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gfycat.com/RepulsiveCloudyAnnelida
번진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하나의 잉크가 물가에 번졌는데,
물이 전체로 물들었고
하나의 빛이 번져
따스함을 일으켜 봄이 되었다.
이내 네가 내 안 가득 번지고
나는 막을 겨를이 없다.
[ 번지다, 백가희 ]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 다정이 나를, 김경미 ]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 바람의 지문, 이은규 ]
눈을 다 감고도 갈 수 있느냐고
비탈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말했다.
두 발 없이도
아니, 길이 없어도 나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
[ 첫사랑 ,김현태 ]
어떤 날은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목구멍이 막 아프고.
몰래 얼굴만 보고올까,
집 앞에서 숨어 있다가
너 들어가는 뒷모습만 보고 올까,
혼자서 막 작전도 짰는데.
[ 풍선껌, 이미나 ]
"그 사람이 어떻게 말했어?"
"더 좋은 사람 만나래.
내 곁에서 그런 사람이 돼 주겠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는데."
[ 달의 고백, 안상현 ]
너와 나 사이에 놓인 길의 모래를
전부 셀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름만 읊어도 세상의 모든 것들이 눈물겨워진다
그리움이 분주해진다
나에게 다녀가는 모든 것들이
전부 너의 언어 너의 온도 너의 웃음과
악수였다
[ 자목련 색을 닮은 너에게, 서덕준 ]
달이 너에게 닿았다
지구에서 봐도 보일 만큼
너는 달보다 눈부셨다
나에게만 예쁜 사람이길 바랐지만
하필 모든 우주가 너를 탐냈다
[ 절망, 흔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