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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봄이 오면 꽃보다 시체를 더 많이 본다" 법의학자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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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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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사람들, 시도 직후 대부분 후회"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건강할 때 결정해야"

"죽음 과정 무한정 연장하는 ‘연명치료 중지' 고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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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1500여건의 부검을 담당한 법의학자 유성호(47세). 그는 매주 월요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체를 보기 위해 출근한다.
수화기 너머 여러 번 신호음이 들렸지만, 받지 않았다. 아뿔싸, 그제야 생각났다. ‘오늘은 월요일, 그가 시체를 해부하는 날.’ 오후가 되자 콜백이 왔다. 부드럽고 신중한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부검 중이었어요."

법의학자 유성호를 만나러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찾았다.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를 살아서 만나 자니, 괜스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교 법의학 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립 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을 겸임하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방송에서 의문의 죽음의 해결사로 등장하곤 했다.

최근에 출간된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그간 그가 목격하고 공부한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았다. 존엄사, 가사, 뇌사, 식물인간. 검시, 검안, 부검, 해부… 문장의 갈피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할 줄 알았건만, 갈피마다 서늘한 산소를 불어놓듯 ‘어떻게 살 것인가' 생의 의지가 선명하게 약동했다.

우리 모두 죽음을 구체적으로 마주 봐야 한다는, 법의학 앞에 완전 범죄는 없다는, 의연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죽은 자들이 끝내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삶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빛도 없는 카메오라고 했다.

유성호는 20년간 그의 손으로 1500여 구의 시체를 부검했다.

-매주 월요일이면 시체를 보러 출근한다고요.

"네. 전화하셨을 때도 3구를 부검 중이었습니다. 용산, 동대문, 성동, 혜화 등등 관찰 경찰서 여덟 군데에서 시체가 옵니다. 사건에 따라 다르지만 육안으로만 보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정밀 검사를 하기도 해요."

-죽은 자를 마주할 때는 어떤 생각을 합니까?

"실험실에서 포르말린에 적신 시체를 볼 땐 묵념을 했지요. 의학 수련을 위한 헌신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죠. 부검할 땐 사망 원인을 밝히는데만 신경을 써요. 은행원이 돈을 대하듯, 기계적으로 집중합니다. 끔찍하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오랜 수련의 결과인가요? 보통 사람은 공포 영화 속 시체만 봐도 심장이 멎는 것 같습니다만.

"저도 공포영화 속의 시신은 무서워요(웃음).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나 ‘인시디어스'를 보면 온몸이 오그라들죠. 그러면서도 슬쩍 헛웃음이 나요. 관절이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좀비는 부패 시점이 한참 지나면 시강이 풀려 축 늘어지는데 그렇게 힘을 쓰는 게 말이 안 되거든요(웃음)."

-선생이 가르치는 서울대 교양강의 ‘죽음의 과학적 이해'엔 학생들이 벌떼처럼 모여든다더군요.

"광속 마감이죠(웃음). 처음엔 호기심에서 와요. 미국드라마 ‘CSI 과학수사대'나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 책에 나오는 미스터리한 죽음을 보려고요.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 탐정 김전일’이 된 듯한 흥분감이 있지요. 하지만 갈수록 ‘어떻게 살아야 하나' 숙연한 감정을 느끼더군요."

-무엇을 가르칩니까?

"우리 몸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는지, 자살과 타살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의사조력사망이나 안락사, 설레지만 무거운 주제인 영생까지 다룹니다. 대학 입시를 위해 무조건 달려온 20대 청년들은 순간 멈칫해서 자문하죠.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근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남을 짓밟고서라도 가고 싶을 만큼 최상위 목적지로 나온 곳이 서울대 의대예요. 선생은 어떻게 의사라는 자본주의 선민의 가운을 벗고 법의학자가 됐습니까?

"의대에 간 건 파스퇴르의 전기를 읽고서였어요(웃음). 대학에 진학할 당시 TV에서 ‘사랑이 꽃피는 나무'라는 드라마를 했는데, 의대생들이 젠틀해보이기도 했고요. 전공을 선택할 땐 신경외과와 감염내과 쪽을 생각했죠. 그런데 우연히 1세대 법의학자인 이윤성 교수의 강의를 들은 거예요.

