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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산다이메) 포토북 인터뷰 강짱,오미편 (개인 포토북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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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4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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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jo


나 덬이 들고온건 이거야 이거!! 여기에 나온 개인 인터뷰를 번역해봤는데 같이 보자고 들고왔어!!

사실은 피드백 받고 싶은데..원문도 같이 올려야 피드백이 쉬울텐데 스캔하니까 글씨가 왕창 깨져서 말야8ㅅ8

방법을 생각해봐야지....의역은 당연하고..오타가 있을 수도 있어..오역은 없길..그럼 재밌게 봐죵


PwkfN


- 이와타 씨 하면, 웃는 얼굴이란 인상이 강하네요.

정말요?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다행이에요.
저, 웃고 있기로 HIRO 씨와 약속했거든요 (웃음) 

- 무슨 말이에요?

처음 HIRO 씨를 뵈었을 때 긴장하고 딱딱해져있었다는 것도 있지만,
저, 꽤 무뚝뚝했던 거예요.
그때 "강짱은 평소대로 있으면 무서워 보일 수도 있으니까, 웃는 게 좋겠어"라고.

- HIRO 씨가 말하고자 한 것은 알았나요?

솔직히 처음에는 몰랐어요.
그래도 저, HIRO 씨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거든요.
그런 HIRO 씨가 말씀한 거면 틀림없다고 생각해서,
그 이후로, 저는 웃음을 잃지 않도록 의식해 왔어요.

- 반항은 없었나요?

반항은 없었어요.
다만, 제 안에 없던 선택 사항이었죠.
그동안, 저는 운동권의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왔으니까,
특히 윗사람에게 인사할 때는,
"안녕하세요! 이와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적극적으로 인사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게 사람에 따라서는, 투박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져버리네요.
그리고, 다소 남의 시선을 알게 된 부분도 있습니다만,
제가 웃음으로서 마음이 오픈된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미소의 소중함을 배운 덕분에 데뷔한 당시보다,
사람과의 의사소통이 잘 되는 느낌이 들어요.

- 팀에서 최연소인 것도 있겠죠,
그 미소가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 말이에요.

확실히 귀여워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소문으로 들은 얘기인데, 저, 스태프분들 사이에서는 "사무라이"라고 불리고 있는 듯해요 (웃음)
꽤 저돌적으로 나아가는 형이라, 그 탓일까, 라고.

- 이렇다고 정하면 주변이 안 보이는 타입?

그렇죠.
이렇다고 정해놓으면 해내요.
거기에 좌절하거나 실패하는 게 있더라도,
목표가 아직 보이고 있으면 포기하지 않아요.

- 성격적으로 남자 다우니까, 사무라이 맞네요.

마냥 좋은 건 틀림없는 것 같군요.


- 앞뒤를 생각하지 않나요?

아니, 그런 건 생각해요 (웃음)
고심 끝에,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제 안에서 결정하면,
나중에는 흔들리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의견에 좌우되지 않거든요.
스스로 이거라고 생각하면, 그걸 믿고 돌진해요.
그래서, 믿었던 것이 잘못된 것이면 대실패하는 타입이에요.
중간이 없어요, 저의 경우엔.


- 그럼, 어떤 일도 스스로 지켜보는 작업을 게으르게 하지 않나요?

네, 현실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꿈을 갖고 있지만, 꿈만 꾸는 건 안된다랄까.
주위 사람을 봤을 때 가령 꿈에 불과할지라도, 난 이거다! 라고 생각하면,
그건 돌진할 가치가 있는 일이죠.


- 이와타 씨의 경우에는 실현 가능한 정도가 꿈인 거죠.
그게 아무리 엄청난 것이라도.

그런가요, 절대 손에 넣자! 라고 생각한 것이, 제게 있어서 꿈이에요.


- 그럼, 현재 품고 있는 꿈은?

슈퍼스타가 되고 싶어요 (웃음)


- 그건, 어떤 건가요 (웃음)

구체적으로 말하기엔 너무 어렵네요.
산다이메 JSB, EXILE TRIBE에 큰 은혜를 보답할 수 있는 남자가 되고 싶달까.
퍼포머로서뿐만 아니라, 연극이나 다른 일로 스스로를 닦고,
큰 것을 말하자면, LDH를 짊어질 수 있는 남자가 되고 싶어요.
저는 그래서, 식사 자리에서 "HIRO 씨의 무기가 되고 싶어요" "슈퍼 스타가 되고 싶어요"만 말하고 있네요 (웃음)


- HIRO 씨의 무기가 되겠다니, 굉장한 애정이 느껴져요.

정말로, 부모님만큼 존경하고 있으니까요.
HIRO 씨가 기뻐하면, 그게 저에게 있어 정답이에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HIRO 씨가 알아준다면,
그건 슈퍼스타의 꿈에 더 가까워졌다는 거예요.
이걸 이제, 저는 계속 말을 계속해요.


 - 바로, 이런 생각으로 목숨을 거네요.

그럴지도 몰라요.
뭐, 스스로의 룰을 지키고만 있으면, 전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그 룰이란 건, 예를 든다면?

하나를 든다면, 신세를 지고 있는 분이나 선배님, 동료들의 식사 권유는 절대 거절하지 않아요.


- 어째서죠.

정책(policy)이에요.
다른 사람의 권유를 거절하지 않는 것이 제 룰인 거죠.
감기라든가, 다른 사람을 감염 시킬 위험이 있을 때는 가지 않지만,
열이 있는 정도면 꼭 외출을 하네요.
무엇을 하든, 정신없이 자고 있더라도, 전화가 오면 바로 달려나갑니다 (웃음)
"24시간 체제" 라는 것이 키워드에요.


- 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제 꿈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해서죠.
엔터테인먼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뭔가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는 윗사람으로부터 유혹 받을 때가 많은데,
어떤 이야기든 듣을 것이라는 순수한 즐거움도 있어요.
그게 제가 반대의 입장이라면, 역시 꼬시기 쉬운 후배가 좋을 것 같네요.
실제로, 일하는 것 외의 곳에서, 인간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산더미처럼 있어요.


- 그렇다면 한편으로는, 댄서로서의 스킬 업은, 스스로의 노력뿐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렇네요.
퍼포머로서의 테크닉은,
오히려 데뷔 전까지의 노력이 전부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프로인 이상, 데뷔한 시점에서 완성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라고.


- 그렇군요. 데뷔 후의 노력은, 일류로 계속되기 위해서 쌓은 것이고.

그쵸, 그쵸.
일류의 댄스를 유지(keep) 하기 위해서 브러시 업을 계속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성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인간력의 강화 같은 것을 요구하며 매일을 지내고 있네요.
HIRO 씨도 잘 하시는 거죠.
"뭐든지 사람 위주다"라고.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 다만, 이와타 씨는, 자신은 이래야 하고,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이 많죠.
좀 숨 막히지 않나요?

확실히 "~없으면 안 돼" 투성이의 사람인 편입니다만,
그런 게 없으면 오히려 불안하게 되어 버리는 타입인 것 같아요.
저를 잃어버린다 할까.
그래서, 딱딱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예전만큼 엄한 건 아니에요.
제 신념을 뚜렷하게 해서 온 만큼,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스스로의 판단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전부가 들어와 버리고,
결국, 선택할 수 없거나 잃게 돼버리지 않을까요.


