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marieclairekorea.com/celebrity/2020/10/%EC%95%84%EB%B9%A0%EB%A5%BC-%EC%B0%BE%EC%95%84%EC%84%9C/
아이를 임신한 스물두 살의 대학생 김토일(정수정). 고등학생인 아이 아빠를 잘 리드하며 인생을 계획한다. 토일이의 엄마(장혜진)는 딸과 고등학생 사위가 못 미덥고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시어머니(강말금)는 똑 부러지는 며느리가 반갑고 고맙다. 일찌감치 아이를 낳는 편이 미래의 커리어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는 토일이는 ‘도대체 누굴 닮아 이 모양이냐’는 부모의 잔소리에 새삼 자신이 누굴 닮았는지 궁금한 나머지 오래전 엄마와 이혼한 친아버지를 찾아 길을 나선다. 뭔가 어색한 현재의 아빠, 내심 기대했던 과거의 아빠, 그리고 철딱서니 없는 예비 아빠. 영화 <애비규환>은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며 선택하고 살아가는 토일이와 그런 토일이를 걱정하거나 응원하는 엄마들, 그리고 이상한 아빠들이 이야기를 이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은 때가 기억나나요? 장혜진 아주 금방 읽었어요. 후딱. 시나리오를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거나 그런 일 없이 단숨에 훅 읽었어요. 정수정 임신부 역할이라는 소식에 처음엔 좀 놀랐어요. 그런데 막상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단번에 다 읽히더라고요. 대본을 그렇게 빨리 읽은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토일이는 공감이 많이 가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연기할수록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을 가졌더라고요. 장혜진 사실 저는 강말금 배우가 연기한 호훈이(신재휘) 엄마가 좋았어요. 그런데 이미 다른 배우로 정해졌다고 하더군요.(웃음) 제가 연기한 토일이 엄마, 선명은 토일이를 다 그치잖아요. 제 본래 성향과는 뭔가 맞지 않았어요. 제가 만약 토일이의 엄마라면 아마도 딸아이를 응원했을 거예요. “잘했어, 그래도 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이렇게요. 하지만 토일이 엄마는 응원하는 대신 “너는 어떻게 된 애가 만날 그러니?” 하고 잔소리하죠.
캐릭터와 실제 자기 성향 사이의 간극을 메워나가야 했겠어요. 장혜진 함께한 (최)덕문 선배와 (정)수정이 덕분이었죠. 현장에서 최하나 감독과 나눈 대화도 도움이 됐고요. 감독님이 항상 질문했어요. “과연 선명이라면 그랬을까요?” 정수정 맞아요. 제게도 늘 말씀하셨어요. “토일이라면 어땠을 것 같아요?” 장혜진 현장에서 가장 많이 오고 간 주제였죠.
배우는 작품을 통해 다양한 세계를 접하죠.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인물이나 세계와의 만남이 개인적인 변화로 이어지나요? 장혜진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씩 넓어져요.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좀 더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열리죠. 전 연기를 하면서 전보다 조금 착해졌어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착해지는 중이에요.(웃음)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서 싸우려는 마음이 들다가도 가라앉아요. 다양한 인물과 그 인물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뾰족하고 모난 부분이 깎여요. 아마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못되게 구는 사람으로 살았을지도 몰라요.(웃음) 배우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못된 마음으로 살면 안 되잖아요. 더 착해져야겠어.(웃음) 정수정 아직은 연기 경험이 많지 않아 작품이 저를 변화시키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게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아트워크예요. 글에 연기와 음악, 미술이 더해져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거죠. 다양한 삶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는 분명 매력적인 일이에요. 강말금 전 사실 촬영이 끝나면 좋아요. 이것도 일이어서 촬영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죠. 그리고 누군가에게 어떤 역할을 제안받을 때 너무 좋아요. 역할에 몰입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다만 작품 속 제가 맡은 인물을 통해 안 하던 걸 해보면 그게 마치 제가 평상시에 하던 일처럼 생각돼요. 어떤 역할에 접근하기 위한 행동이 진짜 제 삶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장혜진 배우마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달라요. 요즘은 자신의 역할을 좀 더 멀리서 바라보는 브레히트적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스타니슬랍스키가 추구한 메소드 연기가 때론 배우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니까 자연스레 이런 변화를 겪는 게 아닌가 싶어요. 조금 떨어져서 배우라는 일을 바라봐야 나 자신을 지키는 힘이 강해져요.