지금 제가 하는 수업이죠. 그때 제 스승이 그러시더군요. "전망은 최악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알고보니 제가 10년 만의 제자였어요. 사명감은 아니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소영웅주의 같은 게 있었나 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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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화두 앞에서 그는 의사, 과학자 그리고 부검을 하는 법의학자다./사진=김지호 기자
아들이 어려운 의대에 들어갔다고 좋아하셨던 부모님은 의아해하며 물으셨다, "법의학이 뭐 하는 거니?"

-부모님이 실망이 크셨겠어요. 뭐라고 설명했지요?

"시체를 해부하는 일이라고 했죠. 황당해하셨어요(웃음). 사람 살리는 일,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왜 죽었나’를 밝혀서 인권을 회복시키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해요. 윤일병 사건이 대표적이에요. 그때 제가 고인이 군대에서 폭행으로 죽었다는 걸 밝혀냈고 그 일로 군대 내 인권 문제가 부각 됐습니다. 지금은 부모님도 대견해 하세요."

다양한 죽음을 보며 그 자신, 점점 더 성숙해졌다고 했다. 공부만 잘하고 남에게 관심 없던 청년이 법의학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세상이 만만한 채로 교만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모든 시체는 나를 성장시킨다’고. 의대생들이 ‘죽음 강의’는 재밌게 들으면서도, 전공으로 법의학을 선택하지 않는 걸 안타까워했다.

대한민국의 법의학자는 모두 합해도 40명 정도. 그들은 학회가 있어도 함께 버스를 타지 않는다. 혹여 사고라도 나서 전멸할까 우려돼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죽음의 의문을 밝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위상은 높아지지만, 법의학 공무원 지원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했다. 대학에서 후임 교수를 뽑기도 쉽지 않다. 훈련된 병리 전문의 자격을 요구하는 데다 논문 연구, 부검, 법률적 소양 등 갖춰야 할 조건은 많은 반면, 돈과 권력과는 거리가 멀어서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시체를 어떻게 할지' 지휘권의 문제도 있어요. 미국은 부검의가 오기 전에 수사관은 현장에 손도 못 대죠. 영국도 검사나 협업 경찰관이 시신 전담의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많고요. 반면 우리는 대륙법을 따라서 검사와 경찰관에게 시신의 권한이 있죠. 일본도 법의학을 최우선으로 키워서 학회에 가면 후계자가 많아요. " 국민 인권과 관련된 문제라 더욱 씁쓸한 일이라고 그가 한숨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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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적으로 사망원인이 정해져도 사망 종류를 밝히기에는 어려울 때가 많다. 물에서 건져낸 시신도 사망원인은 익사지만 스스로 투신했다면 자살, 술에 취해 수영했다면 사고사, 수영 중 심근경색이 있었다면 병사다.
-법원과 보험회사의 자문 의뢰가 가장 많다고 들었어요.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누군가의 죽음에서 죄와 돈의 흔적을 읽어내는 책임이 무겁겠습니다.

"그렇죠. 법정에서 범인의 죄를 밝혀내는 일은 사명입니다. 반면 보험회사는 상해보험이 걸려 있어서 중요해요. 가령 목욕탕에서 70대 노인이 둥둥 떠 있다면 그게 익사냐, 아니냐를 판별해야죠. 익사면 보상금이 나가고 질병사면 안 나가요. 얼마나 치열하게 따지는지, ‘목욕탕 익사'로 제가 논문도 썼어요. 70~80%는 질병이 있는 병사예요. 쓰러져서 물을 흡입한 증거가 없으면, 유가족은 보상금을 받을 수 없죠."