-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자신의 길을 돌진하는 아이였어요?

그런 건 다분히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어린 시절은 굉장히 달랐던 아이였던 거 같아요.
모두가 밖에서 놀고 있을 때, 저는 혼자서 모래밭에서 성을 만들고 있거나,
오로지 그림을 그리곤 했다거나.
그게 초등학생이 되면서, 급격하게 활발해졌어요.
피구라든가를 하게 되었다고 할까, 스포츠에 눈을 떴어요.


- 몸을 움직이는 것도 성격에 맞았던 거죠.

그렇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눈에 띄고 싶어 해서, 체육에서 가장 걸음이 빨랐다던가,
미술로 상을 받았다던가, 그런 것에서 우월감을 기억하고 있어요.
제 특기에서는 지고 싶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보다는, 작년의 저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웃음)
여름 방학의 자유 연구도, 지난해보다 좋은 성과를 제출하겠다고 생각하고,
곤충 채집이라든 가로, 타올랐어요.
혼자 뒷산에 가서, 나무줄기에 꿀을 바르고,
다음날 아침 벌레가 올려왔는지를 보러 갔어요.
스스로 얻었던 비단벌레의 표본이, 지금도 집에 있다고 생각해요.


- 아이인데도 자신과의 싸움을 즐겼던 것 같은.

그렇네요.
그러니까, 초등학교에서 사람 사귀기를 배웠다는 것만으로도,
탐구심이 강했던, 조금은 별난 아이인 채로 그대로 였지 않았나 생각해요.
아무튼 중학생 때 장래의 목표가,
노벨상을 받을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웃음)


- 형제는?

3살 위의 형이 있어요.


- 형의 영향도 받고 있나요?

네, 적지 않게요.
뭐랄까, 음악에 관해서는 완전히 형의 영향을 받았네요.
저는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부터 서양 음악만 듣고 있었거든요.
랩이나, 흑인 음악이 많았어요.


- 이른바 힙합 문화를 접하고 있었네요.

그렇죠.
형이 미국에 유학하고 있었으니까, 유행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었어요.
"Eminem"이나 "Outkast"도 일본에서 유명해지기 몇 년 전부터 듣고 있어서,
유행하기 시작했을 땐 "이제야?" 라는 느낌이었어요 (웃음)


- 형은 유학하고, 이와타 씨는 중학 수험을 했네요?

그렇죠.
저희는 아버지가 상냥하고 과묵한 분, 어머니가 교육에 열심이고 약간 과잉보호를 (웃음)
그래서 공부에 관해서, 제가 하겠다고 말하면 아버지는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고,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서포트를 하는 환경이었어요.
시험은 결코 저의 뜻은 아니었습니다만,
공부도 좋아했으니까, 세간의 입시 붐에 올라탔네요.


- 공부도 잘했어요?

도중부터 그랬어요.
초등학교 4학년 정도부터 수험 대책으로 학원에 다니고,
과외를 받기도 했어요.
문제가 풀리게 되면, 점점 즐겁게 되어 가잖아요.
게다가 그때의 가정 교사 선생님이 굉장히 재밌는 분이었는데,
곤충 채집과 뭔가를 만드는 재미도, 실은 그 선생님에게 배웠어요.

(*2016 a-studio 강짱 편에 출연한 미즈노 센세)


- 그리고 무사히 게이오 기주쿠 중등부에 합격했는데요, 어떤 학교 생활이었어요?

남자 학교여서, 좀처럼 재밌는 이야기가 있을 리가 없는 (웃음),
일단 농구부와 가라테부에 이름을 올려두고 있었어요.
다만, 팀이 강했던 것은 아니어서, 동아리 활동보다 창작 활동에 열중했네요.


- 창작이란 건?

1년에 한번, '노작 전'이라는 게 있어요.
전교생이 각각 창작한 작품을 제출하고 전시하는 겁니다만,
저는 그거에 목숨을 걸고 있었어요.
사실 3년 연속 가장이 되었어요.
3학년 때는 "올해의 이와타는 뭘 만드는 거야?" 라는 기대를 받게 되었어서,
그게 기뻤었네요.


- 무엇을 만들었나요?

2학년 때 벤케이의 기계 장치 인형을 만들었으니까, 3학년 때는 더 큰 걸 만들자고 생각해서,
3개월에 걸쳐서 등신대의 미야모토 무사시를 만들었어요.
2미터 정도의.

*무사시보 벤케이
일본 헤이안 시대 말기, 가마쿠라 시대 초기의 무장.

*미야모토 무사시
일본 에도 시대 초기의 무사이자 화가 그리고 병법가.


- 등신대?! 어떻게요?

기본적으로는, 심지를 만들어서, 손질하는 방법이에요.
토대에 모래를 뿌리고, 풀로 높낮이 차이를 맞춰서, 간류섬의 분위기를 냈어요.
목검도 나무를 깎아 만들었거든요.

*간류섬
미야모토 무사시가 사사키 코지로와 결투했던 섬


- 그거, 이미 공작의 경지를 벗어났잖아요?

소위 말하는 설계도도 직접 그리나요?

 

맞아요.
물론, 전부 공부하면서 말이죠.
도서로 인형 만들기 서적을 읽고,
홈 센터(대형 슈퍼마켓)에서 재료를 갖춰요.
나머지는 오로지 계속 만든다, 라고.
지금도 그 거대한 미야모토 무사시가 집에 있어요.
한밤중에 보면 상당히 무섭습니다만 (웃음)

 

- 그쪽 길로 가도 이상하지는 않았겠네요.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티스트로서 사는 것도 하나의 길이라고.
다만 들어간 학교가 학교였다 보니까, 미대를 응시하거나,
전문학교에 가는 걸 선택 사항으로서 현실적으로 생각 못 했어요.
다만, 세상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이오의 이미지와 실상은 좀 다르지 않나 싶네요.

 

- 아, 자유로운 교풍이라고는 잘 들어왔습니다만, 실제로는 어떤 느낌인가요?

 

중고교가 남자 학교입니다만, 제 시대는 정말 달라진 사람이 많았죠 (웃음)
고등학생이 되고 교칙이 상당히 느슨해져서, 모두 외형부터 개성적이었어요.
저도 꽤 기세에 올라탔습니다만, 뜨지는 않았네요.

 

- 어떤 식으로 기세에 올라가있었던 거죠 (웃음)

 

주위에서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당시부터 ATSUSHI 씨를 동경하고 있었으니까,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어요.
시부야에서, 자주 시비가 걸렸죠 (웃음)

 

- 지금의 모습에서는 상상이 안되네요.

 

하지만 평범한 고등학생이니까, 시험 전이 되면,
똑같이 개성적인 풍채의 친구들이랑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모여서,
필사적으로 공부했어요.
객관적으로는 굉장히 재미있는 그림이었죠 (웃음)

 

- 댄스 요소는 인생에 아직 안 들어왔나요?

