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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학생 데리고 안경원 다녀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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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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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절대로 잘했다 좋은소리 들으려고 쓰는 글은 아님


난 평소에 학생들이랑 1:다 상황에서는 칼같고 냉정한 사람임. 지킬게 안지켜지면 늘 혼내니 매 해 학년에서 저 선생님이 제일 무섭다고 소문이 나있음. 학생들 입장에선 솔직히 교실에 나랑 있는게 늘 긴장되겠다 싶을 정도로.. 그렇다고 내가 학생에 대해서 정말 정이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ㅋㅋㅋ 1:1로는 좀 편하게 이야기하고싶은데, 애들이 되려 바짝 굳어서 고민인 교사임.


여튼 학기초가 되면 늘 그렇듯 복지대상 아동들 명단을 받는데, M학생은 다문화가정으로 명단에 올라있었음. 그런데 알고보니 M학생은 수년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태였음. 아이가 3월 초에 눈물 뚝뚝 흘리며 이야기하는데, 내가 손 한번 잡아주려니까 흠칫하는 아이 모습을 보고 내가 지금까지 잘못 산건가 많이 반성되었음.


부모님 서명이 필요한 모든 가정통신문에 M학생은 늘 스스로 해오더라. 물어보니 어머니가 한국어가 거의 안되신다고... 3월부터 알아챘지만 M학생을 3번째 줄에 자리 배정했더니 알림잘 쓸때 모니터가 안보인다고. 안보이는데 앞으로 나오겠단 얘기는 안하고, 늘 옆 친구꺼 빌려쓰더라. 보통 아이들 같으면 '안보이는데 앞에 나와서 봐도 돼요?'할건데, 위축되어있는 모습인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음.


내가 븅신같은게. 이때 바로 안경원 데려갈걸. 3월이고 5월이고 결과적으로 차이도 없었는데.


M학생은 너무 예쁜 학생임. 공부를 잘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지만, 스스로 알림장을 확인해서 준비물은 꼭 챙겨오고 일기를 안써오거나 하면 막 괴로와하면서도 학급규칙대로 남아서 일기를 쓰고. 수학은 기초연산도 안되면서 수학을 잘하고싶어하고 수학시간에 멍때리지말고 이거라도 풀라고 수준에 맞는걸 주면 신나게 푸는ㅎㅎㅎ



우리학교엔 매해 9월쯤에 복지대상 학생들 대상으로 안경점, 치과 인당 5만원정도씩 지원이 들어감. 이 학교에 4년째 근무하면서 그게 왜 이제야 생각이 났는지... 지난 주말에 혼자 술먹다가 '아. 복지담당자한테 이거 땡겨쓸수 있냐 물어봐야겠다.'생각이 들음. 그래서 물어봤더니 된다고ㅎㅎㅎㅎ나란 븅신...이때 까말 술기운 덜빠져서 5만원에서 금액 얼마가 추가되든 애가 고르는걸로 해주려고 맘먹었었음. (튼튼하기는 뿔테가 짱이지만 요즘은 또 얇은테가 유행이라. 이런걸로 위축되게 하고싶지않았음.)


그래서 오늘 오후에 출장쓰고 애 데리고 안경원 갔더니 애 눈상태가... 0.2수준인거. 3월부터 나는 안경 맞추라고 말만 여러번 했는데, 애 입장에서 그게 얼마나 부담이었을지. 그리고 주변에서 아무리 이래라저래라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왜냐면 애가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력한 상황인지. 그와중에 잘보인다고 신나하고 테 여러개 써보고 '갈색은 이상해요'하는게 나름의 어리광일지. 마음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살짝 가격표 보니 테만해도 5만원 넘더라. 그래서 애한테 5천원 주고 나랑 안경사님이랑 너 마실거 사오라고 심부름 보내고 안경사님이랑 얘기해보니, 그냥 해주시겠다 해서(지원금 5만원을 다 쓰는 학생도 있지만 다 안쓰는 학생도 있어서 그렇다고 함) 나는 너무 고마웠음. 안경사님도 M학생이 예뻐보였는지 무지 다정하게 해주시더라.


나는 학생들한테 5시 이후로 전화오면 전화도 안받는데, 사실 M학생에게는 학기초에 언제라도 받겠다 했었음.(전 담임선생님이 아이 어머니가 친구분들을 집으로 부르는 문제때문에 성적인 부분이 걱정된다 하셨기 때문임) 근데 아까 걸려온 전화가 "선생님 아까 안경맞춰준분이 깔라고 얘기하신 어플이 뭐예요?"임ㅎㅎㅎㅎㅎ



얼마나 세상 순진한지. 안경사님이 안경은 안경닦이로만 닦으라니까 "선생님 아까 S가 옷으로 닦았는데 안되는거예요?" 물어보고, 안경사님이 블루라이트 어플 깔라니까 그거 까먹고 안경쓰고 스마트폰 보면 큰일날까봐 나한테 물어보고. 내가 내돈 쓴것도 아닌데, 애가 신나하고 막 들떠서 보는 나도 기분이 좋았음. 0.2에서 처음으로 안경을 썼으니 세상이 다 보이는 느낌이었을까.


M학생 정말 너무 예쁘고 착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예쁜 학생인데, 앞으로 올 날이 힘겹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수학은 우리반 다른 수포학생들과 같은 수준인데 수학을 못하는게 고민이라고 적어 낸게 기특하다. 누가 보면 편애라 할 수 있겠지만, 올해 M학생에게는 학교에서 해 줄수 있는 지원은 다 붙여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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