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음식 알콜의존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중기
1,789 10
2023.11.20 00:23
1,789 10

가정불화가 시작이었던 것 같아. 집 근처에서 서성대다가 술을 사서 마셨더니 기분이 좋아져서 집에 들어갈 용기가 생기더라. 술이 없었으면 어떻게 이 집에서 살까? 매일같이 집 근처 벤치에서 술을 마셨어. 주말에는 부모님과 집에 오래 있으니까 더 마셨지.


그러다 독립하니까 좋더라. 돈을 버는 것도 좋더라. 혼자 살면서는 맥주 한 캔정도 가끔 마셨어. 일 열심히 하고 돈도 열심히 모았어.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어.


그러다 결혼 출산 육아휴직을 했는데 너무 힘들더라. 그런데다 돈도 안 버니 나는 아무 가치가 없었어. 유아차 밀고 나가면 점심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다 애 본답시고 남편 돈으로 놀고먹는다고 나를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어. 하지만 집에 말 안 통하는 갓난애와 틀어박혀 새벽 세 시나 낮 열 시에 육아와 병행하며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술밖에 없었어. 


어느 날부턴가 차가 쌩쌩 달리는 큰길가에 서면 차도에 뛰어들고싶어서 다리가 움찔했어. 내가 죽어도 남편이 한동안 먹일 수 있게 이유식을 잔뜩 만들어 얼리기도 했어. 길에서 갑자기 엉엉 울기도 했어. 그치만 애가 있는데 적어도 남편 퇴근할 때까진 죽으면 안 되니까 빨리 편의점에 들어가 술을 사서 마셨어. 그러니까 기분이 좀 좋아져서 죽고싶지 않아지더라. 진짜 저지를 것 같을 때 삘리 취하려고 도수 높은 팩소주를 사왔어. 남편은 요리용 청주인 줄 알았지. 종이팩이라 얼마나 줄어드는지도 안 보여. 머그컵에 부어서 낮에 마시고 육아하면 남편 돌아올 때쯤엔 깨더라. 


그 땐 내가 이상한 줄도 몰랐어. 난 원래 술을 좋아하니까. 원래 육아가 힘드니까 다들 죽고싶은데 참고 하는 줄 앟았지. 근데 이상한 줄 몰랐다면서 왜 남편에겐 숨겼지? 


그후로 직장에 복직하자 많이 좋아졌어. 남편이 떠나고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됐는데도 일을 하고 돈을 버니까 괜찮았어. 승진도 남들보다 빨랐지. 다들 나에게 자기같으면 도저히 못할 힘든 상황에서 애키우고 일도 잘 하다니 대단하다고 했어. 이제 고층창문 앞이나 큰길가에 서도 죽을 생각이 안 나더라. 그렇지만 퇴근하면 나에게 남은 시간을 버틸 수가 없겠는 건 여전헤서 또 술을 마셨지. 힘드니까 그래도 될 것 같았어. 어느 날은 회사 일이 힘들었어서 마셨고 어느 날은 육아가 힘들다고 마셨어. 일주일에 육칠 일은 술을 마시지 않고는 못 견뎠어. 어느 날은 일하다가 술이 너무 먹고싶어져서 점심시간에 혼자 나가 편의점에서 사마시고 오후 근무를 하기도 했어. 


그렇게 2년쯤 지나서야 내가 우울증이라는 의심이 들더라. 그제야 말이야. 그래서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점점 호전되자 그제서야 내가 굉장히 이상했단 생각이 들더라. 


어느 날 저녁에 문득 이걸 마신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다음 진료에서 의사에게 술마셔도 나에게 남겨진 일을 하는 데에 뭐가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다고 하니까, 나는 좌절감을 말한 건데 의사가 자기 무릎을 탁 치더라. 술을 마셔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자각하는 게 근본적인 첫걸음이니까 지금 한 말을 잊지 말래. 그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알겠더라. 나는 의존을 한 거였어. 술에 취하면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게 잘못된 거였어. 


근데 알았다고 해서 바로 술이 끊어지진 않더라. 그래도 조금 태도가 바뀌었어.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아서, 돌아버릴 것 같아서 먹는 건 점점 줄었어. 근데 우습게도 별별 핑계를 대면서 결국 마시는 거야. 이제야 내가 의존도 아니고 그냥 알콜중독인 게 실감나더라. 이거 깨닫는 데 도대체 몇 년이 걸린 건지.


그러고 반 년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술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어. 처음에는 3일 참는 것도 힘들었고 이틀 안 마셨으니 괜찮다고 3일째에 더 많이 마시기도 했어. 그래도 조금씩 빈도와 양을 줄여나가고 있고 무엇보다 이제 힘들다고 술로 피하지는 않아.  갈 길이 먼 것 같은데 그래도 천천히 옳은 방향으로 가리라고 익명으로라도 선언을 해 놔야 앞으로 안 약해지고 잘 할 것 같아서 써봤어. 언젠가 중기가 아니라 진짜 후기를 쓸 수 있게 말이야.

목록 스크랩 (0)
댓글 10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비욘드X 더쿠🤎] 잡티 잡는 NEW 앰플 ✨ <비욘드 엔젤 아쿠아 비타 C 7% 잡티 앰플> 체험 이벤트 321 05.31 33,636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4,100,566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4,813,69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1,269,112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2,448,585
모든 공지 확인하기()
17578 음식 화이트와인식초랑 화이트발사믹식초랑 뭐가 다른지 궁금한 후기..? 3 06.01 513
17577 음식 통신사 유모바일에 유튜브뮤직 쓰는 덬들에게 궁금한 초기 2 05.31 293
17576 음식 2만2천원 두바이초콜렛 떠먹는케익 후기 4 05.31 1,673
17575 음식 트러플 오일 처음으로 사보고 싶은 초기 2 05.31 356
17574 음식 롯데리아 얼라이브 버거 후기 2 05.31 685
17573 음식 롯데리아 오징어 얼라이브 버거 후기 6 05.30 2,484
17572 음식 과자 아이스크림 디저트 끊어보신분의 후기 구합니다 18 05.30 1,391
17571 음식 고사리 파스타 해먹은 후기 3 05.29 1,681
17570 음식 성심당 망고시루 구매 후기 9 05.28 5,833
17569 음식 맛있는 페퍼민트티를 찾는 후기 19 05.28 876
17568 음식 갤S23울로 바꾼 후 음식사진 한정 사진 늘은 후기 9 05.27 1,313
17567 음식 마라국물닭발 먹은 후기 3 05.27 453
17566 음식 커피 끊은 중기 5 05.26 1,001
17565 음식 쿠퍼스 마시고 피로회복 된 후기 8 05.26 1,836
17564 음식 영진돼지국밥 둘중에 어디가야되는지 궁금한 후기 8 05.26 852
17563 음식 버거킹 설향딸기선데 후기 3 05.25 1,505
17562 음식 최화정 요거트 아이스크림 부각 만들어봣어 11 05.24 3,494
17561 음식 셀렉스 프로밋 복숭아 아이스티맛 후기 9 05.24 1,034
17560 음식 정신과 상담중 아빠한테 편지 보내기 과제 받은 초기 3 05.24 817
17559 음식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쓰는 오뚜기 탑마트와 함께라면 후기 (+진라면과 비교후기) 7 05.24 1,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