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세상 밖으로 나온 감정들, 삶의 통찰을 던지다 - 인사이드아웃 정재승 비평
5,078 0
2024.05.04 03:45
5,078 0

신경과학자의 시선으로 본 <인사이드 아웃>

 

 

나 같은 신경과학자에게 “이 영화, 어떻게 봤나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의 깊은 뇌 속 중격측좌핵은 ‘이 영화가 얼마나 과학적인가?’ 혹은 ‘과학인 오류는 없는가?’에 대한 대답을 기대할 것이다. 감정과 표정 연구의 대가인 심리학자 폴 에크먼이 자문을 했으니, 이 영화가 과학적으로 영 허투루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사실 기쁨은 복측 피개부, 두려움(소심)은 편도체, 분노(버럭)는 시상하부, 역겨움(까칠)은 섬엽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기본 감정들이 처리되는데, 각 영역의 세포 모양과 네트워크 구조를 캐릭터나 공간으로 잘 바꾸어놓은 것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노골적으로 세포가 연상되지도 않게 말이다.

 

과감한 생략이나 단순한 설정(예를 들어, 아빠의 감정 컨트롤 본부는 주로 버럭이 조정하고 엄마는 슬픔이 맡는다거나)이 불편할 순 있지만, 애니메이션이 이 정도의 과학적 정교함을 갖기도 쉽지 않다. 신경생물학과 심리학에 대한 사전조사가 잘된 사례다. 특히 제작진이 이런 공부를 많이 하다보면, 웹툰 <유미의 세포들>처럼 인간 행동에 대한 컨트롤 본부를 세포 수준(이성세포, 감성세포, 음란세포, 출출세포 등)에서 설정하고 싶어지거나, 도파민(쾌락), 세로토닌(행복 혹은 우울), 아세틸콜린(흥분) 등 신경전달물질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을 텐데, 직관적으로 명쾌한 ‘기본 감정’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건 적절한 자기 제어였다.

 

슬픔의 목소리는 곧 공감과 연대의 신호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슬픔’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통찰이다. 영화 초반부에는 ‘기쁨’의 비중이 크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슬픔’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트 닥터 감독이 슬픔을 가장 매력적인 감정으로 주목한 건 깊은 통찰이면서 동시에 ‘신의 한수’였다.

 

왜냐하면 사실 기본 감정들 중에서 슬픔은 실체가 불분명한, 가장 오묘한 존재다. 두려움이나 놀람, 역겨움은 우리로 하여금 위험을 감지하게 하고 그것을 피할 수 있게 도와준다. 기쁨은 삶의 추진력을 제공하며, 분노는 위험에 맞서 싸우는 용기와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슬픔은 왜 필요한지 아직 마땅한 이론이 없다. 생존에는 물론이요, 배우자를 찾거나 번식을 하는 데에도 슬픔은 별로 유용하지 않다.

 

그동안 심리학자들은 슬픔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일을 빨리 포기하게 만들어 시간 낭비를 예방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타인에게 동정심을 유발해 보호 기제로 작동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이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공동체에서 배려한 흔적은 수천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는 슬픔에 대한 ‘최신 가설’을 결말을 통해 보여준다. 새로운 가설에 따르면, 슬픔은 타인의 도움이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구조 신호라는 것이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며 슬픈 감정을 표현하면, 가족과 친구가 다가와 내 슬픔을 공감해주는 것이 나를 새롭게 딛고 일어설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친구가 흘려준 눈물이 삶의 의지가 돼본 경험이 있다면 슬픔이야말로 공감과 연대의 신호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영화는 슬픔이 기쁨이나 분노, 소심과 까칠 못지않게 중요한 감정이며, 가족간의 사랑과 같은 숭고한 감정이 슬픔(과 이에 대한 공감)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내 머릿속 감정들의 여러 얼굴들을 마주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신경과학자들이 한동안 유쾌한 수다를 떨 만한 ‘안주 같은 영화’ 한편이 탄생한 것이다.

 

전문은 http://m.cine21.com/news/view/?mag_id=80639

목록 스크랩 (0)
댓글 0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톤핏선 X 더쿠🩷] 덬들의 얇착톤업 생기속광을 위한 필수템! 톤핏선 비건 파데프리 핑베 테라조 쿠션 체험 이벤트 235 00:08 9,676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3,776,443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4,514,844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893,986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2,063,071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5 21.08.23 3,631,850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18 20.09.29 2,492,067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61 20.05.17 3,194,875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56 20.04.30 3,774,531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스퀘어 저격판 사용 무통보 차단 주의) 1236 18.08.31 8,155,541
모든 공지 확인하기()
2412565 이슈 [선재 업고 튀어] 대본집 무삭제판 발매 예정 4 12:41 110
2412564 이슈 23살에 초봉 7000받는 다는 남자 직업.jpg 2 12:40 522
2412563 유머 오늘도 병원놀이에 진심인 어린이 12:40 98
2412562 이슈 걸어가다가 자전거 피하는 유형 12:39 115
2412561 이슈 [KBO] 경기에서 졌다고 선수 면전에서 뭐라고 하는 팬 12:39 356
2412560 기사/뉴스 “연봉 2억6000만원에도 문의조차 없다”…소아과 의사 인력난 ‘발동동’ 3 12:39 109
2412559 이슈 케톡에서 플 탄 24명 걸그룹 트리플에스 정산 기사.jpg 6 12:38 374
2412558 유머 뿌까머리 루박쨔 루이바옹💜🐼 16 12:32 838
2412557 이슈 미국의 버터튀김.jpg 24 12:32 1,554
2412556 이슈 "결혼을 하면 가족이 1순위가 되기 때문에 결혼은 은퇴 이후에 했으면 좋겠다" 라는 일화에 손웅정 감독님 이야기.jpg 28 12:27 2,171
2412555 이슈 실시간 상암에 재등장한 자연광 미남 아이돌 8 12:25 2,246
2412554 이슈 뉴스에 나온 반려견순찰대 늠름강아지 호두 56 12:25 2,572
2412553 이슈 피식대학 영상 ‘자기네 왔다고 여자 둘이서 화장하고 돌아다닌다고 얘기하는데 사실 영양군 홍보팀 세 분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함 6 12:24 1,550
2412552 기사/뉴스 "아, 놓쳤다"…'선재 업고 튀어' 과몰입 빌런 허형규를 주목하라 17 12:24 1,154
2412551 이슈 이강인과 관련없는 손웅정 인터뷰영상에서 악플로 패악질중인 그팬들 42 12:23 1,312
2412550 이슈 에스파, 오늘(18일) ‘놀토’ 완전체 출격...키와 완벽 퍼포먼스 선보인다 5 12:23 304
2412549 정보 네이버페이2원 9 12:22 785
2412548 이슈 권은비 인스타 업뎃 2 12:22 740
2412547 이슈 노래 어케했나 싶은 올해 유로비전 우승곡 9 12:21 801
2412546 유머 동생과 상금 100만원 분배계획.jpg 11 12:20 2,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