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박정선]
영화 '1987(장준환 감독)'의 첫 공개 자리는 눈물바다가 됐다. 참을 수 없는 '전율' 때문이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1987' 언론배급시사회가 진행됐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 관객석 이곳저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화 종료와 동시에 시작되려던 기자간담회는 자꾸만 늦어졌다. 이 영화를 만든 장준환 감독과 처음 영화를 보게 된 배우들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덕분. 이 분위기는 한시간여의 기자간담회까지 이어졌다.
장 감독은 취재진을 향한 인사말을 위해 마이크를 쥐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은 편집하면서 여러번 봤다. 배우들이 옆에서 하도 훌쩍이니까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며 "어떡하지. 이런 걸 자뻑이라고 하나"고 이야기했다. 그의 '자뻑' 덕분에 취재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어 "비록 상업영화지만 진짜 진심을 다했다. 1987년도에 용감히 양심의 소리를 내시고 길거리에 나와 땀 흘리고 피 흘렸던 분들을 위한 영화를 열심히 만들었다"고 말했다.
장준환 감독은 연신 "창피하다"면서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가 다시 한 번 울음이 터져나왔던 대목은 바로 '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사실 편집을 하면서도 많이 울었다. 이한열 열사와 박종철 열사의 마지막 순간들을 볼 때 굉장히 슬펐다. 당시 22살 대학생이 죽었다고 돼 있지만, 만 나이로 따지면 박종철 열사가 21살, 이한열 열사가 20살에 돌아가셨다"며 오열했다.
장 감독만 울었던 건 아니다. 김태리는 수많은 취재진의 눈과 카메라를 앞에 두고 눈물과 함께 허심탄회한 속내를 내보였다. 올해 광장에서 불타오른 촛불 집회에 참여했지만 부정적이고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김태리다. 그런 그가 희망을 갖게된 건 '1987'을 통해서였다. 김태리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면서 그렇게 밀어내고, 치우고, 듣지 않고, 보지 않으려했던, 가려져있던 마음 속 희망이 확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의 죽음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있다'가 아니라, 광장에 모여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국민이라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연희라는 인물로 다가가 보려고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눈물을 보인 이는 장 감독과 김태리지만, 출연 배우들 모두 "눈물을 흘렸다"는 고백을 전했다. 시나리오를 보며, 혹은 실제 사건들을 직접 찾아보며, 그리고 영화를 찍으며 펑펑 울었다고 이야기했다.
올해 영화계에선 '대체 어떤 영화가 현실보다 더 영화같을 수 있냐'는 이야기가 유행어처럼 떠돌았다. 전국에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이고, 그 촛불이 모여 정권을 바꾸고, 뉴스에선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연일 보도됐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임이 밝혀지자, 정작 상상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는 현실보다 덜 영화적이었다. 뉴스가 곧 한편의 영화였던 때였다. '1987'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당시의 일들을 재구성했으나, 사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2017년이 그랬듯,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1987년을 그린 덕분이다.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현실같은 '1987'에 담겨 있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인 시대극이지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1987년의 국민들이 밖으로 나가 호헌 철폐를 외친 것처럼 2017년의 국민들도 광장으로 나가 촛불을 들었다. 역사는 반복될까. '1987'에서는 대공수사처 박처장(김윤석)을 비롯해 국민을 억압하는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당시 최고 권력자의 사진을 한 프레임에 담는다. 그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는 인물이다. 자꾸만 그 사진에 시선이 닿고, 보는 이의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30년 뒤 2017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때에도 관객의 마음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을지 아직은 모를 일이다. '1987'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oins.com
사진=김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