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우 뛴 선수, 구경 온 관중 같아
한국대표는 경쟁없는 온실 화초… 케냐 후보 선수들보다 못 뛰어
- 지도 방식은 30년 전 답습
훈련량·거리만 늘리려고 애써… 희망있는 기대주 2~3명 있다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제가 느낀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게 한국 마라톤이 저를 찾은 이유 아닌가요."
마라톤의 '마법사'로 불리는 레나토 카노바(72·이탈리아) 감독은 18일 김포공항에서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칠순을 넘긴 노감독은 신념에 찬 목소리로 한국 마라톤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케냐 마라톤을 세계 최강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에이블 키루이, 여자 하프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인 플로렌스 제벳 킵라갓 등이 그의 제자다. 올해 8월 리우올림픽에서 처참한 성적을 낸 한국 마라톤 선수와 지도자 등 70여명은 지난 13~17일 제주도 합동 훈련장으로 그를 초빙해 '특별 레슨'을 받았다. 그는 방한 기간 동안 쉬지 않고 강의했다. 트랙에선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아직도 20~30년 전 훈련 방식
그는 "아시아인은 마라톤을 잘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묻자 "그렇지 않다"고 잘랐다.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유럽 사람들도 똑같이 '유럽인은 어렵다'는 말을 해요. 동기부여가 어려운 것이지 인종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은 황영조와 이봉주를 길렀습니다. 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하지만 그도 한국의 낡은 지도 방식에는 놀랐다고 한다. 아직도 선수들이 20~30년 전 방식으로 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지도자들은 예전처럼 훈련량과 거리 등 훈련 볼륨만 늘리려고 합니다. 최근 세계 마라톤의 트렌드는 '강도 높은 스피드 훈련'이에요. 황영조·이봉주는 훌륭한 선수이지만 지금도 그때 방식으로 뛰라고 가르치면 안 됩니다."
◇온실 속 화초 같은 한국 선수들
그는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봤다고 했다. "세계 최고 선수들과 맞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유명한 선수들을 구경하러 온 관중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부터 이기겠다는 생각이 없으니 열심히 뛸 동기도 안 생기는 거지요." 이번에 한국 선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쉬운 국내 대회에 나가서 보호받으려는 분위기'도 느꼈다. 도전자의 정신은 느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경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인 트렌드를 익힌 외국 선수를 받아들여 경쟁시켜야 한국 마라톤의 수준도 올라갈 것"이라며 "일본에는 이미 케냐 선수 50여명이 들어와 일본인과 경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 선수를 케냐로 유학 보내 경쟁시킬 것도 권했다. "케냐에선 후보 선수들도 지금의 한국 대표보다 잘 뜁니다. (열악한 환경의) 그들과 같이 살면서 훈련하면 느끼는 게 많을 겁니다. 한국은 훈련 강도도 낮고 선수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나약해요. 그걸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는 코치와 대한육상연맹 관계자들도 함께 유학하길 권했다. 그래야 훈련 시스템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록 깰 선수 2~3명 있어
그는 아직 희망은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 재능 있는 한국 선수를 2~3명은 봤다"며 "1~2년 정도 잘 키우면 2시간 10분 이내로 충분히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봉주가 2000년 세운 한국 기록(2시간7분20초)에 도전할 유망주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제주도 합동 훈련 캠프에 머물며 선수와 코치들의 소소한 질문에도 구체적으로 답했다. '오전 5시 30분부터 하는 새벽 훈련은 옳은 방식인가' 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김재룡 대한육상연맹 마라톤위원장(한국전력 감독)은 "우리 코치와 선수들이 쉬는 시간에도 카노바 감독을 붙잡고 여러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변화의 몸부림과 희망을 봤다"고 했다.
[최종석 기자 com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