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선재 업고 튀어’ 우리가 사랑한 모든 아이돌에게
6,446 17
2024.04.18 15:03
6,446 17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는 일 중 뭐가 더 고마울까? 흔히 간과하는 후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드라마가 <선재 업고 튀어>다. 이 드라마에는 고맙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이 세상에 존재해줘서 고맙다… 청춘 로코에서 이토록 비장하고 절절한 감정 표현이 등장하는 건, 이 드라마의 연애가 팬과 아이돌의 관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BNREZT


주인공 임솔(김혜윤)은 고교 때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병원에서 죽음을 떠올리던 그는 우연히 라디오에 출연한 신인 아이돌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된다.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요”라는 류선재(변우석)의 말에 솔은 심경 변화를 일으킨다. 15년 후, 서른네 살이 된 솔은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산다. 선재는 그의 ‘최애’가 되었다. 과거 ‘스타’가 별세계에 존재하듯 멋지기만 한 존재였다면, 오늘날의 ‘최애’는 팬들이 스스로 키우고 지켜내야 할 미완의 존재다. 솔은 자신의 최애를 위해 굿즈도 사고 콘서트도 간다. 선재의 이름이 들어간 머리띠를 두르고 동네방네 돌아다녀도 부끄럽지 않다. 휠체어 때문에 인턴 면접에 탈락해도, 그 면접 때문에 콘서트장 입장을 못해도, 솔은 웃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웃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살기로 결정한 사람처럼. 반면 선재의 현실은 문제가 많아 보인다. 그는 콘서트장에서 그룹 탈퇴를 선언하더니 그날 밤 갑자기 빌딩에서 추락사한다. 언론은 우울증 때문이라 발표한다. 슬퍼하던 솔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2008년으로 타임 슬립 한다. 솔이 아직 하반신을 다치기 전, 선재가 아이돌이 아니라 옆 학교 수영 유망주인 시기다. 솔은 최애의 죽음을 막기 위해 그에게 돌진한다.



(중략)

그런데 이런 유치함은 단점이 아니다. 로맨틱 코미디는 대중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구현할수록 쾌감이 증폭되는 장르다. 팬이 ‘최애’와 사적 관계로 발전한다는 설정 자체가 유치한 판타지고, 이 드라마는 그것을 내숭 떨며 심각하게 풀어갈 생각이 없다.



oYIHZK


이웃집 소녀 같은 현실성에 넓은 연기 폭을 겸비한 김혜윤은 이 소재에 시청자의 이입을 유도할 수 있는 최적의 배우처럼 보인다. 밝게 고조된 감정선에서도 안정감을 유지하는 그의 연기가 드라마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선재 업고 튀어>의 또 다른, 그리고 어쩌면 가장 큰 매력은 이 드라마가 만인의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극 초반 타임 슬립 한 임솔이 시청자에게 해방감을 줄 만큼 시원하게 직진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선재를 한동네 사는 또래가 아니라 ‘최애’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돌 팬덤은 자주 유사 연애라는 조롱을 받는다. 그러나 최애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진짜 연애가 따를 수 없는 확신과 자유로움이 있고, 때로는 그 자체가 ‘덕질’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가능성과 모호함이 제거된 이 관계에서는 재거나 따질 것 없이 마음껏 애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 애정의 방식이 추종, 우정, 보호, 때로 모성애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될 수 있지만 요는 각자의 스타일로 정체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과하여 암묵적 전제인 ‘가능성의 결여’를 부인하거나 권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대상을 통제하려 들면 문제가 되지만 대개의 팬들은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그것이 대상이 거기 존재하는 목적인 인기, 성공, 일 따위를 돕는 길이고, 이 달콤한 애정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반 연애 관계에서처럼 상대방을 독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기쁘겠지만 그게 드라마로나 소화될 판타지임을 충분히 이해하는 팬들을 위해 섬세하게 고안된 선물이 바로 <선재 업고 튀어>다. 이런 유형의 감정이 삶의 활력이 될 뿐 아니라 궁극엔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이 드라마는 이야기하고 있다.



<선재 업고 튀어> 1화, 최애의 우울증이니 자살이니 하는 소식에 고통스러워하는 솔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사건이 있다. 우리가 사랑했으나 지켜주지 못했던 연예인들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솔이 타임 슬립 해서 최애의 비극을 막을 기회를 얻게 된다는 상상이 더욱 애틋해진다.