 

댄스는, 고등학교 3학년부터네요.
당시, 츄쿄TV 제작의 "쇼넨챤푸루(少年チャンプル)"라는 스트리트 댄스의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방송이 있었는데,
제 주변에서도 꽤 유행하고 있었어요.
전 고등학교에서는 라크로스부에 들어가있었습니다만,
댄스에도 굉장히 흥미가 생겨버려서.
그래서, 동아리 활동의 은퇴를 계기삼아, 친구를 꾀어서 춤춰보기로 했죠.

 

- 처음에는 그럼, 어깨 너머로?

 

맞아요.
하지만, 잘 못했었네요.
운동 신경이 좋은 것과, 댄스를 잘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래도, 문화제의 스테이지에서 춤 췄어요.
거기에서 저는, 지금까지 없던 쾌감을 느꼈네요 (웃음)
라크로스 경기에서 골을 터트렸을 때도 열기는 맥스였지만,
그거와는 또 다른 감각이었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긴장감 속에서 표현하는 아슬아슬한 느낌이,
굉장히 자극적이었네요.

 

-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태가, 기분 좋았었나봐요.

 

맞아요, 모두가 나를 보고있어!! 라면서 (웃음)
튀고 싶어하는 저로서는, 이런 세계가 있었던가!!라는 느낌이었네요.
게다가 나중에 친구로부터 "굉장했어""감동했다"라는 말을 듣고,
완전히 날아올랐죠.

 

- 이와타 씨는 어릴 적부터 여러가지 일에 뛰어났기 때문에,
칭찬 받을 기회도 많았을텐데요.
그래도, 역시 다른 감각이었나요?

 

네, 달랐어요.
어쨌든 기뻤네요.
새로운 물꼬를 튼 느낌.
그래서, 이걸 계속 할 거라고 생각했죠.

 

- 그런 까닭으로 대학에서는 댄스 동아리에.

 

몰두했네요.
게이오의 댄스 동아리는 스파르타로 유명해서 주 6일 연습이 있었어요.
꽤 근성이 없으면 계속 될 수 없다고 선배들로부터도 말하고 있었는데요,
저는 그 밖에 자율연습도 하고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대학 4년간 쭉 춤추고 있었어요.
머리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라고 할 정도로 춤 추고 있었어요 (웃음)
아침에 일어나서, 편의점에서 스포츠 드링크의 가장 큰 페트병을 사서,
9시에는 집회실에서 춤추기 시작해요.
수업은 학점을 놓치는 일 따윈 절대 없을 생각으로 받고, 비어있는 시간은 계속 춤추고 있었어요.
저녁까지 혼자 춤추고 있으면, 머지않아 수업 후에 모두가 찾아오니까,
바로 그 때부터 다시 밤 9시까지 춤추는 거죠.

 

- 대학교에 춤추러 간 것 같네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을 정도였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1학년의 단계에서 부기(재산의 출납, 변동의 기입을 똑똑히 장부에 정리하는 일)라든가 공인 회계사의,
자격증을 따는 사람도 많았죠.
주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도 있고, 벌써 창업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는 주변이 보이지 않았던 거죠.

 

- 그야말로 저돌적으로 돌진하네요.

 

정말로 아무 생각없이, 그저 춤추고 있었어요.
당시, 신주쿠의 야스다 빌딩의 앞이 스트릿댄서들의 성지이기도 해서,
저는 대학 1학년 때부터 밤에는 거기서도 춤추고 있었어요.
그러다 이끌려서 클럽에서도 춤추게 되어서, 아침 5시 정도까지 춤추고,
아침엔 다시 대학에 가는 생활이었네요.
그 가운데, NAOKI 씨와 ELLY를 만났고,
일본에서 크럼프의 원조로 있는 JUN 씨도 만났어요.
대학 댄스씬에서는, 3학년 때에 부장이 되었는데,
어떤 의미로는, 일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동아리르 이끌었는데요,
한발 밖으로 나가니 제 춤으로 승부하는 길이 될 수 있었네요.

 

- 약간이라도 돈이 되는 일도 했었나요?

 

네, 백업댄서의 일도 가끔 했어요.
다만, 개런티는 정말로 아르바이트 정도.
그래서 처음부터, 이건 직업으로는 안되겠다 생각했어요.

 

- 그러는 사이에, 취업 활동의 시기가 찾아왔던거죠?

 

고민했어요.
그때까지 미래의 일은 전혀 생각않고 춤추고만 있었어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 때문에 살고있는지, 직업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고,
취미는 뭐야, 가장 잘하는 건 뭐야...라고, 자기 분석하고,
그리고나서 내린 답이, 유명한 기업에 취업하기라고 (웃음)
그때는, 사람으로서의 성공은 유명 기업에 입사하는 거라고 생각했네요.
마침 그때, NAOKI 씨가 니다이메 JSB에 가입해서,
동료들 사이에서는 "댄스로 먹고살다니 부럽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저 자신과는 어딘가 별개로 생각하고 있었죠.

 

- 댄스로 산다는 것에는, 현실성이 전혀 없었군요.

 

그렇죠.
졸업 후의 진로로서, 댄스를 한다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평범하게 구직 활동을 하고, 부원 170명을 자랑하는 댄스 동아리를 이끌었다는 것을 면접에서 어필하고,
빠른 단계로 내정을 받았어요.
바로 전도양양한 느낌이죠 (웃음)
대학의 학점은 이미 전부 취득했었고, 4학년의 후반은 반년 정도 세계를 여행하면서 여러가지 배우고,
아르바이트해서 부지런히 저금도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이었죠, NAOKI 씨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 남은 건 여행을 떠나는 것뿐이라는 시기에.

 

네, 6월이나 7월이었던 것 같아요.
잊히지도 않네요, 다이칸야마의 화려한 카페에 어울리지도 않는 두 남자가 앉아서 식사를 했어요 (웃음)
그때 NAOKI 씨에게서 "주간 EXILE"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새로운 그룹을 만드는데, 마침 보컬 오디션을 하고 있고,
새로이 퍼포머를 가입시킬 예정이니까, "강짱이 관심 있다면 오디션 받지 않을래?"라고.

 

-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아니, 그냥 깜짝 놀랐어요.
물론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만, NAOKI 씨는 쉽게 물러서지 않고
"꼭 다시, 좀 생각을 바꿔봐" 라고.
생각도 아무것도, 나는 벌써 내정을 받았으니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실은, 이 쯤에서 저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뭘까?, 회사에 들어가면 뭐든 하고 있을까? 라고.

 

- 아, 구직 활동의 이전으로 돌아갔네요 (웃음)

 

그렇죠.
또 시작되었어요, 자기 분석이 (웃음)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 이미 마음먹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몇번인가 NAOKI 씨에게 식사로 초대 받으면서,
정말로 이제 노골적으로 여러가지를 들었어요.
"LDH는 어떤 회사인가요?" "정말로, 제대로 생활할 수 있나요?"
"연예계는 어떤가요?" "가령 1년차에 실패한다면, 그 후에는?" 라던가.

 

- 결정타는 무엇이었나요?

 

어느 날, NAOKI 씨가 EXILE 멤버들과의 회식 자리에 데려가 줬어요.
AKIRA 씨, NESMITH 씨, NAOTO 씨의 생일 파티를 하던 가게에서,
갑자기 NAOKI 씨의 후배로 소개되었어요.
게다가 처음엔, HIRO 씨와 MATSU 씨 사이에 앉게 되었고...(웃음)
저도 뭔지 모른 채, 잘 먹겠습니다! 라며 술을 받고.

