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보 아파트단지 안의 박근혜들
1,689 1
2017.03.21 08:12
1,689 1
한겨레] 동네변호사가 간다



0002357699_001_20170320223520895.JPG?typ 얼마 전 대학 후배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이웃들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이 아파트는 난방이 중앙공급식인데다가 녹물이 나올 정도로 오래돼 개별난방으로 전환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공사주체인 입주자대표회의의 독선과 횡포가 도를 넘어, 이에 항의하고 공사 내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해도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입주자대표회의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입주민들에게 배포한 유인물을 입주자대표회의 쪽이 경비아저씨들을 동원해 수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자 반대 쪽도 입주자대표회의가 배포한 유인물을 일부 수거했다. 이 일을 가지고 입주자대표회의가 반대 진영에 있는 입주민들을 절도, 재물손괴, 업무방해 등의 죄목으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후배를 포함한 반대 쪽 주민들의 요구는 아주 단순했다. 내 집에 들어오는 보일러의 시공사를 어디로 하고, 그 가액의 산출을 어떻게 하며, 공사의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 설명을 듣고 질문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요구다. 그런데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는커녕 형사고소까지 당하고 보니 매우 황당했다는 것이다. 후배는 분한 마음에 진한 눈물까지 쏟아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이런 사례들을 여기저기서 목격한다. 우리 사회는 합리적인 대화나 토론을 통하여 절차적으로 이견을 해소해가는 문화가 아직은 취약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이나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등 정권 핵심들은 이견을 토론과 대화를 통하여 해소하기는커녕 이견의 존재 자체를 용납하지 않고 이를 ‘블랙리스트’나 검찰을 동원해 풀어내려고 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국가권력 차원의 일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서푼짜리 권력이 있는 자리나 단체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상층의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풀뿌리 생활 곳곳에서도 크든 작든 권력을 잡는 사람들이 이견의 존재를 도무지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이 이견을 강압적으로 억누르려 할 때 흔히 선택하는 수단이 ‘법’이다. 상층의 정치권력이 정당해산, 내란음모 등의 법적 조치를 동원하듯, 풀뿌리 작은 권력들도 반대편에 대하여 형사고소, 민사 가처분 등 온갖 법적 조치를 동원한다. 가령 재개발, 재건축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 양상은 그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표자들의 독선과 횡포→이에 반발한 반대자들의 결집→형사고소로 반대자 탄압→반대자의 대표자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조치의 수순을 밟는다. 그렇게 하고는 이 과정을 법치주의라고 선전한다. 법치주의? 웃기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 본래의 뜻과 가장 멀어진 말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법치주의’를 꼽는다. 왜냐면 법치주의라는 말은 국민(입주민)이 법을 잘 지키라는 뜻이 아니라, 권력자(대표자)가 법을 잘 지켜 자신이 대표하는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잘 지키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법 위에 군림하면서 막상 그 법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던 박 전 대통령은 이제 권좌에서 축출됐다. 이번 박근혜 탄핵은 우리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시민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비단 정치권력 상층에만 머물지 말고 마치 봄바람이 겨울의 음습한 기운을 몰아내듯 골목과 골목, 동네와 동네에까지 스며들기를 바란다. 그래서 크든 작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그 권력이 자신의 전속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명심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그리하여 자신은 다양한 이견을 조정하고 중지를 모으는 봉사자의 지위에 있음을 공감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고소나 가처분 같은 생경한 용어로 다른 사람을 제압하는 것이 법치가 아니라, 그런 이견을 슬기롭게 해소해가는 일련의 과정이 진정한 법치라는 점도 아울러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이광철/변호사
목록 스크랩 (0)
댓글 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영화이벤트] 세상의 주인이 바뀌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예매권 증정 이벤트 335 04.24 40,321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579,293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3,044,858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3,835,65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322,635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1,338,127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3 21.08.23 3,418,174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17 20.09.29 2,257,257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45 20.05.17 2,971,267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53 20.04.30 3,539,822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글쓰기 권한 포인트 상향 조정) 1236 18.08.31 7,911,912
모든 공지 확인하기()
2392976 이슈 혼란한 상황속 인스스로 노래 언급해주는 블랙핑크제니 세븐틴 우지 20:17 43
2392975 이슈 1년전 오늘 개봉한,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 20:17 17
2392974 이슈 노래 전체가 킬링파트라는 제베원 선공개곡 첫 무대 20:16 20
2392973 이슈 조회수 1000만 찍었다는 오디션 영상.ytb 20:16 265
2392972 유머 올해 핫게 혼자 쓴 인물 투탑 12 20:15 921
2392971 정보 핑계고 모닝 콜라텍 내일 오전 9시 업로드 1 20:15 77
2392970 유머 당근 못 먹는다는 아이돌 20:15 174
2392969 이슈 소희x성한빈x명재현 라이즈 임파서블 챌린지 2 20:14 132
2392968 유머 먼저 퇴근에 나섰지만 버텨서 두번째로 퇴근한 그 판다🐼🐼 9 20:13 885
2392967 기사/뉴스 '파울볼 사고' 아이칠린 초원, 27일 스케줄 복귀 "퍼포먼스 제한적 참여"[전문] 1 20:12 245
2392966 이슈 뭐가 더 핫한지 뽑으라면 갈릴거 같은 올해 연예계 최대 이슈 48 20:12 1,464
2392965 기사/뉴스 '돌싱' 안재현, 촬영 중 동창 발언에 당황…"너도 女 오래 좀 만나" 9 20:10 1,387
2392964 유머 [KBO] 여보 미안 출장 아니야...gif 12 20:10 1,307
2392963 이슈 @ : 딥러닝으로 순식간에 인간의 몇십년치 노력을 모방해 결과물을 낼 수 있는 AI와 순수한 10년을 그대로 갈아넣은 프로듀서의 베스트앨범이 싸운다고... 이거지금엔드게임이라고,어쎔블이라고,전설이라고 1 20:10 599
2392962 이슈 아마도 더쿠 역사상 가장 뜨거운 봄으로 기록될 2024년 4월 44 20:05 3,011
2392961 기사/뉴스 [단독]유재환 '작곡비 사기' 피해규모 십수명-수천만원"→변제 시작…성희롱 의혹은 부인? 12 20:04 1,964
2392960 이슈 1년전 오늘 발매된, 이펙스 "여우가 시집가는 날" 1 20:04 97
2392959 정보 초심 찾으러 (찐으로) 과거로 돌아간 박재범 5 20:03 894
2392958 이슈 지코 x 블랙핑크 제니 'SPOT!' 챌린지 49 20:02 1,747
2392957 이슈 라이즈 임파서블 챌린지 원빈 X 제베원 석매튜 16 20:02 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