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류큐)는 일본에 강제 합병당하기 전까지
중국이랑 조선에 모두 조공했었음
심지어 고려때도 조공했음
《고려사》의 창왕(昌王)편에도 유구국 관련 기록이 있다.
〈유구국 중산왕 찰도(察度)가 옥지(玉之)를 파견하여 글을 올려 신하로 자칭하였다. 그리고 왜적에게 포로가 된 우리나라 사람들을 귀환시키고 그 지방의 산물인 유황 300근, 소목(蘇木·약재로 쓸 수 있는 다목의 붉은 속살) 600근, 호초(胡椒·후추나무 열매의 껍질 가루로 만든 것) 300근, 갑옷 20벌을 바쳤다. 이에 앞서서 전라도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가 유구국 국왕이 우리나라에서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한다는 소문을 듣고서 보내 온 사신이 순천부(順天府)에 도착하였다고 보고하였을 때 도당(都堂·의정부)에서는 이에 대하여 전대(前代)부터 오지 않던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 사신 접대에 난색을 보였다. 그런데 창왕이 말하기를 “먼 곳에서 조공하러 온 사람을 박대하는 것은 불가하지 않은가? 서울로 오라 하여 위로한 후에 보내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하였다. 그래서 전판서(前判書) 진의귀(陳義貴)를 영접사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서양에서 오키나와를 중국이나 조선의 속국이었다고 생각하는 똥멍청이는 없음
서양에서 조공 = 속국이라고 본다는 논리는 일제강점을 합리화 할 때 나오는 전형적인 뉴라이트식 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