 

- 배짱 있는 대학생이라고 생각했겠네요, 꼭.

 

어땠을까요.
저는 역시 기가 죽어 있었어요.
그래도,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TV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멋져보였어요.
비주얼은 물론, 분위기나 언행이라든가, 동료 의식 같은 것들, 전부가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람들이 "잘 부탁해" 라고 말한다면, 이제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요.

 

- 스위치가 들어와버렸네요.

 

그렇죠.
이런 환경에서 댄스를 직업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죠.
그리고 정신차려 보니 EXPG의 스튜디오에서 오디션에 참가하고 있었어요.
내정도 일찌감치 거절하고 갔어요.

 

- 부모님은 그 결정을 받아들이셨나요?

 

아뇨, 대 반대하셨어요.
평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버지도 말씀을 강하게 하셨고,
어머니는 울었어요.
그래서 설득했기보다는, 제가 고집을 부렸을 뿐이에요.
스스로 의절하고 간 느낌이었어요.
죄송스러운 마음도 당연히 있었죠.
좋은 학교에 넣어 주시고, 서포트를 계속해주는 걸 받고,
몇달 전에 취업 내정을 받아서 의기양양한 순간이었으니깐요.
부모님의 마음을 모두 헛되게 한 것은, 지금도 반성해요.
물론 부모님께선, 지금에서는 응원해주시네요.

 

- 그야말로 모든 것을 털어서, 꿈에 걸었던거네요.

 

그쵸.
그런데, 오디션 도중에서 사무소로부터 전혀 연락이 오지 않던 시기가 있어서,
그땐 초조했어요.
이대로 떨어지면 어쩌지?! 라고, 정신 나갈 뻔 했어요.
실은, 내정을 거절하고 오디션에 참여하고 있던 것을, 대학 친구에게도 일절 말하지 못 했거든요.

 

- 말하지 않았어요?

맞아요.
떨어지면 촌스럽다는게 솔직한 부분이었어요.
게다가, 말했더라도, 아무도 믿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해요.
내정을 받고서, 앞으로 졸업만 남았는데, 스스로 리스크있는 세계에 뛰어들다니 있을 수 없으니까요.
적어도 제가 몸을 둔 곳은 그런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사무소에서 "내일 오세요"라고 전화가 왔을 때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네요 (웃음)

 

- 그게 최종 오디션이었죠.

 

맞아요, 야마나카 호(일본 야마나시현 후지산 근처에 있는 호수) 합숙이었어요.

 

- 승산이 있었나요?

 

그런 건 뭐, 완전 없었어요.
그래도, 절대 지지 않아! 라고 생각했네요.
내가 최고가 되고 싶으니까, 내가 되는게 당연해! 같은,
너무 필사적이라 오히려 이유를 모르는 상태가 되어 있었어요 (웃음)
정말 뒤가 없었기 때문에, 밝은 척할지라도 기세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 그래도, 무사히 합격했어요.

 

한시름 놓는다는 건, 이런 말이구나하고.
안심했어요.
물론, 진정한 의미에서 힘들었던 것은, 사무소로 들어오고 부터에요.
어찌됐든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저에게 부족한 것을 전부 흡수해야 했어요.
그래도 역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할 수 있단 기쁨과 즐거움은,
무엇으로도 바꾸기 어렵죠.
이 세계에 들어간 이상, 목숨 걸고 하려고 마음 먹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모든 아티스트에게 실례라고도 생각했어요.

 

- 현재, 댄스에 대한 열정에 변화가 있나요?

 

네, 상당히 변했다고 생각해요.
자신만의 댄스를 추구할 뿐 아니라, 지금은 메이저씬에서 산다이메 JSB의 댄스를 전하는 것에 사명을 느끼고 있어요.
그룹의 브랜딩을 우리 개개인이 맡고 있으니까, 스스로에 대해 압박감도 있어요.
그리고 생각으로도, 댄스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로 들어갔다는,
그런 실감도 있네요.

 

- 그건 무슨 뜻이죠?

 

이와타 타카노리의 인상이란, 댄스에만 의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가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면,
단순히 "저사람, XX에 나온 사람이야"라는 고정관념이 하나 플러스 되고,
관객들은 저의 퍼포먼스를 보잖아요.
그리고, 그게 산다이메 JSB로 인식되죠.
그러니까 댄서로서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요소를 포함한 아티스트로서의 이와타를 닦지 않으면 안된다고.
제 상품 가치를 높이지 않고서는, 위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 춤추는 것이 즐겁다는 감각은 여전한가요?

 

그건 여전하네요.
춤추고 있다는 것이 점점 더 즐거워져서, 자연히 웃는 얼굴이 되어버려요.
다만, 이건 예전부터 버릇도 있습니다만, 저,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거든요.
그만두는 편이 좋겠다는 것도 있네요.
퍼포머가 발라드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다니, 싫잖아요 (웃음)
그건 조심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웃음) 

- 이와타 씨의 댄스 인생은, 문화제의 스테이지에서 쾌감을 느낀 것이 시초였는데요,
데뷔하고 현저한 차이의 관객 앞에 섰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어요?

 

산다이메 JSB로서 최초로 5만명의 앞에 섰을 땐, 솔직히, 전혀 현실감이 없었네요.
현실성이 없고, 스테이지에 섰는지도 잘 모르겠는 방심한 상태였어요 (웃음)
그저 3분 가량의 스테이지였는데요, 뭘하고 있었는지 기억 못하는 것 같아요.
데뷔하고 반년 정도는 계속 그런 감각이었어요.
당시의 영상을 보면, 그런 모습이 나오고 있어요.
자신을 표현하는 것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순서를 소화하고 있는 것이.
미숙하네요.
부끄럽다 (웃음)
하지만, 데뷔한 순간부터, 인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실감은 확실히 있어요.

 

- NAOKI 씨의 전화로, 인생이 크게 방향을 틀었어요.

 

틀림없이 NAOKI 씨가 있어서 제가 있어요 (웃음)
신주쿠의 야스다 빌딩에서, 첫 대면 때 댄스 배틀을 했던 사람과,
같은 그룹에서 춤추고 있다니 놀랍네요.
처음을 더듬어보면, 역시 댄스가 인생을 바꿔주었어요.

 

-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고 싶으세요?

 

HIRO 씨처럼 되고 싶어요.
물론 다른 사람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저는 HIRO 씨는 될 수 없습니다만,
HIRO 씨의 생활 자세는 아무쪼록 이어받고 싶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LDH에서 배운 인간성은 반드시 도움이 될 거예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예의 바름과, 사람으로서 빠트려선 안되는 것을 많이 배웠으니까,
그것을 꿰뚫는 어른으로 있고 싶어요.
그리고 저, 최단 루트로 슈퍼스타가 될테니까요 (웃음)
잘난 놈은 남에게 미움받을지도 모르지만, 잘난 놈으로 계속 있고 싶어요.
*出る杭は打たれる
그것이 제 나름대로의 보은이에요.

 

- 데뷔하고 3년이 지나서, 기반이 굳어지기도 했나요?

