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홍삼액 먹고, 이모티콘 앱 만들고 …
‘이영애의 하루’가 농담처럼 회자된 적이 있었다. 배우 이영애가 CF 모델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그가 홍보하는 제품으로 하루를 살 수 있다 하여 만들어진 이야기였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정수기 필터 교체하고, 다리미질하고, 외출해서 쇼핑하고, 집에 돌아오니 남편의 꽃다발 이벤트가…. 이후 ‘이영애의 하루’는 ‘전지현의 하루’로 넘어갔다. CF 퀸의 왕좌가 이동할 때마다 ‘00의 하루’가 각색되곤 했다. 과할 정도로 겹치기 출연이 많다 보니 나온 우스갯소리였다.
그런데 요즘 겹치기 출연 1위는 스타가 아니다. 바로 광고 제품이다. 드라마ㆍ예능을 보다 보면 동일 제품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이른바 PPL(간접광고)이다. 겹치기 출연이야 광고주 마음이라고 해도, 단순히 제품을 몇 초간 보여주던 방식에서 PPL이 자체 스토리텔링을 가지면서 방송 흐름을 깨는 일이 왕왕 벌어지고 있다. 연기자들이 제품을 직접 사용하면서 홍보성 대사까지 읊어서다.
이를테면 지난 14일 방영한 tvN 드라마 ‘라이브’에서 순경 상수(이광수)는 아침상을 차리다 말고, 식탁 위 홍삼 엑기스를 갑자기 집어들었다. 그리고 한 봉을 직접 따서 엄마(염혜란)에게 건네며 한마디 한다. “아끼지 말고 먹어. 피로회복에 좋대.” 엄마가 엑기스를 쪽쪽 빨아먹는 순간, 카메라는 연기자 대신 제품만 비춘다. 연출된 장면부터 대사까지 어디서 본 듯 익숙하다.
요새 또 눈에 자주 띄는 것이 스마트폰 광고다.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는 토크를 진행하다 말고 갑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이모티콘 앱 만들기를 시연해 눈총을 사기도 했다. 물론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했다. 가수 노사연이 남편에게 문자로 불만을 보내도 답이 없다고 말하자, 진행자 중 차태현이 “요새 핸드폰으로 자기 얼굴을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보낼 수 있다”며 노사연에게 스마트폰을 건네 이모티콘을 만들어 보게 한 것. 이런 비슷한 장면은 KBS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이나 tvN 드라마 ‘라이브’ 등 여러 드라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출됐다.
광고업계에서 PPL은 ‘로또 복권’이 된 지 오래다. 비싼 제작비 들여 광고 한 편을 찍는 것보다 뜰 만한 방송 프로그램을 골라 PPL을 여러 개 하는 게 더 낫다는 의미에서다. PPL 겹치기 출연이 잦은 이유다. 인기 드라마나 예능의 경우 케이블 방송에서 계속 재방송을 하고, 해외 홍보 효과까지 있으니 일석이조다.
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PPL 중에서도 스토리텔링 PPL이 단가가 제일 비싸다”며 “전체 화면에서 브랜드 크기가 4분의 1을 넘지 않게 하는 등의 제약만 있을 뿐 여러 프로그램에 같은 PPL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그런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자꾸 보니 신선하지도 않고, 방송의 흐름만 계속 끊어대니 말이다. 무엇보다 모든 드라마에서 일단 피곤하면 안마 의자에 앉고 홍삼 엑기스를 먹는 장면이 나오는 것, 이 자체가 거대한 시트콤 같지 않은가.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