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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번역괴담] 밤에 나가지 않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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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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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계신 분들 다 밤에 얌전히 잠자리에 들기는 싫어하는 것 다 압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달밤에 홀로 깨어있는 걸 참 좋아하는 야행성 인간이거든요.

마음을 내려놓고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기회잖아요.

뭐, 한때는 그랬었다는 겁니다. 얼마 전까지는요.

하지만 이제는 밤에 홀로 있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확신이 없네요.

전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인터넷에서 웃기는 영상이나 찾아보면서 시간 때우는 걸 즐깁니다.

그러다가 피곤해지면 침대에 눕곤 하죠. 헌데 어떤 날은 좀 울적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그닥 볼만한 게 아무것도 없을 때도 있고요.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가 동네를 한바퀴 산책합니다.

좀 촌동네라서 전부 합해봐야 200가구 정도일까요.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근처에 있는 유일한 공원이 있습니다.

거기 앉아서 그냥 조용히 바람 쐬는 걸 즐기곤 했죠.

이 동네에 살기 시작한지 1년 반 밖에 안 지났지만, 공원 근방의 가로등이 꺼지는 시각 정도는 금방 파악했습니다.

새벽 1시가 되면 모든 불이 일제히 나가버려요.

처음엔 예상치 못하다가 깜짝 놀랐지만, 곧 무슨 일인지 이해했고 그 후로는 한번도 놀란 적이 없었습니다.

저라고 바보는 아니기 때문에 밤늦게 돌아다닐 땐 불량한 청소년이나 변질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어둠에 숨어서 수상한 짓거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이요. 헌데 한번도 그 공원에서 다른 사람을 맞닥뜨린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점. 다른 사람들도 내가 그들을 경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를 경계한답니다.

해서 밤에 혼자 나다닐 때 으레 느끼는 으스스함 정도를 빼면,

야밤의 산책에서 진짜 위험한 상황에 처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처음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했었죠. 시각은 새벽 1시 반 쯤, 즉 가로등은 전부 꺼진 상태였습니다.

전 어둠 속에서 제가 좋아하는 그네를 타던 중이었고요. 총 4개가 있는데, 전 늘 왼쪽에서 2번째 그네에 타곤 했습니다.

별로 힘들이지 않도록 적당한 높이로, 그러면서도 최소한 그네 타는 기분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왔다리갔다리 하고 있었죠.

앞뒤로 흔들리는 그네에 앉아있으면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을 훑어서 시원했죠. 그러면 마음이 싹 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엔 그네조차도 제 긴장을 풀어주지 못했어요. 그냥 기묘한 감각이 계속 찾아왔거든요.

알 수 없는 불편한, 혹은 불안한 감각?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 말이에요.

발을 땅에 끌면서 천천히 감속했습니다. 그네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요. 그러고 나선 주변을 슬쩍 둘러봤죠.

이미 눈은 어둠에 적응해서 희미한 달빛만으로도 약간은 시야가 확보되었습니다.

딱 눈앞에 뭐가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게 하는, 그런 진짜 있으나마나 한 달빛 말이에요.

하지만 주위를 살펴도 뭔가 평소와 다른 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불안했던 저는 공원의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겼죠. 공용 헬스 기구들을 설치해둔 공터로요.

제대로 된 운동이라기보단 그냥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정도로만 움직였습니다.

무엇보다 전 그 때 이어폰을 끼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후회하는 일이죠.

이어폰 때문에 아무 소리도 안 들려서 사람들이 저한테 말을 걸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는데 말이에요.

어쨌든 전 음악 소리로 바깥 소음을 차단하고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는 데에 이어폰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의 경우는 운동 기구를 사용하는 일 말이에요. 이 방법은 꽤나 효과가 좋습니다.

실제로도 거기에 집중하느라 계속 느껴지던 불안감을 잊었고, 주변 상황에 대한 지각력도 떨어진 상태였죠.

운동 기구를 다 쓰고 내려오려고 했습니다. 그 이름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앉아서 기둥애 발을 대고 몸을 밀어내는 기구입니다. 스쿼트랑 비슷한 자세를 수평으로 취하게 되는 그런 기구였죠.

옆에 있던 팔운동 기구로 옮겨타려고 다리를 내리는데, 이어폰 줄이 무릎에 걸려 한쪽 귀에서 빠져 버렸습니다.

주변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고, 동시에 제 뒤편에 있던 자갈길에서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었죠.

몸을 홱 돌려서 봤더니, 제가 앉아있던 자리 바로 뒤쪽에 왠 비쩍 꼴은 남자가 반쯤 쭈그린 채 절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40대 후반쯤 되었을까요.

놀라서 신음이 터져나왔습니다. 그가 그렇게 덩치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요. 오히려 그 반대였죠.

또한 그는 어두운 색의 어딘지 익숙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몸에 비해 너무 커서 헐렁했습니다.

반팔 소매에서 빠져나온 팔은 너무 앙상해서 피부 밑에 뼈만 남은 것 같았고요.

양쪽 팔을 몸 앞쪽으로 약간 내민 상태였는데, 한 손에는 티슈 아니면 손수건 같은 천조각을 들었습니다.

확실하게 파악할 여유가 없었지만, 하얀색이었어요.

제 자신이 평소에 스스로 용감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마음만 먹으면 말라깽이 정도는 싸워서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에는 투쟁 혹은 도주 본능이 끼어들었죠.

