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팔이 대화법
"필름을 천천히 붙여야 해요. 빨리 붙여 버리면 우리 말 안 듣고 나가버리잖아요." '액정 필름 깔끔하게 붙이는 법' 특강에 나선 사수가 말했다. "기포는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세게 밀어내면 없어져요. 먼지 들어갔을 땐 셀로판테이프를 두 개 뜯어서 하나로는 필름을 들고 다른 하나는 손에 붙여 먼지를 떼어내면 돼요."
공을 들이니 손재주가 없는 편인 기자도 깨끗하게 필름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영업의 출발선에 섰다.
"여기 앉으세요. 날이 너무 춥죠. 저녁은 뭐 드셨어요? 근처에 떡볶이 맛집 있어요." 액정 필름을 교체해준다는 빌미로 매장으로 들어선 손님에게 쉴 새 없이 말을 붙인다. 이른바 '클로징(closing) 멘트'. 끝맺음 인사가 아니다. '가까운'의 close. 고객과 가까워지기 위한 대화를 말한다. 농담 따먹기로 고객의 경계를 풀었다. 본격적으로 신형 휴대전화를 판다.
"아이폰7 쓰시네요. 어머, 최신 기종으로 업그레이드 안 된대요?" '업그레이드'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로 '작업'을 시작한다. "혜택 대상자면 지금 요금 그대로 최신 기종인 아이폰11을 받아갈 수 있어요. 혜택 되는지 봐 드릴게요. 통신사가 어디세요?" 어법에도 안 맞는 사물 존칭이 절로 튀어나왔다. 손님 입장에선 혜택이 무엇인지, 최신 휴대전화를 진짜 준다는 건지 궁금증이 쌓여간다. 그러나 질문할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 판매사는 고객이 말하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업그레이드 안 해보실래요?'처럼 청유형이나 선택지를 주는 문장은 쓰지 마세요. 고객한테 '잡아먹히지' 않게 주도권을 잡아야 해요." 사수가 내 연기를 보고 피드백했다. 신입 판매사는 선배에게 교육받는다. 선배가 고객 역할, 신입이 판매사 역할을 맡아 상황극을 반복한다. 선배는 무뚝뚝한 고객이었다가 금세 의심 많은 고객으로 바뀐다. '케이스 스터디(사례 분석)'다. 목소리 크기, 말투, 대화 흐름, '공짜'처럼 쓰면 안 되는 용어까지 엄격히 지적한다.
눈속임, '지금 요금 그대로'
"지금 내는 요금 그대로 최신 기종 쓰세요." 이 유혹의 진실은 무엇일까. 아이폰8을 쓰고 있던 고객 A씨가 있다. 한 달 내는 요금은 8만5000원(통신비 5만원+단말기 할부금 3만5000원). 할부는 5개월 남았다고 치자. A씨가 아이폰11(64GB)로 바꿀 경우, 매달 내야 하는 기기 값은 48개월 할부 기준 2만 3000원이다. 산술적으로 다음 달부터 원래 내던 월 요금(8만5000원)에 2만3000원을 더한 10만8000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폰팔이'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혜택 대상자다. 5개월 동안 지금 요금인 8만5000원만 내고, 6개월 차부터는 7만3000원을 내면 된다. 더 싸게 최신폰 쓰는 거다. 5개월 동안은 매달 2만3000원씩 총 11만5000원을 우리가 지원해주는 셈이다"고 한다.
함정이 있다. '지원금' 11만5000원의 출처다. 판매사는 A씨에게 기존 아이폰8을 받아 중고로 판매한다. 아이폰8 판매가는 20만원 정도. 남는 차액인 8만5000원은 판매사가 챙긴다. 내 휴대전화를 중고 판매한 돈이 '몇 사람밖에 못 받는 혜택'으로 둔갑한 것이다.
'혜택'부터 '업그레이드'까지 '충동 교체'를 부추기기 위해 철저히 의도된 표현이다. 메커니즘을 이해하니 "쓰던 요금 그대로 받아가세요"라는 말을 뱉을 때마다 소리가 작아졌다. 바로 지적을 받았다. "판매사가 확신을 가져야 고객한테 팔 수 있어요." 선배가 말했다. 이런 꼼수들이 모여 휴대전화 분쟁을 낳는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에서 운영하는 '이동전화 불공정행위 신고센터'에는 2017년부터 매년 2000건에 가까운 신고가 접수됐다.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때문에 얘가 파나 쟤가 파나 비슷해요. 사칙연산과 한국말만 할 수 있으면 누구나 판매 상담할 수 있어요." 대리점 점장이 말했다. 단통법은 휴대전화 구매자에게 전국 어디서나 같은 액수의 판매 보조금을 주도록 규제한 법안. 2014년 10월 처음 시행됐다. 어느 매장에도 특별한 혜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혹시라도 호객에 이끌려 들어갔다면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정신줄 붙잡고 말하자. "설명 감사한데요. 명함 하나 주세요. 다음에 올게요."
[조유진 기자 jinjo229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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