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돈 생기니까 꼭 은혜 갚는다고 했는데..."
[단독인터뷰] 고 최고은 작가가 쪽지 건넨 이웃 송모씨
"2월에 돈 생기니까 꼭 은혜 갚는다고 했는데..."
지난달 29일 숨져 있는 최고은(32) 작가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송모(52)씨가 11일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최 작가와 이웃으로 지냈던 송씨는 아직 최 작가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송씨가 최 작가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9년 가을. 자신이 세 들어 사는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2층짜리 주택에 최 작가가 이사 오면서였다.
최 작가가 이사온 지 삼 개월 쯤 지난 그해 12월 두 사람은 처음 만나게 됐다. 전기세 때문이었다. 송씨가 거주하는 2층과 최 작가가 사는 1층은 공동으로 계량기를 쓰고 있어 전기 요금을 나누어 내야 했다. 그런데 이사온 최작가가 전기세를 가져오지 않자, 세달여를 지켜보던 송 씨가 큰 마음을 먹고 1층집 문을 두드렸다.
“전기세를 안내면 우리집이 다 내야하지 않느냐고 물었죠. 아가씨가 요즘 돈이 없어 전기세를 못드렸다고 하더라고요. 방안을 둘러보니 밥을 잘 안해먹는 것처럼 보이길래 물어봤더니 쌀도 떨어졌다고 하고. 그래서 쌀하고 김치를 조금 가져다 줬어요. 딸 같은 아가씨가 안쓰럽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따지러 갔다가 오히려 도움을 준 송씨는 이날 이후에도 몇 차례 최작가의 방을 드나들었다. 자신이 준 쌀이 떨어질 때가 된 것 같으면 최작가 방에 들러 보고는 ‘쌀과 김치’를 주곤 했다.
인근에서 소규모 봉제 공장을 운영하는 송씨는 자신도 세 들어 사는 등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송씨는 "주위에서 굳이 그럴 것 있냐는 말도 들었는데 참 딸 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해서 계속 도와줬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최 작가가 음식 등을 전적으로 송씨에게 의지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송씨가 쌀을 가져다주는 동안에도 최 작가는 동네 슈퍼마켙에서 몇 번 쌀을 구입했었다.
몇 차례 쌀과 김치를 주고 받는 사이 둘은 좀 더 친밀해졌다. 송씨는 최 작가가 갑상선 질환을 앓는 것도 알 정도의 사이가 됐다. "쌀하고 김치 가져다 준 게 대여섯번쯤 될 것 같네요. 두 달에 한 번 꼴일 겁니다. 김치를 보관하는 게 힘들어보여 조그만 소형 냉장고를 구해다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바빠서 좀 오랫동안 못갔는데 편지를 현관앞에 남겨놨더라구요."
최 작가가 송씨에게 쪽지를 남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께부터였다. 송씨가 공장일로 대부분 밤늦게 집에 들어가다보니 마주치기가 쉽지 않자 최 작가는 '쪽지'를 남겨놓은 듯 보였다. 이후 몇 번 최 작가가 글을 남기면 송씨가 쌀과 김치를 가져다 줬다. 쌀과 김치를 부탁하면서도 최 작가는 송씨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았다. 송씨는 최 작가가 숨진 채 발견되기 4~5일 전 만났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2월에는 돈이 생기니까 꼭 은혜를 갚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가씨한테 돈 생기면 병원가서 치료도 받고 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돈 생기면 병원도 가겠다고 했었는데..." 하지만 최 작가는 병원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최 작가가 송씨에게 남긴 마지막 쪽지에 적은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 드릴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도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됐다.
송씨는 죽어있는 최 작가를 발견했던 당시의 충격에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는 등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최 작가가 송씨에게 남긴 쪽지 내용이 ‘남는 밥 좀 달라’는 내용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이웃들은 세간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송씨는 지인들로부터도 ‘하루라도 먼저 밥 좀 갖다 주지 그랬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송씨는 “언론에서 ‘집 주변 사람들은 뭐했느냐’고 보도한다”며 “없는 형편에 아가씨를 도와주려고 노력했는데, 인정사정없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이 속상하다”고 말했다. 송씨는 “지금도 쪽지만 보면 아가씨가 죽던 날이 떠올라 괴롭다”고 심경을 토로하며, "작년 말에 마음의 빚 지고 살면 힘드니까 내년에는 전기세도 같이 내며 살자고 하니 은혜 꼭 갚겠다고 했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출처] 남는 밥좀 주오” 글 남기고 무명 영화작가 쓸쓸한 죽음|작성자 번역가9
꽤 된 일인데 가끔씩 생각나더라 이 일... 안타까워 ㅠㅠ
시신 발견하신 분이 본인도 넉넉치 않은데, 딸 같아서 종종 김치랑 쌀을 줬었대
근데 '남는 밥 좀 주세요'라고 잘못 퍼져서 왜 빨리 안갖다 줬냐고 이웃이랑 주위 사람들한테 비난 받아서 괴로워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