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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랑 싸우는 기분"

"모두가 제 알몸을 본 것만 같아서 외출을 못 하겠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죠?"

11일 서울 중구 중림동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이하 센터) 상담 전화 4대가 쉬지 않고 울렸다.

"영상을 빨리 지워달라"고 소리치는 사람, 옆에 듣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조용히 말하는 사람,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까지 피해를 호소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라고 했다. 몰래카메라(몰카) 등 불법 촬영물 피해자들이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운영하는 이 센터는 4월 30일 문을 열었다.

몰카 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피해가 커지자 정부 예산을 들어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10일까지 2개월여 동안 754명이 불법 영상을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상담 4건 중 3건은 배우자나 연인이 찍고 헤어진 뒤 인터넷에 공개한 '리벤지(복수) 영상'이다.

화장실, 지하철 몰카 영상도 있다.

상담원들에 따르면 피해 여성들은 "전 남자친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상을 찍었다"며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녀'라는 포르노 배우가 돼 있었다"고 했다.

10년째 영상을 지우러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이 여성은 "아무리 지워도 새로 올라오는 영상 때문에 마치 종신형을 받은 느낌"이라고 했다.

음란 사이트 관계자가 영상을 삭제해 주겠다며 접근해 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센터 직원들은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고 구글에 '국산 ○○' 같은 단어를 검색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몰카가 게시된 음란 사이트 중 90%는 미국에 서버를 두고 있다.

한국 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삭제가 쉽지 않다. 결국 해당 사이트에 이메일을 보내 삭제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센터는 지금까지 이메일 3900통가량을 보냈다.

삭제지원팀 A씨는 "지난 두 달 동안 삭제 요청을 1000건 넘게 했는데 실제 지워진 건 절반밖에 안 된다"고 했다.

"지워도 하루 이틀이 지나면 좀비처럼 다시 게시된다"고 했다.

박성혜 삭제지원팀장은 "미국은 아동 포르노를 강력하게 단속하기 때문에 몰카 영상이 올라와 있는 미국 사이트에 '(한국인) 몰카 영상을 안 지워주면 게시된 아동 포르노를 신고하겠다'고 압박한다"고 했다.

삭제가 어렵기 때문에 직원들은 첫 상담 때 피해자에게 "인터넷 특성상 100% 없애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상담원 B씨는 "피해자에겐 기다리는 시간이 지옥 같을 텐데 '다 없어질 것'이라고 하는 건 희망 고문"이라고 했다.

피해자들은 센터에 도움을 청하더라도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는 경우는 적다. 현재까지 두 달여 동안 26건 정도로 전체 피해자 100명 중 3명꼴이다.

이은정 상담팀장은 "피해자 처지에선 경찰에 신고하면 자기 신체가 나온 증거를 보여줘야 하는 부담이 있는 데다, 수사에 들어가도 가해자를 쉽게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대부분이 '한 사람이라도 덜 볼 수 있게 빨리 지워달라'고만 한다"고 했다.

센터도 보안을 중시한다.

33㎡(10평) 남짓한 센터는 금남(禁男) 구역이다. 상담팀 4명, 삭제지원팀 8명 등 12명 모두 여성이다.

피해자 정보 유출을 우려해 팀장을 제외한 근무자 이름도 공개하지 않는다.

센터 관계자는 "직원 선발 때 국가정보원 요원을 선발하듯이 과거 경력 등을 철저히 검증한다"고 했다.

센터를 찾은 기자가 사무실 내부를 둘러본 지 2분이 채 안 됐을 때 직원이 다가와 "이제 옆방(회의실)으로 가자"고 했다.

최근에는 남성 신고자도 늘었다.

지난 4일 경찰이 몰카 영상 유포에 대해 "사이버 테러에 버금가는 사안으로 수사하겠다"고 밝힌 후부터다.

불법 촬영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나도 피해자다. 영상을 지워달라"고 한다.

센터 관계자는 "경찰 처벌을 겁낸 일부 가해자가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 때문에 몰카 영상이 사라지지 않자 한국 여성들이 미국 의회를 상대로 연방법 제정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이달 초 미국 의회에 불법 촬영물 유포자를 처벌하는 연방법을 통과시켜 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서승희 한사성 대표는 "현재 미국에선 35개주에서 불법 촬영물 유포자를 처벌하는 법이 있지만, 연방법이 없는 탓에 한국 경찰이 수사 공조를 요청해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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