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일, 두 살 강아지 호밀이는 까만 옷을 입고 바닥에 섰다. 바들바들 떠는 호밀이에게 이모들이 말했다.
"호밀아, 예쁜 옷 입고 사진 잘 찍어야지. 좋은 가족 꼭 만나야 하니까."
피부병으로 털이 좀 빠졌어도, 세상이 어색하고 무서웠어도, 꼬리가 한껏 내려갔어도, 호밀이는 잘 참아냈다.
'죽을 날'이 정해져 있었다. 안락사 예정일이 지난해 12월 20일이었다. 은은한 가을 갈대, 아니면 호밀밭을 닮은 털빛이라 '호밀이'라 부른 강아지. 걸을 때마다 호밀이 흔들리는 듯하여 이름 참 잘 지었다고 했던, 호밀이. 두 살은 아무래도 떠나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가족으로 맞아주겠단 이가 생겼다. 심장사상충도, 피부병도 있어, 문의가 적을까 염려했었는데. 기적처럼 연락이 왔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입양한 가정에서, 호밀이를 품을 수 없게 됐단 연락이 왔다. 이미 그 집에 있던 첫째 강아지가 질투가 심해, 함께 지내기 어렵다고 했다. 보호자는 맘이 아프다며, 더 늦기 전에 호밀이 가족을 찾아주고 싶다고 했다.
호밀이 사진을 우연히 보고, 그 뒤부터 마음 쓰기 시작한 이가 있었다. 한 번 버려졌고, 가족을 찾았다가 또 파양됐어도, 세상엔 그런 사람이 다행히 또 있었다. 직장인 이영민씨였다.
"호밀이 눈이 되게 예뻤어요. 불쌍했어요. 어떻게든 데려와야겠다 생각했어요. 사진도 열심히 찍어주고, 홍보도 부지런히 해주고요. 보호소로 다시 가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싶었어요."
호밀이가 다시 보호소로 가야 한단 게 속상했던 날. 영민씨 말대로 뭔가 미쳤었던 것 같았던 날. 유독 마음이 가고 또 가서 계속 사진을 보게 되었던 날.
평일엔 직장 가느라 집을 8시간 정도 비워야 했다. 데리고 왔다가 너무 기다리게 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서 영민씨는 '임시 보호'를 하기로 결심했다. 호밀이가 좋은 가족을 만날 때까지, 함께 살며 단단히 준비시켜주는 귀한 일. 안락사 위험이 있는 보호소보단, 아무래도 집이 더 나을 거라고, 반복해서 다짐한 거였다.
지난 2월 18일, 호밀이가 집에 오는 날이었다. 호밀이를 입양했었던 보호자들이 영민씨 집으로 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들은 호밀이 가족이 되어주지 못한 것을 맘 아파하고 미안해했다.
"계속 불안했나 봐요. 첫날 밤엔 자꾸 만져달라고 하는 거예요. 손으로 만져주면 천사처럼 웃고요. 맘이 아팠어요. 그동안 얼마나, 사랑이 손길이 고팠던 걸까 싶어서요."
호밀이는 잠에서 자꾸 깨었다. 그럴 때마다 영민씨도 일어나 보드랍게 어루만져주었다. 작은 존재가 그에게 의지하는 게 느껴졌다.
금세 정이 들었다. 분리 불안이 올까 염려해 더 많이 만져 주고픈 걸 참았는데, 분리 불안은 영민씨가 올 지경이었다고. 빨리 퇴근하고 호밀이를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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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이가 보호소로 돌아갔다면 몰랐을 모습들. 그랬다면 입양되기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거라고. 그러나 호밀이가 집에 왔고, 그 덕분에 이리 사랑스럽단 걸 알게 되었다. 전할 수 있게 됐다. 호밀이의 가족이 되어줄 미래의 보호자에게. 영민씨는 그게 '임시 보호'의 좋은 점인 것 같다고 했다. 영민씨가 말했다.
"호밀이는 이제 어떤 가정에 가도 사랑받으며 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저도 입양을 고민했지만, 현실적으로 시간을 더 많이 보내줄 수 있는 가족을 만났으면 싶어요. 더 좋은 환경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은 거지요. 좋은 보호자가 나타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
안녕하세요, 호밀이를 임시 보호하고 있는 누나입니다.
우리 호밀이는요. 똑똑해서 하루 이틀이면 학습도 잘해요. 개인기보단 앉아, 기다려, 이런 게 잘 되는 아이고요. 분리 불안도 없어서 홈캠을 보면 누나 없이 혼자 있을 때도 잘 자요. 퇴근할 무렵엔 신기하게 앉아서 기다리고요. 그러다 또 자고 또 기다려요. 집에 가면 엄청 반겨요. 신이 나서 점프하고요. 진정하고 앉아 있을 때 예뻐해 주었습니다. 보호자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아요.
산책을 너무 좋아해요. 이제 실외 배변견이 됐어요. 줄만 차면 현관 앞에 가서 기다려요. 산책하고 발도 너무 잘 닦고요. 조는 것도, 계단 올라가는 것도, 횡단보도 건너는 것도 너무 귀엽습니다.
'만져라 병'은 아무리 만져도 낫지 않는데, 지칠 땐 발로 만져준 적도 있었는데 졸다가 코 잠들기도 했어요. 또 간식이나 밥을 너무 좋아해요. 가리는 게 거의 없고요. 생애 첫 멍푸치노도 먹었습니다.
환경도 환경이지만 호밀이에 대한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환경이어도 '무지개다리 건널 때까지 책임질 거야, 호밀이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고민할 거야' 그런 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호밀이의 좋은 가족이 되어주실 분은, 카카오톡 채널 '비마이독(BEMYDOG)'을 추가해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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