 

그렇네요.
스테이지에 서도 지금은 좀 현실감이 있고, 저 자신이 굉장히 유연하게 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혀 무리가 없다고 할까요.
초대를 거절하지 않는 것도 무리가 없고, 이렇게 인터뷰에서 적나라하게 저를 말하는 것도 무리가 없어요.
최근까지 굉장히 강했던 컴플렉스도, 아젠 완전히 없어졌어요.

 

- 어떤 컴플렉스가?

 

게이오 기주쿠 대학을 나온 것이 컴플렉스였어요.

 

- 아, 미지근한 물에서 자랐다거나,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든가하는,
세상이 말하는 것 말인가요?

 

맞아요.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저 스스로 그런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다만 저는 늦게 핀다고 할까, 여러가지 깨닫는 것이 더뎠다는 것도 자각하고 있었네요.
그러니까 그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두 배로, 회식 자리에 얼굴을 비추는 것이 제 성의이기도 해요.
더 많은 것을 깨닫고 성장하고 싶네요.

 

-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방향을 갖고 있던 어린 시절을,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여기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이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있는 곳은, 원래 갖고 있던 흥미와 가까워요.
댄스나, 연극이나, 몇몇 좋아하는 것을 철저하게 끝까지 파고드는 곳.
그래서 제 부모님이 지금은 굉장히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타카노리는, 뭔가를 만들어서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지"라고.

 

- 그럼 마지막으로, 24세의 이와타 씨에게는 리얼리티가 없는 질문입니다만,
어떻게 인생을 마치고 싶은가요?

 

그건 처음 받아본 질문이네요.
그렇네요...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인생을 마치고 싶어요.
그리고, 여러 사람이 울어줬으면 해요 (웃음)

 

- 즉, 모두에게 사랑 받고 싶다는 (웃음)

 

맞아요.
그런 소망이 강한 걸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여러분, 엉엉 울어 주세요 (웃음)


comAx


- 데뷔 무렵과 비교해보면, 표정이 꽤 변했네요.

그렇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특별히 여기가, 라는 건 없습니다만, 뭔가 그, 기합이 들어가는 방법이 다르다고 할까...
사진에서도 영상에서도 데뷔 직후의 얼굴이 보이면, 풋풋해서 부끄럽네요.
굉장히 폼 잡았을건데, 그 때의 베스트였을 것입니다만,
무리해서 발돋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지나고보니, 한없이 밑바닥과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라고 (웃음)

-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는 직업이니까, 더욱 더 변화하는 거죠.

그렇겠네요.
실제로, 예전보다는 신경을 쓰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시점으로는 겨우 3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데뷔 초기에는, 아직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싶은대로 먹었어요.
요즘은 역시, 어떤 것을 얼마나 먹을지를 생각하는 것도,
일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촬영 전에는, 붓지 않도록 수분을 많이 취하지 않도록 한다던가,
여러가지로 컨디션을 생각하게 되었네요.

- 단순하게, 여러가지를 알게 됐다, 라고.

바로 그런 것 같아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 세계에 뛰어들었죠.
역시 3년을 지나오면서, 아주 작은 부분에서도, 이럴 때는 이렇게 하면 돼,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거네요.
꼭 멤버 각자 나름대로의 룰이 되고 있는 거 아닐까요.

- 데뷔 이후에는 특히 스스로와 마주 볼 일이 아주 많았을거라 생각해요.
그 경험을 거치고, 토사카 씨는 지금 현재,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어떨까요...
뭐, 성격적으로 대범해요.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면도 있어요.
지나치게 세세한 부분은 신경 안 쓰는게 좋겠지, 라고.
3년간 활동하면서, 제 역할로서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 주위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주로, 쿨하다고 해요. 감정이 별로 얼굴에 안 나타나는 것 같네요.

- 나로서는, 그런 생각은 없다?

그렇네요.
저는 평소에 감정 표현을 하고 있는 셈이지만,
주위에서는 알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옛날부터 친구도 자주 말했었네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라는 것이 본심입니다만.
다만, 감정의 기복에 관해서는,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 희로애락은 표현을 해도, 그 높낮이는 보이지 않겠다는 거죠?

맞아요.
친구가 연상의 사람들만 있어요.
사적으로 노는 동료 중에, 후배로 부를 존재가 거의 없어요.
지금까지 계속 그런 환경에 있어서인지,
제 감정대로 움직이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이 있어요.
기분의 차이를 드러내면, 선배들이 신경을 쓰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 가장 어리다면, 응석 부려도 될 것 같은데요?

그게 너무 싫어요.
어릴 적부터 축구를 해서, 규율을 철저하게 배운 것도 요인의 하나겠죠,
기본적으로는, 소위 체육계통에서 자랐으니까, 상하 관계를 중히 여기는 게 약간 있어요.
보통, 쿨하게 보여지는 것이 마이너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까,
부담스러운 건 결코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는 편입니다만.
특별하게, 저를 억제하고 있는 감각도 없어요.

- 산다이메 JSB에 있어도 그건 변하지 않나요?

그렇네요. 그룹이 되면, 역할 분담 같은 것도 나오잖아요.
또 다른 보컬인 류지 (이마이치)는 희로애락이 감정에 보이는 섬세한 타입이고,
저는 의식적으로 감정 표현을 붙잡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다만, 그걸 답답하게 느끼고 있는건 전혀 아니고,
정말 자연스레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이죠.

- 토사카 씨의 노래에는, 감정이 크게 부딪히네요.

감사합니다.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주위 사람에게도, 제 노래는 감정적이라고 말하네요.
아마, 음악과 마주 하면, 악곡의 세계관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슬픈 노래라면 슬퍼지고, 신나는 노래라면 즐겁게,
라는 식으로, 느끼는 대로 부를 수 있다고 할까.
그러니까, 그건 정말로 기쁜 평가입니다만,
연기하듯이 부르고 있다고 말했던 적이 많아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들려, 라고.

- 그건 테크니컬 부분의 이야기에요?

어떨까요...그게 제 노래 테크닉이라면,
단순히 음악의 이야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부르는 것의 즐거움을 알고 있으니까,
그곳을 목표로 힘껏 노래 불러온 결과라고 생각하네요.
그것이 평가된다는 것은, 너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 어렸을 때부터, 타인에 대한 감정 표현은 절제되었나요?

아뇨, 그렇지는 않았어요.
상당히 눈에 띄고 싶어하는 성가신 아이였어요.

- 그렇다면, 지금과는 인상이 전혀 다르네요.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다고 할까, 그대로 어른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좀 무섭네요 (웃음)
반상회의 행사에서 제멋대로 스테이지에 올라가거나,
수업 참관일이 되면 완전 대답도 모르는데 까불며 손을 들고, 부모님에게는 창피를 주는 아이였거든요.

- 아, 클래스에 있었네요, 그런 활기찬 남자 (웃음)

그 전형적인 남자가 저였어요 (웃음)
장난도 엄청났어요.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항상 혼 났죠.

- 어떤 장난을?