빠르게 뒷걸음질쳐서 거리를 벌린 후에, 돌아서서 공원 입구까지 걸음아 날 살려라 달렸습니다.

거의 매 걸음마다 뒤를 돌아봤던 것 같네요.

그 남자는 그냥 그 자리에 쭈그린 자세로 멈춰 있었습니다.

제가 그를 발견하고 놀란 것처럼 그도 발견된 것에 놀란 걸까요.

큰길을 달려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제가 아는 이웃집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죠.

마음을 좀 다잡고 나서는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파악을 위해 이성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혹시라도 그놈을 다시 마주칠 때를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만일의 상황에 대한 계획을 세웠죠.

그래 봐야 테스토스테론을 연료로 삼은 돌진 공격이 대안의 전부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 자신의 안전과, 제 계획이 실행되었을 때 뒤따를 법적인 문제를 우려해서인지 그를 다시 마주치는 일은 없었죠.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여전히 그놈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제 집은 구석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길 모퉁이를 돌아서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제가 바보는 아닐지언정, 저한테 일어난 일을 자초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일단 제 집의 구조상 전 일종의 별채에 기거합니다. 제 방은 집의 한쪽 벽에 달라붙어서 마당으로 통하는 유리문이 두 개 달려 있죠.

집 안으로 들어가 제 방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으려면 마당에서 바로 그 유리문을 통하는 게 방에 제일 빨리 도달할 수 있는 길입니다.

또, 밤에 나갔다 오면 형이나 부모님을 깨우지 않으려고 유리문으로 직접 나오는 걸 선호하죠.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집이 오래된 주택이라 문이 안에서만 잠기거든요. 그래서 밖에 나갈 땐 문을 잠그지 못하고 그냥 커튼을 쳐서 가리기만 합니다.

즉, 누가 알아챘다면 제가 없는 틈에 방에 자유자재로 들락거릴 수 있다는 뜻이죠.

커튼을 치는 건 그저 눈속임일 뿐이고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문이 잠긴 것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더해서, 그 유리문으로 집에 들어가려면 앞마당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마당엔 개가 있죠. 저조차도 밤 산책을 나갔다 올 땐 개가 저를 침입자로 오해해서 짖을까봐 빙 둘러서 들어갑니다.

진짜 목청 좋은 개라서…… 한번 짖기 시작하면 수 분 내로 온 동네가 다 깨어날 겁니다.

공원에서 벌어진 사건을 한발짝 멀리서 생각해보며 진정이 되자, 전 마당 가장자리를 걸어서 제 방으로 접근했습니다.

유리문을 열고 커튼을 걷었죠. 침대 옆의 스탠드를 켜고는 벌러덩 누웠습니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아무것도 이상한 점이 없는 듯 했죠. 침대는 항상 그렇듯 어질러진 그대로였는데,

아무래도 방이 제가 나갔을 때보다도 좀 더 지저분해진 느낌이었어요.

제가 옷을 쳐박아두는 서랍장이 전부 열려 있었고 누가 뒤진 흔적이 뚜렷했죠. 전 공포로 얼어붙었습니다.

아니면 어떤 깨달음이랄까요. 어느 쪽이건, 전 펄쩍 뛰며 일어났습니다.

제 방은 예전엔 별채의 침실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제가 차지하고선 일종의 작업실과 침실로 나눠 쓰고 있었습니다.

전 벌벌 떨면서 작업실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쥐었습니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맘을 굳게 먹고 문을 벌컥 열어젖혔죠.

천만다행으로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작업실에서 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점검해봤고, 확실하게 잠겨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더이상 멀쩡하게 생각할 수가 없는 지경이라 그냥 셔츠와 양말을 벗어던지고는 바지를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래도 효과는 없었지만요. 몇 시간이나 뜬 눈으로 보냈습니다.

마당에서 모션 센서로 불이 들어올 때마다 온 몸의 근육이 곤두섰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돌이켜보니 이제야 명확히 이해가 됐죠.

제가 공원에 나간지 막 한시간 쯤 지난 시점에, 아까 그 남자가 제 방문이 잠기지 않았다는 걸 눈치챈 겁니다.

놀랍게도 그는 개를 깨우지 않고 제 방에 기어들어와서는 서랍장을 뒤지고, 제가 있는 공원까지 절 따라와서는 앉아서 절 감시했을 겁니다.

더더욱 소름끼치는 점은, 그가 입고 있던 기묘하게 익숙한 티셔츠가 바로 제 옷이었다는 사실이고요.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더 놀랐던 것 같아요.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 후로는 매일 밤마다 방문이 꼭 잠겼는지 확인합니다. 밤에 밖에 나간 적도 없고요.

아직 가족들에게 이 일에 대해 알리진 않았습니다. 기실 앞으로 알릴 생각도 없습니다.

그 일이 있었던 다음날 아침 가족들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했거든요.

차마 제 부주의함 때문에 왠 ♥♥♥이 가족들 자는 동안 집에 기어들어와서 방을 뒤졌다고 털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부분이 제일 후회스럽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들을 위험에 노출시켰던 거니까요.

가족들이 해코지 당하지 않았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습니다.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에요.

그리고 기쁘게도 이 이야기의 후일담 같은 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교훈을 얻을 순 있겠죠.

뭔가 잘못된 예감이 든다면, 분명 실제로 일이 잘못되고 있을 겁니다.

이미 늦을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지 마세요.

​[번역괴담] 밤에 나가지 않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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