QqHFBe


극 중 솔은 선재 옆에 붙어서 더 많은 사랑을 주는 걸로 문제를 바로잡으려 한다.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솔의 최선은 그게 아니다. 2023년에도, 2008년에도, 최애를 사랑할 때도, 지켜주려 할 때도, 솔은 그 감정과 행위의 주체다. 반면 선재는 객체다. 많은 연예인의 정신 건강 문제가 삶의 통제권을 상실하는 대목에서 발생한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받는 건 물론 달콤한 경험이지만 스스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대상에게서 화답을 받는 것만큼 설레는 일은 아니다. 하필 선재가 사랑했으나 사고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던 솔이 타임 슬립이라는 행운에 당첨된 것은 그래서 필연이다. <선재 업고 튀어>에서 솔이 선재에게서 얻은 삶의 의미, 즉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를 조력하는 즐거움을 선재에게 돌려줌으로써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완성되는 것이다.



일방이든 쌍방이든 인간은 사랑이라는 걸 하도록 생겨먹은 동물이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존재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할애할 수 없어서 생겨난 게 아이돌이다. <선재 업고 튀어>는 정작 그 아이돌에게도 건강한 사랑의 주체가 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전제 위에 ‘그 상대가 나였으면 좋겠네’라는 팬들의 욕망을 투사한 이야기다. 변우석처럼 생긴 남자의 첫사랑이 될 일도 없고 300만원 주고 산 최애의 소장품이 타임머신일 일도 없는 평범한 인간들에게, 이 드라마는 훌륭한 길티 플레저가 될 것이다.


https://www.vogue.co.kr/?p=475377




목록 스크랩 (9)
댓글 17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에센허브 x 더쿠🌿] 에센허브 티트리 컨트롤 인 카밍 앰플 체험 이벤트 116 00:06 4,620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720,968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3,215,191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3,993,02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471,119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1,484,888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4 21.08.23 3,463,798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18 20.09.29 2,310,57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48 20.05.17 3,020,877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53 20.04.30 3,592,773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글쓰기 권한 포인트 상향 조정) 1236 18.08.31 7,967,589
모든 공지 확인하기()
292793 기사/뉴스 3층서 킥보드 던진 초등생…길가다 맞은 중학생 ‘기절’ 2 08:56 145
292792 기사/뉴스 '눈물의 여왕' 박성훈 "김수현→이주빈, 다 짝있는데 외로웠다" [인터뷰 스포] 3 08:50 523
292791 기사/뉴스 대낮 80대 여성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 범인…잡고 보니 ‘촉법소년’ 중학생 (어제 핫게간 동대문구 아파트 단지 사건) 23 08:41 1,553
292790 기사/뉴스 [단독] '대세' 노정의, MBC '바니와 오빠들' 주연 발탁 38 08:24 2,988
292789 기사/뉴스 거기서 거기 '공장형 아이돌'… J팝 꼴 날라 158 08:14 10,218
292788 기사/뉴스 문 닫기 하루 전 '폐업 통보'‥입원 환자들 '어쩌나' 9 08:02 2,797
292787 기사/뉴스 박성훈 "김수현→김지원 단톡방 사망…번호교환 오래걸려" [엑's 인터뷰②] 6 07:05 4,875
292786 기사/뉴스 손예진, ♥현빈과 골프장 데이트? 골프웨어 화보인 줄 5 06:46 5,985
292785 기사/뉴스 “임신 미혼모, 배고파서…” 분식집은 음식에 일자리까지 줬다 10 06:29 5,621
292784 기사/뉴스 [게시판] 유니세프, S.E.S·배우 소유진과 '가자지구 어린이돕기' 바자회 06:27 1,087
292783 기사/뉴스 “마취도 없이 유기견 37마리 안락사”…밀양동물보호센터 논란 8 06:13 1,818
292782 기사/뉴스 법원 "이달 중순 결정 때까지 정부, 의대 증원 승인 말아야" 4 05:58 1,456
292781 기사/뉴스 S.E.S. 바다, 뉴진스 응원…"어린 친구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10 02:53 3,257
292780 기사/뉴스 굿바이 '대한극장'…충무로 간판 극장, 66년 만에 폐업한 까닭 11 02:42 3,540
292779 기사/뉴스 "휴대폰 8시간째 미사용" 긴급 문자…50대 남성 생명 구했다 11 02:37 7,439
292778 기사/뉴스 세븐틴 우지, "'예쁘다' 12시간 만에 탄생…원래 다른 곡 있었다" 최초 고백 13 02:30 2,882
292777 기사/뉴스 '한국에 패하고 비난 폭발' 日, 이례적으로 선수단 미팅→파리올림픽 진출 '목표 완수' 1 01:41 2,020
292776 기사/뉴스 "음주운전 자숙→완전 달라진 얼굴"...오렌지 캬라멜 리지라고? 9 00:38 10,006
292775 기사/뉴스 분실 여권으로 고가 카메라 빌린 뒤 도주한 일본인 여성 재판행 14 00:28 4,188
292774 기사/뉴스 에코백스, 새 브랜드 앰버서더에 전지현 발탁… "아태 시장 마케팅 활동 본격화" 5 04.30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