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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닭강정 [씨네21] '닭강정' 류승룡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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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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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니트를 입고 어깨 위에는 작은 닭 피규어를 얹은 류승룡이 걸어들어왔다. 그가 “불닭을 표현해봤어요”라고 말하면서 인터뷰는 시작됐다. 닭강정으로 변해버린 딸을 구해낸다는 어이없는 설정으로 웃음을 안기는 컬트 코미디 <닭강정>은 분명 ‘지금까지 이런 코미디는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시리즈다. 그러나 전설적 공연 <난타>(1997~2001)로 몸짓의 도를 익혔고 <7번방의 선물>(2013)로 부성의 계보를 시작했으며 <극한직업>(2019)으로 치킨 유니버스를 선포한 류승룡은 일찌감치 <닭강정>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낸 배우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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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에 <극한직업> 팀원들이 5주년 기념 모임을 했다고 들었다. 이병헌 감독의 신작인 만큼 함께 <닭강정>의 미래를 점쳐보지는 않았나.

= 배우들에게서는 염원과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사실 그 팀은 항상 기다리고 있다. <극한직업2>의 탄생을. 아무래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어쨌든 바람은 그렇다.



- 원작 웹툰은 한때 열풍을 일으켰던 ‘병맛’(어설픈 그림체, 뜬금없고 황당한 내용으로 전개되는 만화 등을 수식하기 위해 생긴 인터넷 조어) 만화다. 배우로서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풀이될지 감을 잡기 힘든 면도 있었을 텐데.
= 이병헌 감독과 나 모두 대중의 사랑을 받아봤고 또 이런저런 작품이 한참 잘 풀리지 않는 부침도 겪었다. 그런 시행착오 덕분인지 이제는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 찌릿하고 통하는 게 있다. <닭강정>은 ‘이거 한번 일 좀 내보자’ 하고 뛰어든 작품이다. 처음에 읽을 땐 ‘이게 말이 돼?’ 싶지만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쓱 빠져드는 이야기라는 점. 기상천외한 소재에만 그치지 않는 점이 특히 좋았다.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그 안에 각자의 공감 가는 사연이 들어 있다.



- 시리즈화되면서 캐릭터가 훨씬 풍요로워졌다. 첫인상에서 도드라지는 건 사극 톤의 말투다.
= 2D가 4D로 구현될 수 있게 하자, 감독님과 그런 얘길 했던 기억이 난다. 일상적인 톤으로 연기하면 오히려 그 맛이 살지 않는 시나리오 속 대사들이 많았다. 남다른 패션 센스를 고집하는 백중(안재홍)에게 “너는 왜 옷으로 외모를 조져?” 하는 것보다는 “자네는 왜 그 외모를 옷으로 조지나~” 하는 게 더 승산이 있는 접근이지 않은가. (웃음) 딸이 닭강정으로 변했다는 설정의 작품인 만큼 우리가 쓰는 언어 혹은 기호도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작중의 어법은 관객에게 <닭강정>의 톤 앤드 매너를 알려주는 일종의 지속적인 환기인 셈이다.



- 최선만은 평생 살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을 바랐고 결국 그 꿈을 이룬 정말이지 소박한 가치관의 소유자다. 백중의 노란 바지가 그에겐 인생의 사건일 정도인데 이런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 평범함의 위대함? 그런 것을 품고 있는 사람 아닐까. 욕심 부리지 않고 겨우 직원 2명 데리고 일하는, 기계를 만들지만 어떤 특별한 연구도 하지 않는(웃음) 지족하는 인간이다. 그것이 곧 게으르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만의 작은 성실함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잘 맞닿았으면 했다.



- <염력> <7번방의 선물> 이후 각인된 류승룡의 딸 바보 캐릭터들이 있다. <무빙>에 이어 <닭강정>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부성애 코드가 곧 신파로 이어질까 염려하는 관객도 있다.
= 모든 부모, 자식간의 감정은 그것을 표현하게 되는 순간 일정 정도 흔히 신파라고 부르는 감정선을 피하기 힘들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노력한다고 모성애를 표현할 수 없듯이 내가 가진 부성애를 잘 표현할 수만 있다면 배우로서는 어디까지나 좋은 쓰임이라고 본다. <닭강정>을 찍으면서도 우리 두 아들을 생각했거든. 내가 나의 일상에 만족하거나 어떤 하루에 감사하는 감정들은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아이들로부터 나오더라. 실제로 이런 삶을 살지 않았다면 아마 아버지 역할을 잘 표현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자기가 가진 재료가 연기에 자연스럽게 발현되도록 그저 놓아두는 것도 배우의 일이다.



- 한편 류승룡의 치킨 유니버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염력>을 시작으로 <극한직업> <무빙>, 전사까지 포함시키면 <나쁜 엄마>에서 모두 치킨집과 인연이 있는 캐릭터였다. 이번이 다섯 번째인 셈이다.
= 닭 요리의 세계는 넓고 깊다. 아직 해보지 못한 여러 가지 분야가 있다. 닭볶음탕, 닭찜, 내가 좋아하는 삼계탕, 닭백숙, 계란탕, 계란찜, 계란프라이… 아, 어른들을 위한 작품에 닭죽이 쓰여도 좋겠다. 하여간 무궁무진한 나머지 닭의 세계를 나는 또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인류에 닭이 없었다면, 혹은 닭의 지능이 너무 뛰어나 우리가 잡을 수 없는 존재였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따지고 보면 김유정 배우도 우리 <닭강정>에 적역이다. 유정란!