부모님을 가끔 부를 정도였어요 (웃음)

- 충분합니다 (웃음)

게다가, 나이와 함께 꽤 확신범적으로 다뤄져서.
그 중에는 인터뷰에는 쓰지 못할 것 같은 장난도 (웃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심한 장난이었다 싶은 장난도 있네요 (웃음)
그래도, 변명입니다만, 다들 장난치고 흥겨워하면서,
박장대소한다,라는 반복이, 동료들의 결속력으로 이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나이였던 걸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죠, 확실히 말하면 시작한 것은 유치원부터예요.
부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부터 공을 찼다고 해요.
진짜 엄청 좋아했어요.
중학교도 축구부가 강한 학교였기 때문에, 진심으로 프로를 목표로 하고 있었어요.

 

- 그 정도 실력이 있었다는 거죠.

 

아니, 실력은 실제로는 없었어요.
하지만, 테크닉이 조금씩 몸에 배는 것이 비례하며,
점점 축구가 재밌어져 갔고, 무엇보다 더 잘 되겠다고, 매일 그저 연습하고 있었어요.
장래를 생각하면, 프로가 되는 것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었네요.
우리는, 부모님이 공부하라고는 한번도 말한 적이 없는 환경이었기도 해서,
그것에 만족하고 정말로 축구만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공부는 전혀,라고 말해도 될 만큼 하지 않았어요 (웃음)
그런데도, 축구 선수가 되기를 저는 포기해버렸네요.

 

- 그거 뭔가 이유가 있어요?

 

같은 지역에, 엄청 잘해서 유명한 아이가 있었거든요.
그 아이와 함께 플레이를 했던 게 중3 때였는데요,
순식간에 실력의 차이를 보여줬었어요.
뭐, 그의 퍼포먼스는 압도적이었죠.
그 때 처음으로, 이런 사람들이 프로가 되는거야,라고 생각했었네요.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 보통, 머리 속에서는, 자신보다 잘하는 선수들이 산만큼 있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잖아요?

 

네,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그를 따라잡을 수 없다라고만 생각한 것 뿐이라면, 여태까지 제 나름대로 전방에서 나아가고 있었을거예요.
그렇지만, 스스로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는 테크닉이 굉장할 뿐만 아니라, 멘탈도 장난아니었어요.
뭐라고 해야하지...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해도,
아무리해도 안되는 게 있단 걸 깨달았다고 할까요.

 

- 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서 그렇게 느껴졌다는.

 

그런거죠. 저도, 진심으로 프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었고,
남을 밀어내고서라도 위로 간다는 정도의 마음으로 도전한 셈이었습니다만,
그는 애초부터 레벨이 달랐어요.
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극소수라고, 모두가 말하잖아요.
그건 진짜야,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닌거야,라고,
어쩐지 분명히 알았어요.
참고로, 그는 실제로, 나중에 프로가 되었어요.

 

- 그 때, 좌절했나요?

 

그렇죠. 확실히 녹아웃 된 느낌이었어요.

 

- 그 날 밤, 소년 토사카는 무엇을 생각했었나요?

 

약간은 풀이 죽어있었겠네요.
하지만 저는, 예전부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타입이라,
요령있게 뭐든지 하고 싶은 편이었어요.
그런 성격도 있어서인지, 그날 분명히 좌절은 했었는데,
다음 순간에 "그럼 미용사가 된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왜 미용사였을까요.

 

미용사라는 직업이, 단순히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마침, 카리스마 미용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어딘가 환상이 있었네요.

 

- 때때로, 전환이 빠른 편인가요?

 

엄청 빠르죠 (웃음)

 

- 너무 질질 끌지 않는?

 

그렇죠. 질질 끄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유가 뭐든지간에, 어쨌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 싫거든요.
급히 걸어야 할 정도면, 택시를 탄다, 같은.
노동 시간 단축이죠. *時短です。
노동 시간 단축이란, 좋은 말이네요 (웃음)

 

- 예를 들면, 끝난 사랑에도 연연하지 않나요?

 

아, 거절되면 역시..그렇지 않네요 (웃음)
상대가 있네 라고, 의기소침한 적은 있어요.
나 혼자의 일이라고, 비교적 간단하게 결론 짓고, 다음, 네 다음, 이 되죠.
뭐, 우물쭈물 고민하는 타임은 절대로 아니네요.

 

- 그럼, 실연으로 연연하는 건 무엇이죠?

 

음, 슬픈 기분?

 

- 그렇군요 (웃음)

 

거짓말이지, 헤어질거야 ?! 같은.
결국, 보통의 미련이네요 (웃음)

 

- 기본적으로, 밝은 성격이군요.

 

밝은 것을 좋아해요.
풀이 죽거나 슬퍼하는, 마이너스의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멤버가 다 모여있는 가운데,
역시 가끔은 어두운 분위기가 되는 적도 있는데요.
그럴 때는 제가 앞장 서서 바보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어요.

 

- 축구의 경험이 컸던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토사카 씨는 주위를 살펴 본 뒤에,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나요?

 

그런 것이 있을지도 몰라요.
묘하게 주변이 보이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않고 좋은 것에서도, 앞질러가서 끝내는 부분이 있네요.

 

- 그런데도, 본질적으로는 대범한?

 

간단히 말하면, 눈치채긴 하지만, 잊어버려요 (웃음)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고, 그렇게까지 저는 호인(お人好し)도 아니거든요.
세세한 것에 여러가지 눈치를 챕니다만, 신경 쓰지 않아요.

 

- 그건 그거대로, 좋은 테크닉이겠지요.

 

스스로는 그런 감각이 아닙니다만, 단순하게, 하나를 알아차리고서,
주위를 둘러보고, 말해야겠으면 말하고,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면 아무 말도 안해요.
저로서는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거죠.
아마 거기도 요령이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 관찰하는 눈이 날카로워요.

 

어떨까요?
보려고 생각하고 보고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 곳에 있어서 깨달은 것에 대해서는, 제 나름대로 대응을 하죠.


- 그야말로 주위에 선배들이 많이 있어서, 길러진 감각인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럴지도 몰라요.
저에게 뭐가 요구되고 있는지,
스스로 찾으러 간다,같은 환경에 있었으니깐요.



- 결단도 빠른 편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고민하고 있는 시간이 아깝네요.
생각하는 것도 의기소침하는 것도 충분히있습니다만,
지나가버린 것을 후회할 시간이 있다면,
지금부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죠.



- 그래서 바로 진로의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었군요.



고등학교를 들어가서 진로를 정할 때도, 전혀 망설이지 않았어요.
원래 대학에는 가기 싫었어요.
목적도 없이 대학에 갔다가 시간만 허비할 뿐이라고 생각해서,
전문학교에 갔어요.



-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우리 부모님의 교육 방침이,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까 건강하게만 지내,같은 느낌이었어요.
특히 아버지는, 남자는 그거면 됐다, 라고.



- 남자 답게, 라고.



그렇죠, 남자라면 이렇게 해야한다라든가,
동료를 소중히 해야한다든가, 그런 이야기를 대부분 아버지로부터.
"여자 아이에게는 손 대지 마라"라는 것도, 항상 했던 말이었어요.
그것도 아주 어릴 때부터.
어릴 때는, 친구끼리의 싸움도 많잖아요.
그때에, 좀 상처를 만들어서 돌아가거나 하면,
제일 첫째로 하는 말이 "거기에 여자는 있었어?"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웃음)



- "없었어요"라고 말하면?



