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체주의의 신호탄인가?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은 마지막회까지 뻔한 이야기를 거부했다. 인내하며 유지해야만 했던 '가족'의존엄은 '부암동 복수자들'을 통해 그 정의를 달리하게 된것이다
재벌가 혼외자인 김정혜(이요원)는권력과 명예를 뒤로하고 이혼녀가 되어 세계를 돌아다녔고 40대 생선장사 홍도희(라미란)는 자식을 위해 무릎을 꿇는 것은 자식들이 무릎을 꿇는 것과같음을 깨닫고 당당하게 가해자를 응징했다. 연하 훈남과의 연애는 덤으로 받은 포상. 소심한 현모양처인 교수 부인 이미숙(명세빈)도 폭력남편과 과감히 이혼하고 딸과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갈등의 대상이 가족일 경우 개과천선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한 가족으로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는반면, '부암동 복수자들'은 그 개연성 없는 개과천선의 과정을과감히 잘라내었다. 가족을 괴롭힐만한 만가지 이유가 있다 한들 나쁜 것은 나쁜 것. 감내하며 가족으로 살 자신이 없으면 과감히 털어내 자아를 되찾으라는 메시지를 속시원히 보여준 엔딩이다.
이병수(최병무)가 아버지(장용)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존재도 몰랐던 혼외자 고3 아들 이수겸(이준영)을데려온 것에서 김정혜의 고통은 시작된다. 재벌가 전략 결혼으로 세를 불리기 위해 존재가치를 증명해야했던 정혜는 태생적인 아픔이 있다. 혼외자였던 탓에 적자인 형제들의 핍박속에서 자란 것이다. 남편의 혼외자인 수겸을 근본적으로 미워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상황을 만든 남편 이병수에게는 어떤 복수든 해야했다.
홍도희는 남편을 일찍 잃고 남매를 키우기 위해 시장에서 생선장수로 살아가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과 배포만은 남다른이 시대의 강인한 어머니다. 자식들이 학교에서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상처받아 오면 자식을 위해 무릎끓는 것도 마다 않는다. 이까짓 무릎 다 닳아도 내 자식만 당당하게 살아가면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숙 역시 남편의 강권으로 아들이 원치 않는 유학을 하다 자살한 이후 폭력 가장으로 변한 것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같은 슬픔을 공유한 부부라는 이유로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폭력 가정에서 딸이 속으로 곪아가는 것은 알았으나 남편이 더 심해지지 않게하려면 자신이 참는 수 밖에 없다 생각해서다.
각자 다른 세상에서 고통받던 세 여성은 우연한 기회에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복자클럽을 결성한다. 흥미로운 것은 복자클럽의 멤버로 정혜의 혼외자 아들인 이수겸까지 합류한 것이다.
이수겸은 존재도 몰랐던 재벌가 아버지 이병수가 외조모와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 자신을 왜 갑자기 친자라고 인정하며데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외조모에게 물려받은 선산을 차지하기 위함인 것을 알고 자신의 의지와상관 없이 삶을 바꾼 아버지와 친모 한수지(신동미)에게 복수하기위해 복자클럽 멤버가 되었다
이들이 복수하고자 하는 대상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이다. 남편이고아버지이며 어머니이다. 복자클럽의 리더역할을 맡은 맏언니 홍도희는 자식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복수의대상이지만 넓게 보면 정혜와 미숙 남편들의 부조리와 얽혀 있는 홍상만교장(김형일)에서 비롯된 관계들이다.
이들의 소심한 복수는 물 끼얹기, 의자에 본드 묻히기, 닭싸움서 넘어뜨리기, 먹지 못할 음식 먹이기, 악취나는 옷 입히기, 중요한 미팅에 불참하게 하기 등 유치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작은 잽도 여러 번이면 KO패를 견인하듯 복자클럽의소심한 복수들의 집합은 결국 부폐 성추행 교장 홍상만을 감옥에 보냈다. 폭력남편이자 강압적인 아버지면서도이율배반적으로 교육감 선거에 나선 이미숙의 남편 백영표와 인정없는 기회주의자 재벌2세 이병수도 함께죄값을 치르게 했다.
커피믹스도, 라면도 생소한 재벌가 김정혜와 남편 뜻을 거스른적이 한번도없었던 소심한 이미숙이 생선장수인 과부 홍도희와 어우러지는 과정은 그 자체가 슬랩스틱 코미디이다. 힘을빼고 코믹한 연기에 온몸을 던진 이요원은 인생작이라 평가되며 호평을 받았고 더 이상 처연할 수 없으면서도 강인한 피해자로 분한 명세빈은 오랜만의컴백 후 제대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현실같은 생활연기로 어머니 이미지를 굳혀온 라미란은 연하 총각박승우(김사권)로 인한 설레임마저 실감나게 전달해 주부들의박수를 받았다.
출연진 각자의 연기력에 호평을 선사하며 정형성을 깬 '부암동 복수자들'은 색다른 엔딩으로 시즌2를 예고했다. '가족보다 나은 남'으로 묶인 이들은 우리네 일상에 일어나는 소소한복수를 대신 해주는 해결사로 거듭날 것이다.
이 드라마가 말하는 "가족은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는 것"을 해체주의 원론자인 자크 데리다(1930~2004) 식으로풀이하자면 "진정한 가족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 주는 것이다.가족에게 혈연은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닐지....깊어 가는 가을, 한 편의 속시원한 드라마가 주는 여운은 짧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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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드라마에서 주요 갈등구조가 가족이면 결국 가족이 화해하고 합치는 모습으로 가는데 부암동은 그걸 뒤집었다는 걸 잘 짚어준 리뷰라서 가져와 봄 .
원작보다 드라마가 결말이 좋았던 것도 이점이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