-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웃음) 이번엔 장르의 이면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코미디는 그 표면과 다르게 매우 예리함이 요구되는 분야다. <닭강정> 현장의 뒤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코미디를 소화할 줄 아는 배우들은 실제로도 항상 즐겁고 웃기고 유쾌할 거라고들 상상하시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같이 연기한 안재홍 배우만 해도 평소엔 조용하고 내성적이다. 나도 그렇고. 어쩌면 에너지를 아껴야만 농축된 웃음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표현해야 할 웃음이 다른 곳에서 새는 게 너무 아깝게 느껴진달까. 그래서 테이크가 돌아가는 순간에만 에너지를 뿜고 끝나면 다시 잠잠해지기를 반복한다. 현장 분위기는 그러니 외려 조용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농축된 웃음의 질량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무언의 합의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반대로 무겁고 진지한 작품을 할 때는 너무 깊이 매몰되지 않으려 자신을 좀더 풀어주기도 한다. 카메라 안팎은 항상 묘한 균형을 이룬다.



- 배우들과 일정한 톤을 맞춰가는 과정도 궁금한 작품이다. 한 사람만 미묘하게 어긋나도 추구하는 재미가 성립되지 않는 컨셉 아닌가.
= 이번 작품은 독특하게도 나, 안재홍 배우, 그리고 김남희 배우(모든기계 직원) 이렇게 많아야 세 사람이서 호흡을 맞추는 신이 대부분이었다. 툭툭툭, 서로의 감을 믿고 주고받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홍차 역의 정호연 배우가 처음 등장할 땐 서로 맞춰보는 시간을 꽤 가졌는데 그건 다름이 아니라 정호연 배우가 나와 안재홍 배우 때문에 너무 웃을까봐… 미리 웃게 해주려고 그랬던 거였다. 아마 정호연 배우에겐 극한 직업이었을 테다. 웃음 참느라고 콧구멍이 아주 사~알짝 커지지 않았을까? 특별 출연이지만 그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다. <오징어 게임> 이후 쏟아진 수많은 작품들을 고사하고 <닭강정>에 나온 것이라 우리로서는 그저 영광스러울 뿐이다.



- 류승룡을 타고난 코미디 배우라고 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최종병기 활>(2011),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명량>(2014)이 말해주듯 첫인상은 거친 장르물에 더 어울려 보이고, <내 아내의 모든 것>(2012)에서도 코믹 캐릭터이기 이전에 카사노바의 매력을 뽐냈다. 묵직한 표피 안에 숨겨둔 웃기는 재능의 근원이 궁금해진다.
= 고향이 충청도, 아버지가 9남매인데 고모들이나 사촌 형들하고 명절 때 모여 있으면 쉴 새 없이 서로를 웃긴다. 다들 시침 뚝 떼고 툭툭툭 웃기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인데 잘 보면 얼굴은 하나같이 무섭게 생겼다. (웃음) 그런 가정환경에서 얻은 내 기질이 있지 않은가 싶다. 어쩌면 매우 다행스럽다. 코미디에 안 어울릴 것 같은 외모로 웃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기쁨이니까.



- 장진의 영화에서 이병헌의 영화까지, 부지런히 웃음의 미묘함을 연구해왔다. 무엇이 이 일을 계속 잘하고 싶게 만드나.
= 장진 감독이 글쎄, 고등학생 때만 연극을 500편 봤다고 했다. 그게 장진 영화의 자양분이었다. 나 또한 지금 내가 하는 연기의 많은 부분들이 대학을 다닐 때 경험한 몰리에르의 희극, <굿닥터>(안톤 체호프의 단편들을 각색한 닐 사이먼의 희극) 같은 작품에 빚지고 있음을 안다. <난타> 역시 마찬가지인데, 5년간 매일매일 똑같은 작품에서 똑같은 연기를 하면서 체득한 것이 있다. 타고나길 특출난 배우는 아니지만 그런 경험들이 나름의 작은 득도로 이끌어준 것이다. 코미디는 말로 하기는 힘든 타이밍을 잡아채는 일이다. 몸으로 구현되는 표정, 엇박자, 거기서 나오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활력, 공백이 만드는 언어 같은 것? 이병헌 감독 작품을 이야기할 때 흔히 말맛을 이야기하지만 말맛도 결국은 말 아닌 것들이 도와주어야 하고 나는 그런 걸 잘해내고 싶다.



- 지금 당신에게 코미디란.
= 희로애락을 꾹꾹 눌러 담은 장르. 애환, 슬픔, 고통이 어쩌면 정수일 수도 있는. <닭강정>도 마찬가지인데 코미디로 정의되는 작품을 할 때마다 ‘아, 이게 인생이지’ 싶다. 그런 생각이 들면 너무 어려워지고, 어려우면 겸손해지고 그렇다. 하여간 코미디는 너무 까탈스러운 장르라 긴장하게 된다. 관객으로서도 블랙코미디를 정말 사랑한다. 시트콤도 좋아하는데 요즘엔 시트콤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어마어마한 배우들의 기량을 볼 수 있는 좋은 시트콤이 많지 않았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신구, 노주현 선생님 얼마나 멋졌는지! <순풍 산부인과> <거침없이 하이킥!>은 또 어떻고. 이런 시트콤들이 부활해서 내게 출현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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