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한지 꽤 되었는데 나름 설렌다고 해야 하나 좋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기억하는 기억이라 풀어봄.
무명이 고3 때의 일임.
무명이네 학교는 학업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학업만 엄청 강조하진 않는 곳이었음.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동아리도 꽤 잘 운영되는 편이었고, 야자도 강압적이지 않고,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음.
4월에는 남들 다 하는 전교회장/부회장선거를 하는데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학교는 전교회장이 3학년, 부회장이 2학년이었고 따로 선거하는 방식이었음.
선거유세도 하러 다니고 포스터도 붙이고 학교 내에서 나름 중요한 행사였는데
무명이네 반 애가 회장으로 입후보함.
원래 공부도 잘 하던 애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키도 훤칠해서 반 애들 모두랑 잘 지냈고 친구도 많은 타입이었음.
그래서 3학년 내에서는 무난히 상위권 갈 것 같다고 예상 했는데 얘가 대박친 계기가 있었음.
직접 유세기간이 1주일이었는데, 우리 학교는 본관 건물이랑 식당 건물이 따로 있었거든.
그래서 지나가려면 외부 정원 같은 곳을 거쳐서 가야 되고, 밥 먹으려고 기다리다보면 거기를 꼭 볼 수밖에 없어.
근데 회장이는 거기에서 1주일 내내, 점심시간이 시작하면 통기타를 들고 와서 노래를 부름.
어떨 때는 희망곡을 받기도 하고, 기타만 연주할 때도 있고, 신나는 아이돌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노래도 잘 부르니까 1, 2학년 후배들이 완전 뿅간 거야. 여학생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회장으로 당선됨.
덕분에 후배들한테 더 유명한 회장이 되어서, 체육대회 때 계주 주자로 나가면 후배들이 알아보고 응원 오고
되게 재미있는 애였음.
무명이랑은 사실 그렇게 막 친한 건 아니었음. 무명이는 그냥 평범한 여학생 A 수준이었으니까 접점이 별로 없었지.
근데 한 번은 회장이랑 친한 애가 내 짝이 된 적이 있어서(제비뽑기) 걔 보러 회장이가 자리에 왔다가 같이 말 섞기 시작함.
그러면서 같이 몇 번 공부하고 이러면서 조금 친해짐.
그렇게 친한 반 친구 사이로 무난하게 1, 2학기를 보내고
가을 때 우리 학교 발표회 겸 축제가 크게 있음. 이게 우리 가장 큰 행사야.
요즘은 학업, 수능에 방해된다고 학교 축제를 아예 12월에 하던데 지금은 어떠려나 모르겠지만 우리 땐 가을이었음.
하여튼 반끼리도 축제 사업해서 우리는 댄스클럽(?) 겸 카페 하고 그랬는데 회장이랑 친구들이랑 같이 잡일하면서 또 시시덕거리고
나는 오전에는 반 거 도와주고 오후에는 동아리 하는 데 나가서 (반은 학교 내에서, 동아리는 건물 밖에서 사업함)
회장이가 회장단이랑 같이 나와서 확인하다가 내 거 알아봐주고 내가 만든 거 사주기도 하고
되게 고마웠음 ㅎㅎ... 나 손재주 대박 없어서 쪼렙이었는데...
그리고 저녁에는 강당에서 공연이랑 발표회를 진행했고
막판에 막 댄스팀 오고 가수 오고 해서 막 신나는 음악 틀어놓고 막 분위기 고조되었어
조명 막 화려하고 애들 막 신나서 다같이 떼창하고 하는데 뭔가 그 분위기가 막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나는 제일 뒤에서 그걸 멍하니 보고 있었어.
아마 친구들은 앞에 가서 본다고 그래서 나만 혼자 뒤에 서 있었었나봐.
근데 뒤에서 막 애들 즐거워하고 조명 반짝반짝하고 하는 게 되게 좋더라고. 그래서 멍 때리는데.
갑자기 누가 오른쪽에서 어깨를 톡톡 치더라.
그래서 오른쪽으로 휙 고개를 돌렸는데
"왜 혼자 있어?"
하는 목소리와 함께 입술에 뭐가 쪽 하고 와닿는 거야.
회장이 얼굴이 조명에 반짝반짝 빛나는 건 기억 나는데
그 다음은 사실 잘 기억이 없다. 회장이 손 붙잡고 앞쪽에 데리고 가줘서 공연을 봤나? ㅎㅎ
이후에 수능 치르고, 무명이 정신 없이 살다가 졸업하고,
졸업 후 싸이월드로 간간히 연락했다가 흐지부지 끊어졌는데
회장이 잘 살고 있나 모르겠다.
이거 친구들한테 얘기하면 되게 로맨틱하다고 막 그래서
문득 생각나서 더쿠에도 남겨본다.
아, 물론 우리 학교 여학교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