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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펌] 코리안 조커, 장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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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1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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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pgr21.com/freedom/83077

한 남자가 살인으로 붙잡혔다. 그는 저소득이자 안정치 못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딱히 마음 나눌 동료나 친구도 없었다. 마음 속으로는 늘 누군가와의 소통을 원했지만 방식이 좋지 못한 탓인지, 사람들이 이유없이 그를 배척해서인지 그 시도는 주로 실패로 돌아갔다. 특히 여자 문제에서 온 좌절은 내면에서 분노로 자라나기 충분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그는 소외 이론에게서조차 소외되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실패하고 무가치한 중년 남성이었다.

경찰에 잡힌 후 그는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그 어떤 형식적인 사죄의 말도 하지 않아 당국에 충격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선 자각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알더라도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죽인 사람이 자기를 못살게 굴었다는 사실일 뿐이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이름은 장대호다.



영화 "조커"를 본 나의 감상은, 제목을 '조승희'나 '정남규'로 바꿔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양자의 차이는 물론 있다. 저 현실의 살인마들과 달리 아서 플렉은 자기와 개인적으로 얽힌 사람만 살해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건 감정적 연민이나 법적인 참작에 있어 생각해 볼만한 문제긴 하지만, 환경과 불운이 그들을 살인의 길로 이끌었다는 사실에 있어선 매한가지다. "조커"를 보고 빈곤이나 무관심, 사회 안전망 따위의 이야기를 할 것이라면 조승희나 정남규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을 약간이라도 동정하는 순간 현실은 '그같은 상황에 놓인 모든 사람들이 다 살인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라며, 그들이 (대량)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은 단지 그들이 악한이라는 것을 증명할 뿐'이라고 쏘아붙인다. 확실히 그렇기도 하다. 아서 플렉도 자신의 흔들리는 정신상태를 염두하여 총을 받지 않을 기회가, 최소한 집에서 총을 갖고 놀다 실수로 쏴버렸을 때 겁을 먹고 총을 버릴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커"는 극한의 연기로 착각하게 만들지만 실은 생각보다 평범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다. 일 년에 몇 번이고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불우한 환경에서 소외된 채 열등감과 분노, 정신착란에 시달리는 살인자의 이야기. 그래서 "조커"에 대한 여러 감상ㅡ명백한 계급 우화인 "기생충"에 빗댄다던지 하는ㅡ들은 그저 간지럽다.

30대 후반의 모텔 종업원 장대호는 연쇄나 대량살인자도 아니고, 아서 플렉처럼 자기에게 모멸감을 가한 한 투숙객을 살해한 하나의 죄로 재판정에 섰다. 그리고 검찰은,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그건 그의 동기나 범행이 사형에 처해야 마땅할 정도로 끔찍해서일까? 그보다는 '나쁜 놈이 나쁜 놈을 죽인 것'이라고 자체적으로 결론짓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태도, 판결문에 으레 들어가는 '반성의 여지' 같은 표현을 원천 차단하는 그 태도에 질려버린 것이 아닐까? 결국 더 논할 것이 없으므로 이상의 공판 없이 바로 판결을 한다고 한다.

영화 개봉 이후 미국 사회의 공포감 섞인 반응을 멀리서 지켜보며 한국 사람들은 고작 영화인데 그럴 필요가 있냐고 하기도, 개중 아는 체를 하는 이들은 미국이라면 그럴 법하다며 어쨌거나 딴 세상에 살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을 한다. 그야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 사회고, 그만큼 사람들이 평소 난데없는 습격 같은 것을 보통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염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런 한국이 좋다. 하지만 그런 좋은 사회일수록, 그 룰에 균열을 입히는 것들에 다른 사회 이상의 충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형벌로써 심판한다는 국룰을 초월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함으로 심판자들을 소름돋게 하는 장대호는 코리안 조커, 영화 이상의 조커다.

장대호의 꼿꼿하고 사뭇 논리적인 태도는 아서 플렉이 자칭하는 조커와는 또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인생먹튀론의 살아있는 예시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재판정에서 '인생을 포기했으니 사형도 괜찮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점에서 장대호는 현실 감각이 전무한 김성수 같은 보통의 하류인생 살인자들과 다르다. 이를테면 그는 자신을 정중부에 빗대었다. 그건 그가 학력이나 깊이를 떠나 어느 정도의 지적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자의식과잉 기질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피살자에 대한 분노는 그저 발화제였을 뿐, 진짜 동기는 '이렇게 손해보는 삶을 굳이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합리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절규하는 유족들을 향해 미소를 보낼 여유가 있기도 한 것이다. (정중부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가슴이 시키는 일을 했고, 그 과제를 해소한 마당에 지금 벌어지는 재판 따위 일들은 어찌되든 상관 없으니까. 잡히지 않았으면 보너스 게임을 즐기듯 더 좋았겠지만, 혹시 사형을 받는다면 그것도 괜찮다. 내가 나를 죽이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남이 나를 죽여준다면 굳이 더 살아 있을 이유도 없으니 오히려 땡큐다.

인생을 포기한다는 건 - 인생에서 좋은 부분은 이미 취했고 더 나아질 가능성은 없으니 나머진 어찌되든 상관 없다는 건 - 이렇게 무서운 말이다. 목숨줄을 부여잡고 제시하는 회유나 협박이 전혀 먹히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굳이 살인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제시하지 않아도 말이다. 이렇듯 인생을 일종의 손익게임으로 생각하는, 그래서 인생을 포기하고 있거나 포기할 준비가 된 사람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이건 범죄율이나 자살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살인이나 자살 같은 일은 어디까지나 예외적 상황이다. 거기까지 가기에는 넘어야 될 저지선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지선을 끝내 넘어버린 이들로 인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대표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장대호는 그 과정을 완성했기에 특별한 것이지 장대호만이 유일한 조커라고 말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小)조커들은 이미 주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시스템이 돌보지 않으며, 소외를 논하는 이들로부터도 소외되었고, 때문에 사회적 삶이란 것을 체감하지 못해 인생을 '합리적'으로 잴 준비가 된 자들 말이다.

실패자들에게도 실패자 나름의 힘이, 오히려 실패했기에 가질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이 어떻게 어디로 굴러갈 것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것은 너무나 뻔히 현실화된 것들이지만, (소외되고 있어요 관심가져주세요라고 다들 떠들어대는 나머지 정말 많은 관심을 받는 것들 말고 진짜로) 관심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전혀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름 없는 실개천이 썩어 있다는 사실을 모를수록 안양천이나 탄천 정도의 하천을 두고 '개천에서 용난다'는 식의 말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 제발, 두려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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