-우문이지만 죽은 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이 법의학 절차에서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눈으로만 보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가령 세월호 사건 때도 시신이 바뀐 채로 장례까지 치른 적이 있었어요. 노스페이스, 나이키 신발 같은 인상착의만 보면 미궁에 빠지는 거예요. 지문, DNA, 치아 검사를 거쳐야 정확하죠. 일례로 유병언이 아직도 살아있냐고, 제 동료 의사도 제게 물어봐요. 유병언을 부검할 당시, 제 눈에도 그는 평범한 노숙자로 보였어요. 정강이뼈에서 추출한 DNA, 지문, 치과 의료 엑스레이 기록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의 시신이 맞다는 걸 발표했죠."

-우리 육체는 대개 어떤 과정을 거쳐 죽습니까?

"생의 말기적 증상이 있어요. 통증이 있고 피곤하고 입이 마르고 손발이 저리고 가려움증을 겪어요. 가장 많이 겪는 징후는 졸음이에요. 계속 깨워도 졸고 꼬집어도 반응이 없으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사망에 이르죠. 그런데 노인분들 앞에서는 절대 이런 말을 안 해요(죽음). 내가 죽을 때가 된 거냐고 화를 내시거든요."

-죽기 직전에 졸음이 쏟아진다는 게 신기하더군요.

"뇌의 각성 기능이 떨어지는 게 원인이죠. 점차 뇌의 활동이 꺼져 코마 상태에 이르는 겁니다."

항상 죽음과 가까이 있는 유성호는 졸음과 혼수상태를 칭하는 ‘그레이 존(gray zone)’을 무한정 연장하는 연명 치료에 비판적이다. 높은 의료 비용과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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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 없이 의료 행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처분당하는 것이 우리 사회 죽음의 대세라고, 그는 안타까워 했다./사진=김지호 기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그레이존’상태를 맞는다고 들었어요.

"그렇죠. 일단 심폐소생술로 숨을 연장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나의 위엄을 유지한 채 죽을 수 있다면 굉장히 럭키한겁니다. 요양병원이나 중환자실에 가보셨나요? 전신에 호스를 꽂고 욕창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아요. 죽음의 시간이 늘어나는 게 과연 환영할 일인가, 이젠 공개적으로 고민해야 해요. 연명의료 중지에 대한 법안이 나온 것도 힘겨운 ‘그레이존' 상태에서 가족들의 어려운 선택을 돕기 위해서죠."

-예민한 이슈입니다.

"법안은 초기 실행단계에요. 회복 불가한 중환자인 경우 마지막 단계에서 더는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고 인공호흡기를 뗀다는 건데요. 본인이 미처 의사 표현을 못 한 경우, 직계존비속의 동의하에 하죠. 그렇다면 독신자는 어떻게 할지, 소식이 끊겼다 갑자기 나타난 가족의 반대는 어떻게 할지… 보완할 점이 많아요."

-안락사는 존엄사 혹은 자비사라고도 하는데, 표현법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지요?

"자비사는 고통 없이 죽도록 도와준다는 중립적 표현이고, 존엄사는 존엄하게 죽기 위해 치료받지 않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거죠. 김수환 추기경도 생전에 ‘숨과 맥박이 멈췄을 때 애써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좀더 나아가서 의사조력자살은 좀 충격적이더군요. 미국 병리학자 잭 케보키언이 고안했다는 수면제와 독약이 든 기계 장치 말입니다. 그런데 회생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로 죽음의 의지가 확고했던 사람들도 차마 그 버튼을 스스로 누를 수 없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직접 죽음의 버튼을 누른 사람은 40%였다죠?

"네.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과 함께 삶의 의지가 올라왔던 거죠. ‘죽음의 의사’ 잭 케보키언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미국의 오리건주와 워싱턴DC는 존엄사를 공식적으로 허용했어요. 논란이 있지만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도 의사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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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의사’ 잭 케보키언.
-선생은 존엄사를 찬성합니까?

"기자님은 어떠신가요?"

-고통이 극심하다면 덜어줘야겠지요.

"가망 없는 연명 치료에 들어가면 환자들의 실제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과정을 지켜본 의사로서 치료받지 않을 권리는 인정받아야 한다고 보는 거죠. 종교와 생명 윤리의 관점으로는 좀 더 복잡해요. 자살이냐 아니냐,로 파고들어 가니까요."

