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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리뷰펌] 멈추는 법을 모른 문영, 멈추는 법만 알던 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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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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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괜갤펌
http://m.dcinside.com/board/tvnphyco/710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강태의 계단. 지폐들이 허공에서 날아다니는 문영의 계단.


돈다발이 든 꿀물 상자를 떨어트리는 시늉만 할 뿐, 계단에서 중심을 잃은 이 대표가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허리를 받쳐준 강태.

온갖 희롱에 협박도 마다하지 않는 평론가가 넘어질 뻔하다 겨우 중심을 잡으니 친절히(?) 그를 톡 밀어 굴러 떨어지게 한 문영.

강태는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알고, 문영은 자기 자신을 위해 속에 쌓아둔 걸 푸는 데 망설임이 없다.

문제는 각자 그 길 밖에 모른다는 것. 한 명은 브레이크가 닳을 때까지 꽉 쥐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브레이크가 처음부터 없었다.

사인회에서도 강태는 상태의 불안증세를 가라앉히는데서 멈추었다. 그가 마음 속에 쌓았던 분노를 대신 풀어준 건 문영이었다.


멈춰있던 강태를 움직이게 한 건 오직 자신만을 보던 그녀의 눈


주저없이 그녀의 칼날을 맨손으로 잡으며 막아선 순간부터 강태는 이미 그녀의 안전핀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호사로서의 의무와 책임감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죽은 엄마를 들먹이며 문영을 희롱하는 평론가를 향해 손을 들던 그녀를 붙잡은 것도 일종의 직업병, 책임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강태는 상태를 포함해 주위 사람들을 안전하게 하려는 태도가 몸에 사리가 나올 정도로 베어있었으니까. 그는 모두를 위한 의무적 안전핀이었다.

https://gfycat.com/SneakyHighlevelAustralianshelduck

평론가가 떠난 뒤에도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은 문영을 막으려고 붙잡은 이번에도 의무감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렇게 믿었는데, 좋아하냐고 책임질거냐고 쏘아붙이는 그녀의 질문에 아니라는 대답이 쉽게 나오질 않았다. 그녀 말엔 틀린 게 없었다. 자신은 그녀의 친구도 연인도 아니었고, 그녀는 그의 환자도 아니었다. 붙잡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속이 뒤틀렸다. 이 여자의 독한 말이 가슴을 후벼팠다. 그녀를 급히 붙잡은 자신의 다친 손보다 더 아팠다. 이 대표가 생각 없이 그의 손을 붙잡았을 때, 수많은 택배 상자들을 옮길 때, 흐르는 물에 덧난 상처를 씻겨낼 땐 그렇게 쓰라렸는데. 그 순간만큼은 손바닥에 자리한 상처의 존재조차 잊게 됐다.


차갑게 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에 강태는 그제서야 멈췄다. 더 늦기 전에 브레이크를 걸고 제자리에 섰다. 그런데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 불도저처럼 나아가는 문영의 뒷모습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움직였다. 의무감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오로지 형을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 꽉 쥐고 있던 브레이크를 놓으며 강태가 문을 박차고 나와 길고 긴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 여자 때문에. 그 여자가 나한테 뭔데? 나는 그 여자한테 뭔데?

https://gfycat.com/TotalPaleDegu

강태의 세상의 중심은 오로지 상태였다. 형에게 밝은 색상의 옷을 입혀준 뒤엔 본인은 어둡고 칙칙한 옷을 입었다. 형이 머리를 손질할 때 자신은 모자를 푹 눌러썼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형만 지켜봤다. 그런데 세상이란 무대의 맨 가장자리에 숨어있는 그를, 문영이 자꾸 찾아낸다. 여긴 형을 위한 곳인데 그녀가 자꾸만 자신을 알아봐주고, 자신에게 집중한다. 본인을 숨기려 쓴 모자를 벗기며 머리를 손질해주고 예쁜 얼굴 안 보인다며 가까이서 빤히 쳐다본다. 예뻐해준다. 그래서 강태는 두렵다. 내심 문영이 자신을 계속 찾아주길 바랄까봐. 그래서 문영이 자신의 브레이크를 부숴트릴까봐. 그래서 형을 빌미삼아 멈추었듯, 그녀를 빌미삼아 달리기 시작할까봐. 문영이 말했다. 강태는 피하는 게 아니라 도망치는 거라고. 달리는 것과 도망치는 건 다르다. 달리는 건 앞을 향한 거지만 도망가는 건 뒤를 향하니까. 멈추고 떠나길 반복하던 강태는 오랜 시간 끝에 악몽과 형체 없는 두려움이 존재하는 고향으로 상태와 함께 돌아갔다. 길은 뒤를 향해 있지만 강태의 두 발은 처음으로 앞을 향해 있었다. 도망이 아닌 직진을 택한 그는 이미 브레이크를 서서히 놓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맘 속 깊은 곳에 묶어두었던 마음을 풀기 시작했다. 버스 창가에 기대 모자를 벗은 채 바람을 잠시 느끼듯.


앞만 보고 걷던 그녀를 멈추게 한 건 뒤에서 들린 그의 목소리


https://gfycat.com/AdoredHatefulBaboon


문영은 멈추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가는 길에 버린 것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게 꽃잎이든, 가족이든, 우연이든, 악연이든. 쌓아둔 건 바로 풀어야만 했다. 폭탄처럼 펑 터져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라도. 어차피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 두려워서 도망치니까. 터지기 전엔 이미 자신을 멀리 떠난 뒤겠지. 하지만 분노는 눈처럼 자꾸만 불어나고 터질만큼 터져도 전혀 나아지는 게 없다. 목표물이 괴로워하는 걸 보며 느끼는 카타르시스도 잠시일뿐.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 그저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문영의 두 발이 우뚝 멈춰섰다. 누가 명령하고, 협박하고, 무릎 꿇고 사정해도 들을 본인이 아닌데 강태의 멈추란 한 마디에 거짓말처럼 몸이 순순히 반응했다. 나비 포옹법이라며 자기한테 통하지도 않을 방법을 알려주는데, 딴 건 모르겠고 그가 자신을 멈추게 만든 게 싫지 않다. 신기하다. 새롭다. 그래서 더욱 가지고 싶어졌다. 문강태를.


https://gfycat.com/BoringVeneratedCollardlizard

문영은 아직 모른다. 멈추는 건 그저 시작일뿐이란 걸. 분노를 푸는 게 나쁜 건 아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마주해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타인을 해치고 자신마저 해칠 수 있는 파괴적인 방식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고, 트라우마 또한 자신의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문영의 분노는는, 화려한 의상과 차가운 말 속에 숨겨둔 그녀의 트라우마는 그녀의 등 뒤에도 있다. 문영이 버리고 떠난 것 같지만 마음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그녀의 과거 속에. 오래된 흉터를 들여다보고 뒤에서 보듬어줄 손길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멈추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사람의 등 뒤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가장 취약한 부위 중 하나며 가장 쓸쓸한 곳이다. 죽음만이 드리웠던 문영의 등 뒤에 강태가 나타났다 (1화 오프닝 애니 참고). 이질적이고 두려울 수도 있지만, 결국 지금의 문영에게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문영의 뒤를 감싸줌으로써 그녀를 멈추게 하고 쉬게 해줄 수 있는, 햇살 같은 따스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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