"그렇다면 괜찮아!"라고 (웃음)
아마, 남자 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걸, 아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거겠죠.
그러니까, 사람으로서 잘못을 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해주셨어요.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의견이 있으면서도, 제 말에 일리가 있으면,
기본적으로 좋아해주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해주셨죠.
감사합니다.



- 그리고, 아들은 선언한대로, 미용사가 되었어요.



아오야마의 유명한 가게에 취직했어요.
굉장히 열심히 해서, 비교적 빠른 단계에서 여러가지 일을 맡을 수 있게 되었어요.
다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근질근질하는, 어딘가 가렵다는 그런 감각을 느끼기 시작한 거예요.



- 안절부절 못하는 듯한 그런?



맞아요, 지금도 기억해요.
선배가 손님에게 둘렀던 루트(파마 도구)를 정리하고,
뒷 편의 스톡야드(stockyard)에 가지고 갔을 때, 창문으로 보이던 하늘이 엄청나게 푸르렀어요.
마침 일요일 오후라,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즐겁게 걷고 있었어요.
그 때 정확하게, 나는 도대체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거지? 라고 생각을.
이대로 인생이 끝나는 건 싫어!라는 기분이 갑자기 치솟아 올랐네요.



- 그거, 일이 힘들었다던가,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나요?



물론 일은 힘들기도 했어요.
초보 미용사는 분명 어디에서나 그렇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저와 같은 시기에 6명이 가게에 들어갔었는데,
1주일 후에는 절반이 되어 있었어요.
저는 그때, 그들이 그만두는 이유를 몰랐어요.
일이 힘든 것쯤은 극복하지 않으면, 어른이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그래도 언젠가, 문득 생각했었어요.
이대로 제가 미용사를 계속한다고 가정하면, 아마 점장이 될거고,
그리고 독립해서 가게를 내고...그 다음은 뭐지? 라고.



- 장래에 대해 두근두근할 수 없게 된 순간이었는지도.



그런거죠.
물론 미용사에도 여러 사람이 있어서,
여러가지 일의 방법이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어마어마하게 큰 꿈을 꿀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게는 아니야,라고.
그래서, 그날 중에 사장에게 말했어요, "그만 둡니다"라고.



- 정말 고민하지 않네요?!



"내일부터 오지 않습니다!"정도의 기세였어요 (웃음)



- 그만두는 이유는 뜨거운데, 그만두는 방법은 굉장히 가볍네요 (웃음)



그렇네요 (웃음)
뭐, 현실적으로는 갑자기 가게 스태프가 없어지면 주위에 폐를 끼치기 대문에,
그 뒤로 한 달을 제대로 일했어요.



- 그만둔 뒤에는 어떡할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으므로, 우선 프리터로 괜찮다고 생각했었어요.
마음의 꽤 안쪽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도 적잖이 있었습니다만,
보컬 레슨을 하지도, 악기를 연주하거나 밴드를 구성하는 것도 아닌,
다만 막연하게 음악을 하면 재밌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있던 정도였어요.



- 하지만, 적어도 취미는 있었던거죠?



그렇죠.
암튼 음악을 듣는 것은 옛날부터 좋아했어요.
10대 때는, 이른바 힙합 문화에 심취하고 있었어요.
나고 자란 곳이 도쿄의 하무리 시와 훗사 시인데요,
미군 기지가 근처에 있어서, 클럽도 많았었고, 댄서와 DJ도 많이 있는 환경이었어요.



- 그 중에서, 첫 충격적인 음악 체험은?



그런 의미에서 말한다면, 역시 'EXILE'이죠.
중학교 때, 친구가 [Your eyes only~희미한 나의 윤곽~]의 CD를 가져와서,
방과후의 교실에서 들려줬었어요.
걍 쩔어! 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부터네요, 가라오케에 가게 되고,
난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라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 그 때부터, 잘하네,라고 들었었나요?



전혀 듣지 못했어요.



- 그렇다면, 나는 노래할 수 있다,라고 자각한 것은 언제인가요?



미용사를 그만둔 뒤였다고 생각해요.
친구들과 마시러 가거나 하면, 가라오케에 가잖아요.
여러가지 놀이 중에서, 가라오케에서 노래 부르고 있을 때가 가장 좋다는 생각하고 있었어요 (웃음)



- 가수가 되겠다고, 명확하게 생각하지 않았나요?



멍하니, 됐으면 좋겠다, 정도였네요.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거야? 라는 의문이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에,
희망이 단숨에 시들어버리죠.
왜냐면, 가수가 되는 법을 모르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오디션이라든가 받아볼까? 아니면 스카우트되는 것을 기다리면 좋을까? 같은,
막연한 생각이 빙빙 돌며 소용돌이 치고 있을 뿐,
입구도 출구도 찾지 못한 느낌이었어요.



- 그때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양복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요,
양복도 좋아해서 즐거웠어요.
매일 충실했었네요.
아마, 기한을 스스로 결정했던 것도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이건 부모님과의 약속이기도 해서, 25세까지 인생을 걸 일을 찾아내, 라고.


- 부모님은 그래서 이해를?



네, 제가 스스로 결정한 것에는, 지나친 잔소리를 하지 않는 부모님이세요.
가족 사이도 좋으니까, 함께 식사하러 나가기도 하고,
"다음엔, 무슨 일 할까" "미용사로 돌아갈 마음은 없어?"
"일단 옷 가게에서 열심히해야겠어" "그래, 애써 미용실에 취직했는데" "미안" 같은 대화를 평범하게 해요 (웃음)
그런 부모님이기에, 약속을 잘 지키고 싶었어요.
실컷 민폐와 근심을 끼쳐왔으니까, 충분하지 않더라도 안심시켜 주고 싶었죠.



- 그럼, 그렇게 초조하지는 않았네요.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그때마다 최선이었으니까,
초조함이나 불안함은 없었던 것 같아요.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도록 했던 것도 있었을지 몰라요.
당연한 것이지만, 미용 업계도 패션 업계도,
성공하려면 보통의 노력으로는 따라잡지 못하잖아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일단 오늘도 알바가자, 같은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보컬 배틀 오디션2를 알게 된 것은, 마침 그런 시기였어요.



- 응모한 것 자체가, 과감했던 결정이었죠?



될거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게 안 된다면, 단호하게 포기하고 취직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타이밍에서, 이렇게 대규모 오디션이 개최된다는 것이,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찬스인거겠지,라고 모든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전부 그만두고 하기로 결정했죠.



-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디션을 본다라는 건, 비일상적인 일이네요.
모종의 기폭제가 필요했을거라 생각하는데, 무엇이 토사카 씨의 등을 떠밀었나요?



그건 틀림없이 친구나 선배네요.
그동안 아무에게도 가수가 되고싶다는 말을 못했거든요,
싸늘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웃음)
가수가 되는 것은 극소수라고 타이르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오디션에 나가면, 숨기는 것도 어렵잖아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말해보니, 모두가 응원해줬어요.
누구도 코웃음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 모두의 마음이, 정말 저에게 자신감을 줬죠.
하지만, 부모님에게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어요.



- 음악의 길로 갈지도 모른다는 것도?