-한편, 자살 시도자들을 인터뷰한 ‘뉴요커' 기사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금문교에서 뛰어내릴 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뛰어내린 후에는 죽고 싶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는 진술이었어요.

"서울대 정신의학과 안용민 교수도 같은 말씀을 하더군요. 자살 시도 중 구출된 사람들을 진료하면서 동일한 대답을 들었답니다. ‘죽음을 오래 준비했고, 죽음으로 모든 게 해결되리라 믿었지만, 막상 죽는 순간 살고 싶었다’는 거죠. 삶의 다음 선택지, 답안지를 못 본 상태에서 하는 극단적 시도는 그만큼 안타까운 겁니다. 자살 직후에 후회한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에요."

-특히 죽음으로 해결책을 찾는 유명인의 자살은 대중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죠.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데는 그 영향도 크겠지요?

"확실히 자살을 부추기는 면이 있습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의 죽음이 언론에 화제성으로 보도되는 건 위험해요. 명심하세요. 자살은 존엄사가 아닙니다."

-대도시보다 시골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의외더군요. 뉴욕보다 알래스카가, 서울보다 강원도가 자살률이 더 높다는 게 사실인가요?

"맞습니다. 중요한 건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느냐예요. 다들 전원생활을 꿈꾸는데 익숙지 않은 곳에서 소속감 없이 사는 건 위험합니다. 사람 없는 곳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외치며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부류는 많지 않아요.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노인도 소속감이 있어야 자살을 막을 수 있어요. 지방도 인구 밀도가 떨어질수록 자살 방지에 최대한 힘써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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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장소로 유명했던 마포대교에 삶의 소중함에 대한 글귀를 붙여놓고 경찰도 수시로 순찰하자 자살률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 꽃 피는 봄이 오면 꽃보다 시신을 더 많이 보십니까?

"네. 그해 겨울에 강에 떨어지신 분들의 시체는 이듬해 봄에 떠올라요. 부패하고 가스가 차면 수면 위로 올라오죠. 날이 풀리고 꽃이 필 즈음, 제가 부검하는 분들은 거의 다 익사자예요. 유서가 있으면 자살, 없으면 타살, 간혹 사고사도 있지요."

-수많은 유서를 보셨겠군요.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습니까?

"서민들의 유서는 대기업 회장들의 유서와는 다르죠. 뼈아픈 유서가 많아요. 폐 질환으로 목숨을 끊은 분이셨어요. 자기 빚을 세세히 기록하고 갚을 방도까지 적은 뒤 마지막으로 자식에게 어릴 때 때려서 미안하다고 쓴 엄마의 유서가 기억납니다. 주변에 폐 끼치지 않으려고, 빌린 돈 3만5천 원까지 빼놓지 않고 쓰셨어요."

-유서를 보면 평소의 인품과 더불어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 애절합니다. 태종도 ‘세자는 몸이 허하니 상중에도 고기를 먹으라'는 유서를 남겼다지요. 저는 중국의 철학자 왕꾸어웨이의 유서를 늘 가슴에 품고 있어요. 자식들에게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남은 너희들은 열심히 살면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던. 유서엔 거짓말도 허세도 없더군요.

"네. 대개 죽기 직전의 말은 길지 않습니다. 타인의 유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한테 남기고 싶은 말은 평소에 자주 적어두어야겠다고요."

-유서와 더불어 생의 마지막 순간을 탕진하고 싶지 않으면 ‘심폐 소생술 등 연명치료를 하지 마라'는 의지를 미리 밝혀두라고 하셨어요. 그것이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까?

"미국과 한국의 보건 의료 예산을 보면 생애 마지막 1년, 한 달에 가장 많은 돈을 씁니다. 우리는 거의 다 암이나 심장, 뇌 질환으로 사망할 거예요. 병에 걸리기 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서 자녀들에게 전달해 두길 권해요.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정리할 시간 대신 반복되는 시술로 인생이 끝날 수 있습니다. 왜냐? 죽음에 가까울수록 환자도 가족도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길 꺼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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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강의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유성호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암 진단을 받았을 경우, 살겠다는 희망으로 노력하는 것과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 결정을 언제 내려야 합니까?

