놓는 시모. 그 앞에 앉더니 물끄럼이 바라보다 담배를 태운다. 
  
시모 : 어여 먹어라...나?. 난 이게 (담배) 밥이여. ...부모님 밑에서 십칠년을 컸다. 
        산 설고 물 설은데루 시집와 오년을 사니 혼자 되드라. 금이야, 옥이야, 이십년 키운 자식도 하루 아침에 잡아먹고 ... 
        금쪽같은 내 손주새끼도 품에 안아본게 겨우 육년이고... 
        너 웬수라고 했지? 웬수같은 너하군 사십년을 살았어, 야. 이 웬수야. 좋은데루 가거라. 나같은 못된 시에미 없는 좋은데루. 
        부디 좋은데루 가. 이 웬수야! 
  
아득한 미소로 연기를 내뻗는데.. 지축을 울리는 것 같은 어지러운 복 소리. 
  
  
#75. 산사의 초대형 북(법고) 
  
가사 장삼을 입은 스님이 두 손에 북 채를 들고 초대형 북을 두드린다. 현란한 그 동작. 
이승과 저승을 울리는듯한 북소리. (불가의 의식임) 
  
  
#76.억새풀 동산 
  
그 북소리. 해풍에 파도치는 억새풀. 
고운 옷을 입은 여인이 바람속을 간다. 느낌이 젊은날의 최씨 같다. 
날아갈 듯 북소리를 타고 가는 그 여인. 
  
  
#77. 산사의 초대형 북 
  
북소리. 계속되는 스님의 현란한 춤사위 같은 동작. 그 어느 순간의 스톱 모션. 


-

신작에서도 절덕후 , 무속신앙덕후의 모습을 보여줄지모르겠으나 일일드가아니라 안나올거같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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