정수정 배우에게는 많은 것이 낯선 현장이었을 것 같아요. 첫 영화이자 독립영화 현장이고, 많은 선배 배우들과 함께했으니까요. 정수정 촬영장에서 선배들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극 중 인물의 부모로 나와 그런지 현장 분위기가 유독 진짜 가족 같았어요. 그래서 더 좋았고요. 연기에 대한 조언도 많이 듣고, 함께 한 장면 한 장면을 만들어가며 촬영이 없을 때는 수다도 많이 떨고 함께 식사하고 마시고. 독립영화 현장이어서 더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지만, 현장 인원만 좀 적을 뿐 기존에 경험한 드라마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제가 원래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터라 현장이 더 즐거웠고,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위안이 되었어요.
배우로서 느끼는 독립영화의 재미는 무언가요? 정수정 현실을 담아내는 스토리와 자연스러움. 연기뿐 아니라 모든 게 자연스러워요.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고요. 장혜진 맞아요. 배우들끼리 대화도 많이 나누고 감독님과 상의도 충분히 하고. 정수정 매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그랬어요. 저는 첫 영화여서 그런 경험이 더 새로웠죠. 어느 장면이 잘 안 나온 것 같으면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과정을 거쳐요.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라요. 장혜진 큰일났다. 얘 이제 독립영화의 늪에 빠졌어.(웃음) 어떤 현장은 내가 아닌 다른 배우를 데려다 놔도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나보다 더 잘하는 배우에게 양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독립영화 현장에서는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요. 꼭 나여야만 할 것같죠.
오늘 문득 떠오르는 현장의 한 장면이 있다면요? 장혜진 두 아이가 무릎 꿇고 있는 장면, 그리고 우리 모두 배드민턴장에 모여 엎치락뒤치락하는 장면. 그 뜨거운 태양 아래서! 정수정 토일이네 집에서 촬영할 때 밤 신이라 집 앞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다 같이 앉아 쉬던 때가 생각나요. 장혜진 아, 맞아. 낮의 열기가 가시지 않아 바닥은 따듯하고 바람은 시원한 게 딱 한여름 밤의 느낌이었어요. 강말금 전 촬영 분량이 많지 않았어요. 총 4회 차였는데 그 중 세 신을 하루 만에 찍었고 배드민턴장 장면을 이틀 동안 촬영했죠. 햇빛 때문에 장면을 순차적으로 촬영하지 못하고 거꾸로 했어요. 처음 겪는 일이어서 감정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이 어떤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면 좋을 거 같아요? 장혜진 한바탕 웃고 나서 남는 상쾌함. 이 느낌을 안고 극장을 나서며 기운찬 에너지가 함께했으면 해요. 코로나19 시대의 스트레스도 날리고. 아직 편집본을 보진 못했지만 시나리 오는 무척 재미있어요. 티저 예고도 재미있으니까 편집본도 분명 재미있을 거예요. 감독님의 똘끼와 수정이의 쿨한 성향이 근사하게 조화를 이뤘을 거라고 믿어요. 정수정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영화로 남았으면 해요. 분명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일 거예요. 무엇보다 가족의 이야기니까요. 강말금 인생을 살다 보면 늘 문제는 일어나고, 그 문제를 그저 단순하게 바라보면 한없이 단순해지잖아요. 사람 마음을 단순하게 만드는 영화가 되었으면 해요. 토일이가 자신의 인생을 딱 쥐고 가는 것처럼 각자 자신의 문제를 딱 잡고 심플하게 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면 좋겠어요.
이번인터뷰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