"치료와 동시에 죽음을 준비해야 해요. 의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완치 가능성이 떨어지면 대비해야죠. 과거엔 의사가 환자에게 임박한 죽음을 알리는 걸 ‘나쁜 소식 전하기'라고 했어요. 요즘엔 그냥 ‘소식 전하기'라고 합니다.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소멸은 당연한 이치니까요.

퀴블러 이론에 따르면 죽기 전에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의 5단계를 거쳐요. 그런데 요즘엔 분노와 우울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레이존이 길어져서죠. 죽음이 의사의 나레이션이 아니라 나의 나레이션이 되려면, 결단이 필요해요."

-암 선고를 받자 빚정리 원고정리부터 깔끔하게 준비했던 이문구 작가와 장례식장에 탱고와 와인을 주문했던 그레이스 리 선생은 매우 좋은 사례더군요.

"그렇죠. 저도 미리 아들한테 얘기했어요. 한 번도 안 입어본 뻣뻣한 수의 같은 거 입히지 말고, 결혼할 때 입은 예복 입혀서 보내달라고요. 장례식장에 틀 영상도 미리 찍어 둘 참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하고, 내 아들 피곤하니 10시 전에 돌아가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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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 삶이 있고 100가지 죽음이 있습니다.”/사진=김지호 기자
-죽은 자의 가슴을 열어볼 땐 어떤 생각이 드나요?

"가슴을 열어보면 알죠. 이분이 험하게 살았는지, 정성스럽게 살았는지. 심장과 폐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몽골에서 온 사람은 아기 폐처럼 깨끗해요. 대도시 사람은 공해와 흡연에 오염된 가슴이 많죠. 질환에 대처를 못 하고 고생하다 가신 분은 전신에 황달 증세까지 있었어요. 제가 목격한 바로는 부유층은 상대적으로 행복한 죽음이 더 많아요. 좀더 일찍 대비하니까요."

-아내와는 일상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눕니까?

"제가 많은 죽음을 보며 성장했듯이, 아내와도 자연스레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언젠가 147번 칼에 찔린 여성을 부검하고 몸과 마음이 기진맥진한 적이 있어요. 헤어지자는 말에 분노한 남자친구가 한 짓이었어요. 칼이 어디서 어떻게 들어왔는지, 그걸 다 세고 있자니…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나, 한숨이 나더군요.

그 얘기를 들은 아내가 그래요.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도 당시엔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야.’ 위로가 됐지요. 통상 부검자가 죽은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면 좋지 않아요. 하지만 그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여성이고 약자니까. 학대로 사망한 아이들의 시체를 볼 때도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요."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범죄자가 자기가 죽이고도 거짓말을 할 때, 저는 과학적 근거로 사건을 재구성해서 보여줍니다. 그들이 적절한 형벌을 받고, 죽은 자의 인권이 회복될 때 보람을 느껴요. 망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은 중요합니다. 세종 때 집필된 최초의 법의학서 제목도 무원록이에요. ‘원한이 없게 하라'는 거죠."

-선생의 죽음도 상상해보셨습니까?

"수시로 상상합니다(웃음). 암, 심장, 뇌 질환, 치매까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어요. 암으로 죽을 가능성이 높지요. 통계적으로 보면 우리는 거의 다 암으로 죽을 겁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선 의사를 이기적으로 묘사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웃음). 제 동료 의사들은 암을 정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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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인생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감사하게 여기며 나와 다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사진=김지호 기자
-마지막으로 묻지요. 품위 있는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죽음 앞에서 두려워 벌벌 떨지 않는 거죠. 죽음이 삶의 마지막 과정이라는 걸 담담하게 인정하는 겁니다. 태어날 때 축복받고 웃은 것처럼, 죽을 때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즐겁게 마무리하는 거죠. 급작스럽게 죽을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고, 주변에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하면서요."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kimjisu@chosunbiz.com]



https://m.news.naver.com/hotissue/read.nhn?sid1=163&cid=1080700&iid=2811692&oid=023&aid=00034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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