네, 그런 이야기는 일절 한 적이 없었어요.
제가 오디션을 받고 있는 것은, TBS의 "주간 EXILE"을 보고 알았어요 (웃음)



- 우연히 말인가요?



어머니가 슈퍼에서 물건을 사는데, 아는 분이 말을 걸어왔다고 해요.
"오미군, 대단하잖아!"라고 (웃음)
마침 3차 심사에 남아있던 무렵으로, 프로그램에서도 꽤 두드러지고 있었으니까,
근처에도 알려지고 있었어요.
그날, 어머니로부터 메일이 왔어요.
"너 뭐하는거야?!"라고.
꽤 놀랐던 것 같아요.



- 그건 그래요 (웃음)



그렇죠, 갑자기 아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죠.
하지만, 응원해줬어요.
"힘내세요"라는 어머니의 말에 용기를 얻었어요.
그냥, 부모님도 뒤를 밀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워낙 이웃에 완전 알려져서 (웃음)



- 이겨나갈 자신은 있었어요?



전혀 없었어요.
처음에는 3만명의 응모자가 있었고, 그 주에는 남다른 각오로 임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어요.
당치도 않는 자리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제가 남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다만, 심사가 진행되고 인원이 압축되면서,
점점 제가 하고 있는 것이 현실성을 띠게 되었어요.
그러자, 기분이 점점 앞으로 향해 가는거예요.
3차 심사 정도부터는, 이렇게 된 거 최후까지 가자고 생각했어요.
그 마음이 강했기 대문에 최종적으로 뽑아 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지금 생각하면, 노래 부르는 기술은 전혀 없었죠.



- 토사카 씨의 생애의 반은, 전부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서 개척되어 왔네요.



축구를 포기하거나, 미용사 일을 그만둔 것도, 좌절이 아니라,
인생을 좀 더 좋게 하려고 방향 전환했던 거였죠.
듣고 보니, 저 쪽에서 NO를 내밀어서 어쩔 수 없이 퇴장하는 것은 없더군요.
다만, 좌절이라고 하면, 산다이메 JSB의 초기에 산더미처럼 있었어요.
몇번 무너졌는지 몰라요 (웃음)



- 하지만, 그게 정말 좌절이었다면 지금은 없네요.



그것도 그렇네요.
그래도, 상당히 좌절되어 왔어요.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 현재, 토사카 씨에게 산다이메 JSB란 어떤 존재인가요?



역시 "인생"이네요.
고맙게도, 지금, 투어를 하면, 총 수십 만명의 분들이 와요.
인생에서, 수십만 명의 기대나 마음에 향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저에게로 만들어 준 것은, 이 그룹이죠.
그러니까, 제 인생 그 자체입니다.



- 미용실 창문으로 하늘을 봤을 때 느꼈던 것처럼, 끝이 보이는 일도 없을 듯한가요?



오히려, 전혀 보이지 않아요.
물론, 멤버 각자가 이렇게 되고 싶다는 이상을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건 어떤 식이라도 바꿔 갈 수 있고,
그때마다 멤버 간에 화학 반응이 일어날테니까,
점점 재밌어져 가죠.
앞이 보이지 않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을 목숨 걸고 하며,
쌓아 올리고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그 앞에 있는 것이, 진화한 저희들의 모습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분명, 이 일은 평생 계속 해도 질리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요.




- 보컬리스트로서도, 항상 진화를 거듭하는 것이 사명이죠.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또 행복한 일이네요.
팬 분들도 그렇고, HIRO 씨부터 해서,
사무소 선배분들이나 스탭 여러분도 따뜻하게 지원해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더욱, 저만이 할 수있는 일을 하는 모습이 이상(理想)인거죠.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앞으로 여러가지를 흡수하고,
여러가지를 얻고 싶어요.
저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하거나, 표현이라던가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



- 노래 부르는 것에 대한 의식이나 사고방식도, 분명 많이 변했죠?



그것은 벌써, 180도 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할까요, 그냥 좋아하는 것으로 노래를 부를 때와는,
노래에 관해서 저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가 달라요.
이전에, ATSUSHI 씨가 "이 노래를 부른 후에 나는 죽을 거야, 이건 삶의 마지막인 노래인 거야,라고 생각하고 부른다면,
전달하는 것이 절대로 달라져"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모든 마음을 전부 부딪히며 부른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저희들에게는 투어 중의 한번인 공연이지만,
보러 와주시는 분 중에서는 이것이 인생에서 세번뿐인 공연인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한 순간도 손을 놓을 수가 없어요.
그런 마음으로 스테이지에 서지 않으면 실례라 생각하고,
누군가의 "단 한번의 라이브"인 노래에 어울리는 보컬리스트이고 싶어요.



- 그렇다면, 하나의 사람으로서는, 앞으로 어떻게 있고 싶나요?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



- 뭔가 갑자기 톤이 바뀌었습니다만 (웃음)



아니, 그거 중요한 거예요 (웃음)
부인이 있고, 아이가 있고, 그렇게 조용히 살고 싶다, 라고.
노래는, 나이를 먹어도 부를 수 있죠.
노래를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이 있는데요,
노래를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행복하게도, 노래를 직업으로 삼았으니까, 평생에 걸쳐서 추구해 가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노래 부를 일이 넘쳐흐르죠.
그러니까, 돌아가면 평화로운 가정이 있다는 그런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행복하겠어요.



- 다시 말하면, 공과 사를 딱 나누고 싶다?



그렇네요, 나누고 싶어요.



-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견입니다만, 스테이지 위의 잘 차려입은 토사카 씨와,
지금 이렇게 평상복으로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토사카 씨는, 사실은 딱 분리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그런 의미로는, 함께라고 생각해요.
저의 분위기라든지, 기합이 들어간 모습이라든지, 그런 거겠죠?



- 네, 맞아요. 스위치가 바뀌고 있는 듯한 인상이 없어요.



스테이지에 나갈 때는, 역시 어딘가 의식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둥글게 서서, 모두에게 기합이 들어가게 하고, 텐션이 서서히 높아지는 것도 자연의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스스로 스위치를 누르고 있는 감각은 아니네요.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자신이 파악한 것이라고 할까,
제 본연의 모습 같은 것은, 스테이지 위이거나 사적이거나 그 언제라도 마찬가지네요.



- 그 플랫한 감각이야말로, 토사카 씨 다운걸지도 몰라요.



어떨까요....다만, 적어도, 공들여서 매만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3년 전까지 노래에 관해서 전혀 문외한이었던 것은,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
조금 발돋움한 정도로는 속일 수 없는 것도 잘 알고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있는 그대로 승부하자, 라고.



- 아무튼 20세를 지날 때까지, 보컬리스트가 되는 기색조차 없었던 거네요.



정말.
이런 인생은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인생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자주 말하는데,
저는, 그런 일이 있을 리 없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뭐가 터질지 모르는거죠 (웃음)
인생은 갑자기 변화한다는 것을, 저는 3년 전에 확실히 경험했으니까,
당당하게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것을 믿고 싶으니까, 거기에 꿈을 꾸고 싶으니까,
저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힘껏하고, 신뢰를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http://imgur.com/E4lVOOP


http://imgur.com/WffuIAX



다들 빠빠이해 내가 데려갈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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